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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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장-대개 출판사와 출판일등의 정보가 있는-을 넘기고 나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아쉽다' 혹은 ', 끝났다'라고. 쉽게 말해 감탄하거나 실망하거나다. 드물게 '이게 뭐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와 같은 반응을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도 정확히 말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이 책 <디어 랄프 로렌>을 읽었을 때의 첫 반응은 실망이었다. ‘이게 뭐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가 책을 덮음과 함께 든 생각이었다. ‘랄프 로렌이라는 인물의 일생을 뒤쫓는 이야기의 흐름은 나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가고 있을 정도로 매끄럽지만 그 속에 남은 의문들이 가득했다. 이야기 속에서 압도적인 분량을 차지하는 랄프 로렌중에 주인공이 누구인지, 작가가 누구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랄프 로렌의 일생을 뒤쫓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 삶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 뒤로도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표의 향연은 최악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뷰를 쓸 수 있게 만든 어떤 힘이 이 책에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심지어 랄프 로렌이라는 인물의 실재여부와 이게 소설인지 수필인지조차 모호한 책이고,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아직까지도 찾지 못한-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어려운 책이지만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건 오직 이 책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으로, 나는 텅 빈매력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이 책은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글로 가득 차 있다. 장장 352 페이지가 글로 빼곡하다. 이야기도 존재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별다른 반항 없이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엘리트의 길만 걸어왔던 가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던 미국의 한 대학원에서 교수의 통보에 가까운 권유로 길에서 벗어나 헤매는 이야기, 그리고 그런 가 뒤쫓으며 하나씩 밝혀지는 랄프 로렌의 일생.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면 의 삶은 점점 알 수 없는 길로 사라져버리고 랄프 로렌의 삶은 다 드러난 듯 드러나지 않는다. ‘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랄프 로렌은 죽었다는 것 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야기가 있는데 이야기가 없는 느낌. 그야말로 텅 빈 느낌이다.

 

그저 책 한 권으로 시작해서 그 한 권으로 끝나버리는 책이 어디에 또 있을까. 이 책은 내게 어떠한 울림도 여운도 남기지 못했다. 정말 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그게 이 책의 매력이자 신기한 점이었다. 목적지도 방향도 없이 나아가는 느낌. 책은 끝났지만 사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느낌. 그 텅 빈 느낌이 이 책을 가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라 누군가에게 이 책은 이래!”라고 말할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

 

소설과 수필, 전기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정도로 담담하면서, 의심하면서도 순순히 그 뒤를 따르게 할 정도로 매끄러운 글은 손보미라는 작가에게 감탄과 존경을 보내게 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있지만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텅 빈 느낌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던 그녀에게 경외의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허나 완벽한 책이었다거나 좋은 책이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곱씹어 생각해보기 전에 느꼈던 실망감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이런 책과 이런 작가가 있고 이런 매력도 있다고, 그러니 한 번 읽어보라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또 할 수 있는 말이다.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당신도 한 번 느껴보기를.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고 싶다는 것이 지금의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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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있는 녀석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9
양호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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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또래를 보며 감탄했었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일을 하고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 멋져보였기 때문이었다.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적극성과 능동성에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몇 번 부모님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쓸데없는 짓 할 거면 공부나 해.”

 

당시에는 굉장히 기분 나빠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약 그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 알바들처럼 최저임금 미달, 임금 체불, 부당해고, 성희롱 등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친 비약 같지만 이게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 책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은 그런 청소년 알바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문제들-최저임금 미달, 임금 체불, 부당해고 외에도 초과노동에 대한 임금 미지불과 같은 문제들이 내용 전반에 걸쳐 보여 진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거창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지는데, 전혀 아니다. 사실 이 책은 17살이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강후의 성장담에 더 가깝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게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강아지를 사주지 않자 자기가 직접 돈을 벌어 강아지를 사겠다며 알바를 시작한 강후. 자신이 이사해서 살고 있는 집보다 더 작은 평수에 사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여자를 얕잡아보는 등 철이 없다 못해 보고 있으면 짜증나기까지 하는 존재가 바로 그다. 그런 그가 근처에서 일하는 알바생 두범, 은림, 보라와 친해지고 그들과 함께하면서, 또 알바를 하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점점 변하게 된다. 눈에 띌 만큼 엄청난 변화는 아니지만 아주 조금씩이나마 변해가는 그의 모습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청소년 알바의 문제를 접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마지막에 강후와 친구들에게 일어난 거대한 사건을 집어넣음으로서 이 책을 그저 이야기로만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기까지 한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주제의 부족함은 이야기가 채우고 이야기의 부족함은 주제가 채우는 글이다. 주제로 인한 딱딱한 느낌을 톡톡 튀는 인물과 이야기가 해소시킨다. 톡톡 튀는 것이 너무 지나쳐 가끔 거부감을 일으키는 인물과 이야기는 명확하고 따뜻한 주제가 완화시킨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알바 청소년들을 격려 응원코자 이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과 같은 입장에 처한 이들이 이 글을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쓴 글처럼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노력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제법 괜찮은 책이라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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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입술이 낯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8
박상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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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빗줄기가 약해졌다가 강해지며 종일 퍼붓는다. 불빛으로도 다 몰아내지 못한 어둠 속에서 나는 가만히 숨죽인다. 한없이 가라앉은 기분. 공간 속에 갇힌 나는 유리창 너머를 내다본다. 빗줄기가 국수 가락이나 되듯이 하나, , ……, 세어 나간다. 하지만 스물일곱, 아니 스물다섯도 채 세지 못하고 멈춰서고 만다.

 

<저 입술이 낯익다>의 주인공은 정확히 스물일곱 줄기를 센다. 현재 자신의 나이,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자신이 견디어낸 세월 속에 갇혀 물러서지도 나아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책 첫 페이지에서부터 스스로를 자신의 반지하 방 어둠에 묻어두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세상이란 딱 그 정도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에 이 책은 굉장히 좁은 시각만을 보여준다. 불친절하고 어렵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러 가고 또 만나면서도 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1, 2, 3이라고 부른다. 책 어디에도 그들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짧은치마의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게다가 그 모두는 상대방의 이해정도는 고려하지 않은 채 각자 자기 할 말만을 늘어놓는다. 주인공이 모두들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내뱉는다고 말한 것처럼, 심지어 주인공 그 자신마저도 똑같이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내뱉는다.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거나 공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오는 대로 떠들어대는 모양이다.

 

내가 이 이야기의 끝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이 한 권의 책이라는 형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는 이 책을, 그를 알 수가 없었다. 한권의 책을 다 읽고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감정을 어렴풋하게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걸음을 따라 친구들과의 만남, 버스에서의 인연, 목우암에서의 재회 등을 함께 하지만 그의 시선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을 풀어내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주인공이 불친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책을 읽은 사람이 나 여서일지 모른다. 나에게 세상은 딱 그 정도이고, 나의 시각은 딱 그 정도만큼 좁기 때문이다. 그가 스물일곱 줄기까지밖에 세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스물일곱 줄기조차 세지 못하는 사람임으로. 그리고 그가 센 줄기와 내가 센 줄기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것임으로.

 

결국 내가 이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정말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둠 속을 유영하던 스물일곱의 청년이 제 속에 숨어있던 빛을 찾는 이야기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책의 마지막 줄인 비 개인 봄날 저녁이었다.”라는 문장이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역시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고 볼 수 있는 만큼 보일 거라는 것. 그러니 이 책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면 꼭 직접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서로가 보는 세상을 통해 좀 더 시각이 넓어진다면 함께, 보다 아름다운 비 개인 봄날 저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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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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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을 읽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재미있게 보면서도 선뜻 손을 대지 않는 탓이다. 그 이유는 굉장히 명확하다. 어릴 적, 추리소설을 읽는다고 하면 에게? 겨우 그거?’라며 얕잡아보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순수문학만을 작품이라고 인식한다. 추리, 연애, 판타지, 무협, 호러 등의 장르물은 제대로 된 책으로 취급해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순수문학이란게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하지도 않건만 장르물에 대한 구분만은 선명해서 한없이 가볍게 바라본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장르물을 읽고 있으면 그런 거나 보고 있다며 꼭 한 소리를 들었다. 일반소설(솔직히 이것에 대한 설명도 명확하지 못하다)을 읽는 것도 공부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시간을 허비한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에야 그러는 당신은 무엇을 얼마나 읽느냐고 큰소리치거나 장르물 각각의 매력에 대해 떠들어댈 자신이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기가 죽어 책을 덮어버렸었다. 그리고 판타지나 추리, 연애소설 같이 어른들이 입을 대는 것들은 의식적으로 멀리했다. 그게 습관이 되어버린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손이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뭐 이런 이유로 간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집 <수한 사람들>은 제법 재미있었다. 이 책은 여타의 추리소설이 주는 긴장감과 반전에서 오는 소름끼침과는 조금 다른 즐거움을 가지고 있었다. “우와!”라는 감탄보다 아하!”라는 감탄을 부르는 이야기라면 이해가 될까. 그 속에 있는 것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괴담이 아니라 끝내는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현실이었다.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다시 한 번 돌아보며 곱씹게 만드는 은근한 요소들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이 깊게 다가와 훅 빠져들게 만듦으로서 작가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어떠한 판타지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작품이지만 나는 그 색다른 매력이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완벽하게 마무리 되어 꽉 찬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편소설을 주로 출판하는 작가의 단편소설집은 그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작품들은 대개 이야기를 시작해두고서는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독자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거나 허탈하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들어있는 작품들은 장편소설 못지않은, 오히려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은 내가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작가의 능력 중에 하나다.

 

대부분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을 고르라고 하면 <달콤해야 하는데><등대에서>이다. 하나는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이 절절하게 이해되어 안타까웠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한 방을 주었던 것이다. 물론 이 둘 외의 다른 작품들도 각자의 장점이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하나하나 얘기해 달라고 하면 얘기하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이상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기기 위해 나의 감상은 여기까지. 가볍니 어쩌니 말해도 이런 장르물의 진정한 매력은 한 번이라도 직접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잠들기 전에 혹은 혼자만의 시간에 한 장씩 야금야금 읽어가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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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까리, 전학생, 쭈쭈바, 로댕, 신가리 - 제5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7
신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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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약한 부분을 마주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아마 아는 사람만이 알 것이다. 직접 맞닥뜨리지 않는다면 그 괴롭고 자기비하적인 고뇌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 <따까리, 전학생, 쭈쭈바, 로댕, 신가리>의 화자 따까리의 심정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겁쟁이라서 수없이 많은 순간에 도망과 외면을 선택했었다. 따까리처럼 누군가의 따까리가 된 적은 없지만, 부탁을 빙자한 심부름을 하며 친구를 돕는다고 되뇐 적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부당한 일을 당 할 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라며 눈을 내리깔았고, 당당하게 맞서야 할 때 상대 해 봤자지. 그냥 무시하자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는게 이기는 것이라는 정신승리도 저 어린 것. 이라는 여유로움도 수십 번이었다. 그 속에 숨겨져있는 진실은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외면했던 따까리는 끝끝내 도망치고 말았던 나와는 달리 한 걸음을 내딛었다. 가장 중요한 때에 한 번 도망쳤지만, 다시 돌아와 주먹을 쥐어보였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에 의해 억지로 맞섰지만,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의 의지로 서있었다. 누명을 씌우고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자들에게 대응했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폭력 앞에서 맞받아쳤다.

 

함께하는 친구가 있어서, ‘우리였기 때문에, 라는건 그러지 못했던 나의 핑계에 불과하다. 나도 나의 약한 부분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약하고 용기가 없는지, 얼마나 안일하고 바보 같았는지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이게 전부인걸.’이라는 생각뿐이었던 시기를 지나 내가 하지 않은 거야. 못한게 아니라.’라는 인정과 반성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나는 따까리처럼 맞서지 못했다. ‘겁쟁이여서 그래라는 말이 새로운 내 방패가 되고 말았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하지 못할 거야라는게 내 생각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강한 자기비하의 늪에 빠져들어 있을 뿐이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부족하다. 따까리도 전학생도 쭈쭈바도 로댕도 신가리도. 심지어 권력의 중심인 까마귀도 피제이도 담임도 모두. 하지만 이들 중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앞의 5명은 다른 이들과 달리 그 자리에 멈춰서는 대신 한 걸음 나아간다. 비권력자 무리인 이들의 부족한 부분인 약함을 마주하고 힘을 낸다. 질걸 알면서도 맞서 싸워우고 끝내는 시원하게 깨져버리는 그들의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멋지게 느껴지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나와 같았던 이들이 나는 하지 못했던,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해내는 모습은 마음 깊숙이까지 들어온다.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 아래에 비현실적인 인물들과 허무한 결말이 자연스럽게 맞물리지 못하는 것만 제외하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내게는 두려움에 대해, 또 용기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스울 정도로 부족하지만 한 걸음을 내딛은 따까리와 친구들을 보며 나 역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만큼 나도 바뀔 수 있기를. 그 힘겨움만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까지 알고 다른 이들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위안과 용기를 모두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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