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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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게이지가 갑자기 상승하면...
 작년 말 [성탄피크닉]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잠시 회의에 빠졌었다.
로또가 한 가정의 풍족함을 가져다준 동시에 개개인의 인간다움을 앗아가버린 듯 했고, 도덕적으로 하면 안되는 일을 함께 행하면서도 그들에겐 죄책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쿠다 히데오 식의 가볍게 지나가는 듯한 유머가 섞여 있긴 했지만 작품의 재미와는 별도로 등장인물들의 파탄성은 그리 쉽게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령화 가족]을 읽으면서 [성탄피크닉]의 가족구성원 못지 않은 분노가 맘 속에서 솟아올랐다. 
 

 실패한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실패한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조차 편히 쉴 수 없다. 어쩌다가 가족이 이렇게 된 것일까. 그들에겐 서로 더 빼앗을 희망거리도 없는데. 가난할수록 서로의 거리는 따뜻하다라는 공식은 이들 가족에겐 이미 해당사항이 아니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땐 [고려장]설화를 떠올렸다. 책을 읽기도 전에 나이가 많아서 가족을 버리는 이야기인가? 라고 엉뚱한 상상을 마구마구 해댔다. 하지만 이야기는 나이가 많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상상을 전부 비켜갔다.

서로의 실수와 잘못들을 폭로해대는 전쟁터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어머니는 여전히 먹거리로 이들을 맞아들인다. 어머니의 먹거리는 이들에게 최후에 보류된 안심일까 아니면 절망 끝에 남아있는 작은 희망의 불씨일까. 
 

 서로 상처내면서 화해해가는 이상한 가족...


2003년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거머줬던 작가 천명관의 두번째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은 분명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픔을 감싸안아주는 가족애도 없으며,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평균 나이 사십 구 세의 세 남매가 늙은 어머니에게로 돌아왔다. 각자의 가족이 아닌 노모의 가족으로 다시 되돌아왔을때 이들은 세상에 지치고 찌들어 있었다. 일흔의 늙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온 그들의 푸념은 때로는 과격하지만 또한 때로는 유쾌하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상금을 사업한답시고 날려먹고 백수가 된 형 "오함마"
딸 "민경"까지 데리고 들어온 여동생 "미연", 실패한 영화 감독이자 한량으로 평생을 살아온 50대의 "나". 이들의 복잡하고 콩가루적 집안 스토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평범한 가족이 아닌 특별한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 이 가족이 사는법은 정상적인 범주는 벗어났을 지언정촌스럽지 않아 좋다.

속수무책딸과 욕쟁이 무대포 엄마가 나왔던 [애자]식의 가족내 갈등과 화해의 패턴과는 다르지만 왠지 지구별 어딘가에선 이런 가족의 화해기도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 천명관이 아니라 다른 작가가 썼다면 지독하게 심각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손을 타면서 서로 상처내면서 화해해가는 이상한 가족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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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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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작가의 [은교]는 말이 많은 작품이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70대 노인이 10대의 소녀를 향해 품은 욕망이라는 말들이 새어나오면서 윤리적으로 노인을 매도하는 사람들의 입들이 가만히 있질 않기 때문이다. 왜 읽어보지도 않고 편견부터 가지려고 드는가.

대한민국의 윤리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조차 금기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일이다. 문학 작품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적어내려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누가 그 책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논란의 여지를 주기 이전에 노인이 사람이라는데서 이해를 시작해 봐야할 작품이다. 노인은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노인도 늙었다. 그런 노인의 눈에 평범한 은교는 잃어버린 향수요, 가질 수 없는 젊음의 대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레게 만드는 인물이다. 시인의 욕망은 비단 은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제자 서지우와의 우월관계구도 속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며, 대필작가로서 세상에 드러내는 자신의 또 다른 욕망도 거세다. 

지우는 존경하는 시인으로 인해 살아가는 방법을 바꾼 사람이다. 재능은 없지만 무던히도 글을 쓰고자 했던 남자. 살리에르 같은 그의 마음에 은교가 들어오면서부터 그는 스승과 은교사이에 갇혀 버린 사내다. 은교를 쉽게 가지면서도 은교로 인해 스승이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는 그런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또 은교. 그 아이는 열 일곱 그 예쁜 나이에 두 남자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끼여 살았다. 한 남자의 육체적 탐미가 되면서 또 다른 남자의 욕망의 실오라기가 되었다. 가장 순수하면서도 치명적인 독. 은교는 그런 소녀였다. 하지만 두 남자 사이의 애증관계 속에서 한없이 외로움을 느껴야 했던 소외된 영혼이기도 했다. 


인간의 내면의 숨겨진 면모와 세가지 욕망을 잘 드러낸 작품이 은교가 아닐까 싶다. 
은교는 단순히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인의 눈은 복녀를 바라보는 왕서방의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인간이기에 흔들릴 수 있고, 또한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인간적이었다. 작가 박범신은 세월이 흘러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가장 심도있게 풀어내는 작가인 듯 했다. 은교가 올 봄 새로운 바람으로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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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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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쁜 이름이건 좋은 이름이건 남겨진 다는 것은 기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회자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세자 소현, 그의 이름이다. 

그는 비운의 왕자였고 야망과 꿈을 펼치지 못한채 우리 곁을 떠난 사람이다. 그가 살아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사도세자가 살아있었다면? 해명태자가 살아있었다면? 이라는 역사적 가정법은 사실 어리석다. 그들은 살아있는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면? 이라고 해도 그것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일뿐 죽은 사람이 하는 말은 아니다. 

죽은 자는 말이없다. 그래서 오랜 세월 묻혀 있었던 세자 소현이 이제 사람들의 눈과 귀로 쏙쏙 들어오고 있다. 그는 여러 드라마에서 배경이 되고 행동의 원인이 되며 주변인이 되었다. 이상한 일은 그토록 안타깝게 그려지는 그의 죽음이 왜 단독샷으로 주목받지는 못할까? 였다. 

그는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며 탐구될 여지가 많은 삶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와 그의 아내인 강빈, 그리고 어린 자녀들. 그들이 결국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파헤치다보면 


소현은 1644년 심양에 볼모로 붙잡혀 있었다. 그가 살다간 시대는 내일을 알 수 없는 혼란기였다. 세자를 대군과 함께 볼모로 바쳐야했던 조선의 실정이 그러했고, 후사를 정해놓지 않은채 하루아침에 왕갈이가 이루어지는 청의 실정 또한 그러했다.  어디에서나 피바람이 일고 있었다. 

소현뿐만 아니었다. 소설은 그들 주변인들을 통해 살아있는 자들이 감싸안아야했던 비참한 역사를 말하고 있다. 종친의 딸이었으나 황제의 여인이었다가 대학사의 작은마님으로 살고 있는 흔,누이와 어미를 짓밟혔으나 그 역시 그 짐승들처럼 살고 있는 만상,정승의 아들로 태어나 배신의 삶을 살아야했던 석경, 신의 딸 막금. 그들 모두가 살다간 세월이 참 잔혹했다. 

그 중 가장 참혹했던 삶의 주인공은 소현이었는데, 그 푸른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환국한지 두 달만에 죽은 세자는 여러 의문을 남기고 갔다. 세자의 세 아들과 부인 강빈 역시 의문스럽게 사라졌다. 우리네 왕은 아비의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기에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도 면책권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짐승의 삶처럼 느껴져 하나도 부럽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현. 그는 우리에게 그리움의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가 있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역사 앞에, 이젠 제대로 주인공으로 조명될 그의 이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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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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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은 골라먹을 수 있는 맛나는 아이스크림처럼 느껴질때가 많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서도 13편이나 골라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이 주어졌다.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차례로 읽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받은 것과 마찬가지여서 목차를 보고 읽고 싶은 단편부터 한 편 씩 야금야금 골라 읽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는 그렇게 인연맺기 되어 읽기 시작한 소설이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

 

제목은 단편의 주인공들인 그들에게 시선을 모아지게 만들고 주목하게 만드는 무언의 마법같았다. 그 생략문장 끝에는 몰랐다. 알지 못했다. 관심없었다. 등등의 문구가 붙여질 것 같았는데, 읽으면서 동일제목의 단편 외에 실려 있는 모든 단편에 그 문장을 붙여도 하나도 어색한 바가 없이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연애할때 두 사람 사이의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수많은 변수가 있어 당장 보이는 사건만으로는 자잘못을 가리기 어렵다. 그런 생각을 더 짙어지게 만드는 13편 속에서 나는 작가가 살고 있는 오늘을 발견해낸다.

 

살아있다는 것. 그래서 어제에 대한 변명도 필요없고 내일에 대한 설명도 필요없는 오늘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을 때만해도, 최근 읽은 [아랑은 왜]에서조차 김영하 작가는 어떤 작가다 라고 규정짓기 어려웠다. 물론 이 소설들을 통해서도 작가를 한 틀에 얽매어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 같이 느껴진다. 날카로운 예전 글들에 비해 세월이 흐르는 속에서 작가의 글도 많이 둥글어지고 있고, 모습조차 강원래랑 닮았다 싶을 사진을 보며 미소짓게 만드는 등 친화적인 면모로 변하고 있는 듯 하지만 김영하 작가에게 기대하게 만드는 그 무엇은 여전히 변한 바가 없다.

 

[로봇]이나 [여행], [밀회]를 통해 본 사람들은 어제와 미래를 궁금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늘 일어나는 일과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점이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착한 누군가와 나쁜 누군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에게 오늘 일어나는 일일뿐이야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 그들 사이의 상처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일에 그물처럼 걸려버린 사람들의 오늘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 그 심플함에 매혹되어 버렸다.

 

작가의 다른 여행서적에 함께 실렸던 소설이라 아는 반가움을 느끼게 만들었던 [마코토] 역시 세월이 지난 어느 오늘에 알게 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이라는 것은 세월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언제나 반복처럼 주어져 그 소중함을 당장은 깨닫지 못하게 만들지만 지나버렸을 어제의 오늘을 되돌아보면서는 반성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바로 그것을 재미난 작품을 통해 깨닫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주어진 오늘 할 수 있는 고민들로 머릿속을 채워본다.

 

나는 오늘 정말 있어야 할 곳에 있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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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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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이나 [바리데기]는 참 쉽게 읽혀졌다.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듯 읽혀졌다. 작가 황석영의 책은 그 무게감과는 달리 언제나 쉽고 아름답게 읽혀진다. 그리고 종국엔 마음 속에 별 하나를 남겨놓는다. 그래서 [강남몽]을 읽게 되면서도 강남의 그 구린 역사위에 서 있는 탐욕스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종국엔 우리에게 희망의 한 자락을 남겨두지 않을까 라는 실낱같은 마음을 끊지 않은 채 읽을 수 있었다.

 

 

 

강남.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땅일까. 얼마전부터 방영되고 있는 대작 드라마 [자이언트]도 이 강남땅 개발을 둘러싼 암투와 얽힌 사람들의 삶을 굵직하게 그려내고 있어 주목받고 있었다. 비록 그 거뭇거뭇한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어두워 시청하고 있지는 않지만 강남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언제나 훌륭한 소재가 되는 모양이었다.

 

같은 소재를 둔 한 드라마는 시청하지 않았지만 소설 한 권은 읽은 내 마음 속 기준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코믹하면서도 제할말을 잊지 않았던 흰머리 작가의 달변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기존에 작가의 작품들이 보여준 문학성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고나서야 나는 그 차이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도가 트이듯 누군가의 글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깨달음의 깊이를 선물할 수도 있는 일인가 보다.

 

흔히 수많은 작법서 속에서 "첫문장부터 사로잡아라" 혹은 "매력적인 주인공을 그려내라"라고 말하지만 정작 작품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진실인데, 매력의 정점은 사건 속에서도, 극중 인물들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지만 작가의 달필 속에서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일이다.

 

[손님]을 비롯해서 [오래된 정원],[삼포가는 길],[개밥바라기별],[바리데기] 등등 어느 책을 읽어보아도 우리는 곰탕같이 진하게 우려진 "사람"을 발견해낼 수 있다.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균형이 맞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강남몽 속에서는 삼풍백화점을 모델로 한 대성백화점의 붕괴에 얽힌 사람들의 삶이 우려지고 있었다. 국밥집 딸로 태어나 영감의 후처가 되어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상승된 박선녀와 일제시대엔 밀정으로, 군부 시절엔 흐름을 타고 호의호식하다가 대성백화점의 주인으로 자리잡은 김진,대학교수 심남수, 전설의 주먹인 홍양태,룸사롱 마담 공사장, 사채업자 문회장, 퇴직공무원의 아내 오여사 등의 등장인물들이 강남의 주도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1990녀 중반, 그들의 바벨탑이었던 대성백화점이 무너진다.

 

 

작품을 읽는 내내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집고 다녔던 나는 이용당하는 쪽과 이용하는 쪽을 번갈아가며 빠져 있는 그 무언가를 발견해냈다. 그들 사이에 허수로 보이는 그 무엇. 바로 [강남몽] 속에는 "함께"가 빠져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공존하는 듯 보이는 순간에도 그들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함께가 빠져 있는 소설. 그래서 그 사이로 거품 빠지듯 바벨탑이 무너졌을때 남겨진 이는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 임정아였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희망의 풀씨.

 

작가는 꿈에서 깨어나면서 현실에 발디딜 인물을 임정아로 택한 것이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났어도 [강남몽]은 묘한 아쉬움과 다행스러움 둘 다를 간직하게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다시금 물어보게 만든다.

 

우린 정말 꿈에서 깬 것이 맞는 것일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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