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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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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좋아한다. 내용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보았던 중학생 때를 지나, 몇 번이고 망설인 끝에 다시 도전하게 됐던 고등학생 때를 경험한 이후 <데미안>은 내 마음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책이자 읽을 때마다 늘 다른 시선과 다른 감정을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나를 전율하게 만드는 책이 바로 <데미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헤르만 헤세의 팬이 아니다. <데미안>을 제외한 그의 다른 작품들은 언제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의 수많은 저서 중에 하필 내가 고른 책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의 글은 지나칠 정도로 온순하고 세심하여 쉽게 그 속에 빠져들기 힘들고,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다면 여간해서는 다시 들어가기 힘들다는 특징을 가졌다. 큰마음 먹고 자리를 잡고 앉더라도 끈질기게 붙잡고 있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결국 그의 이름을 쫓아 만나게 된 여러 책들은 내 손에 머무르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러던 중 이거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했던 기대를 안고 보게 된 것이 바로 <헤세의 여행>.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 에세이를 접한 것은 처음으로, 그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책을 펼치는 순간 그려질 풍경들을 상상하며 그의 여행에 합류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헤세는 헤세였다.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그의 글은 빠져들기는 어려우면서 튕겨져 나오기는 왜 그렇게 쉬운지. 한 줄 한 줄에 집중하고 한 장 한 장에 매달리며 힘겹게 읽어나갔다. 마지막 장을 다 덮은 순간에도 내가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낸 것이 맞는지 모호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닫게 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여기에, 헤세의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장면 장면이 마치 사진을 찍은 듯 선명하게 그려지고 깊은 사유가 느긋하게 흘러간다. 찰나가 포착되어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게다가 한 번 빠져들게 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져 자연 속에서 휴양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보덴호'에서 그와 함께 여름을 맞이하고 '이탈리아'에서 그의 기묘한 꿈에 초대되는 경험은 황홀할 정도다. 이 모든 것은 온화하고 세심한 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헤세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마지막 장을 다 덮은 순간에도 내가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낸 것이 맞는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책 역시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것이며,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에 대한, 그리고 책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오직 헤세와 그의 글만이 가능한 일이다.

 

금세 지쳐 포기했던 소설들과 달리 꿋꿋하게 읽어나갔던 책. 에세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만큼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의 매력을 알기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의 소설에 도전하는 거다. 조바심 내지 않고 오래도록 곁에 두고 바라보면서. 그게 바로 헤세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니까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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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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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에세이의 구성이 있다. 첫째 재미있게 잘 읽히고, 둘째 배울 점(여러 가지 잡다한 지식은 물론 철학적인 생각, 삶의 지혜 등)이 있으며, 셋째 한 번 흐름이 끊겨도 금세 빠져들 수 있을 것. 이런 식으로 구성된 에세이는 가까운 책장에 꽂아놓고 몇 번이고 다시 읽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만큼 한 번 발견하면 '이런 게 행복이지'라고 생각할 정도다.

 

이 책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는 이 이상적인 구성에 들어맞는 책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표지에서 느껴지는 오오라(?)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발견이었다. 먼저 첫 번째, 재미있게 잘 읽힐 것. 표지에서도, 그리고 글 중간 중간에서도 작가가 물리학과 교수라는 사실을 언급하지만 역시 표지에서도, 그리고 글 중간 중간에서도 '교수'라는 위치가 가지는 위엄이나 거리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온갖 물건들로 가득한 산만하기 짝이 없는 연구실(실제로 책 제일 뒤쪽에 연구실 사진이 나온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과 틈만 나면 다른 곳으로 튀는 통통볼 같은 뇌, 그리고 그 뇌의 주인인 익살맞은 남자의 모습이다. 그만큼 톡톡 튀는 이야기가 하나 가득이고,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엉뚱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특히 갖가지 물건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그에 따른 관심, 관찰력, 대담함은 그의 일상에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넣고, 그 이야기가 다시 그의 입담에 의해 책에서 재탄생되니 재미는 충분히 보장하고 술술 읽혀나간다.

 

다음으로 두 번째, 배울 점이 있을 것. 위엄이나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지만 세삼 작가가 교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글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물리학에서 보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병따개를 통해 물리학을 설명하며, 물리학자로서 피퀴르, 즉 병의 똥구멍에 대해 얘기하는 등 '물리학 교수'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이어서 비둘기와 피카소의 관계, 모히토의 기원, 구겔호프 빵의 역사 등 온갖 잡지식(잡다한 지식)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을 몇 개만 기억하고 있더라도 아는 것 많다는 소릴 들을 수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거다.

 

마지막 세 번째, 한 번 흐름이 끊겨도 금세 빠져들 수 있을 것. 사실 에세이는 소설처럼 앞에 내용이 뒤와 이어지거나 전체적인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목차를 보고 원하는 부분만 골라 읽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골라 읽을 경우 책에 몰입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한 장 한 장마다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부분을 집어넣는, 그야말로 작가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기진 작가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장 한 장마다 재미있으면서 신기한 이야기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어딜 펼치더라도 금세 빠져들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표지를 봤을 때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선명하고 밝은 색보다는 흐리고 옅은 색을, 뚜렷하고 진한 선보다는 부드럽고 동글동글한 선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에는 절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맞지 않는 표지에 기대는 고사하고 실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구성이 맞을 거라고는 문자 그대로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책은 읽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정말이지 만약 나와 같은 이유로 책 읽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한 번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분간 이 책은 내 책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을 것을 확신하는 바이니 나를 한 번 믿어보시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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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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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여행 에세이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이 출판됐을 때가 생각난다. 잡지나 신문, 서점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홍보에 나는 책을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질려버렸었다. 랜드마크를 찍은 알록달록한 사진에 간단한 소개, 위치, 주변 먹거리 따위로 구성된 여행책자(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 중 하나다)정도로 생각했고, 여행 떠날 때 딱 한 번 빼고는 다시는 펼칠 일 없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뻔하지 뭐. 괜히 또 난리야. 그렇게 생각하며 손도대지 않은 채 외면해버렸었다. 그래서 두 번째 여행 에세이인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을 받았을 때 꽤나 실망스러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웬걸. 펼쳐드는 순간부터 나는 이 책에 매료되어버렸다. 먼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10가지 테마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달콤한 유혹 한 조각', '그들처럼 살아보는 하루', '생각이 깊어지는 그곳'과 같이 다양한 테마는 여느 여행책처럼 진부하거나 거리감을 주는 대신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취향에 꼭 들어맞는 테마를 찾아 체크하며 보는 재미는 물론 다른데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추천지에 당장 그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느라 혼이 났다.

 

공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다른 무언가로 뻗어나갈 때에 느끼는 즐거움도 있었다. 파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소설 <춘희>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때, 런던에 대한 이야기에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때,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에서 두모악 갤러리와 김영갑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때 나는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됨으로서 얻는 기쁨, 공간과 공간이 잉태해낸 것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경이로움. 인문학 서적을 읽는  만큼이나 얻는 것도 느끼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멋진 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 그리고 물건과 사람을 향한 작가의 시선은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화려하게 포장하거나 섣부르게 언급하는 대신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해준다. 거기에다 그녀의 깊은 감성과 포용력 높은 글솜씨가 더해져 정점을 이룬다. 어렵지 않게 차근차근, 지루하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사진을 보는것보다 글이 더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녀가 했던 고민과 생각, 그리고 과정과 여정을 따라 가다 보니 어느 샌가 내 가슴도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나는 여행의 맛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여행에 대한 로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열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가난한 학생신분에 해외라면 영어실력부터 걱정되는 겁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감안해 국내여행을 즐기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행이라고 갔다가 실망만 연거푸 하다 보니 여행에 대한 의지나 기대도 거의 없고 게으름이 심해 떠나는 것 자체를 꺼리는 편이다(여행이든 뭐든 막상 하고 나면 엄청 좋아하고 즐기면서 하기 전에는 왜 그렇게 귀찮아하는 것인지...). 그저 누군가의 여행일지를 들으며 "우와!!"하고 감탄하면서 부러움과 일시적인 충동을 느끼면 그걸로 땡. 누가 보면 못난 놈이라고 욕할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간접여행이 더 즐겁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은 엄청나게 고마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한 것처럼 배부르고 따뜻하고 경쾌했다. 심지어는 진짜 여행을 한 것보다 더 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눈과 가슴을 얻은 듯한 기분과 더불어 온몸에 상쾌한 기운이 감돌았다. 진정한 '여행 에세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순간. 낯선 공간의 풍경과 이야기, 그리고 작가의 감성과 생각과 지식까지 얻을 수 있는 완벽한 여행 에세이라는 것이 이 책에게 보내는 나의 찬사다. 끝으로 어쩌면 이 책을 곱씹고 또 곱씹다보면 나도 온전히 나만의 여행과 이야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남몰래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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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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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이라는 그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잊기가 어렵다. 눈으로 보는 것은 물론 입으로 따라 읽기에도 동글동글한 느낌을 주는 그 이름은 처음 듣는 그 순간에도 익숙하게 다가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유일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윤대녕 작가 이외에 그와 같은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어떤 증표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다.

 

하지만 익숙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이름일 뿐, 나는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거기에 거창한 이유나 피치 못할 사정 따위 있을 리가 없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읽어봐야지'라는 생각만하다가 다른 책을 집어들기를 반복. 때문에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받았을 때는 "오오!"하며 감탄했다.

 

작가의 머릿속에는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함께했던 이의 손짓하나 대사하나, 심지어 그 순간 그곳에 존재했던 공기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그 수많은 공간과 기억들이 그의 손을 빌어 완벽하게 되살아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공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다시는 될 수 없는 그때의 '나'. 분명 단 한 권의 책으로 윤대녕이라는 사람을 다 알기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책만큼 그에 대해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방을 체험해보지 못한 나는, 경기장을 찾아본 적이 없는 나는, 자동차를 소유한 적이 없는 나는 그의 이야기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라는 그의 말과 마음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 시절의 나에게 느끼는 안타까움과 사랑스러움.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만들어냈으며 그 덕분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또한 앞으로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이제는 당신 차례입니다'며 내 이야기를 되살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기억을 아는 것은 그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만큼 그에 대해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윤대녕이라는 사람은 꽤나 어려운 사람이다. 다른 누군가가 들어설 수 없을 만큼 빈틈없이 '나'로 메꾸어진 사람. 그 때문에 깐깐하고 까칠하며 고집 센 느낌을 주는 사람. 한없이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 그 자신이 너무 단단해서 잘못 다가갔다가는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 내가 가루가 되어 버릴 것 같은 사람. 이렇게 말하고 보니 그의 작품에 쉽게 손 내밀지 못할 이유가 진짜로 생겨 버린 것도 같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마주하고 싶을 때 그를 만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한 명의 '어른'을 만난 것 같은 느낌. 윤대녕 작가와의 첫 만남은 그와는 다른 나라는 존재로 또 한 명의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름이 주는 느낌과 그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달랐지만, 느낌과는 별개로 또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 는 것이 리뷰를 쓰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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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라디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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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샛노란 표지 (그야말로 이 책을 목표로 서점에 들어간 사람을 위한 장점!) 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마술 라디오>라는 제목에서는 싱그러운 느낌이 묻어나고, 오른쪽에 치우쳐 그려진 그림에는 방금 그려 넣은 듯 한 자연스러움이 존재했다전체적으로 여백이 많은 깔끔한 구성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거기에 더해진 '정혜윤'이라는 세 글자는 친근하다 못해 운명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라디오 피디로서,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듣고 묻는자'로서 그녀는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었고, 그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라디오 한 대를 가지고 있음을 자진해서 밝혔다. 그녀는 그것이 "내 가슴속이 아니라면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라디오일 거야."라고 했다이어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를, 말을 다르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을 숱하게 봐왔어. 지금 내가 바로 그것을 해보려고 해"  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의견''위로''충고''교훈'도 아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4개의 이야기가 마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스로를 자유라고 말하는 어부눈맛을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빠삐용의 아버지, 귀가 배지근해진다는 할머니자신의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야채장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마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이자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무언가'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멋지게 변신시켜주는 놀라운 마술사였다. 그들은 먼저 자신을 위해서 마술을 부렸고, 그 다음에는 서로를 향해 마술을 부렸다. 그로써 모두가 선명한 빛을 뿜어냈다. 이야기 속에서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중 빛나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에서,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는 듣는 이에게까지 전해지는 놀라운 힘이 있었다. 그 빛은 작지만 분명하게 전해져 때로는 질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각자의 가슴속에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해진 빛은 완전히 새로운 빛을 뿜어냈다.  마술 라디오를 들은 사람들이라면 분명 이 빛이 일으키는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이야기도, 사람들도 분명 특별하지 않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다. 나와 내 곁에 있는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이자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누구나 그들처럼 자신 안에 저마다의 마술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점이라고는 이야기속의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마술을 꺼내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그들은 정혜윤 그녀만의 이 마술 라디오를 통해 우리에게 그 마술을 전달해준다. "길을 잃었을 땐 도처에 무수히 많은 스승을 만들면서 한 발 한 발 갈 수 밖에 없어요. 게다가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어두운 길모퉁이에서 등불을 들고 서 있을 누군가를 상상해보면 떠오르는 어떤 얼굴이 있을 거예요. 그 얼굴은 필시 무척 낯이 익을 거예요. 내가 길을 잃을 때 나를 이끌어줄 은인은 뜻밖에도 내 곁에 있을 수 있어요." 라는 그녀의 말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 낯익은 스승들의 도움으로 각자의 마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다시 우리들의 마술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그를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슴속 라디오에 좋은 이야기를 엄선해서 차곡차곡 쌓아놓는 노력을 해야 한다. 즉 언제든 필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스스로 빛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할 수는 없으며, 의도하지 않은 새에 잘못된 길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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