대본영의 참모들 - 일본 군국주의의 광기
위톈런 지음, 박윤식 옮김 / 나남출판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일단 술술 잘 읽힌다. 수년 전에 샀지만 완독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결국 다 읽게된 위톈런의 <대본영의 참모들>에 대한 첫 느낌이다. 아무래도 역사를 전공한 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군더더기가 없고 나같은 아마추어들이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한때 작전의 신(허명이었다)이라는 쓰지 마사노부로부터 시작해서 만주사변의 원흉 이시와라 간지, 도쿄 전범재판의 슈퍼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일본 육군 최악의 전투였던 임팔작전의 사령관 무타구치 렌야에 이르기까지 메이지 시절부터 쇼와 군벌 시절을 아우르는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들이 화려하게 책 속에서 명멸한다.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제국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전을 계기로 부국강병이라는 논리 아래 폭주를 거듭하기에 이른다. 그 중심에는 바로 삿초동맹으로 일본의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사쓰마번과 조슈 번의 사무라이들이 있었다. 일왕을 정점으로 일왕에게만 충성을 다하겠다는 일단의 군인들이 군국주의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육군사관 학교 출신 엘리트 군인 중에서도 정예 소수만을 선발해서 육군대학(육대)에 진학시켜 훗날 일본 군계를 좌지우지할 일단의 군인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회 수석 졸업생은 도조 히데키의 아버지 도조 히데노리였다.

 

우리에게는 원수 같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지휘했던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엄청난 전과를 올리는데 성공할 수가 있었다. 엄청난 액수의 전쟁배상금과 타이완 할양, 조선에서의 우위권 확보는 전쟁의 목적과 규모 그리고 범위를 엄정하게 정한 이토의 혁혁한 공이었다. 하지만 제국 러시아와의 전쟁은 달랐다. 청일전쟁의 전비를 엄청나게 능가하는 비용과 수많은 전상자수를 보라. 문제는 그렇게 엄청난 피해를 치르고도 청일전쟁에 비해 얻은 게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일본의 망조가 시작된 게 아닐까. 일본인들이 군신으로 떠받드는 노기 마레스케가 뤼양 포위전에서 보여준 무모한 반자이돌격을 그대로 신봉해서, 태평양전쟁 당시 과달카날 전투에서 그대로 재현한 참모들의 무능함을 비웃기도 한다. 군신이 아니라 바보장수가 더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문제점은 문민정부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군의 지휘권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가 아닌 일왕에게 귀속시키면서 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군의 운좋은 승리는 일본 국내의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폭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육대 출신 참모들의 실력이라도 좋았으면 좋았겠지만 사회에서 격리된 채, 어려서부터 군대 문화만 체득한 이들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책상머리에서 벌이는 작전만 최고라고 생각한 이들이, 현대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병참 문제를 도외시하는 바람에 작전 지역에서 실제 작전보다 보급을 위한 약탈에 전념하느라 작전을 망친 게 한두 번이던가.

 

어쨌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바야흐로 세계열강들의 인정을 받게 된 일본제국의 군인들의 폭주가 시작되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육대 출신 엘리트 참모들이 있었다. 일본 육군의 이단아이자 천재였던 이시와라 간지의 경우를 보자. 만몽생명선이니 최종전쟁론 같은 황당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건설하고, 확전을 자제해야 한다는 이시와라의 주장은 바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군령 계통을 무시한 후배들에 의해 1937년 노구교사건을 계기로 중일전쟁이라는 전면전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임팔작전 당시 사령관이었던 무타구치 렌야가 일선 지휘관으로 활약했다는 점을 여기서 강조하고 싶다. 황도파와 통제파의 투쟁, 태평양전쟁 당시 고질적이었던 육군과 해군의 대립 따위는 문제도 아니었다. 40년 전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얻은 일본군은 자신보다 한 수 아래인 대륙의 장쉐량의 동북군벌과 장제스의 국민당군을 상대하면서 기세가 올랐다. 제국주의 선배인 영국과 네덜란드 그리고 후발주자 미국의 앞마당인 동남아시아와 서남태평양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조선과 타이완, 만주 그리고 중원까지 집어삼키는데 성공한 일본 군부의 가상적국은 원래 북방의 소련이었다. 작전의 신이라는 엉터리 참모 쓰지 마사노부가 드디어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의 주코프 사령관이 이끄는 기계화부대에게 참패당한 관동군의 주역들은 아무래도 수월한 상대인 남방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미국의 루즈벨트는 끝까지 파국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현 시점에서 일본의 중국 지배까지 인정하고, 전쟁에 꼭 필요한 물자인 석유금수 조치의 해제와 일본의 미국내 자산 동결을 취하하겠다는 훨씬 완화된 조건을 내걸지만, 폭주하는 일본군 참모들은 뚜렷한 전쟁목표도 없이 오로지 주전만을 외친다. 도대체 일본 군부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정한 전쟁의 목표가 존재했던가. 오로지 침략의 확대만이 그들이 원한 게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공업국가 미국을 상대로 해서 승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진주만 기습이라는 도박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오판한 일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결정적 전기를 내주기 전까지 필리핀, 홍콩, 말레이반도, 싱가포르 그리고 바타비아에 이르는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승전고를 울려왔다. 딱 거기까지가 일본군의 호시절이었다.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에서 비로소 미군의 실력을 알았음에도, 굳이 이단아 출신 천재 참모 이시와라 간지의 남양군도에서 후퇴해서 방어에 주력하라는 고언을 일본 군부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미나가 교지의 사주로 시작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주는 대전의 서곡이었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어디 그런 엉터리 참모가 도미나가 교지 하나 뿐이었던가. 상세한 정세판단을 할 수 있는 탁월한 정보참모들의 비관적인 의견들은 일절 무시하고 오로지 무모한 돌격작전으로 무수한 병사들의 생명만 희생시킨 자들이 바로 육대 출신 무능한 참모들이었다는 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물론 말미에 등장하는 호리 에이조 같이 적의 정세를 뛰어나게 분석해내는 참모도 존재했겠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소수의견이었을 뿐이다. 상관에게 보내는 정보마저 차단하고, 개전 당시 외교상대국 국가원수의 전보까지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하극상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이들이 바로 국가가 애써 양성한 엘리트 참모들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도조 히데키 같은 정치군인들은 종전 후, 군사재판에서 전범으로 분류되어 교수형을 당했지만 참모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하긴 그전의 그들이 중국 대륙과 남양군도에서 숱하게 저지른 하극상과 쿠데타 기도, 작전실패에 대해 그들의 상관들도 역시 책임을 묻지 않았던가. 당연히 A급 전범으로 처벌받았어야 할 쓰지 마사노부가 전후 잠행해서 장제스 휘하에서 안전하게 지내다가 전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난 시점에 등장해서 일본 정치인이 되었다는 점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한 때는 국가의 동량으로 떠받들어 지던 일단의 엘리트 군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대신, 자신들의 영달과 입신양명만을 위해 전쟁 확대를 주장하고 결국 국가를 패망으로 이끌었다는 점이야말로 <대본영의 참모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핵심이다. 만날 소설만 읽다가 간만에 읽은 역사평설이었다. 흥미로웠다.

 

* 과다한 오탈자와 오기 등등으로 별점 하나를 뺐다.
일본책을 번역해서 그런진 몰라도 문제가 심각하다.
출판사에서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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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2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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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