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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깊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파리는 깊다 - 한 컬처홀릭의 파리 문화예술 발굴기 깊은 여행 시리즈 1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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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년전 아이들 둘을 데리고 4인 가족이 48일간에 걸쳐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하였다. 길지도 않은 기간동안 영국을 비롯해서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태리,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피레네 주변까지 둘러보았으니 가히 주마간산격이라 함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 가족들과 다짐한 여행 테마가 역사, 문화탐방이었으니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대영박물관, 앨버트 뮤지엄 등과 파리의 루브르, 오르세, 피카소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미술관들, 바티칸의 박물관들, 이태리 피렌체의 우피치, 그리고 독일의 현대미술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밀레의 바르비종, 모네의 지베르니, 고흐의 아를, 몽마르트르 등 미술가들의 작업의 산실을 둘러보고 괴테와 세익스피어가 묻힌 곳을 보았으며 가우디의 성당을 보았다. 물론 그외도 많은 웨스터민스터 사원, 쾰른 대성당, 노테르담 성당, 밀라노의 두오모, 베네치아의 성마르코 성당 등 많은 종교유적지도 살펴보았다. 당연히 파리도 5일간을 투자하여 보았다. 아니 구경했다.

후 후..그런데 이렇게 적고보니 이 책, <파리는 깊다>의 저자가 보면 냉큼 "얕은 여행을 했군요. 그 어디서도 깊은 곳을 보지는 못했군요!"라며 일갈을 할 것 같다. 과연 그런 핀잔을 들어야 할까??? 

솔직히 다른 이들의 여행기는 좀처럼 잘 읽지 않는다. 대문호 혹은 관련 전문가가 테마를 잡아 여행기 겸 전문서로 펴낸 책은 읽는 편이지만 그저 누가 어디를 색다르게 보았느니 하면서 광고만 요란한 책들은 알맹이는 없고 자화자찬만 난무한 잡문에 불과하기에 시간낭비라 생각한다. 

이 책도 그래서 처음 선뜻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먼지붓을 들고 도시의 때를 걷어내면 진짜 파리가 있다"고 책 표지에 자신있게 적어놓았기에, 그리고 <....깊다>라 했으니 아마도 여느 사람들은 잘 보지 못하는 숨어있는 장면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다른 이면의 내용이 있지 않을까 싶어 정독했다. 

그러나, 역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짜증은 배가되었다. 오해를 막기 위해 저자의 노력과 학식과 교양에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깊은 파리'는 없었다. 

전반부는 잘 엮여진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중간치의 소개, 그리고 영화사에 대한 파리 혹은 프랑스 누보로망의 소개, 후반부는 파리의 도시사 일부와 누구나 알고 있는(왠만한 여행안내서에는 고루 나와 있는) 서점가, 레스토랑, 카페 몇군데 소개가 전부다. 

미술에 관심있는 독자들은 이미 관련 전문서적이나 도록, 오르세와 오랑주리 등에 대한 자세한 소개서, 그리고 심지어는 이 책에 등장하는 미술가들의 서신집, 수상록 등까지 이미 독파했을터이니 이런 내용들로는 '깊은 파리'는 커녕 '얕은 파리'도 다가오지 않을 터이고, 인터넷을 뒤지거나 우리의 최근의 도시별 여행안내서만 펼쳐도 나오는 파리의 도시변천사, 그리고 출판계 혹은 도서전문가에는 너무도 익숙한 파리의 서점들(중고도서점, 가판헌책판매점까지 포함), 파리의 레스토랑 가격대비표까지 구비된 안내서가 즐비한데, 이런식의 각종 관련서적 편집 내용을 두고 '깊은 파리'라 하지는 말았으면 싶다. 

저자는 적당한 분량이 지날 때마다 에펠, 개선문을 둘러 사진 박는 일은 접어두라고, 루브르에서 다리품 파는 일은 관두라고, 퐁피두센터를 찾기보다는, 앵발리드의 나폴레옹 석관을 보기보다는 렉상부르정원에서 햇살을 맞아 보라고 한다. 그래야 '진짜 여행'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도 여러 군데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기에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다. 대체 왜 '자기식'만을 강권할까? 여행의 참맛은 누가 정의하는 것일까? 어설픈 여행가는 그런대로 자기식의 느낌이 있을테고, 전문여행가는 쉽게 보지 못하는 구석을 찾아내 볼 것이며, 오랑주리가 아니라 암스테르담의 성박물관에서도 깊은 통찰과 역사를 읽어내는 여행객도 있을 것이며.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아이와 너무도 즐거운 경험을 같이 나눈 우리 가족은 그대로의 색다른 여행을 했다고 자부할 수도 있을 터인데, 왜 저자에게 핀잔아닌 핀잔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식대로의 감상과 여정이 아니면 '진짜'가 아니라 '가짜'가 된다는 발상은 참으로 어이없다.  

저자의 미술작품 그 자체보다는 미술사에 대한 지식, 저자의 음식맛에 대한 탐닉보다는 식당 이용에 대한 '기교 혹은 팁', 저자의 영국과도 다르며 일본과 한국과도 다른 프랑스식 정원의 풍광보다는 그저 분위기에 대한 찬탄 등은 적당한 독서와  자료섭렵이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미셀러니에 불과할 것인데,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자기를, 자신의 유치한 논리만을 앞세울까?      

읽다가 저자의 약력소개를 보니 파리에만 50여회 다녀왔단다. 파리를 50여회, 한번 여정에 일주일을 잡아도 파리만 일년을 돌아다닌 셈인데,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내놓은 '깊은 파리'가 겨우 오르세와 오랑주리, 인상파와 로댕, 누보로망과 현대사진작가 몇사람에 얽힌 일화 소개에 정원 몇군데, 서점, 골목길 정도라면 미안해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하기야 평생을 파리에 산다고 해서 과연 '깊은 파리'를 제대로 알겠는가???   그래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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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구름 2010-09-0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같은 저자의 책이라 혹시 했는데 역시군요~
공감하고 갑니다!

자운 2010-09-1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저자의 지나친 현학자연 하는 태도가 눈에 거슬리고, 우리 주변에 너무도 넘쳐나는 잡학을 박학으로 치장하는 천박한 논리에 가슴 아플 따름입니다~ 아마도 <피렌체>얘기도 그랬으리라 짐작되네요~
 
<사랑의 승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의 승자 -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오동명 지음 / 생각비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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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지 꼭 일년이 지났다. 2009년 우리는 이른바 자신있게 민주정권이라 불러도 좋을 두 정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을 이끌었던 전직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한꺼번에 잃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슴 아픈 일이다. 

'후광'이라는 아호로, '선생님' 이라는 경칭으로, 그리고 '인동초'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마 해방 이후 우리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준비된 대통령'이었고, 정치가 다운 정치가였으며, 사회사상가, 통일운동가, 세계평화주의자였다. 이제 지역색을 넘어, 그에게 덧씌워진 그릇된 편견과 왜곡을 넘어 참다운 영광을 안겨주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국민을 상대로 한 대중연설을 많이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 첫머리는 항상 여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이었다. '존경'과 '사랑'의 순서가 늘 일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판에 박은듯 동일한 서두로 연설을 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다. 그에게는 늘 국민을 향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가득했던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아마 후광 역시도 이런 국민의 불신을 잘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이 국민에게 진정으로 존경과 사랑을 보내고 있음을 언젠가는 국민들이 알아주고 느껴주리라 믿었을 것이다. 

<사랑의 승리>라 이름붙은 이 책은 정치인 김대중의 여러 편린들과 순간을 사진으로 담고 간단한 소감과 일화를 덧붙인 책이다. 사실 흔하디 흔한 김대중 대통령 관련 사진집 혹은 비하인드 스토리 모음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색다른 면이 있다. 저자는 과거 정치부 소속 사진기자로서 김대중 대통령의 야당 총재시절,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그리고 대통령이 된 후의 에피소드 등을 직접 카메라에 담고 그것들이 신문 지면을 통해 공개화되었건 아니면 혼자 간직했던 장면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에 얽힌 저자와 김 대통령의 직접 대화를 간간히 곁들여 소개하므로써 보다 생생하고 여실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김 대통령께서 살아 생전에 하셨던 많은 정치적 언행을 곁에서 지켜보고 렌즈로 포착하는 것은 물론 궁금증을 직접대화로 풀기도 하고 오해와 이해를 교차해가면서 애증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그에게서 인간을, 사랑을 보게 되었노라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김대중'을 가리켜 '사랑의 승리자'라 하였다. 

진정으로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위대한 대통령의 눈길에서 손짓에서 우리가 이제는 '사랑'을 읽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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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사냥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일 사냥꾼 -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아담 리스 골너 지음, 김선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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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신문, TV에는 건강정보가 넘치고 넘친다.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려는 인간들의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온갖 정보가 너무도 많은 것이다. 그 중에는 기기묘묘한 방법도 허다하고 전통의학, 대체의학을 표방하는 처방도 상당한데, 대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들은 주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식이요법이 아닐까 싶다. 

이런 건강식을 소개하는 수많은 정보가 거의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싱싱한 제철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라는 권고일 것이다.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빨강색의 탐스런 과일을 섭취하는 것은 도무지 버릴 것 없는 천혜의 건강식이라는 말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을 듯 싶다. 그만큼 과일에 관한한 인류의 100%가 예찬일변도라는 것이다. 

그런 천상의 식품인 과일에 대하여 진기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 바로 <과일사냥꾼>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과일'에 관한 재미난 일화와 과일에 탐닉하는 이들의 유별난 삶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과일백과는 아니다. 예를 들면, 사과의 원산지는 어디며 그 효능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과의 재배방법은 어떠하고 어떤 병충해에 약한지, 사과품종은 어떻게 구별되며 품종에 따른 혹은 지역에 따른 사과의 질은 어찌 구분되는지 등등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과일을 다루되 과일의 이면, 과일을 예찬하되 과일 숭배자의 특이하고도 재미난 일화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책을 넘기다 보면 온통 '과일'이 넘쳐난다. 본문만 400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과일'이라는 단어가 없는 쪽수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과일중독, 과일사냥, 과일치유, 과일전쟁, 과일박쥐, 과일탐정, 과일강도, 과일경찰 등등 평소에 듣기 힘든 용어를 비롯하여 누구나 한번은 들어보았을 다른 용어들, '과일' 이라는 말이 앞에 위치한 합성어 혹은 파생어만 하여도 대충 헤아려 약 100여 가지가 등장할 정도로 과일에 관한한 무한한 얘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딸기, 자두, 복숭아, 참외, 수박, 토마토, 포도, 사과, 배, 감, 오렌지, 귤, 자몽, 바나나, 파인애플, 멜론, 키위(참, 여기서 수박, 토마토는 과일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등등 불과 20여종 정도만 평소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는 과일이 마치 장맛비 쏟아지듯 연이어 등장하는 책을 읽는 것은 어찌보면 고역일 수도 있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역자와 출판사에서는 별도의 찾아보기를 만들어 좀 소개라도 해주면 좋지 않았을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통해 그 생김새 정도라도 그리고 어느 정도의 풍미에 대한 소개라도 해주었더라면 더없이 좋았으련만....... 

암튼, 좋아하고 사랑하는 과일을 찾아 헤매는 광적인 '과일애호가'들이 겪은 파란만장하고 흥미진진한 얘기를 읽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자꾸 침을 삼키고 마음마저 청량해지는 느낌을 가질 수 수 있어 좋았다. 

필자는 과일사냥꾼들이 지구 곳곳을 누비며 과일을 찾아내고 보존하며 아끼고 맛보는 이야기를 통해 과일에 대한 인간의 애정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또한 저자는 그저 과일에 대한 무작정의 찬사만 늘어놓는다거나 과일이 건강에 이롭고 질병을 치료하는 효능을 지녔다는 식의 막연한 예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냉정한 시각에서 과일에 대한 지나친 탐닉이 빚어낸 불화와 불행, 갈등과 다툼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자본의 위력 앞에서 점점 자연의 풍미를 잃고 인공의 작품으로 변해가는 과일의 타락도 강도높게 제기하면서 과연 이 시대 우리에게 '제대로 된 과일'을 맛보는 기회는 사라졌는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신의 선물 혹은 진화의 산물인지는 구별할 필요 없지만 인간에게, 아니 동물 전체 종에게 없어서는 아니되는 '과일'의 진정한 맛을 찾고 그 은혜로움을 누리고자 하는 '과일사냥꾼'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삶을 추적해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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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 김남시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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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이라는 제목이 정말 걸맞기는 한걸까?  

보통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 하루의 삶에서 느끼는 자그마한 희노애락을 자신있게 토로하는 일도 버겁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친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는 일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술 한잔을 앞에 두고 울며불며 털어놓는 일조차도 쉽지 않은데, 자신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으며 신경병자였음을 밝히는 일은 물론이고 이처럼 그 적나라한 정신궤적을 마치 세밀화 그리듯 토해낸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100년도 넘은 이전의 시기, 막 20세기가 시작되던 1903년에 출간된 다니엘 파울 슈레버의 이 '고백록'은 참으로 적나라한 회상인 것은 물론 처절한 인간내면의 기록이다.  

독일 유수의 도시인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의 의장(우리식으로 따지자면 고등법원장)을 역임할 정도로 박학다식했던 뛰어난 지식인, 지성인, 전문가가 두번에 걸친 정신치료소 입원을 거치면서 신이 어떤 음모를 꾸며 자신을 공격 핍박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으로 만들어 임신시키려 한다고 생각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박증과 과대망상을 겪으며 이를 극복해나가는 참담한 궤적을 한 치의 가감도 없이 그려내고 있다. 

이 '무거운 내용의 저작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뭔가의 깊이와 넓이와 힘과 충격과 계시를 던져준다. 슈레버는 이 고백록에서 자신의 정신이상증세를 피상적으로 살피고 그에 대한 의학적 진단을 하며 헤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다만 묘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철학, 종교, 심리학, 신학, 예술, 문학, 사회심리학, 심지어는 광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당시의 풍토로는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의 적나라한 외설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지닌 모든 역량과 학식과 교양, 그리고 이해를 총체적으로 구사하면서 자신의 편집증적 증상의 발현과 스스로의 판단을 그려내고자 한다. 

어느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세익스피어를 보는 듯 하고, 또 어느 부분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보는 듯도 하며. 어느 부분에 이르면 괴테를 만나고, 그러다보면 빅토르 위고의 표현도 나타나고, 발자크의 <인간희극>이 보이는가 하면, 사드와 헨리 밀러도 드러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피카소의 분해되고 재정립된 입체파적 그림이 되기도 하며 어느 치밀한 과학수사기록을 보는 듯도 하고 1만 조각이 넘는 퍼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도 들며 끝내는 정신병동 한가운데서 집단 관찰을 하며 그 무작위의 방언들을 순서도 없이 듣고 기록하는 기분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끝일까? 분명 그렇지 않다. 이 회상록은 그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치밀하고도 이성적 판단과 순서, 설명과 이해로 가득찬 한 편의 비범한 논술이고 분석서이며 비평서라 할 만하다. 인간의 내면에서 쉬임없이 솟아나는 이상하리만큼 복잡미묘한 감정과 욕구와 망상과 허상 등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메스를 들이대며 무한의 분석을 계속하며 그 연원을 찾으려 한다. 그 과정을 허식이나 과장, 거짓이나 조잡한 비유 없이 무서우리만치 있는 그대로 그려나간다. 

왜 이 저작이 이후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문예사조로, 철학이론으로, 심리학 조류로, 그리고 정신분석학에 다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는 굳이 전문가가 해설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아니다. 이 저작을 인내심을 가지고 찬찬히 읽고 음미하다보면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초현실주의 문학이론에 자동적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쉬르리얼리즘이라는 20세기 초중반의 문학사조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자동기술법'을 굳이 운위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것의 예시를 들지 않더라도 이 회상록은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자신을, 그것도 혼란스럽고 기이한 집착과 강박증세에 시달린 흔적을 이토록 숨김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한 마디로 인간의 삶에서 진실과 꿈, 그리고 이성의 힘이 얼마나 강렬한 추동력인지를 보여주는 '무섭고도 감동적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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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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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샤프라고 불리는 자동연필(mechanical pencil)을 나도 몇자루나 갖고 있다. 가벼운 플라스틱 혹은 금속으로 몸체가 만들어진 것도 있고 wood제품인 것도 있다. 연필을 사용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책을 볼 때나 뭔가 메모를 할 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그것을 집어 들게 된다. 그러니 많은 숫자의 샤프가 딱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문방구점을 지나치게 될 때면 특이한 모양, 혹은 디자인이 이쁜 것들을 부담없이 집어 들다 보니 필요 이상의 샤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독서나 메모를 위해 하나를 고를 때면 대개 늘 사용하는 친숙한 것을 손에 들게 된다. 색깔이나 재질, 어느 것 하나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동일한 샤프가 손에 들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무의식 중에 더 애착이 가거나 마음이 동하는 종류가 있음이 아니겠는가? 왠지 그 연필을 손에 들면 독서의 효율도 오를 것 같고 공부에 열중하게 되리라는 암묵의 동의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람에게 누구나 그처럼 알게 모르게 '의미'를 지닌 것들이 무수히 많을 수도 있고 특별한 한 두가지 물건에는 더더욱 그런 애정과 추억과 각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들이 있을 터이다. 

평상시에는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그치던 것이 바로 이 책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에서는 새로운 '의미'가 있음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34명의 저명한 각 분야 전문가--책에서는 세계적 석학이라 소개했는데,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 태반이다. 워낙 과학분야의 '전문가'가 많다 보니 아무래도 일반인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이 별로 없어 보인다--가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인연을 지닌, 혹은 특이한 경험으로 자신의 생을 결정지은 그러한 물건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하기야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 추억, 획기적인 인생의 전환, 결정적인 진로 확정 등에 영향을 미친 것이 어찌 하나의 사물만 있겠는가? 누군가의 조언, 충고, 격려, 그리고 자신의 참담한 실패, 갈등, 환희, 감동, 애달픈 사연, 아름다운 풍광, 한 줄의 글귀 등등 유무형의 것들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가? 

다만, 이 책에서는 그중에서 유독 '사물' 한 가지씩을 내세워 자신의 삶의 궤적을 이야기 한다. 첼로, 매듭, 사진 몇장, 여행가방, 수첩, 노란 우비, 노트북, 멜버른 기차, 팔찌, 진공청소기는 물론 심지어는 우을증 치료제, 혈당측정기까지 있으며 월드북 백과사전도 등장한다. 그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물건의 종류는 사람의 개체수 만큼 많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 포함된 34인은 그 각각의 물건을 단순히 추억하고 자신의 삶과의 묘한 인연을 설명하는 가벼운 고백이기를 거부하고 그 하나 하나에 대한 깊은 의미를 천착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 푸코의 철학, 칸트의 철학, 에릭 에릭슨의 사회심리학, 피아제의 인식론, 가스통 바슐라르의 문학이론, 안데르센의 동화 한 대목이 가진 의미, 롤랑 바르트의 문예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까지 종류도 다양한 이론과 학설, 철학 미학적 이론이 각각의 고백담에 추가되고 분석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면, 가벼운 읽을거리의 미셀러니가 아니라 본격적인 에세이가 되고 있음이다.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겠다며 책을 펼쳐들면 큰코를 다치기 십상이다. 무겁지 않은 저자들의 내면의 토로를 듣고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각각의 물건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며 삶이란 얼마나 많은 의미들로 채워져 있는가를 곰곰 따져 보지 않는다면 이 책이 주는 '의미'는 퇴색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누구나 동일한 물건에 동일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일반적인 평가를 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 그런 점을 읽을 수 있다. 어찌 혈당측정계가 누군가에게 진지한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고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런 차원에서 오늘 이 독서 이후부터는 세상의 모든 사물, 내 주변의 작은 물건들이 "나는 대체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라며 물으며 달려들 것 같다. 비단 그뿐이겠는가? 나 역시 스쳐넘겼던 '나의 물건'들을 보다 유심히 대하며 내삶의 많은 것들이 저들 물건에 얼마나 빚지고 있는가를 새삼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내 인생의 의미있는 사물"은 무엇일까?   

나도 이 책에 포함될 만한 한 편의 '에세이'를 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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