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10 (제3판 개역본, 17장)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제 견해는 사랑도 느끼게 하고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돌 다 얻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저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에 덜 주저합니다.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을 피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과 두려움은 설득력과 무력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시민과 신민들의 재산과 그들의 부녀자들에게 손을 대는 일" 을 삼가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그들의 이익을 박탈하면 미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세금을 냅니다.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나의 재산을 가져가는 일입니다.
조세정책은 미묘한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P311 무엇보다도 그는 타인의 재산에 손을 대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P312 (제3판 개역본, 19장)
군주가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제가 말한대로, 탐욕적이어서 신민들의 재산과 부녀자를 강탈하는 것입니다.
이런 짓만은 피해야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재산과 명예를 빼앗기지 않으면 만족해서 살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예"는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을 짓밟는 것은 군주가 오만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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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3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새로운 군주가 갖춰야 할 미덕은 "무력"과 "설득력"입니다.
무력과 설득력을 합하면 ‘헤게모니’입니다.
즉 새로운 군주는 헤게모니를 잡아야 합니다.
새로운 군주는 사자이면서 동시에 여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력이 지나치면 ‘오만’해지고, 설득력에만 의지하면 ‘무기력’해집니다.
대중은 오만한 군주를 미워하고, 무기력한 군주를 경멸합니다.
무력과 설득력 뒤에 놓여 있는 그림자가 미움과 경멸입니다.

P304 현대의 상황에서는 무력과 설득력을 각각 실력과 온화함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겠습니다.
리더십은 실력과 온화함이 있을 때 발휘됩니다.

P305 한번 경멸과 미움을 받으면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P306 (제3판 개역본, 제 15장)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와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보다는 잃기가 십상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P307 고대의 저술가들이 ‘인간이 어떻게 살야야 했는가’에 대해 얘기했다면, 마키아벨리 자신은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P309 인민을 대할 때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인심이 후해야 하고, 때로는 인색하게 굴어야 한다는 겁니다.
도덕적인 의미의 선과 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는냐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비난’과 ‘미움을 구별합니다.
비난은 이성으로 하는 것이고, 미움은 감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돌아서면 누군가 옳은 말을 해도 여전히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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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6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제도적인 물리력과 이데올로기적인 설득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만이 군주가 될 수 있습니다.
<군주론>을 읽을 때는 마키아벨리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방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P278 사유의 틀로서의 근대를 구성하는 요소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정치적 측면에서는 통일국민국가, 둘째 경제적 측면에서는 자본제적 생산양식, 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적 조직원리로서의 개인주의입니다.

P279 절대왕정을 때표하는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는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혁명을 일으키고 결국 부르주아는 루이 16세를 처형함으로써 주인 자리를 차지합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혁명이 끝나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가난한 사람들도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겠다고 들고 일어섰습니다.
이것이 바로 19세기에 발생한 프로레탈리아 혁명입니다.
(1848년, 1871년)

P281 신의 은총을 향해 가는 단테의 <신곡>과는 달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신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하고 살던 사람들이 세속화된 세계에서 살게 되면 신을 대신해서 믿을 수 있는 어떤 기준이나 규범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있어야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 때 세속화된 근대인들은 고대 희랍과 로마의 기준과 규범을 다시 찾아보게 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학파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르네상스 인문주의입니다.
이탈리아의 갈릴레이 (1564 ~ 1642), 프랑스의 데카르트 (1596 ~ 1650), 잉글랜드의 뉴턴 (1643 ~ 1727) 등이 자연과학적 방법이라는 맥락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입니다.
세속화와 인문주의, 자연과학적 방법, 이 세가지는 이처럼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P282 <군주론>에서 군주는 왕위를 물려받지 않습니다.
그는 운명 (fortuna) 이 아닌 자신의 역량에만 의존합니다.

P289 고대 세계의 플라톤은 통치자가 지혜(Sophia) 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근대 세계의 마키아 벨리는 통치자가 기개(thumos)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근대 세계의 정치가는 지혜가 아니라 힘과 기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P291 자신에게 무자비한 사람은 결단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자비하게 결단해서 자기 갈길을 가는 사람이 진짜 ‘센놈’입니다.
자기에게 무자비한 사람은 남에게 관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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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8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려면 경제적인 원인들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P270 흑사병(14~17세기)의 창궐은 인구감소와 농업쇠퇴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밑바탕에 놓인 것은 물질세계입니다.
인구는 얼마나 되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즉 경제적.환경적 조건이 이것입니다.
14세기에 일어난 흑사병이 기존의 유럽사회를 무너뜨리고 나아가 정치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듯이 출산율 저하 역시 한국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P271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력과 설득력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도덕을 무시해도 좋다고 주장합니다.

P275 무력(물리력)과 설득력의 경계가 모호하여 그것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군주의 ‘역량’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이 <군주론>의 요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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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9 연옥편 제 27곡에서 ‘의지’가 완성되었고, 천국편 제 31곡에서 ‘지혜’가 완성되었습니다.
의지의 완성이 베르길리우스의 덕분이었다면 지헤의 완성은 베아트리체의 가르침을 통해서였습니다.

P252 베르나르두스의 말은 신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연옥까지만 올 수 있었습니다.

P261 마키아벨리 (1469 ~ 1527)

P265 마키아벨리의 시대를 이해하자면 이처럼 세계적 관점, 세계사적 관점을 가지려 해야 합니다.
이베리아 반도는 통일되어 있었고 이탈리아반도는 분열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출발점입니다.
그의 가장 기본적인 관심사는 이탈리아의 통일이었습니다.
그의 <군주론>의 직접적인 목적은 바로 이 일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P268 중세 봉건적 질서가 붕괴했고 왕권강화가 이어졌습니다.
왕과 상업부르주아 계급이 결합했고 이에 맞서던 귀족들이 무너지면서 절대왕정 국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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