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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어느날 갑자기 맹인이 된 판매원과 구청에 음악 수업을 들으러 가는 아내 부부가 “미국의 대중 음악”을 강의하는 강사인 남편과 점점 삐뚤어지는 아들을 팽개쳐놓은 이유가 “당신 때문이었음을” 뒤늦게 고백하는 아내 부부에 비해 겉으로는 더 평온해 보인 것이 사실이다. 아내를 위해 강좌를 권하는 남편이 있고 비록 나중에는 시들해져버렸지만 남편이 쓴 글을 방송국에 보내주던 아내의 챙겨주는 모습이 엿보이는 부부였으니까.
하지만 맹인 남편에게도 “감”과 “질투”가 존재했고, 남편에게 무관심해 보였던 아내에게도 “질투”가 존재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내가 만나러 가는 남자를 집으로 초대하거나 남편이 만나러 가는 여자를 미행하는 일들을 해 왔던 것이리라.
관계라는 것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참 씁쓸한 것임을 나는 [폭우]를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시력을 잃은 그가 부지런히 쳐대는 자판의 내용들이 “대체 무엇을 쓰고 있는 것일까?”궁금했고, 쓰는 시늉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지기도 했지만 나와 달리 그의 아내는 남편의 기록물들이 궁금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강사의 진실을 그냥 진실로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4명의 관계는 모두 조금씩 단절되어져 있었고 그들 외에 등장하는 미스터 장이라는 음식점 주인은 작품 속에서 그의 역할을 의문스럽게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그는 어떤 역할을 부여받고 등장했던 것일까. “그들과 비교해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삶에 대한 감사?위안?”을 우리 대신 느끼는 존재였던 것일까.
[여덟번째 방]의 작가 김미월이 들려주는 [프라자 호텔]은 생각보다 심심한 소설이었다. 아내가 목적지를 고르고 예약은 남편이 하면서 호텔 나들이를 하는 부부의 오늘 속에서 어제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 내고 있었다. 곳곳에서 데모행렬이 줄을 잇고 시절이 수상하던 시절, 대학생이 된 남자는 밥을 먹다 눈이 맞게 된 윤서의 소원을 위해 크리스마스에 비싼 플라자 호텔을 빌렸다. 하룻밤의 숙박료를 벌기 위해 7개월간 열심히 알바를 해야했지만 기뻐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참 즐거웠을텐데, 그만 약속을 잊어버린 윤서로 인해 그는 크리스마스 밤을 호텔방에서 홀로 지새야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아내는 그때의 자신이 던져주었던 실망스러운 하루는 까맣게 모른 채 남편이 된 남자와 호텔방에 오른다. 약간은 심심한 듯 하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단편이었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것은 호텔비? 택시비? 주차비? 따위인 것일까.
[양산펴기]는 가난한 서민의 삶을 단 하루만에 여러 문장을 통해 주었다. “녹두”라는 애인인지 부인인지 모를 여인과 함께 사는 “나”는 “장어가 먹고싶다”는 녹두의 소원을 위해 쉬는 날에도 일당 오만원짜리 양산팔이 알바를 나가야했고, 돈 때문에 녹두랑 다퉈야했으며 가격대비 자장면을 선택해 섭취하면서 생존권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봐야만 했다. 그가 보낸 하루의 일상 속에는 가난이 함께 했고 보람이나 즐거움보다는 고난함이 묻어나 있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수상여부와 상관없이 내게 이 단편들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김이설 작가의 “부고”를 뽑을 것이다.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주말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인간들의 갈등이 가득 담겨 이야깃거리를 풍성히 내어놓았기 때문이다. 평생 교육자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아버지는 “소통”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그런 그가 가르침을 어떻게 전달했을지는 불보듯뻔한 일이었다. 외도가 들통나는 바람에 아내는 집을 나갔고 아들에겐 “복종”을, 딸에겐 “침묵”을 강요하며 양육하다 새부인을 들였으나 그녀 역시 아버지에겐 또다른 단절의 증거였을 뿐이었다. 주변에 이혼도, 재혼도 쉬쉬했던 그의 거짓된 삶이나 자기 자식을 키우기 위해 남의 자식을 뒷바라지 해 온 새어머니의 거짓, 타인의 논문을 대필하며 먹거리를 해결하는 딸의 거짓은 가족이 얼마나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그 누구도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의붓아들로 인해 집단 성폭행을 당했지만 아비에 의해 묻혀져야했던 고통도, 생모의 부고를 받고도 전혀 슬프지 않았던 마음도 그녀의 삶을 뒤틀어 놓았다. 동거하던 연하남과의 이별이 차라리 작품 속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슬프지 않은 이야기로 비춰질 정도였다.
생모와, 양모. 엄마가 둘이라는 사실은 그녀만의 비밀이 아니었다. 아니 이 사실은 애초에 비밀조차 될 수 없었다. “내 새끼가 내 새끼를 해쳤다”는 아버지의 소리침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 가운데 작품이 주는 무게감은 이미 단편의 그것을 지나치고 있었던 것이다. 은희의 고통은 아버지의 자살로 과연 끝나는 것일까. 결혼해서 외국으로 가버린 오빠를 제외하곤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연결고리가 없는 그녀의 삶은 앞으로 더 쓸쓸해질 것인지, 아니면 딱 지난 세월만큼일 것인지 감히 셈하질 못하겠다.
[너를 닮은 사람]은 딸 리사를 폭행해 전치 삼주의 중상을 입힌 여교사를 만나면서부터 과거의 비밀과 마주하게 되는 어느 주부의 이야기다. 너무 가난해서 가난에서 탈출하고자 사장님의 아들과 결혼했으나 주류에 섞이지 못해 외로웠던 그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등록한 독일어 강좌에서 성과 이름이 같은 미대생인 클라인을 만났다. 독일어로 작다는 의미인 클라인은 주부와 미대생을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었는데 그녀와 뜻이 잘 맞아 자신의 그림 선생으로 불러 들이다가 급기야 클라인과 결혼을 앞둔 남자 “유석”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둘은 결혼 일주일을 두고 도피하다시피 독일로 함께 유학을 갖고 그곳에서 딸 리사를 낳았다. 하지만 다시 가난해지는 것이 두려웠던 그녀는 유석을 버리고 딸만 데리고 귀국했고 이후 화가의 삶을 살아왔다. 그 과거를 빌미로 자꾸만 집을 찾아오던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급발진 사고를 내고야 마는데........! 너를 닮은 사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 시간을 뛰어넘는 수작이었다.
이 외 [국경시장]과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까지 총 7편의 단편은 젊은 작가 수상작들이다. 때로는 구미에 맞고 더러는 그렇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지만 가벼우면서도 읽기에 맞춤맞았던 작품들은 작품-작가의 해석-평론가의 평론 으로 이어져 한 작품을 읽고도 세 번 우려 마시는 느낌이 들게 편집되어 있다. 짧지만 작품을 읽는 느낌을 전해주었던 몇몇 작품에 고마움이 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