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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깊다 - 한 컬처홀릭의 파리 문화예술 발굴기 ㅣ 깊은 여행 시리즈 1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4년전 아이들 둘을 데리고 4인 가족이 48일간에 걸쳐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하였다. 길지도 않은 기간동안 영국을 비롯해서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태리,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피레네 주변까지 둘러보았으니 가히 주마간산격이라 함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 가족들과 다짐한 여행 테마가 역사, 문화탐방이었으니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대영박물관, 앨버트 뮤지엄 등과 파리의 루브르, 오르세, 피카소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미술관들, 바티칸의 박물관들, 이태리 피렌체의 우피치, 그리고 독일의 현대미술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밀레의 바르비종, 모네의 지베르니, 고흐의 아를, 몽마르트르 등 미술가들의 작업의 산실을 둘러보고 괴테와 세익스피어가 묻힌 곳을 보았으며 가우디의 성당을 보았다. 물론 그외도 많은 웨스터민스터 사원, 쾰른 대성당, 노테르담 성당, 밀라노의 두오모, 베네치아의 성마르코 성당 등 많은 종교유적지도 살펴보았다. 당연히 파리도 5일간을 투자하여 보았다. 아니 구경했다.
후 후..그런데 이렇게 적고보니 이 책, <파리는 깊다>의 저자가 보면 냉큼 "얕은 여행을 했군요. 그 어디서도 깊은 곳을 보지는 못했군요!"라며 일갈을 할 것 같다. 과연 그런 핀잔을 들어야 할까???
솔직히 다른 이들의 여행기는 좀처럼 잘 읽지 않는다. 대문호 혹은 관련 전문가가 테마를 잡아 여행기 겸 전문서로 펴낸 책은 읽는 편이지만 그저 누가 어디를 색다르게 보았느니 하면서 광고만 요란한 책들은 알맹이는 없고 자화자찬만 난무한 잡문에 불과하기에 시간낭비라 생각한다.
이 책도 그래서 처음 선뜻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먼지붓을 들고 도시의 때를 걷어내면 진짜 파리가 있다"고 책 표지에 자신있게 적어놓았기에, 그리고 <....깊다>라 했으니 아마도 여느 사람들은 잘 보지 못하는 숨어있는 장면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다른 이면의 내용이 있지 않을까 싶어 정독했다.
그러나, 역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짜증은 배가되었다. 오해를 막기 위해 저자의 노력과 학식과 교양에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깊은 파리'는 없었다.
전반부는 잘 엮여진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중간치의 소개, 그리고 영화사에 대한 파리 혹은 프랑스 누보로망의 소개, 후반부는 파리의 도시사 일부와 누구나 알고 있는(왠만한 여행안내서에는 고루 나와 있는) 서점가, 레스토랑, 카페 몇군데 소개가 전부다.
미술에 관심있는 독자들은 이미 관련 전문서적이나 도록, 오르세와 오랑주리 등에 대한 자세한 소개서, 그리고 심지어는 이 책에 등장하는 미술가들의 서신집, 수상록 등까지 이미 독파했을터이니 이런 내용들로는 '깊은 파리'는 커녕 '얕은 파리'도 다가오지 않을 터이고, 인터넷을 뒤지거나 우리의 최근의 도시별 여행안내서만 펼쳐도 나오는 파리의 도시변천사, 그리고 출판계 혹은 도서전문가에는 너무도 익숙한 파리의 서점들(중고도서점, 가판헌책판매점까지 포함), 파리의 레스토랑 가격대비표까지 구비된 안내서가 즐비한데, 이런식의 각종 관련서적 편집 내용을 두고 '깊은 파리'라 하지는 말았으면 싶다.
저자는 적당한 분량이 지날 때마다 에펠, 개선문을 둘러 사진 박는 일은 접어두라고, 루브르에서 다리품 파는 일은 관두라고, 퐁피두센터를 찾기보다는, 앵발리드의 나폴레옹 석관을 보기보다는 렉상부르정원에서 햇살을 맞아 보라고 한다. 그래야 '진짜 여행'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도 여러 군데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기에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다. 대체 왜 '자기식'만을 강권할까? 여행의 참맛은 누가 정의하는 것일까? 어설픈 여행가는 그런대로 자기식의 느낌이 있을테고, 전문여행가는 쉽게 보지 못하는 구석을 찾아내 볼 것이며, 오랑주리가 아니라 암스테르담의 성박물관에서도 깊은 통찰과 역사를 읽어내는 여행객도 있을 것이며.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아이와 너무도 즐거운 경험을 같이 나눈 우리 가족은 그대로의 색다른 여행을 했다고 자부할 수도 있을 터인데, 왜 저자에게 핀잔아닌 핀잔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식대로의 감상과 여정이 아니면 '진짜'가 아니라 '가짜'가 된다는 발상은 참으로 어이없다.
저자의 미술작품 그 자체보다는 미술사에 대한 지식, 저자의 음식맛에 대한 탐닉보다는 식당 이용에 대한 '기교 혹은 팁', 저자의 영국과도 다르며 일본과 한국과도 다른 프랑스식 정원의 풍광보다는 그저 분위기에 대한 찬탄 등은 적당한 독서와 자료섭렵이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미셀러니에 불과할 것인데,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자기를, 자신의 유치한 논리만을 앞세울까?
읽다가 저자의 약력소개를 보니 파리에만 50여회 다녀왔단다. 파리를 50여회, 한번 여정에 일주일을 잡아도 파리만 일년을 돌아다닌 셈인데,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내놓은 '깊은 파리'가 겨우 오르세와 오랑주리, 인상파와 로댕, 누보로망과 현대사진작가 몇사람에 얽힌 일화 소개에 정원 몇군데, 서점, 골목길 정도라면 미안해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하기야 평생을 파리에 산다고 해서 과연 '깊은 파리'를 제대로 알겠는가??? 그래서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