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빔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4
신현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형수술에 대한 논의는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자신의 성형수술 사실을 끝까지 부인하고 숨기려 했던 과거부터 솔직함과 당당함을 표방하며 스스로 성형수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입에 올렸고 또 경험했다. 그에 따라 성형수술에 대한 찬반논란, 선악설(?)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으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성형수술이라는 소재는 굉장히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초중고대학생 따질 것 없이 토론의 단골 주제인 것은 물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사용한다. 성괴니 성형미인이니 하는 말들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굳이 깊게 들어가거나 하나씩 따지고 드는 것은 지겨울 정도다.

 

<플라스틱 빔보>는 그런 소재를 중심으로 삼았다. 자칫 지루하고 늘어질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걱정과 예상을 단숨에 깨버렸다. 보편적인 주제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이 책은 보여준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성형수술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찬성하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두 입장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마지막은 늘 그렇듯 어찌되었든주인공이 성형수술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역시 보편적인 전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의 끝에 와있다. 그만큼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다른 소설들이 낭패를 경험하는 부분, 그러니까 주인공의 입장이 바뀌는 부분도 이 책은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힌다. 그야말로 부드럽게 읽히는 책의 표본이랄까. 살짝만 언급되는 로맨스적인 요소가 거슬리기보다 귀엽게 느껴질 정도면 말 다한거다.

 

또 일이 생기고 나서 스스로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주인공의 모습은 읽는 이의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렇구나, 하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을만한 과정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인물의 죽음에 대해 다루는 것은 공감을 얻기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남는다. 청소년문학은 좀 더 유해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부수며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좀 더 흥미 있게 볼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플라스틱 빔보>는 성형수술에 대해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하고 싶은 사람들, 처음 성형수술이라는 소재를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굳이 성형수술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삼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재미도 보장한다. 작가님이 걱정했던 뻔한 메시지나 교훈적인 얘기는 절대 아니라고 힘주어 말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꼰대 아빠와 등골브레이커의 브랜드 썰전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3
김경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삼 생각해보면 나는 학창시절 남들 다 하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짝사랑에 울상을 짓거나 풋풋한 연애를 해본적도 없고, 학교를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 오래도록 공부한 적도 없고, 눈에 힘을 주거나 얼굴을 하얗게 만드는 화장은 해 본적이 없었다. 또 패션에는 관심이 없어 청바지에 후드티 입는 것을 즐겼으며 액세서리라고는 부모님이 사주신 건강 팔찌를 차는게 다였다. 그런 사람이었던 만큼 브랜드, 명품 같은 것과도 가깝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 흔한 North Face 제품은 물론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패딩, 운동화 하나 가지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생이 돼서야 처음으로 메이커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 하지만 브랜드가 가지는 몇 가지 장점보다 개성과 가격을 더 중시하는 내게 브랜드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똑같은 브랜드에 똑같은 제품을 착용한 모습과 부담스러운 가격은 나와 브랜드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 <꼰대 아빠와 등골브레이커의 브랜드 썰전>은 내게 별로 와 닿지 않는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재미있었던 점은 새로운 정보들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었다.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두 사람의 썰전이 책의 내용 인만큼 다양한 자료들이 인용, 또는 사용되었고 그러한 정보들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빈티지, 타투처럼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만 그 말의 어원을 알지 못하는 것부터 할리 데이비슨, 몽블랑 같은 브랜드에 대한 정보, 그리고 스티븐 잡스의 일화 등이 주석이나 이야기 흐름을 통해 제시되면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했다. 또 현수와 상호씨 두 사람의 썰전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이나 이야기 전개 방법 등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구성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면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 하는 두 사람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어른이라고 아이의 요구를 묵살하거나, 아이라고 무작정 떼를 쓰는게 아닌, 준비와 노력을 통한 소통이 책을 읽는 내내 부드러운 기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두 사람의 썰전을 지켜봐주는 경미씨와 연수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와 어른의 바른 소통방법을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책 역시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고는 할 수 없다. 중학생이 주인공이라 독자도 중학생으로 한정해서인지 아니면 현수의 입장을 완벽하게 헤아리기 위해서인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너무 어린아이를 다루는 듯 했다. 문체 자체도 어린아이한테 구연동화 읽어주는 듯 한 느낌이었고, 전체적으로 하나 하나 다 설명하려고 들었으며, 2를 부각시켜 나를 이해해 달라라고 말하는 듯 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언급 하는게 오히려 더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진짜 중학생이면서 이 책을 읽게 됐다면 공감은커녕 화를 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중학생이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재사용을 좋아하는 태지라는 인물은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그냥 브랜드에 관심 없고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인물이 더 낫지 않았을까, 꼭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캐릭터를 설정해야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페이지를 넘기는게 자연스럽지 못했다. ‘브랜드에 치우쳐 현수가 사고 싶어 하는 브랜드 점퍼에 대한 이야기는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역시 아쉬웠다. 예를 들어 착한 브랜드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하지만, 현수가 사고 싶어 하는 브랜드가 착한 브랜드인지 아닌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별로 설득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렇듯 장점도 단점도 모두 보인 책이 이번 책 <꼰대 아빠와 등골브레이커의 브랜드 썰전>이었다. 아쉬운 점이 눈에 띄더라도 계속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그게 누가 됐든 무언가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인문 도서인 만큼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로 풀어내 가볍게 접하고 깊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 역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나 소통에 대한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 권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톡톡톡 - 제4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3
공지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리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이 책 <톡톡톡>을 가볍게 생각했었다.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 달림의 눈을 통해 보는 그 섬세한 광경에 감탄하는 한편, 교복치마 아래에 체육복을 입고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슬플 때 웃을 줄 아는 그런 여자 아이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상했었다. 고개를 치켜들고 제 앞의 길을 나아갈 성숙한 달림의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뿌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나자 나는 이 책이 내 생각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상대적인 관점이긴 하지만)에 벌써부터 사랑합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물들의 대화는 어딘가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나 스스로를 노땅(!)이라 생각하게까지 만들었다. 성장은 성장이되 내가 기대했던 그런 성장이 아니라는 생각에 대체 이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는가, 쓸데없는 고민까지 더해갔다. 퍽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물론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그런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져 갔다. 이 소설이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내용은 뚜렷하게 보이는 끝을 향해 달려갔고, 마지막 장면에 도달해서는 얽히고설킨 모든 이야기들이 풀렸다. 책 전반에 흐르고 있던 비밀에 쌓인 듯 한 신비로운 느낌은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는 판타지적 요소 때문이기도 했고, 꽁꽁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가는 이야기 그 자체 때문이기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됐든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완벽하다거나,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다. 주인공 달림과 귀신놀이터에서 만난 노란모자, 달림의 언니 해림. 이야기의 시작은 달림이었지만 그 안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억지로 끊었지만 결코 끊어진적 없었던 그 끈을 알아차린 순간 이야기는 끝이 났다.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났을 정도의 마무리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아쉽다는 마음을 감출 수 가 없다. ‘낙태라는, 확실히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다뤘다는 사실과 그런 주제는 이런 마무리를 통해 생각할 거리, 즉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서늘한 마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 가 없다. 끝이 곧 시작임을 암시하지만 시작이 너무 꽁꽁 숨겨져 드러나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책 안에 담긴 것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찬성과 반대로 갈릴지도 모르고, 감정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주제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책이 일반적으로 잘 다루지 않으며, 다루는 것 자체도 매우 어려운 주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고, 그 이야기를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통해 흥미롭게 진행했고, 통통 튀는 반전 매력까지 가지고 있음은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어쩌면 나와는 거리가 먼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지더라도 이 책을 읽고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파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의 현실에 딱 맞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괜찮은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는 퍽 당황스러웠다. 전체적으로 음울한 기운을 띄는 자줏빛 표지에 희미하게 보이는 흑백 풍경, 그리고 배수아알타이라는 낯설기 짝이 없는 이름들까지. 어딘가 기묘한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몇 번을 흘끔거렸지만 결국 기간이 임박해서야 겨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글 초기에 든 생각은 도도하다였다. 있는 힘껏 나는 너와 달라!’라고 외치는 듯 한 느낌. <귀향>이라는 책 한 권으로 인해 갈잔 치낙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고, 그 결과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땅 알타이로 날아간 작가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가 보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남달랐다. 냄새에 집중하고,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지금 여기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그녀의 모습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 거기에는 외로움이나 후회 같은 것은 일절 들어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글이 진행될수록 느껴지는 것이 또 달랐다. 제 길을 향해 나아가는 성인 여성의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꼭꼭 눌러 담아 작아진 몸을 한 고집 센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전자의 경우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인상이었다면, 후자의 경우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이 보고 느낀 것에 대해서만 고저 없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늘어놓는 듯 한 인상이었다. 어딘가 서늘한 기운을 풍기지만, 호흡이 긴 문장이 그러한 기운을 완화시키는 듯 한 느낌. 어린여자아이가 채 숨기지 못한 열기를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는 이야기보다는 감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승전결, 혹은 뼈대를 갖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와 달리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감정이 주를 이루는 감상이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작가 자신을 알타이까지 이끌었던 갈잔에 대한 이야기도, 동행한 사람들과의 일화도, 풍경의 이야기도 거의 들어있지 않았다. 그 속에서 오롯이 존재했던 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객관성을 유지하려 드는 성인의 눈이 아니라 저 좋을 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었다.

 

처음에 그 모습을 도도함이라고 착각했던 만큼 지루하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 나를 일깨우는 느낌이 들면서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탓에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작가의 상황에 부러움을 느끼면서 그와 같은 경험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그러한 노력은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바늘이 없는 나침반의 한가운데를 영원히 서성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서 그대로 원소가 되어 사라져버려도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나를 지켜보는 것은 오직 먼지와 햇빛, 바람, 그리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맹금류, 그것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음으로 특징지어지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익숙하며 어느 정도는 사랑스럽기까지 한 도시적 익명의 고독감과는 좀 다른 성질이었다.(98p)”는 부분에서 나는 그 상황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 최대한 상상했지만 동의를 했을 뿐 공감하지 못했다. 과연 그 압도적인 느낌은 어떨까. 그 느낌을 느끼고 난 후는?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그건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139p)”라는 부분에서 나는 그 느낌을 맛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를 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한다. 한순간의 휩쓸림으로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잊을 수 있어 행복하다니. 그 순간 격렬한 질투를 느꼈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 모든 것들은 도시 안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로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니까.

 

물론 감상만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이따금 그 존재를 나타내는 이야기 속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늑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밤 늑대 한 마리가 그의 덫에 걸렸어. 그런데 그 늑대는 밤새도록 덫에서 빠져나가려고 사투를 벌이다가 동이 터올 무렵 결국 덫에 걸린 자신의 발목을 스스로 물어뜯고 빠져나갔다고 한다. (생략) 그 늑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했어. 물론 그 늑대는 죽을 테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죽을 것이고, 중요한 것은,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다는 점이니까.(225p)” 갈타이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작가가 기억하고 언급한 만큼 내게도 인상 깊게 남았다. 죽음 앞에서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그 모습이 굉장하다고 느꼈으며, 나 역시 그럴 수 있음을 바라게 되었다.

 

이외에도 내 마음을 울린 부분은 셀 수 없이 많다. 감상도 이야기도 모두 훌륭한 책이었다. 게다가 첫 느낌, 중간 느낌, 마지막 느낌이 제각각 다른 그 다양한 매력 역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니 만약 겉표지만 보고 망설이고 있다면 도전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어떠한 의미로든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며, 마지막 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책이 될 거라고. 오늘 저녁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만나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p.s -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여인'이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 탓에 제목을 짓는데 꽤 고민을 했다. '그녀'라는 단어 역시 성숙미가 느껴지긴 하지만 여자아이 역시 그녀라고 할 수 있으니...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훈 작가 정도 되면 그의 팬인 사람과 팬이 아닌 사람이 뚜렷하게 나눠지기 마련이다. 전자의 경우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작품 하나 하나를 탐닉하는 골수팬이고, 후자의 경우 그의 작품을 한두 권 읽어보고 한숨을 내쉬며 손길을 딱 끊어버린 매정한 독자일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김훈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소설 <남한산성>을 통해서였다. 당시의 나는 역사소설을 읽어 앎의 정도를 넓혀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졌었고, 제법 아기자기해 보이는 연분홍 표지에 호감을 얻었었다. 덕분에 주저 없이 서점에서 빼들고 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었다. 하지만 채 한 장도 넘기지 못하고 나는 작가와 내가 잘 맞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한산성> 한 권을 다 읽기까지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나는 김훈 작가가 어려웠다.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내 친한 언니 중 한 명은 김훈 작가를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왜 김훈 작가를 좋아하냐, 고 묻자 언니는 그의 간결하면서도 굵직한 문체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훈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가 없었다. ‘이렇게 읽기가 어려운데?’ 그런 생각에 나는 <남한산성>을 다시 펼쳐들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김훈 작가의 이름이 붙은 책은 모조리 피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왔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책으로 김훈 작가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가 선정된 것이었다.

 

책을 받아들고 한숨 한 번. 손에 쥐고 한숨 두 번. 첫 장을 넘기며 한숨 세 번. 그리고 이어지는 한숨 한숨 한숨. 몇 년 만에 만나는 김훈 작가의 작품이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내게 김훈 작가의 작품은 읽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저 어렵다 느끼기만 하고 끝났던 지난날과 달리 이번에는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대체 왜 김훈 작가의 글을 어렵게 느끼는가. 처음 김훈 작가는 간결한 문체를 가졌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곧장 반박했었다. 내 눈에 김훈 작가의 글은 굉장히 아름답게 꾸미는 것으로, 지나치게 늘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언니의 표정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을 떠올렸을 때 그러한 나의 눈은 어딘가 틀린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책 <라면을 끓이며>를 보며 나는 내가 틀렸음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조금 미묘한 차이였다.

 

김훈 작가는 글을 꾸미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부풀리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그의 글은 하나의 대상을 오래도록 관조한 끝에 얻은 깨달음이었다. 어느것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고 끈질기고 섬세하며 우직하게 살펴본 끝에 내어놓은 글이 바로 김훈 작가의 글인 것이다. 그 사실이 <라면을 끓이며>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책 제목으로 쓰인 라면을 끓이는 것에 대한 오랜 연구(어느 누가 라면 끓이는 것에 대해 21페이지나 할애하겠는가!), 가오리와 가자미와 물곰국과 대게에 대한 세심한 관찰, ·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에서 머물며 행했던 깊은 관찰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작가의 손을 빌려 하나 하나 또렷하게 그려진다. 그 그림은 그 모습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도 손쉽게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다. 이것이야말로 김훈 작가 특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날의 나의 착각은 그의 섬세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을 눈에 박아 넣는 듯 한 그 느낌이 내겐 버겁게 느껴지고, 또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이번 책 <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며 나는 이 착각을 바로 잡았으며 김훈 작가의 매력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김훈 작가를 찬양(!)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김훈 작가가 어렵다면, 배신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와놓고 웬 쉰 소리냐고 따지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후자에 속하며 김훈 작가의 작품을 애써 읽으려 들거나, 자연스럽게 읽지 않는다. 김훈 작가의 매력이 내게는 별로 통하지 않는 달까, 나와는 잘 맞지 않는 달까.

 

김훈 작가는 어렵다. 하지만 이 책 <라면을 끓이며>는 좀 특별하다. 김훈 작가의 매력이 톡톡히 발산되는 작품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결론이 좀 모순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김훈 작가의 매력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라는 말 밖에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나(거의 없겠지만) 그의 진정한 매력을 잘 모르겠다는 사람에겐 다른 작품들 보다도 이 책을 먼저 읽으라고 꼭 추천해주고 싶다. 그만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될거라 호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