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학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5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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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의 흡연은 더 이상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 적을 뿐 이미 일상 속에서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만 해도 남학생들의 90%가 담배를 핀다고 소문이 났었고, 근처에 있는 초, 중학교에서 제발 교내 운동장에 들어와 담배 좀 피지 말라고 민원을 넣을 정도였다. 심지어 내 오랜 친구 중에 한 명은 가끔 함께 했던 하굣길에 자신의 흡연 사실과 담배를 구하는 경로에 대해 이야기 해 주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 네가 다닌 학교가 꼴통이었던건 아니냐고 묻는다면 크게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과연 그게 우리 학교만의 일이었을까? 내 친구 한 명만의 일이었을까?

 

이 책 <금연학교>도 한 사람의 주인공을 두고 있지만 그 속에서 흡연하는 미성년자는 제법 된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준영)뿐만이 아니라 피우는 아이들은 다 피워. 우리 반에도 몇 명 있다.”는 서라의 말에서도 흡연자의 존재가 드러난다. 그만큼 우리가 모르는 수면 아래에도 흡연을 하는 미성년자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아니 끝나고 나서도 그들 중 단 두 명, 주인공과 그 친구 밖에 알지 못한다. 금연을 굳게 결심하는 존재도 그 둘 밖에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약간 아쉽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말하자면 담배를 피우는 친구의 모습이 멋있어서 함께 담배를 피기 시작한 주인공이 시시때때로 생각나는 담배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에 휘말리다가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다는, 어쩌면 뻔 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휘말리는 문제가 과감해서 참신하게 느껴진다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읽힌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으로 작용하면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다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재미있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수면으로 떠오른 흡연하는 미성년자가 단 둘 뿐인 것, 책의 끝에 금연을 결심하는 것 역시 단 둘 뿐인 것은 이 책이 가진 한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 사람의 내면의 변화에 대해 깊이 있게 담아내고자 했다면 분명 이 이야기가 맞지만, 보다 많은 청소년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었다. 주인공이 휘말린 문제로 인해 학교에서 열린 금연 캠페인이 그저 지나쳐가는 일정정도로 느껴졌다면, 그로 인한 어떠한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면 이해가 될까. 물론 그런 캠페인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고등학생 때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느낀 바이지만 결국 주인공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개인적인 결심으로 끝났다는 것이 아쉬움을 남겼다. 차라리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금연학교를 무대로 해서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와 결심을 들을 수 있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아니면 학교 캠페인을 좀 더 집중해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결심을 들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정도에서 나아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쓰고 보니 너무 신랄하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컸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이 들려준 첫사랑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간다는 생각에 더욱 그랬다. 청소년과 성인의 이야기가 묘하게 섞이고, 주인공의 가족관계와 선생님과의 관계가 묘하게 섞이다보니 오히려 그 의미가 흐려진 듯 한 느낌이 남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 책은 별로겠군.’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흡연 스토리를 듣는 것이 나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도 있고,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공감 가는 흡연자 한 사람 정도는 만날 수도 있을 거다. 아니면 참신하고 재미있는 소설 책 한 편을 읽는 기회일 수 도 있으니 흡연에 대해 아주 약간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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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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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타고 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이 질문 앞에서 고민하고 각자 자신들만의 주장을 펼쳤다. 현재에 와서는 적당히 타협하고 둘 다라고 이야기하는게 일반적인 편이지만 정확히 50:50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지인 중 한 사람은 나쁜 일이 있거나 외모나 습관 등에 대해 지적을 당할 때면 유전자를 탓하곤 하는데 정말 가끔가다가 이렇게 자란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경우 엄마(혹은 아빠) 닮아서요.” 라는 말을 할 때가 종종 있고,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타고난 성격적 소심함을 깨닫는 경험을 했지만 사람이 자란 환경과 교육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입장이 더 강하다. 결국 사람들마다 각각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둘 다라는 같은 주장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볼 때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이미 확립되어 있는 각자의 견해를 흔들면서 무엇이 게리 길모어라는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무엇을 더 중점으로 두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문을 던진다.

 

이른바 묻지 마 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평범한 사람 둘을 총으로 쏴 죽이고 스스로는 사형을 고집해 끝내 1977년 미국에 사형제도를 부활시키며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린 게리 길모어. 그가 일으킨 그 거대한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그를 경멸하거나 존경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에 처하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취재하고 풀어낸 노먼 메일러의 <사형집행인의 노래>가 출간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접하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찾아본 바로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탓에, 그리고 그 사건이 한국에는 그리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정보가 부족한 탓에 정확한 반응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후 마침내 게리 길모어의 친동생 마이클 길모어가 혈통이라는 뿌리부터 시작해 자기 형제들에 으르기까지를 끈질기게 추적해 한 가족, 그리고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 <내 심장을 향해 쏴라>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의문과 마주하게 되었음은 확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의 뒤표지에 적형 있는 누가 이 남자를 이토록 끔찍한 괴물로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옮긴이의 후기까지 합쳐 정확히 703페이지에 달하는 책이기에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그저 단편적으로나마 말하자면 게리 길모어라는 사람은 살인의 역사를 지닌 모르몬교도의 피를 이어받았고, 폭력과 공포로 점철된 길모어라는 혈통을 온 몸으로 생생하게 느꼈으며, 끝내는 그 스스로도 그와 같음을 증명하고 말았다. 마이클 길모어는 이에 대해 파멸의 혈통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면서 영혼과 악몽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 역시 잊지 않는다. 가족 그 누구에게도 자신에 대한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아(심지어 책이 끝나고 나서도 독자는 물론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안정을 주지 못했으면서 끊임없이 폭력을 휘두르며 가족을 화풀이 대상으로, 제멋대로 굴 수 있는 대상으로 본 아버지 프랭크 길모어와 남편의 폭력에도 떠나지 않고 그 옆을 지키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끔찍한 경험을 하게 만든, 그러면서도 자신은 정상적인(이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애정을 주지 못한 베시 길모어에 대한 이야기는 그와 형제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를 알려준다.

 

책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는 단숨에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끝에 도달해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하지만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는 없다. 혈통과 환경에 대한 언급을 읽을 때 마다 떠오르는 의문은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도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의문 앞에서 나는 같은 가정 속에서 거의 같은 것을 겪으며 자라온 길모어가의 장남 프랭크2세와는 무엇이 달랐기에 한 사람만이 살인자가 되었는가에 대해 생각했으며, 방식은 다르지만 스스로를 괴롭히고 망치는 길을 향했던 그들 부모와 형제의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끝을 보지 못했고 지금 나의 솔직한 입장으로는, 모르겠다. 이 글의 시작에서 말했던 것처럼 환경에 더 중심을 두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게리 길모어와 그의 가족, 지인들이 겪은 불행을 환경으로 치부할 수 가 없다. 프랭크가 폭력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됐잖아, 라고 말하기에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았고 또 생각했다. ‘혈통의 문제로 보기에는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되는 언급이 불편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되는 것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모두 절망으로 밀어뜨리는 방식은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꼭 닮아 혈통도 환경도 모두 그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무엇이 더 중심이 된다고는 결코 말 할 수 없는 류의 것이었다.

 

사람은 타고 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침묵하고 만다. 어떤 답을 하던 나는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반발과 혼란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건 게리 길모어와 프랭크 길모어,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내게서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책의 가치로만 보았을 때, 굉장히 훌륭한 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을 추천할만한 대상은 도저히 떠올릴 수 가 없다. 인간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 사형을 포함한 여러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의문을 가지고 싶은 사람? 잘 모르겠다. 내가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웬만한 영화보다 더욱 흥미진진하다는 것, 그러나 가볍게 보고 넘길 수 있는 액션물이 아니라는 것 정도이다. 이미 책 두께에서부터 망설여질 테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한 번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 한 가문, 그리고 한 세상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스스로 생각하고 겪어보기 전에는 모를 테니까. 그만큼 압도적이고 생생하며 거대한 이야기였다.

 

 

 

 

 

*알라딘 공식 신간편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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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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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 책을 읽더라도, 영화나 그림을 감상하더라도, 사람을 만나더라도, 대화를 하더라도, 하다못해 길에 서있는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건물 한 채를 보더라도 딱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예를 들자면 경복궁에 나들이를 가더라도 경복궁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경복궁은 그저 옛날에 지은 오래된 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사실을 경험을 통해 수없이 많이 깨닫고 되새기면서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인지하고 솔직해지게 됐다. 그래야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우고 또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역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솔직하게 이 책이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를 보는 동안 이러한 생각,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작가의 여정은 그 누군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함께하기에는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한 인물에 대한 전기가 아니기에 단편적일 수밖에 없는 정보와 한 번 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쉽게 그려지지 않는 장소의 만남은 서로를 보완하기보다 오히려 흐트러트렸다. 번번이 글의 흐름을 놓쳤고 장면 장면이 뚝뚝 끊어졌다. 특히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묘지에서의 이야기는 나를 체념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건 종이요 검은건 글씨니, 나는 일단 글을 읽고 있긴 하구나, 하는 상태가 된 나는 이 책을 일단 덮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나는 책갈피도 빼버린채 책을 덮어버린 후 일단 짧게나마 각각의 인물에 대해 찾아보았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유명해졌는지에 대해 간단하지만 확실하게 알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책을 펼쳐들었다. 그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아예 처음 보는 책처럼 신기하면서도 마음이 끌리는 부분이 잔뜩 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문장을 옮기기도 하면서 두 번째 독서를 이어나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여느 여행 에세이들을 볼 때면 으레 그런 것처럼 나도 그 장소에 가보고 싶다는 욕구도 가지게 되었고, 그 장소를 머리로라도 방문하고자 노력해 보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어릴 적부터 달이 궁금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망원경으로는 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선배의 이야기도, 물을 무서워하는 강아지에게 괜한 두려움이라는걸 인식시키는 훈련을 하는 밀다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아 내가 이 책에 애정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아는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그만큼 여유가 생긴 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책에 대해 보지 못한 것이 본 것 보다 더 많다. 그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푸시킨의 시를 곱씹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탐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박과 고흐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아는 사람의 자취를 따라가는 정도로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세 번째 독서를 시도하면 나는 또 어떤 것을 볼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도 더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읽는 이에 따라 보고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다를 거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읽으라고, 재미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저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자신이 볼 수 있는 하늘을 넓히기 위해 끝없이 우물 안에서 뛰어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옆에 두기를 추천하고 싶을 뿐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실히 하고 그에 대해 솔직해지기만 한다면 이 책은 매 순간 다른 매력을 뿜어내며 한 사람의 세상을 바꿔놓을 것이다. 사람을 나아가게 만드는 책이 얼마나 값진것인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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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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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나는 이 책에 대해 말할 자신이 없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그것은 나의 멍청함과 부족함을 떠벌리는 짓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역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부재가 이토록 무겁고 강렬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사실이 나를 짓눌렀고, 나는 몇 번이고 이 책을 덮을까 고민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들이 반복되고 그에 대한 생각, 마음, 기억들이 끊임없이 뒤바뀌며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이 무질서하게 제 존재를 드러냈지만 나는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그 속에 가득했지만 온전히 받아낼 수 가 없었다.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확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은 소련의 몰락이었다. 그걸 인정했을 때의 실망감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컨드 핸드 타임>은 한 나라와 사상과 체제의 몰락이라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명료한 사실 속에 상상도 못할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음을 이야기한다. 자유와 승리, 해방이라는 빛나는 단어들 밑에 숨겨져 있던 누군가의 절망도, 우리와 국가, 동지라는 든든한 단어들 밑에 숨겨져 있던 누군가의 절규도 모두 더하거나 빼지 않고 담아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빛나는 단어들을 두 손 가득 담아 치켜세운 채 미소 짓는 이들의 이야기도, 든든한 단어들을 온몸에 새겨 넣은 채 가슴을 활짝 핀 이들의 이야기도 책 안에 가득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국가), 같은 이념 속에서 살다가 같은 변화를 맞이한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다르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아니, 믿기지 않다고 생각하는 스스로가 더 놀라울 지경이다. 이 책 앞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지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자유변화를 보는 관점. 책임이 뒤따른다, 정도가 있다 등의 전제가 붙긴 하지만 우리가 자유를 보는 시각은 긍정적을 넘어 우호적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이를 침해하는 것은 악 그 자체로 본다. 하지만 자유를 비판하고 거부하고 경멸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을 무지하고 가엾은 이로 치부하지만 그들에겐 그들만의 지식과 이해와 신념과 경험이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기억해야만 한다.

 

읽기도 전에 겁부터 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절대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세컨드 핸드 타임>과 같은 거대한 이야기는 읽는 사람에 따라, 또 시기에 따라 다른 것을 보여준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깨닫고 얻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었을 때, 그리고 또 다시 읽었을 때 내가 알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를 것이다. 지금의 깨달음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더 큰 무언가를 얻을 수 도 있을 것임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러니 언제 어느 때고 이 책을 읽기를, 나처럼 스스로에게 실망하더라도 이 책을 덮지 말기를, 그리고 계속해서 읽고 또 읽기를 당부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무언가를 주는 책이야 말로 정말 좋은 책이라는걸 나는 이 책을 앞세워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마저도 이 책 한 권으로 인해 여러 가지 것들과 더불어 독서의 즐거움까지 깨닫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정도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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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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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츠비라는 남자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위대한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미련한 인간이었다. 여자에 의해 파멸을 맞은 남자의 이야기는 이전에도 제법 많은 책에서 봐왔었고(특히 영웅이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다들 제 힘으로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여자의 매력이 문제인지 남자의 순진함이 문제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혀를 찼을 뿐이었다. 개츠비 역시 별 다를 바 없어 나는 진짜 개츠비, 그러니까 피츠제럴드의 개츠비를 만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어린이용 만화책으로 끝을 맺었었다. 그게 <위대한 개츠비>와 나의 첫 만남이었고,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나왔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개츠비를 만나보고자 마음먹었었다. 내가 존경하는 지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를, 명저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어릴 때의 기억이 워낙 크게 남아있던지라 원작을 읽을 정성까지는 없었고, 영화가 개봉한 김에 겸사겸사,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렇게 혼자 조조영화로 <위대한 개츠비>를 보았다. 결론은 대실패, 대실망이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내게는 화려하다, 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은 영화였다. 만화와 더불어 평하자면, 영웅담으로 치기엔 보잘 것 없었고, 성공담으로 보기엔 그 과정이 너무 빈약했다. 더 이상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하며 피츠제럴드라는 사람 자체를 저 멀리 밀어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난 어느날. 나는 <위대한 개츠비>와 피츠제럴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숨만 나왔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래. 대체 어떤 점이 얼마나 좋은지 나도 좀 알자!’라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그리고 피츠제럴드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과 다시 한 번 마주했다. 아마 알라딘 신간평가단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만남이었다.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말하자면, 나의 패배였다(패배라는 말이 좀 우습긴 하지만). 지금 당장 이 리뷰를 그만두고 서점에 가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구매 해 읽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개츠비에 담겨 있는 피츠제럴드의 이야기, 개츠비 속에 담겨 있는 상징, 피츠제럴드의 삶, 개츠비와 피츠제럴드의 위대함여기에 작가의 이야기까지 섞여 제법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책 자체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하자면 한 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하는 탓에 정신이 없고, 반복되는 이야기도 좀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들은 뿌리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은 개츠비에 대한 인상을 바꿔놓을 정도로 대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삶이 주인공의 삶을, 주인공의 삶이 작가의 삶을 이해하고 느끼고 공감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닮은 듯 다른 두 존재는 한 명만 있었다면 주지 못할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함부로 불행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피츠제럴드의 삶과 개츠비의 삶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을 그들이 위대한 이유를 몇 개 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위대한 개츠비>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한 가득이다. 개츠비를, 피츠제럴드를 나 스스로 만나고 느끼고 알고 싶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리뷰가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에 대한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이 책 덕분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에서 이 책은 제 할 일을 확실히 했다. 이처럼 분명하고 굉장한 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좀 더 깊이 있는, 제대로 된 만남을 원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피츠제럴드와 개츠비의 매력을 모르겠다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물론, 한편의 위대한 작품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주는 멋진 책이 바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이다. 그 덕을 톡톡히 본 한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이 책을 읽는 그 순간 피츠제럴드와 개츠비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진정한 독자 한 사람을 만나는게 작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그리고 하나의 작품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또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확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나의 경우, 작가의 경우 모두!), 이 책 한 권으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것이다.

 

 

P.S-너무 긴 제목은 좋지 않아 "애정의 연쇄작용"으로 확 줄였지만, 진짜 제목은 "작품에서 작품으로, 인물에서 인물로, 독자에서 독자로 이어지는 애정의 연쇄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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