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부채 1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홍등],[색,계]를 통해 본 중국 여인들의 삶은 모파상의 여자들의 일생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단 한번 살 수 있는 인생, 그들처럼 살다가고 싶지 않을만큼...그런 일생이었는데, 중국은 넓은 땅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심한 빈부격차 때문에 과거의 그들의 삶이나 현재의 그들의 삶이나 격차가 좁혀진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 들곤 했다. 중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잠시 잠깐 보았던 여인들의 삶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자꾸만...

[소녀와 비밀의 부채]도 그런 여인들의 삶이다. 남자들을 위해 발 뼈가 부러진 고통을 참아가며 전족을 해야했고 미덕인 것 마냥 갇혀 사는 삶에 만족하며 살아야 했던 여인들. 그들의 유일한 방항이자 세상과의 소통도구는 부채였는데, 성균관 스캔들의 꽃도령 여림의 부채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문자 누슈를 통해 우정을 나누고 소식을 나누어야 했다. 아주 비밀스럽게...

나는 사는 내내 사랑을 갈망했다. 처음엔 소녀로서, 나중엔 여자로서...
나는 내가 사랑을 원하고 기대하는 것이 온당치 못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원했다...

라는 첫장의 발췌문이 눈을 시리게 만들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본능인데 이에 죄의식을 느껴야 하고 절망감을 느껴야 하다니....남자들은 상상하지 못할 그 여인들의 삶으로 나는 한걸음, 한걸음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가고 있다. 페이지가 넘겨질때마다 -. 


주인공 나리는 야오족의 후손으로 푸웨이에서 태어났는데 도광제 재위 3년 6월 5일에 태어났다. 흔한 성인 이씨 가문에서 세 자매 중 가운데로 태어나 일곱살에 전족을 행하라는 명을 받게 된다. 전족. 세살때부터 하기도 하고 여섯살때 하기도 하는 그 정해진 나이가 딱히 없는 악습을 가난한 소녀들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니, 차라리 가난했더라면 전족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을 그녀는 가난한 집안의 여식도 아니었다. 

전족. 그 작은 발이 그토록 매력적으로 생각되는 것일까. 남자들에게는. 그들의 야릇한 욕망이 여인들을 어린시절부터 고통스럽게 만들고 종국에는 불구로 만들어갔지만 이 이야기는 그 모든 것이 당연하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불행하게도.

나리가 루씨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을 끝으로 1권은 조용히 접어졌다. 그들의 부채살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맨발의 완 선생 - 그때가 우리에게 가장 자신만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4
판샤오칭 지음, 이경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아버지, 지금 부활하셨어요?

 

 

 

라니. 어느 동네에나 하나쯤은 있다는 "바보"가 이 동네에도 있나보다 했다. 하지만 그 심각성은 바보가 동네 의사라는데 있다. 그것도 우연한 일로인해 "명의"로 오인받아버렸다는 사실~!! 이 동네 사람들이 몽땅 극락도 주민들처럼 모두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싶어진 것도 잠시, 그는 맨발의 의사 완선생이 되었다.

 

선무당은 사람 잡지만 바보 의사는 사람을 고치게 되는 것일까.

 

맨발의 의사라는 명칭은 의사가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면허 없이 의료활동을 하는 의사를 말하는데 이 무허가 의사가 대물림 될 수 있었던 것은 순박한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 그대로 마을 사람 모두 순진하고 순수한 시절의 이야기니 가능했다. 아버지 역시 맨발의 의사였던 완취안허는 남다르게 맹한 인물이었는데, 어느날 싹난 풋콩 하나를 귀에서 꺼내면서 "명의"로 소문나 버린다. 닥터k 가 봤으면 기겁할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아버지는 반신불수에 약혼녀는 바람나고 게다가 돌아온 그녀의 아이들까지 맡아키워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동네 바보 완. 되는 일 하나 없이 머피의 법칙에 100% 충실하며 살아가는 이 남자는 의외로 자신의 삶을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절대 절망하거나 자살충동 따위를 느끼며 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이야기는 작가 채만식의 태평천하 같은 풍자가 아니라 오쿠다 히데오 식의 코믹이 되어버린다. 로빙화의 배경이 된 산골 시골마을같은 동네에서 이라부만큼 엉뚱하지만 그보다는 덜떨어진 비전문적인 의사가 계속 웃음을 주고 있다.

 

사실 처음 그림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열 아홉의 고백을 들을 때부터 바보 캐릭터가 주는 웃음의 해학을 눈치채야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정말 바보였을까. 우리가 그를 바보라고 규정짓는 잣대야 말로 바보스러웠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는데,

 

맨발의 완선생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학생인 조카들에게도 권하고 싶을만큼 유쾌하고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누가 누구를 바보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벌여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책을 함께 읽고 난 후엔-.

 

맨발의 완선생은 정말 특이한 작품이었다. 그저 나에게 온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순수를 보여주는 주인공이 있고 귀에서 콩 하나 꺼냈다고 명의로 불러주는 순수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이 있고, 그들을 보며 웃음짓는 독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어내게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려한 수업
아니샤 라카니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당신만 아는 비밀],[워커홀릭]은 [쇼퍼홀릭]의 저자가 쓴 책 중 내가 가장 재미나게 읽은 책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저자의 유명한 책의 제목들을 기억한다지만 나는 저자의 책 중 재미나게 읽은 목록들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칙릿든 칙릿대로의 재미가 분명 있다. 거기에 대고 문학성을 논하거나 가벼움을 논하는 자체가 언밸런스해진다. 대중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 칙릿의 좋은 점 첫번째 조항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런류의 재미를 위해 나는 아니샤 라카니의 장편소설 [화려한 수업]을 펼쳐들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두께의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어느새 열광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선생님 월급을 주니까 선생님은 우리 밑에서 일하는 거에요"라고 말하는 돌콩같은 명문가 자제들은 때려주고 싶다못해 괴롭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만큼 얄미운 녀석들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그 속에서 진정성을 찾아내는 애나에게 박수를 보내게 만드니까 말이다.

 

애나.

아이비리그 졸업생인 그녀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봉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립 명문고로 향한 순간부터 그녀의 선택은 잘못되었음이 여실히 들어나 버리고 박봉에 시달리면서 키팅같은 선생님이 되리라고 마음먹은 것 또한 교육현실에서 한참 떨어져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성실하게 수업을 해도 학부모의 항의를 받고 성적을 표시해도 안되며 무조건 "천재적"이라는 칭찬만을 해야하는 교사를 원하는 곳. 수업 시간에는 도서관으로 아이들을 내보내거나 미술관 참관수업을 하고 dvd나 보게 만들면서 최고의 선생으로 군림하는 동료 교사를 보며 좌절하는 애나.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자신은 정작 네일관리를 받거나 스타벅스에 커피나 마시러 다니다니.....애나는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악마의 속삭임은 시작되고....애나도 그토록 욕하던 동료교사와 절친이 되어 학교외 수업에 고액과외를 뛰기 시작하는데, 사교육 천국은 바로 이런 세상을 말했던 것일까 할 정도로 놀라운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교사 연봉보다 높은 수입은 과제를 대신해주는 것으로 얻어지는 부수입이었고,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방학때엔 대학생들의 리포트까지 대신해야 했다.

 

부를 바탕으로 제 손으로는 그 어떤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돈으로 그들의 멍청한 세상을 사주는 부모의 잘못된 사랑은 애나를 역대 연봉 가정교사로 만들고 사교육의 세계를 불꽃놀이처럼 환하게 만들어 나갔다.

 

교사들의 이중생활을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학교와 예쁘게만 길들여져 있는 아이들 속에서 진정한 참교육을 행하려던 자신의 의지가 함몰되어 있음을 어느날 깨달은 애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그들 속에서도 꽃피울 수 있는 교육법을 발견해낸다. 그래도 몇몇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손으로 과제를 해내며 대필숙제로 길들여진 것이 아닌 실력으로 다져져 있어 애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소설이 처음부터 진지하게 가르치려고만 들었다면 이 방대한 양을 다 읽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칙릿을 읽듯 너무나 화려하고 재미나게 읽혀지면서도 속도감으로 밀고나온 결말에는 감동이 남아 좋은 소설임을 기억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여행자의 아내]를 재미나게 읽었기에 작가 오드리 니페네거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물론 그 다음 작을 읽어보아야 이 작가의 진정한 필력을 알 수 있겠다 싶기는 했지만........

드디어 작가의 다음 권을 읽게 되었는데 [더 미러]와 비슷한 느낌인 [내 안에 사는 너]는 2대에 걸친 쌍둥이의 사랑과 사연이 묻어있는 스토리였다. 엘스페스와 에디 자매는 일란성 쌍둥이인데, 에디가 엘스페스의 연인과 함께 도망가는 바람에 자매는 20년 동안이나 소원했다. 

도망간 연인인 에디와 그녀의 남편사이에서는 줄리아와 발렌티나라는 쌍둥이 자매가 태어났지만 남겨진 엘스페스와 로버트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엘스페스는 두 쌍둥이 조카에게 자신의 유산을 남기게 되고....20살이 된 쌍둥이들이 엘스페스가 남긴 집으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워진다. 왜냐하면 그 집엔 죽었으나 아직 떠나지 못한 엘스페스의 유령이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쌍둥이 자매의 사소한 장난으로 시작된 2대에 걸친 비극은 강박증이 있는 남자 마틴을 사랑하게 된 줄리아와 이모의 애인을 사랑하게 된 발렌티나에게로 이어지고....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결론으로 소설은 매듭지어지는 듯 보인다. 

사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보다 [내 안에 사는 너]가 더 재미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전작을 너무 재미있게 보아서일까. 전작에 대한 기대심리가 있어서였을까....아쉽게도 그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안문의 여자
샨 사 지음, 성귀수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80년에 우리에게 광주항쟁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천안문 사태가 있었다.

별로 부딪히고 싶지 않은 현대사에서 이 두 사건은 큰 물줄기가 되어 언제나 작품전체를 뒤흔들고 만다. 젊은 피가 거리에 뿌려지면서 그들의 피로 현재의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었던 것일까.

 

정말 샤오의 말처럼 인간이란 자고로 파괴를 선호하고 끝내는 자기파멸을 추구하는 존재일까. 전쟁을 방불케한 역사적 고통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타인에 대한 책임을 밀어낼 수 있는 것일까. 주인공 아야메이는 어느 순간 폭동의 주동자가 되어 쫓기게 된다. 맘씨좋은 운전수 왕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으나 집이 멀어 가까운 삼촌댁으로 향한 아야메이.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핏줄로 이어진 그들의 냉대뿐이었다. 쫓기고 있는 조카딸로 인해 가족이 해를 입을까봐 문전박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은 정말 이기적인 존재가 아닐까 라고 잠시 자문해 보게 되었다.

 

어려울 때엔 가족보다 남이 나을때가 있다고 했던가. 가족조차 외면한 그녀를 타인인 왕씨가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우여곡절 끝에 아야메이는 왕씨의 부모님의 거주지로 옮겨가게 된다.

 

한편 아야메이라는 범법자에 대한 심문을 맡게 된 자오는 68년 생으로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의무와 희생, 복종을 당연하게 생각해온 그가 아야메이를 쫓으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어린 시절 민이 아야메이에게 다른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자오는 아야메이를 통해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 

 

불어를 전혀 몰랐다던 샨사는 프랑스로 건너간지 7년만에 불어로 책을 출간했다. 그녀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다가오는 문체에 프랑스인들이 열광하면서 아멜리 노통과 더불어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샨사.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중국어가 아닌 불어로 작품을 쓰게 만들었던 것일까. 이전에 읽었던 [측천무후]와 더불어 가장 중국적인 것을 중국어가 아닌 불어를 이용해 세상에 내어놓고 있는 한 여류작가의 삶에도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역사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궁극의 이해를 돕는 것인지 방해하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결론짓지 못했지만 확실한 한가지는 가장 힘든 시기에 우리는 가장 본연의 모습답게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된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 깨닫고 있다.

 

샨사의 다음 작품을 찾으면서 내 머릿속에 빼곡히 들어찬 생각들을 오늘밤엔 일기장에 가득 옮겨보려 한다. 아야메이의 어린시절 일기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