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도서관 - 정기용의 어린이 도서관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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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감동을 느낀 부분은,, 기적의 도서관의 배치에 대한 설계에 있었다.. 특히,, 도서관 내의 사서의 위치가 아이들을 감시하고 지켜보는 데 터무니없이 어렵도록 동선을 비뚤게 건축을 해놔서, 아이들이 그 누구의 간섭이나 제제를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게끔 일부러 설계가 됐다는 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마에스트로 정기용 님의 안목과 건축에 대한 철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바쁘게 살기만 한 내 자신이 우리나라에 '책사회'라는 단체가 있는지도 몰랐다..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도정일 선생님을 비롯한 뜻있는 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으며 맘껏 책을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철학을 갖고서 그토록 좋은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감동 그 자체였다..아울러 내자신 어른으로서 어린 친구들에게 그런 마음 씀씀이 한번 제대로 가져보지 못 했던 것을 생각하니 여간 부끄럽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도정일 선생님과 정기용 건축가 님을 비롯한 이 땅의 참되고 깨어있는 분들에 의해서 기획되고 만들어진 기적의 도서관이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곳곳에 아주 많이 세워지길 바라며,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물심양면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국민 한사람 한사람마다 미래의 주인공이 될 어린아이들을 위한 갖가지 참신한 정책들을 입안해서 바르고 똑똑하며 창의적인 사람으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바침 해 주는 것을 하나의 의무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언제 기회가 있으면 순천의 기적의 도서관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곳곳에 세워진 기적의 도서관들을 가보고 싶다..  그리고 그 곳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정기용 건축가 님의 살아숨쉬는 유작들을 통해 당신의 깊은 고뇌 속에서 탄생한 영혼의 건축물들을 감상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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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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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노르웨이 출판업자들과 자국의 독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만약,, 우리나라의 어느 신진 작가가 미스터 크나우스고르가 쓴 <나의 투쟁>류의 작품을, 그것도 3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소설을 들고 와서 한 출판사에 출간을 원한다고 했을 때,, 과연 그 출판사는 이 작품을 출간해 줬을까?... 설령 용기(?)를 내서 책이 출간됐더라도 대한민국의 독자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사서 읽었을까?... 물론 한국의 독자들도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혹은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을 비롯한 시리즈들을 감명 깊게 읽은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작품들은 대하소설,, 즉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태백산맥>류의 소설들 처럼 한반도의 수난사를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재조명하려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지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과 같은 일상적인, 한 개인의 지극히 평범한 일들을 작품의 소재와 주제로 한 책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만약 그런 류의 작품이 이 나라에 출간됐다면 글쎄,, 솔직히 난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잘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았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노르웨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이렇게 세 나라는 지구상에서 복지정책이 가장 잘 돼있는 나라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내가 쓸데 없이 이런 얘길 주절거리는 이유는,, 한 나라의 복지정책이 잘 돼 있을수록 그 나라 사람들의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이토록 여유로움의 형태로 나타나, 한국에서 몇 십년을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 봤을 때는 <나의 투쟁>이라는 이 작품이 그닥 심금을 울리거나 감동을 자아내는 소설이 아니라고 느껴지는데도, 노르웨이 본국에서는 총 5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50만 부가 팔렸다는 얘길 접하고서 '과연 복지국가 국민들의 감성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확실히 뭔가 다른 데가 있구나'라는 문화적 사대주의에 또한번 빠지게 됐다..

 

1. 문학 이노베이터의 실체..

월 스트리트 저널 매거진의 광고 내용이다.. 즉 <나의 투쟁>을 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낸 개척자라는 칭찬이다.. 문득 20세기 최고의 소설 <율리시스>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위대한 작가들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가 떠오른다.. 물론 크나우스고르 스스로는 말도 안되는 비교라고 하겠지만, 이 책을(비록 1권밖에 읽지 않았지만)조근조근 읽어가면서 느낀 것이 혹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벤치마킹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그럴것이 작품의 전반부에서 크나우스고르 자신이 어릴 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미치도록 읽었었다는 대목도 나오는데다가,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이 자신의 떠오르는 기억에 의해 시점이 순간순간 변하기도 하고, 심심찮게 뜬금없이 주위의 자연환경에 대한 묘사를 하거나, 어느 예술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느낌을 세밀하게 비평하는 부분들은, 작가가 자신이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런 비평을 작품 속에 담았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쨌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여러가지 비슷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유수의 세계적 언론사들이 입에 침을 튀겨가며 새로운 형식의 소설기법을 칭찬하는 걸 보면, 앞서 말한 프루스트 따라하기는 아닌 것 같고 나같은 일반 독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뭔가 대단한 문학적 기법의 창시자이긴 한 모양이다.. 

 

2. "응석받이"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작품내내 작가가 우는 소리로 작가 자신을 포함한 아버지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섭섭함과 원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결론은,, 결코 작가의 아버지에겐 어떤 점에서도 크게 잘못된 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노르웨이 한 도시의 중학교 선생님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다했고, 자신이 낳은 두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 무난하게 키웠다.. 특별히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대했거나 학대하지 않았고, 별다른 괴롭힘도 주지 않았다.. 도대체 작가는 자식으로서 어떤 점이 아버지에 대한 불만, 원망, 심지어는 증오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 것인지 나로서는 뚜렷한 이유도, 이해할 만한 잘못된 아버지의 모습도 찾지 못했다.. 다만,, 작품 속에서 "아버지는 형과 자신의 자유와 정체성 마저 인정하려들지 않고 당신 마음대로 유린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노르웨이 사람들의 아버지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정서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꽤 많은 차이가 난다는 걸 느껴본다.. 작가는 1968년생이고 따라서 좀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지면 인생의 마일리지가 어느정도 쌓인 세대이다.. 신세대도 아닌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받지 못했다고 이토록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작품 속에 그 원망과 아쉬움을 녹여놨다는 건,, 그가 응석받이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는 결론밖에는 달리 뭐라 할 말이 없다.. 작품의 후반부에 가서 작가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로서 삶을 마감한 부분에서는, 이미 자식들이 장성한 뒤의 일이었으므로 그건 결코 아버지로서의 소임을 못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알콜중독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건 아버지의 인생이라는 얘기이다.. 성인이 된 자식으로서 불만을 가질 사항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3. 해도해도 끝이 없는 청소..

작품의 후반부에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작가의 심리적 내용이 주종을 이룬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여지껏 책을 보면서 그토록 세세하게 청소하는 장면을, 그것도 실시간으로 중계하듯 묘사해 놓은 작품은 처음 봤다.. 당시에 노르웨이의 마트에서 판매하는 세제란 세제는 모두 총동원하여 부엌 침실 거실 욕실 계단 마당...쓰레기를 치우고 쓸고 닦고 문지르고 광을 내고 헹궈내고...책을 읽으면서 내내 내가 지금 소설을 읽는 건지 아님 청소하는 방법에 대한 실용서를 읽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청소하는 장면이 쉴새 없이 묘사된다.. 왜 그랬을까?.. 작가는 왜 청소하는 장면을 그토록 지면에 많이 할애했을까?.. 표면적인 이유야 더러우니까 치우는 것이고, 그 집에서 장례식을 치루기로 했으니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 그래서 기절할 정도로 청소를 깨끗이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즉 작가는 그 집을 청소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함께 자신이 몇 십년간 쌓아왔던 애증의 흔적을 지워버리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저 지워버리는 것에만 중점을 뒀다면 그렇게 오랜시간 청소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흔적을 지움과 동시에 그 집에 아직도 남아있는 아버지의 냄새, 다시 말하면 아버지와의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버지를, 원망한 만큼 그토록 집착했던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존재의 실체를 아직까지 저 세상으로 보낼 준비가 안 돼있던 것이고 또한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비록 1권밖에 못 읽었지만),, 하루하루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야기되는 모든 장애와 곤란을 어떻게 해서든지 뛰어 넘고 해결하는 모습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누구나가 다 경험하고 성공하며 좌절하고 실패하는 사람들 속에 자신이라는 한 사람의 얘기를 멋지게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투쟁이라는 단어로 상징화 한 좋은 작품을 탄생시킨 듯하다.. 

 

"가끔씩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을 때마다 글을 쓰고, 글을 쓸 때마다 좌절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오늘도 세상살이에 끝없는 투쟁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슬픈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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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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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것일까?...

어느 훌륭한 역사학자가 어떤 시대의 사실(?)에 대하여 이렇고 저렇고를 설명하면서 결국 그 시대는 그랬었다라고 말한다면 우린 그걸 믿어야 할까?.......맞다 믿어야 한다..믿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나, 혹은 역사학자가 제시하는 근거를 솔직히 인정할 수 없는 기분이지만, 그렇다고 나혼자 그럴리가 없다면서 떠들어댄다고 누가 나를 인정해줄까?.. 수능시험이나 취업을 위한 시험에서 나는 합격하기 위하여 내가 믿지도 않는 사실을 책에 써 있다는 이유로, 고매한 역사학자가 주장한다는 이유로 듣고 배운대로 답을 써내야 만 한다.. 그게 현실이고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역사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나는 요즘 틈틈이 민음사에서 발행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다.. 본문의 내용 안에 수없이 많이 달려 있는 주석들을 읽다보면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건 바로 그 책의 저자인 기번 역시도 지나간 로마 역사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오래된 옛날 일이라 확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그가 진정 로마사에 확신이 없는 이유는 티유몽을 비롯한 그전의 역사가들의 기록이 제각각 모두 다르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한 가지 역사적 사실 하나를 두고서도 많은 역사가들의 기록뿐만 아니라 그네들의 평가가 천차만별이어서, 그런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자료들과 기타 참고해야 할 자료들을 가지고 로마제국 쇠망사를 집필했던 기번의 주석들엔 확신이 없는, 그저 추측만 하는 내용들이 허다하며 그런 어려움 속에서 쓴 책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위대한 역사책이 아닌가 싶다..

 

또한,,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스테디셀러는 책 제목에 애초부터 '이야기'라는 말이 들어간다.... 즉 역사란 결국 이야기라는 걸 역사를 꽤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들도 책제목에서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한 달 전에 내가 이 시간에 뭘 했는지도 기억을 못 하면서 자신이 겪지도 않은, 그것도 아주 먼 옛날 얘기를 본인의 손금 들여다보듯이 얘길하는 사람들,,, 글쎄,,그들에겐 그 어떤 자신감이 그들을 그토록 위대한 역사학자들로 만들어놨을까?

 

그렇다고 내가 역사라는 학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필요하다.. 역사는 배워야 만 한다.. 왜냐하면 그 역사의 본질이라는 것이 진실적이고 사실적이어서가 아니라, 모르고 안 배우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알고 조금이라도 배우는 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즉 역사를 알고 배워야 하는 명분은 당위성이 아닌 필요성에서 찾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필요성이란 결코 맹신과 무조건적인 추종을 절대적으로 배제한다는 것 또한 덧붙여서 말하고 싶다..

 

역사를 조사하고 탐구하는 과정과 시스템이 날로 발전한다고 해도 위에서 말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진실된 역사를 알 수 없을 것으로 난 확신한다.. 따라서 역사의 선지자들은 후학과 후세들에게 좀더 겸손한 마음으로 이럴수도 있다라는 가정을 하면서 자신들의 연습된 역사를 가르치길 바란다.. 그러다보면 누구든지 믿고 싶은 것만, 알고 싶은 것만 믿고 알게 되는 진실(?)되고 위대한 역사책 한 권이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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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판사 서기호입니다 - ‘가카 빅엿’ 양심 판사, 사법개혁의 꿈을 안고 소통하다
서기호.김용국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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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 옛날,, 어느 운동권 인사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절에 "박정희는 독재자"라고 크게 외친 적이 있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이 그 소릴 듣고 하는 말이 "내가 진짜 독재자라면 당신들이 나한테 대놓고 독재자라는 말을 할 순 없을 것이다.."

 

세상은 세월의 마일리지를 얻어가며 날이갈수록 비록 조금씩이지만 이렇듯 변해간다.. 물론,, 이 변화는 좋은 쪽으로의, 긍정으로의 변화를 의미함은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이 각계각층에서 좀더 나은 그 무엇을 위해 소리지르고 저항하며 노력했었고, 따라서 그 사람들의 소중한 항거로 인하여 이토록 세상은 나날이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국민판사 서기호 님의 잘못된 세상, 잘못된 사법체계와의 숭고한 싸움은 언젠가는 당신이 희망하는 쪽으로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거라 감히 짐작해 보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제대로 된 길을 찾아 가는 것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확신하는 것이고, 아울러 그동안 오랜 세월을 통해 한국의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모든 걸 바쳐 싸운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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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노동 - 꼭꼭 숨겨진 나와 당신의 권리
은수미 지음 / 부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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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비정상 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거기에 출연하는 노르웨이에서 온 친구가 자기네 나라에선 중학생의 30% 이상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는 얘길하는 걸 봤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그럴것이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중에 하나인 노르웨이에서 그토록 학구열이 높지 않다는 건 내게 있어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살기가 좋다는 뜻이고, 삶이 편하다면 노동보다는 학습 연구 같은 것으로 시간을 보낼 일이 훨씬 많을 걸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거꾸로 생각해 보면,, 살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머리가 터져라 공부를 해서 남과의 경쟁을 벌일 필요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공부를 하고, 노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곳에서 기술을 배워서 거기에 맞는 직업을 가져도 얼마든지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굳이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하지 않아도 먹고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다면 뭐하러 고등학교까지 진학하겠는가?..

 

내가 바라는 미래의 대한민국 모습이 바로 위에서 말한 노르웨이의 모습이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높은 학력을 소유하지 않고도, 그 어떤 직업을 가졌다해도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뇌리 속에 살아있는 착취당하고 어려움속에 늘 불행하게만 여겨졌던 노동자라는 이미지가 그 어떤 하이클래스의 직업과도 차별되지 않는, 진정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신성한 노동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위정자들에게 청하노니,, 제발 이 나라에 모든 사람들이 그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도 행복할 수 있도록 싸움질들일랑 그만 하고 나라를 위한 초심으로 돌아와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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