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일시 : 2018년 6월 6일 롯데시네마 아시아드

 

*** 사전 경고 :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 <한 솔로>가 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6월 5일을 기점으로 해서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간판이 내려가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먹히지 않는 저주에 사로잡힌 스타워즈 시리즈라고나 할까. 난 과연 언제나 극장에 가서 스타워즈를 보게 될런지.

 

하루만 더 버텨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영화 체인들은 단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고 현충일에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으로 전국의 상영관을 도배해 버렸다. 관객의 초이스를 줄여 벌여 최대한의 이윤을 올리려는 대자본의 막강한 파워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뭐 안 보면 그만이겠지만 또 다가온 찬스를 놓칠 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쥬라기 월드> 감상에 나섰다.

 

제프 골드블럼 아저씨만 제외하고 주인공들을 싹 갈아 치우고 리부트에 나선 <쥬라기 월드>. 이번에는 화산분출로 위기에 처한 이슬라 누블라의 격리된 공룡들을 구하라는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전작에도 크리스 프랫이 주연한 오웬 그래디와 합을 맞춘 바 있는 공룡 보호 협회(Dinosaur Protection Group) 소속의 공룡전문가 클레어 디어링(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이 이번에도 주인공으로 열연을 맡았다.

 

이안 말콤 역의 제프 골드블럼은 화산폭발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슬라 누블라의 공룡들을 구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의회 청문회에서 강변한다. 이미 인간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공룡들의 운명을 자연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반해 클레어는 소수의 공룡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일념 아래, 록우드 재단을 대표하는 일라이 밀스(라프 스팰 분)의 권유에 오웬을 리쿠르트해서 랩터 블루 일병 구하기에 나선다. 공룡보호 협회 소속 컴퓨터 너드 프랭클린과 지아 로드리게스와 함께 이슬라 누블라에 도착한 일행은 기존의 폐허가 된 시설에 도착해서 공룡 추적에 나선다. 아 참 영화의 시작은 바다 속에서 백골이 된 안도어쩌구하는 공룡의 뼈다귀 샘플을 채취하는 장면이다. 뼈다귀 채취를 맡은 탐사선은 바다괴물 공룡에게 삼켜지고, 사다리를 타고 공룡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던 요원 역시 바다괴물 공룡의 먹이가 된다. 흠, 극장에 아이들이 상당히 많던데 괜찮을 지 모르겠다.

 

록우드 재단에서 고용한 용병들은 모두 11종의 공룡들을 새로운 보호지(생추리)로 옮긴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슬라 누블라에서 생포한 공룡들을 전세계 수요자들에게 밀매하려는 가공할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는 녀석은 바로 ‘블루’라는 이름의 벨로시랩터였다. 오웬은 그저 블루를 생포하기 위해 미끼였을 뿐이었다. 용병대장 휘틀리는 거추장스러운 오웬을 마취총으로 쏘아 버리고, 블루를 포획해서 현장을 떠난다. 뜨거운 용암이 마구 흘러 오는 가운데, 마취에서 덜 풀린 오웬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서 도주에 성공한다. 한편, 폐허가 된 센터에서 공룡들을 추적하던 클레어와 프랭클린은 포악한 육식공룡의 추적을 피해 오웬과 합류해서 화산폭발이 시작되어 살아남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공룡 대열에 합류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오웬 일행은 이슬라 누블라를 마지막으로 떠나는 배에 가까스로 합류하는데 성공한다. 부둣가에 마지막으로 남은 공룡 브론토사우르스가 울부짖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용암 속에서 최후를 맞는 장면은 어쩌면 리부트된 시리즈의 엔딩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록우드 저택으로 향하는 가운데, 용병들의 총에 맞아 빈사 상태에 빠진 블루를 살리기 위해 티렉스가 갇힌 우리에 들어가 수혈할 피를 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아니 이렇게 인간들이 인도적이었던가.

 

오웬 일행이 그렇게 생존을 위해 싸우는 동안 록우드 저택에서는 또다른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선량해 보이던 일라이 밀스가 사실은 유전과학자 헨리 우와 결탁해서 새로운 유전자 조작으로 인도 랩터라는 괴물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전쟁을 위해 기화(weaponize) 공룡 제작에 나선 것이다. 레이저타게팅과 후각을 이용해서 적을 추적하는 능력은 물론이고 타고난 포악함으로 무장한 공룡이 전장에 투입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안 말콤의 지적 대로 그야말로 인류에게는 재앙이 되지 않을까.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영화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이 전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록우드 할아버지의 손녀 메이지 역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이 등치되는 것도 놀랍다.

 

결국 권선징악이라는 고대의 율법 대로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었던 일라이 밀스 역시 공룡에게 희생당할 숙명이다. 괴물 인도 랩터와 벌이는 마지막 사투야말로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의 핵심이었다. 공룡 유물 전신관의 정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있던 트리케라톱스의 무지막지한 유골의 쓰임새가 조금 궁금했었는데 엔딩에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인도 랩터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판에, 전작에서처럼 우리의 영웅 블루가 등장해서 자기보다 배나 큰 사이즈의 인도 랩터와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대단했다. 메지이와 오웬이 메이지의 침대에서 인도 랩터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빨간 모자 같은 베드타임 스토리가 연상되기도 했다.

 

일라이 밀스와 휘틀리는 노골적으로 돈을 추구하는 속물로 나오지만, 일라이가 감옥에 갇힌 오웬과 클레어에게 너희들도 자신과 다를 게 없다며 추궁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최고 씬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새로 단장한 쥬라기 월드, 이슬라 누블라의 공룡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 클레어였고 그곳에서 새롭게 재창조된 공룡 조련사로 활동한 게 바로 오웬이 아니었던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두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신의 영역에 도전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지 않냐고 반문하는 일라이 밀스의 당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막판에 록우드 재단의 지하연구소에서 배기장치가 고장나고,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날에는 전형적으로 날씨가 구질구질하다, 사이어나이드 가스가 갇힌 공룡들의 목숨을 위협하게 되자 클레어는 공룡들을 풀어놓았을 때 벌어질 위험을 책임질 수 있냐는 오웬의 말에 폐쇄철문을 여는 버튼 누르기를 주저한다. 그 때 마침 메이지의 결단으로 문이 열리고, 살아있는 생물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결단으로 공룡들이 마침내 세상에 풀려난다. 그렇게 익룡들이 노을 지는 석양을 날아다니고,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을 삼킬 지도 모를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이 펼쳐지게 되는 것일까. 자신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오웬의 제안을 거부하고 자연을 선택한 랩터 블루는 캘리포니아 계곡에 늘어선 어마어마한 인류의 주택단지와 조우하게 된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인류 생태계의 파괴라는 심오한 주제와 더불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공룡들이 스크린을 질주하는 장면을 마음껏 즐기라는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즌의 개막을 알린 오락영화의 신호탄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과연 리부트된 공룡 시리즈의 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휴일 즐길 만한 오락영화로서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뱀다리] 록우드저택의 공룡경매에서 시제품으로 소개된 인도 랩터에 대해 경매가가 마구 치솟자, 시제품이라며 안파는 물건이라며 손사래를 치던 일라이와 군나르 에버솔 아저씨의 모습이 재밌게 느껴졌다. 경매가가 2,000만 달러를 상회하자 다시 만들면 된다고 했던가. 새로운 존재의 창조까지도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한 힘을 자랑하는 자본 권력의 천박하면서도 막강한 빠워에 다시 한 번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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