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 - 다시 쓰는 <내셔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이선이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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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 라는 저자는 일본 전체 국민의 대변자는 아니지만 그녀의 주장을 곱씹어보면 그나마 양식있는 일본인이라는 생각은 확실히 든다.. 그 이유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반성해야 하는 세 가지 잘못으로,, 과거 전시중에 위안부를 운용한 것이 첫 번째 잘못이고, 이후 일본 전체가 위안부에 대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 두 번째 잘못이며, 언제부턴가 위안부에 대한 역사 자체를 왜곡 부정하고 있는 현재 일본의 모습이 그 세 번째 잘못이라는 확실한 인정과 반성의 자세를 자신의 저서에 집필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본 내에서도 저자와 같은 양심의 세력들이 일부 존재한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조금은 분노를 가라앉히실 만도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당국의 인식과 그에 따르는 대처 방식이 터무니없이 미흡하다는 건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도 고이 눈을 감고 가시지 못할 수밖에 없는 행동들이라고 생각하는바 이 문제가 우리가 바라는 최선의 방법으로 귀결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생기리라 여겨진다..

 

위안부를 위한 기금 조성에 대한 문제와 실효성에 대한 우려 역시도 저자의 주장대로 실패함으로써 옳은 예측이 돼 버렸고,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처 방식 역시도 오히려 몇 년전 보다 발전은 커녕 오히려 퇴보한 게 사실이어서, 한일 양국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언제 끝날지 모른는 답답한 모습의 의견 대립으로 우리 국민들의 시름을 더욱 깊게만 해 줄뿐이다.. 다만 책에서도 다루어지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저자의 주장에 반박할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일본 사회가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로서 여성들에겐 국가의 정책에 당연히 참여할 기회가 없는 이유로 말미암아 과거 당시의 식민지 정책이나 위안부 운용등은 오로지 남자들, 즉 일본 정부의 책임만 존재한다는 논리로서의 책임 회피는 내 생각엔 결코 찬성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주장한다면 이는 너무 치졸한 변명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아무리 여자라도 자신의 능력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등의 논리를 펴는 것은 동서고금 어디를 봐도 결코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과거 일본이 저지른 과오는 일본 전체, 일본의 여성들까지 아우르는 전체 국민들의 잘못이지 어느 한 젠더나 세력의 잘못이 결코 아니라는 결론이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 싶은 건,, 바로 우리나라의 조상들, 좀더 풀어 얘기하자면 무능하고 약한 나라 꼴을 만들어 결국은 이웃나라에 내 집마저 뺏기고 어린 소녀들의 정조 하나 지켜주지 못 했던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에 대한 작금의 우리 시각은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과거 일본놈들이 개자식들이란 건 둘째치고라도,, 내 나라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그토록 부끄러운 지배나 당하게 만들어 놓은 그 잘난 순국선열들에게 과연 무슨 존경과 묵념을 표해야 하는지 나로선 정말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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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마 이야기 을유세계문학전집 76
바를람 샬라모프 지음, 이종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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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재미 없는 책이었다.. 수용소에서 죽도록 고생하며 결국엔 개죽음까지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재미로만 생각하고 읽을 수 있냐고 누군가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잔인하게 대우받으며 끔찍스런 수용소 생활을 한 것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 보통 독자 이상의 동정과 연민 가슴아픔을 느끼는 것 등등의 슬픈 표현은 오버액션,,,솔직히 거짓과 위선으로 느껴져서 싫다.. 따라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불쌍한 감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밝히고 싶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오로지 딱 한가지,,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이다.. 내게 있어 재미가 없게 느껴지는 책은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재밌다고 떠들어대도 재미없는 책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 재미있는 책이란 어떤 책일까?  그걸 많은 독자들 중에 한마디로 쉽게 표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재미있는 책이란 그저 내 마음 속에서 재미라는 감정이 폭풍처럼 불어닥치는 책이라고밖에 뭐라 설명할 수가 없다.. 뭐 굳이 꼭 표현하라면 오장육부를 쥐어짜내는 열정(?)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천성적으로 표현력이 서투른 탓에 오늘도 더이상의 속마음은 나타내지 않으려 한다..

 

이 책의 작품 해설란에도 써 있지만,, 작가는 스스로의 작품을 도스토옙스키, 솔제니친과 같은 사람들의 수용소 작품들과 언뜻 비교하는 멘트가 실려 있고, 따라서 그네들의 작품들과 이 콜리마 이야기를 비교 분석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은데,, 난 도스토옙스키, 솔제니친의 수용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단 한 편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비교 분석 평가(?)는 전혀 할 수가 없고, 다만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완독을 한 뒤에 얼마 후 또 한 번 완독을 했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기에  그 재미의 농도에서 주관적 비교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결론은 <숨그네>의 완벽한 승리,, 즉 콜리마 이야기 보다는 숨그네가 훨씬 재미있었다..

 

콜리마 이야기에 나오는 수인들은 숨그네에 등장하는 수인들보다 훨씬 더 고통스런 수용소 생활을 한 건 맞는 것 같다.. 작가는 이 작품을 그저 하나의 문학작품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성 보고서로 수용소의 실상을 온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게 더 큰 목적이었다고 밝혔는데.. 그러다보니 재미있는 이야기에 길들여져 있는 나 같은 독자들에겐 콜리마 이야기란 좀 딱딱하고 잔인하고 슬프며 구역질 날 정도의 수용소 환경이 느껴지는, 그저 그런것으로만 내 기억에 도배된 듯한 감정을 소유한 채 책장을 덮고 말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작가가 스스로 수인 생활을 하면서 체험했던 상황들을 작품으로 표현한 탓인지 보통 독자들이 읽기에 난해한 작가 자신만의 수용소 언어와 그 표현들, 때때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 먹을 수 없는 읊조림과 고상한(?)예술적 표현들.. 한마디로 이런 것들이 책을 읽는 내내 약간의 스트레스로 다가와 완독하는 데 일주일 이상이 걸리게 되었다.. 그렇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내용과 쟝르의 작품이 아닌데도 별로 재미 없는, 따라서 <콜리마 이야기>는 내게 있어서 읽는 데 조금은 지루했던 책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책은 재미있어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작품이라고 비평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한다고 해도 책은 일단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재미의 의미와 농도 그 바램들은 내 마음 속에 내가 죽기 전까지 계속 유지되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서 조용히 빛을 내며 타오를 것이다.. 나만의 책, 내가 진정 재미를 느끼며 좋아할 수 있는 책을 찾아 오늘도 '북 헌팅'의 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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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통의 심리학 -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은밀한 본성에 관하여
리처드 H.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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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시기심, 질투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한국인의 자랑스런(?) 금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도 주위에 누가 잘 되는 꼴을 보는 게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이런 멋진(?) 속담이 오랫동안 전해져 오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 저자의 주장은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 대단하지도, 새롭지도, 참신하지도 않은 주장이다.. 즉,, 공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주장이나 학설, 작품따위는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창의성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너나나나 그 생각에 일순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건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내용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선의적 창의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며, 결국 그 주장이나 학설을 책으로 출간한다면 별로 많이 팔릴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정한 베스트셀러란 창조적 내용,주장이 반드시 가미되었을 때에야 제대로 된 베스트셀러라는 평소의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이유로라도 그리 잘 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책의 주요 골자 중에서 한 가지 내 생각을 밝혀보자면,,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가 타인이 불행해졌을 때 무조건 쾌감을 느낀다는 저자의 주장엔 무조건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주장엔 조건부적인 것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내 자신 스스로 만족감이 강하다면 타인의 불행에 결코 쌤통의 심리가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부와 명예, 그 밖의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많은 조건들 중에서 나름 만족스런 소유를 하고 있다면 타인의 불행에 쾌감보다는 오히려 동정과 연민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이란 스스로에 대한 긍지가 높고 클수록 자신도 모르게 마음 씀씀이가 너그러워지는, 즉 가진 자(者)의 배려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의 현실에 불만이 많으면 많을수록 타인의 불행에 쌤통의 심리를 초월해 환희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으며, 한 술 더 떠서 주위에 잘 되는 놈들이 있으면 죽이고 싶어질 정도로 미워지는,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뛰어 넘어 분노심으로 파괴 본능(?)의 심리가 심지어는 행동으로까지 표출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여러가지 심리중에서 위와 같은 시기,질투, 동정,배려등의 심리적 본능들은 뭐라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것들이고, 이런 감정들은 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유전인자, 그리고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서 하나의 인성으로 자리잡는 것이므로 모두를 하나의 잣대로 정의하는 것은 위험한 주장, 행위일 수 있다.. 그저 그 사람의 인격이 덕(德)을 베풀 줄 아는 인격이라면 자신의 불리한 처지에도 타인의 행복을 축하해 줄 수 있는 것이고, 정반대의 인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여유있음에도 타인의 불행을 더욱더 즐기려는 개 같은 심리를 갖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하고 싶은 건,, 고약하고 못된 품성을 소유하고 있고 그것을 솔직하게 그대로 보여 주는 사람들은 그래도 그 솔직한 모습이라는 데 그나마 봐주겠는데, 내가 정말 싫은 건,, 남의 행복이 속으론 정말 미칠 정도로 화가 나고 싫은데도 겉으로는 축하해 주는 척하는 그런 인간들의 구역질나는 본능(?)의 모습은 도저히 못 봐 줄 정도의 참을 수 없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 모습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돼야 할 지,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본능(?)은 어디서 유래한 것이고 또 어떻게 해석하는 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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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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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명 고독이라는 미명 아래 심지어는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그들은 오로지 고독해서 만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우울증이라는 DNA가 몸 속에 함유(?)되어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현대인들 중에 고독만으로 자살을 감행할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테니까..

 

김정운 교수님은 최소한도 평상시의 생활 패턴이 고독하거나 외로운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분이라고 여겨진다.. 책 속에서는 너무도 바쁘고 지치는 일상 생활에서 잠시 외로움과 고독을 일부러 유도하는 생활도 의미있는 삶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면 저자의 생활이 얼마나 바쁘면 '제발 외로웠으면',, 그것도 격하게 외로웠으면을 희망할까 예상해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듯싶다..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자신의 삶을 조용히 되돌아보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아울러 그런 자숙의 시간을 저자가 쓴 책을 읽으며 한편으론 책 속에 나와 있는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며 즐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수 있다.. 그게 바로 독서의 필요성, 독서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유용함이니까..

 

하지만,,,가진 자(者) 김정운 교수님과 같은,, 삶이 너무 바빠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분들께 한마디만 아뢰고 싶다.. "너무 외롭고 고독한 이들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아주 많습니다..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표정관리에 약간은 신경을 써 주시는 배려를 보여주신다면 교수님의 추종자들은 더욱더 늘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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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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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어떻든 상관없다.. 원인이 그 무엇이건 간에 관심없다.. 엄마에겐 사랑스런 아들 잭이 있으니까 그걸로 만족이다.. 이 세상 그 어떤 흉측한 일들이 자신의 미래에 버티고 있더라도 엄마는 아들애 하나만 있으면 아무 걱정없이 장애를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잭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이 세상의 크기와 광대함과 복잡성과 위험성은 그에겐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에겐 사랑스런 엄마가 있음으로 해서 아무런 불만도 외로움도 없는 것이다.. 가끔씩 생겨나는 호기심은 엄마가 곁에 있음으로 해결이 되어지고,, 그래서 잭은 조금은 단조롭지만 행복하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저 보통 사람들처럼 무난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별탈없이 성장을 한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불행하게 느껴지는 잭의 초상이 내 생각엔 그리 불쌍하게 만 느껴지진 않는데  그 이유가 뭘까?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껏 세상을 뛰놀며 커가지 못하는 잭의 삶이 내겐 그리 가엾게만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바로 그것은 잭에게 엄마가 있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누구나 다 있는 엄마가 잭에게만 있는 것이 아닐진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잭의 엄마는 진정한 엄마이기 때문이다..무조건 낳았다고 해서 혈연적인 엄마가 아닌, 아이에게 자신의 영혼을 나눠줄 줄 아는 엄마, 다정다감이란 말이 그저 머리만 쓰다듬어주는 것이 아닌 한 인간, 인격체로서의 자신의 아들과 대화하는 엄마의 모습,, 이것이 잭이 결코 불행하지 않는 이유이고 잭의 엄마야말로 진정한 엄마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엄마와 잭은 한때 불행했지만, 그건 표면상의 작은 불편함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살아있는 이상 앞으로는 계속 행복 할 것이다.. 진정한 행복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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