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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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먼 그대>의 작가이신 서영은 선생님께
의례적인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평소에 그리 건강하신 체질은 아니신 듯 보여 이즈음의 선생님 건강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자주 여행을 다니시려면 그 무엇보다도 건강이 우선일 듯 싶은데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쪼록 잘 챙기시길 부탁드립니다.
산티아고를 찾은 여행, 그 길에서 만난, 그리고 선생님께서 찾으신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에게 남김없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셔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그저 여기 이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선생님 덕분에 저희도 어느새 산티아고엘 동행한 느낌입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우선 선생님의 이번 산티아고 순례의 여행은, 선생님께서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저는 이하에서는 "걸었다"로 약칭하려 합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왜 <화살표>로 약칭하지 않느냐고 못마땅해 하실 수도 있지만, 독자인 저로서는 <걸었다>로 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이 부족한 편지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보고문에서 여러번 강조하여 기록하고 고백하신 것처럼 '버림' '떠남' '새로이 짊어짐'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선생님은 물리적인 배낭 속 물건 버리기와 그걸 통한 비움과 얻음, 애증 버리기와 그걸 통한 새로운 사랑 익히기라는 명제를 반복해서 말씀하셨고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처음 연말의 문학상 심사 에피소드를 소개하시는 부분에서 앞으로의 글의 진행과 펼쳐질 많은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자세를 곧추세우며 정좌하고 글읽기에 돌입했을 때, 저는 재미삼아 읽는 독서가 아니라 제 영혼에 긴장의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정독하리라 마음먹었습다. 물론 이런 저의 고백은, 문단의 뒷 이야기, 선생님의 문학적 이력이나 삶의 곡절에서 비롯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대했다는 말은 결단코 아닙니다. 설혹 그런 에피소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선생님의 내면을 드러내는 단순한 배경, 혹은 작은 장치에 불과하리라는 느낌은 처음부터 들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예술의 전당에서 '양희은'이라는 가수의 콘서트를 본 적이 있습니다. 듣는 이에 따라 그니의 노래가 좋으냐 아니냐 하는 일반적인 음악평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은 단순한 무대, 어쿠스틱한 악기 배열, 청아한 음성, 혼신의 힘을 다하는 가수의 열정, 몰입하는 청중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냈기에 콘서트장을 빠져 나오며 저 혼자말로 '마치 영혼을 샤워한 느낌'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선생님의 이번 <걸었다>를 읽기 시작하면서 저는 그런 제 경험이 다시 반복될 것 같은 예감을 지녔더랬습니다.
그리고 분명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감성과 정신의 울림이라는게 누가 강요하거나 억지로 집어 넣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느낌과 정서라는게 억지로 가져다 준다고 받고 공감하는 것도 아닐진대, 선생님의 <걸었다>는 걷기도 전에 이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으니 독서가로서는 얼마나 행운이었겠습니까? 마치 선생님께서 출발도 전에, 아니 순례의 여행을 천착하기도 전에 이미 들떤 마음으로 결정하신 것 처럼요.
그리하여 "자~ 선생님을 따라 출발해보자"고 하며 시작했습니다. 비행을 하고 베트남의 나이 어린 그 처녀의 아픔과 죽음을 같이 아파하고 그리고 파리의 드골공항에 도착하여 긴 기차여행을 하여 독자인 저도 스페인 어느 한 도시 '이룬'의 출발선에 섰습니다.
<걸었다>의 88쪽에서 저도 '드디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걷고 걸었습니다. 며칠을. 100쪽이 넘을 무렵까지 선생님의 발 뒤꿈치를 따르기도 하고, 쓰리고 아픈, 그래서 물집 생겼을 발가락을 걱정하며 따라 걸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어느새 선생님은 '기독교' '하나님' '예수' '성서의 어느 구절''성령' '은혜' ....눈에 보이고 피부에 와닿는 모든 것들을 '아멘'(선생님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아멘~ 쿡')하기 시작하시더군요? 그렇습니다. 제말투에서 느꼈셨으리라 짐작하지만, 저는 그때부터 좀 못마땅했습니다.
잠시, 이 부분에서 저도 밝혀두어야겠죠? 저는 막연히 기독교를 폄하하는 사람도 아니고,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적 입장을 지닌 사람도 아닌, 그저 독실한 '무신론자'일 뿐입니다. 물론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마흐메트님'을 그 누구보다도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ㅎㅎ 무신론자라 했으니 알만하다..고 나무라시지는 않겠죠?)
순례의 여행, 혹은 고행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선생님의 <걸었다>에는 이런 딴죽을 걸게 되나를 저도 곰곰 따져 보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선생님을 우리는 여전히 '소설가' '문학예술인'으로 알고 있고 선생님의 글과 작품은 '문학작품의 범주'에 있을 거라는 어떤 선입관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그럴거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쉽지 않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고행하신 선생님마저 그 길과 여정을 '순례'로만, '신앙의 길'로만 여기고 모든 풍광과 사람 만남을 그 테두리에서만 보고 관찰하고 평가하고 감사하고 염려하며 '결론짓고' 우리에게 제시하였으니 '종교'의 색깔을 빼고 난 우리는?, 우리는 대체 무얼 얻어야 하죠?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선생님의 종교적 심성과 은혜받음, 믿음의 신실함을 탓하고자 할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더구나 선생님께서 거듭 외치신 말들--산길에서, 오솔길에서, 자갈길에서, 바닷가 모래밭에서, 포장길 모퉁이에서, 낙석 무서운 외길에서 되뇌인-- 가족, 친지, 고마운 이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에도 불평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또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에게로 향하는 애틋함의 기준에 따라 신의 성스러운 사자라고 하신 나귀와 며칠후에 만난 무심한 말을 차별대우 하시는 모습에도 시비걸 의도는 단연코 없습니다.
<걸었다>의 100쪽 무렵 이후부터 저는 줄곧 불편했습니다. 선생님의 종교, 선생님이 가지신 믿음의 해석때문이 아니라 우리 독자를 자꾸 멀리 떼어 놓으시는 선생님의 말투와 산티아고와는 반대방향으로 가시는 듯한 선생님의 새로운 '편가름'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책의 종이장이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불행하게도 제 영혼은 선생님의 맑아지는 영혼과는 반대로 불온해지고 경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제 불찰이고 모자람이 근원적 이유때문이겠죠~
기왕에 불손한, 경거망동한 독자로서 말씀을 드린 김에, 동행이신 치타라는 분뿐만아니라 그 모든 <걸었다>에 등장하는 마주친 이들에 대한 평가도 어쩜 그렇게 '권선징악'적 '사마리아인'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는지에 대해 저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의 모든 것이 '어떤 잣대'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싶은데,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가요?
선생님께서는 '서영은'이라는 꼬리표때문에 이미 '독자와 함께 하는 이'시고 '서보영'을 고집하시지 않는 이상, '문학'과 따로 구분하여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면, 이번 순례의 길이 선생님 개인 차원의 '고백' 이상이었기를 바라는게 독자인 우리의 바램이고 기대일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의 신앙고백--결코 가치없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일이라 여기며 경의를 표합니다--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이들에게 '세상의 참 모습' '인간관계의 진면목' 나아가서 이국 땅, 고행의 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광'에 대한 더없는 애정과 남다른 해석을 기대한 우리가 잘못된 걸까요?
선생님께서 간혹 들려주신 김동리 선생님과의 '옛일' 그리고 '선생님만의 판단(?)', 간략한 가족사....이런 것들이 이번에는 호사가들의 '흥미유발'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아마도 선생님께서도 많이 망설이신듯 합니다), 잡으셨다 놓았다 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주된 이야기는 아니지요.
하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선생님의 뻔질난 해석과 평가, 성경(신구약을 넘나드는)에 대한 신학적 해석마저도 틸리히와 바르트, 토마스 아퀴나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그냥 넘나드는 정도라면 굳이 선생님께서 하시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또 선생님 개인의 신앙적 체험이라면 구태여 이번 기회에 만천하에 드러내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삭히고 다듬고 갈무리하고 두어도 향기는 날 터인데, 왜 그리 우리에게 알리려 안절부절하셨는지...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그렇습니다.
역사, 철학, 예술, 그리고 그저 통칭하여 '문화'...이런 것들의 총화가 인간, 인류의 삶이라면 이번 선생님의 <걸었다>에는 '홀로'만 있을 뿐, '더불어'는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기행문'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선생님은 소설쓰는 사람, 그 먼 스페인 땅의 작은 마을 '알베르게'에서도 여전히 선생님께서는 '작가'로 명명되셨잖아요? 부인하시렵니까, 아니면 포기하시렵니까?
참, 저라는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난처했던 경험 하나, 소개해도 돼죠? 선생님께서는 편안하게 애교로 받아주시리라 믿으며....이 <걸었다>를 읽으며 가장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 '한 장의 사진'--이럴수 있구나 싶었던, 그래서 선생님께 야유마저 보내고 싶었던 한 컷--.............................
'[Sweet Caroline]을 들으시며 찌꺼기마저 걸러낼 듯한 울음을 울었다는 그 카페에서..세상에나 자신이 흘린 눈물 담긴 커피잔을 사진에 담아 오셨다니!!..저는 할말을 잊을뻔 했습니다. 그 뒤로는 글을 읽고 싶은 생각이 사실은 들지 않았는데....그래도 보았습니다. 그리도 버리고 버려서 마음과 몸을 정리하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말씀하시더니 눈물을 쏟았던 기억만이 아니라 그 '물적 증거'인 처연한 감정의 흔적까지 사진으로 '박아'오셨다는 사실 앞에서 멍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너무 세밀한 부분에 신경쓴다고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로서는 일관된 흐름을 읽어야 했고, 모름지기 깨달음의 순간과 그런 득도의 이야기에는 앞뒤가 두루 맞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버릇없는, 두서없는,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이 편지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선생님의 이번 글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구하며, 버릴 건 버리고 새로이 얻는건 소중히 여기는 삶의 방식을 배우면서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화살표'가 아닌 선생님의 '걸었다'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 합니다. 그래서 제가 편지 앞머리에 '<걸었다>'라 하였습니다. 저는 차라리 '화살표'를 따르기 보다는 '걷는 게' 좋을듯 싶습니다. 물론 저는 '선생님의 화살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더구나 '제 화살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니까요.........
생각은 있는데 선생님처럼 표현할 재주도 없고, 그나마 몇 줄 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선생님만한 깊이도 없는 독자는 이렇게 투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너그러이 봐 주시기를 망연히 간청할 따름입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건강 잘 살피시고 저희들에게 늘 귀한 말씀, 가슴 울렁이게 하는 '작품' 던져 주시길 바라며 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걸었다>를 통해 '인생을 또 걷게 해주셔서~"
단기 4343년 5월, 봄같지 않은 봄날 밤, 독자같지도 않은 독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