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 1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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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 김진명은 우리를 참 울분짓게 만든다. 그의 역사서는 하나같이 우리의 애국심을 자극하고 짓밟힌 현실에 대한 참담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역사적 현실성에 대해 눈뜨게 만든다. 그게 그의 저력이다.

[천년의 금서]에도 나왔던 [시경] 과 [잠부론]. 이 두 책은 고구려의 정통성과 조선을 이은 배달민족에 대한 역사적 증거이다. 이 두 책과 관련된 언급으로 소설에서는 한 사관이 수나라 문제인 양견의 손에 죽는다. 결국 역사 왜곡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때부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도둑맞고 있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실 수나라 황실이 아니라. 결국 그가 말하고자 했던 영웅은 고구려 천년의 영웅 을지문덕이었다. 출생도 과거도 알 수 없는 이 난세의 영웅이 고구려를 30만 대군에게서 구해내기까지의 이야기가 짧게 2권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영웅의 주변으로 영웅호걸들이 모여들듯 을지문덕의 곁엔 영양왕의 왕자 건무,쾌활한 갑정, 씩씩한 장군 강이식, 말갈의 후계자 아야진 뿐만 아니라 수나라 공주이자 세작인 가연까지 모여들었다. 모두 문덕을 믿고 그와 함께 뜻을 모으는 사람들이었다. 

그와 반대로 수나라 양견의 큰 아들이자 황태자인 양용은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 수나라에서 눈여겨 볼 인물은 둘째 왕자 양광이었다. 그는 슬픔이 필요해 사람을 죽이는 백정왕자지만 늙은자에게는 여식을, 어린자에게는 아들의 배필을 내어준 아비의 아들이었다. 결국 그는 세상을 피로 물들여야 할 운명의 사내였는데, 그도 그의 운명을 알면서도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대적의 시간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며 드디어 영양왕은 을지 문덕의 충심을 받아들여 선제공격에 나섰다. 9월에 있을 수의 공격에 앞서 그들을 유인하여 천시를 노리는 노림수. 문덕이 아니었다면 고구려는 어떻게 되었을까. 580년에 통일된 수나라에 의해 사라진 이름으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을지문덕. 고구려의 역사가 아직 낯설듯이 그의 이름도 아직은 낯설다. 김유신, 강감찬 등등에 비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충분한 매력을 가진 주인공이기에 탐독해야할 부분 역시 많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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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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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고 싶은 현실과 마딱드렸을 때, 그것이 꿈이거나 소설이라서 딱 덮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마음이 딱 그랬다. 책을 읽는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을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서 끝나고 해가 나왔으면 좋으련만 많이 내리지도 않고 딱 추적추적만큼만 내리는 비가 기분나쁘게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책을 읽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단편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도망가고 싶은 현실을 살고 있었다. 모두가 불행한 주인공들. 희망이 없어보이는 그들. 시골의 초록빛이 아니라 도시의 회색빛에 물들어 있는 그들에게서 엿보여지는 것은 "희망"이나 "열정"이 아니라 어딘지 유통기한이 지나 시들어 가는 야채들 같은 시들함이었다.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살아지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인물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우울해지고 있었다. 읽는 나 역시.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바라본다. 후회하지 않을 기회를 잃어버린 <가을 몽정>의 그 여자의 상실감을, 금붕어와 뱃속의 아이를 잃어버린 <어항>의 그 여자의 빈어항을.....[태엽감는 여자]라는 책 속엔 8개의 단편과 그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 어딘가 조금씩 불행하며, 쓸쓸하고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들은 결코 조르지 않는다. 그 결과를 이미 포기한 듯 절대 조르는 법이 없다. 그 소리없는 항변이 마치 배우가 무대위에서 관객들만을 향한 독백의 손을 내밀듯 독자들에게만  알리고 있는 듯 해서 더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또 다시 다행스러워졌다. 소설이라서 다행이야. 라고. 누군가의 현실이 이런 상태인데,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무겁겠는가. 우리 모두 땅을 밟고 서 있지만 그 땅의 단단하기가 달라서 모르는 사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꼭 그런 사람들이 가득 모여 사는 곳 같은 소설이 [태엽감는 여자]였다.


그저 나에게 온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자신의 삶을 타인의 삶처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소설가 은희경, 공지영의 주인공들이 항상 자신이 중심인 삶을, 소설가 신경숙의 주인공들이 타인을 관찰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삶을 살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놓지 않는다. 어떤 필체건 능동적이게 느껴진다. 반면 [태엽감는 여자]에 주인공들은 반쯤은 그 힘을 누군가에게 주어버린 것만 같다. 너무나 애처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물론 작가의 필체는 담담하다. 동정심을 유발한다든지 하는 문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독백이 향한 곳이 독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 아무도 모르지만 읽는 너는 알리라. 라는 작가의 계산된 독백. 그것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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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박서양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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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들은 반촌 밖의 사람들과 달랐고,  서양은 반인들과 달랐지만 사실 다른 어떤 이들과도 같지 않았다....

라는 문장을 읽고선 잠시 책을 덮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오죽했으랴.  한 집단에서 그들과 다르다는 것은 그들보다 뛰어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짓밟히는 삶을 살아야함을 이 아이는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때문에.  백정출신,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인 박서양에 관한 이야기가 드라마로 검토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박서양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조차 역사가들이 만들어놓은 시각이겠지만 적어도 드라마전에 그에 대해 찾아보는 것이 한 인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불행했다거나 슬퍼할 겨를조차 없이 전진하는 삶을 살다간 인물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자신의 가장 호적수인 라이벌은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말의 산증인처럼 살다간 남자. 신분을 뛰어넘고, 최초의 인물이 되기 위해 기존의 의술을 뛰어넘은 사람. 부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1분 1초를 나누어 살았던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드라마가 비록 명품드라마로 기억되지 못할지라도, 시청률이 높지 않아 매니아층만 구성하게 되더라도 묻혀 있던 한 인물을 발굴해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높은 점수를 줘야만 한다고. 

서양이 살았던 시대는 말 그대로 격변기였다. 왕이 있되 왕이 없었고, 나라가 있되 나라가 없었던 시대.  갑신정변으로 나라가 어수선했고, 여러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한제국이라는 작은 나라를 호시탐탐 탐하고 있었고,  한 나라의 왕비가 자객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는 무법의 시대.  그 시대였기에 신분을 뛰어넘은 그는 격변기 최대의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의  성공담에 혹해서 이 책을 읽게 된 건 아니었다. 이 소설이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긴 했지만  사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세상살이 속에서 사람과 이야기를 빼면 대체 무엇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할까. 그 두가지가 가장 재미나면서도 중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는 또 어떤 결말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순간이건 용기있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내는 그의 모습이 담기길 바라고, 가장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을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어면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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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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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영원한 제자리 걸음일지도 모른다.

눈 오는 날, 눈이 쌓이면 발이 그 속으로 폭폭 빠져드는 것과 같이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인생은 그렇게 제자리에서 폭폭 빠져가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여러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가족들은 세상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하다.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 속에서 그려지는 떠난 아이가 남긴 물음표를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반쪽 가족들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성의 인연]에서처럼 추리소설 탐문하듯 밝혀내야할 비밀을 가진 가족들, 소설 [애자]에서는 이별앞에서 화해하는 가족이었고, 박선희 작가의 [파랑치타가 달려간다]에서처럼 간섭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편하게 그려진 가족도 있었다. 어느 글에서는 유쾌하고, 어느 글에서는 잔인하며, 또 어느 글에서는 애잔함이 묻어나는 이 "가족"이라는 이름.

 

전작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정이현 작가라면 분명 매혹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끌고 오지 않았을까라는 다소 로또적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바로 정글짐 속에 던져졌다.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라고 출사표를 던진 작가의 굳은 결의와 다짐을 그냥 지나쳤던 결과였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처럼 김상호의 가족들을 위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묘했다. 그 가족들은 마치 천조각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듯 함께 하고 있지만 따로따로인 느낌을 주는 가족이었다. 중국을 오가며 장기를 밀매하는 가장 김상호, 사랑하는 남자를 따로 두고 바람을 피우면서 사는 부인 진영옥,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의 원조를 바라는 전처 소생의 은성과 늘 자살충동을 느끼는 누나에 대해 무덤덤해져버린 동생 혜성, 그리고 오늘의 사건을 낳은 사라진 딸 유지.

 

유지는 김상호와 진영옥의 딸이자 혜성과 은성의 이복동생이다. 하지만 유지는 보통 드라마에서 등장하곤 하는 갈등의 해결요소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이 가족은 법적인 서류상에서는 다닥다닥 붙어 있더라도 감정적으론 아무도 이어져 있지 않다. 세상엔 이런 가족도 있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가족 구성원은 이렇듯 독특했다.

 

그리고 유지는 어느날 사라진다. 유괴인지 가출인지 모를 사라짐. 그리고 가족들은 각자 의심가는 용의자가 너무나 많아서 섣부르게 경찰을 부를 수도 없다. 아이리스 요원들로 사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은 살면서 너무나 많은 적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눈물로 호소하거나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궁금하게 만드는 무엇. 작가는 소금밭을 거닐 듯 따꼼따꼼하게 읽도록 만들어 두었지만 설탕같은 결말을 기대하지 않아도 만족스럽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상을 삐뚤어지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삐뚤어진 세상을 그저 두 눈으로 산 위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이랄까. 작가는 또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우리에게 손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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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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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여자, 누경...

누경. 그녀는 사막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기름지고 비옥해서 씨를 뿌렸다가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토인 땅이나 건물을 올려 많은 많은 수익을 내는 도시의 땅이 아닌  심심하고 밋밋한 사막의 땅. 그 땅엔 가끔 바람이 불지만 그녀는 언제나 목마르고 쓸쓸하다. 

기다림과 목마름이 계속되던 그녀의 삶 속에 "같이 섬에 가실래요?"라고 말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 옛날 그 남자처럼. 그와는 가지 못했던 약속의 땅, 섬에 이 낯선 남자와는 갈 수 있었다. 그 남자와는 섬보다 남자가 중요했지만 이 남자와는 남자보다 섬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누경,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이 남자도 누경에게 끌린 남자였다. 세상의 모든 남자를 가질 수 있어도 단 한 남자, 그토록 원하는 남자는 그녀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 점이 누경을 매마르게 만들고 있었다. 사막의 한가운데 던져놓고 기다리게 만드는 남자. 그래도 그에 대한 기다림은 멈출 수 없는 누경. 

그런 누경을 두고 어떤 남자는 알 수 없는 감옥에 갇힌 포로라고 말했고, 실의에 빠진 채 취미도 없이 홀로 늙어갈 가여운 여자라고도 말했으며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다 살아버린 노파같이 이미 텅텅 비었다고도 하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고 구제 불능의 잠을 잘 여자라고 하거나 홀로 죽어서 고양이에게 먹힐 여자라고까지 악담을 늘어놓는 남자도 있었다. 


두 남자, 기현과 강주...

그들 모두 누경을 자신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녀의 심장에 새겨진 "얼룩"을 보지 못하는 남자들. 누경은 그런 남자들에게 관심없어 보였다. 그런데 한 남자가 계속 비집고 들어오려고 한다. 섬에 함께 다녀온 남자였다. 

사랑과 결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비혼족인 친구 상미조차 인정해준 남자 기현. 처음부터 끌림이 있었다는 기현을 두고도 누경은 사막을 건널줄을 모른다. 그녀에게 강주는 기다림인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인 존재였다. 

서강주. 엄마의 사촌의 아들인 남자. 누경이 열 여섯일때 결혼한 이 남자와 누경 사이를 정의할 단어가 사전 속에는 없다. 사랑이라고하기엔 모자라고 불륜이라고 하기엔 넘친다. 분명 누경에겐 사랑이지만 강주에겐 불륜인 관계. 그 어떤 교집합도 없는 관계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그는 약속을 한번도 지킨적이 없었다. 치마를 사주겠다는 약속도, 섬에 함께 가자는 약속도, 전화조차도 먼저 걸 수 없게 만드는 남자. 이 남자를 기다리면서 누경은 점점 사막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경을 따라 걷는 걸음...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누경의 그림자가 되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의 인생을 한 걸음 뒤에서 따라 걸으면서 때로는 그녀의 속이 되고, 때로는 그녀의 겉이 되면서 누경의 눈으로 기다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친구나 가족조차 이해못할 그녀의 행적들을 그림자이기에 함께 나누면서 걷는다. 읽었다기 보다는 걸었다는 표현이 맞을 전경린의 [풀밭 위의 식사].  

누경을 따라 걷는 걸음은 언제나 일정하다. 한 걸음도 늦춰지거나 빨라짐이 없다. 항상 같은 속도다. 그래서 나는 누경이 더 안타깝다. 인생은 늘 같은 속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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