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자주 입에 오르는 '아직 교복도 안 입어본 것이~' 라는 말이 있다. 뭔 소리냐면, 이제 교복을 벗게 된 큰딸이 막 중학교에 입학할 막내를 기죽일때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여러가지 뉘앙스를 담고 있다. '감히 언니랑 맞먹으러 들어?'라는 의미부터, '넌 세상을 알려면 아직 멀었어!'까지.^^

대부분 그렇듯 맏이들은 태생적으로 착하기도 하지만, 환경적으로 착함을 강요받기도 한다. 우리 큰딸은 어려서부터 말이 통하는 아이여서 까탈을 부리거나 막무가내로 떼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요런 아이라면 열이라도 키우겠다'고 주변에서도 많이 칭찬한 아이였다. 그래서 겁없이 둘째와 셋째까지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둘째부터 심상치 않은 고집을 발견했고, 그걸 꺾으려면 애 잡을 것 같아서 엄마가 일보 후퇴한 쓰라린 기억이 있다. 이에 한 술 더 떠 셋째는, 세살 때 무얼 사 달라고 길에 누워 박박 울기도 했다. 그 황당함이라니~~ 헐!

내가, 길바닥에 엎어져 떼쓰는 아이를 키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래서 애 셋을 키우고 보니, 남의 자식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자식이 어떤 녀석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ㅎㅎ 그런 떼장이던 셋째가 세살 때 발바닥 몇차례 맞은 것 외엔, 아직까지 크게 엄마 맘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 셋째나 되다 보니 스스로 생존의 법칙을 일찍 터득한지라, 언니 오빠에게 삐쳤다가도 먼저 사과하며 사랑받게 처신한다. 지금도 아빠나 언니 오빠 때문에 엄마가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잠자리 들기 전에 살짝 다가와 엄마의 맘을 토닥여 주거나 위로의 메일을 보내는 딸이다. 역시 '제 귀염 제가 받는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사랑스런 셋째다.

이런 분위기라 자연스레 엄마의 관대함을 적용받는 딸이다. 셋까지 키우면서 엄마가 귀찮거나 심드렁해져서 대충하게 되는 일도 많은데, 특히 방학숙제 같은 과제물이나 아이들 행동거지에 대한 엄격한 엄마의 잣대가 느슨해지게 된다. 이런 걸 발견했을 때 첫째와 둘째의 반응은 경악하다 못해 엄청 억울해 한다. '우리한텐 엄마가 저렇게 안 했는데...' 구시렁거리거나, 때론 실실 웃으며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리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셋째는 엄마 모시고 산다 했잖아!' 라고 응수하면, "누나, 엄마는 지존이야. 감히 따지러 들지 마!" 하는 아들녀석은 누나와 완전 짝짜꿍이다.

그렇다고 셋째를 따돌리거나 구박하는 건 아니다. 셋이 아주 죽이 맞아 수다도 잘 떨고 별별 놀이를 다 하며 삼남매 놀이터를 연출한다. "엄마가 셋 낳기를 잘했지? 너흰 엄마한테 감사해야 해. 역시 나의 탁월한 선택이었어!"라며 본연의 잘난 척쟁이 엄마로 돌아가준다. "으~~ 엄마의 저 잘난 척을 언제까지 들어야 해. 엄마는 뭐든지 너무 당당해서 웃기는 거 알어?" 라면서 총 공격의 속사포를 퍼부어댄다. 흐흐~ 그래도 셋 낳은 건 탁월한 선택이다! ^^

나의 고질병인 삼천포행은 이쯤에서 접어두자. 쓰잘데없이 삼천포로 빠져 주절거리다 내가 뭘 쓸려고 이 말을 시작했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 그렇지, 어제 큰딸 졸업식에서 본 '밀가루 교복' 얘기를 하려던 거였구나~ ㅎㅎㅎ 잠도 안 자고 페이퍼 끼적이면서 주제와 너무 동떨어지는 얘기를 쓰고 있다니, 정말 한심한 엄마 되시겠다. 크~~~~ 그래도 우선 사진부터 보시와용!
교실에서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졸업식장으로 가는 여학생들을 복도에서 만났다. 가만히 뒤따라 가며 한 방 찍을까 망설이는데, 계단 거울에서 모습을 비춰보는 여학생들이 귀여워 말을 붙였다.

 "앞으론 입고 싶어도 못 입을 교복인데, 아줌마가 사진 하나 찍어도 될까?"  "예, 오늘이 마지막이죠. 사진 찍으셔도 돼요."

작년엔 수상자를 제외한 졸업생 거의가 사복을 입고 왔는데 보기 안 좋았다고, 이번 졸업생들은 스스로 교복을 입자며 문자를 보내고 분위기를 띄웠단다. 그래서인지 남학생이나 여학생 극소수를 제외하곤 다 교복을 입었고, 밀가루를 뒤집어 쓴 학생도 몇 없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밖에서 밀가루가 날렸으니 그 후엔 좀 늘었겠지만. 아이들도 자율의 맛을 보면 타율이 좋았다는 걸 깨닫게 되나 보다. 사실 에너지 넘치는 10대의 청춘을 교복으로 구속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닐까 생각들때도 있지만, 그 시절이 지나고 보면 돌이킬래도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그래서 우리 딸도 교복을 입은 전신을 한 컷 찍었다.

교복 얘기하니까 생각나는데, 우리 딸은 초등 5학년까지 손톱 발톱 깎아 준 엄마 때문에 스스로 못하는 일이 많다. 그중에 끈 묶는 것을 진짜 못해서 중학교까지 운동화 끈이 풀어지면, 친구들이 다시 묶어줘서 신고 다녔단다. 헐~~ 그 얘기를 고등학교 교복 셔츠에 묶인 끈을 보면서 고백했다. 아침마다 현관에서 셔츠의 끈을 묶어주는 엄마한테 엄청 구박받으며 끈 묶는 걸 배워야 했다. 졸업식에 신었던 캔버스화도 남동생이 끈을 묶어주었단다. 내가 못 살아~ 그래서 기념으로 한 컷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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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아무래도 '엄마의 시행착오' 작품이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덕분에 막내는 유치원때부터 과일 깎는 걸 언니 오빠랑 배웠고, 초등 1학년부터는 실내화도 빨았다. 이러니 나의 사랑받는 셋째가 될 수밖에 없었다. ^^

'아직 교복도 안 입어본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도, 언니 오빠랑 대화가 통하며 언니보다 스스로 할 줄 아는게 많으니 눈높이는 맞는 듯하다. 그래도 막내여서 새것보다는 물려받는 게 많은데도 투정하거나 불만이 없다. 그게 또 짠해서 새로 뭘 사준다면 그저 황송한 듯 고맙게 여긴다. 졸업식에 줄 꽃다발도 언니에게 줬던 사탕부케를 재활용한대도 좋댄다. 사실 요 사탕부케는 2년 전 아들 졸업식에 생화를 넣어 만들었던 건데, 큰딸은 꽃은 넣지 말라해서 예쁜 사탕만 사다 다시 조립했다. 나는 좀 미안스럽고 초라해 보이던데, 딸아이는 어떤 꽃다발보다 돋보였고 엄마가 만들었다니 친구들이 부러워했다면서 뿌듯해했다. 막내 졸업식에는 사탕을 새로 추가하고 테두리는 동글동글하게 바꿔서 조립할 예정이다. 교문앞에서 팔던 꽃다발은 꽃 몇송이에 13,000원부터 받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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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직 교복도 안 입어본' 막내지만 마음 씀씀이는 언니 오빠와 같은 혹은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셋을 낳으니 막내는 무엇이든 언니 오빠의 어깨넘어 학교에서 저절로 배우고 터득한다. 자아~~ 그러니, 아직 셋째를 망설이는 분이나 혹은 미혼이신 선남선녀들은 셋째 낳기를 겁내지 마시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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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2-14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거걱 흐뭇하게 보다가 마지막 한 줄에 부랴부랴 도망가려구요. ㅎㅎㅎ

순오기 2008-02-14 09:05   좋아요 0 | URL
헤헤헤~ 조선인님은 아직 해람이가 어리니까 이런 부담 안 가져도 돼요!^^
그럼 해람이가 더 크면 부담을 팍팍~~~ 느끼라는 멘트일까?ㅋㅋ~~

뽀송이 2008-02-1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 졸업 무지무지 축하드립니다.^^
참 예쁘군요.^^ 머리에 공 좀 들였겠어요.^.~
사탕부케도 먹고 싶어요.^^;;
저렇게 예쁜 얼굴로 아가들 사랑하는 멋진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대가서도 열심히 잘 하리라 기대됩니다.^^

순오기 2008-02-14 09:56   좋아요 0 | URL
ㅋㅋ머리에 공들인 게 보이나요?
졸업식 전날 머리 자른다고 저녁때 쯤 나가더니 허걱~ 파머를 하고 왔어요. 애들 전부 다해서 자기만 쪽 팔린다나 뭐라나~~~ 요새 애들은 내 딸부터 못 말려요, 못말려!

2008-02-14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4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뽀송이 2008-02-14 20:04   좋아요 0 | URL
^________________^
행복한 저녁시간 되시와요.(^^)(__)

행복희망꿈 2008-02-14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 따님 졸업을 축하드려요.
저는 교복을 입어보지 않고 학교을 다녀서 그런지, 교복도 나름 좋아보여요.
요즘 아이들은 많이 싫어하는것 같지만 말이죠.
직접 만드신 꽃다발(사탕다발) 정말 이쁜데요. 정성도 담겨있구요.
따님의 앞으로의 새로운 출발에 행복이 가득 하길 기원합니다.

순오기 2008-02-14 17:33   좋아요 0 | URL
헤헤~ 아침 일찍 방문하셨네요. ^^
꿈님은 교복 안 입은 세대구나~ 나름 자유로움도 있었겠지만 아쉬움도 있을 듯하네요. 뭐든 못 해본 거 다 아쉽겠지만...
사탕부케나 꽃다발도 이젠 만들기 귀찮아서 대충 쉽게 해버려요~ 이게 나이 먹는건가 봐요!ㅠㅠ

해적오리 2008-02-14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퍼의 제목은 저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네요. ^^
따님 졸업 축하드립니다.
엄마랑 따님이랑 정말 많이 닮으셨네요.
가끔 이렇게 사진을 올려주시는 분들을 보면 제 사진도 함 올려볼까 하다가...유혹만 받고 맙니다. ^^

순오기 2008-02-14 10:23   좋아요 0 | URL
ㅎㅎ닮았나요? 우리 딸은 자기가 외모는 아빠 닮고, 성질은 엄마 닮았다던데... 그럼 우리 부부가 닮은꼴이라는거구낭! ^^
해적님은 교복이~~~ 우리의 사랑스런 주인공, 잭 스패로우가 입은 것 같은 것이 아닐런지? 헤헤~ 아니라면 사진으로 증명해보세요! ^^

프레이야 2008-02-1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결론은 또 삼천포다요~
큰딸 졸업을 축하해요~~ 교복이 참 예뻐요. 사복으로 입어도 되겠는걸요.
캔버스화도 상의랑 어울리고요.. 순오기님도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순오기 2008-02-14 10:4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결론은 확실히 삼천포~ 못 말리죠.ㅋㅋ
그러게요. 저 교복은 보관할까 생각, 나중에 우리 애들 기념관에 전시할려면요.^^

글샘 2008-02-1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교복에 밀가루 뿌리는 아이들 이해가 됩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지긋지긋하던 저 교복인데.
엉덩이가 뻔질거리도록 하루에만도 십여 시간을 입고 빠대던 옷인데...
저 옷 때문에 맨날 공부했던 건 아니지만, 학창 시절의 답답한 공기를 툭털어 버리는 의미로 밀가루도 뿌리고 교복도 찢고 하는 거겠지요.
아마도 교대는 고교 시절보다 더 답답하게 공부해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졸업시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축하합니다.

순오기 2008-02-14 10:5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고생은 정말이지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했지요.ㅠㅠ
하여간에 그 좋은 시절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 짜안~~합니다.
교대는 정책에 순응하는 인간을 키우는 곳이라며, 우리 딸이 면접보러갈 때 너무 강해 보이니까 좀 어벙해 보이도록 앞머리 자르고 가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있어, 정말 앞머리를 씀벙 자르고 갔었어요.^^
그래서 알바는 꿈도 꾸지말고 후회없도록 도서실에 박혀 지내라고, 지금은 마음껏 놀고 있어요. 11월 15일부터 지금까지...ㅠㅠ

BRINY 2008-02-14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는 일부러 사복(정장) 입게 해요. 저거 못하게 하려구요. 헌 교복 입고 밀가루 범벅되서 그냥 옷버리려는 속셈들인데, 비싼 새옷 입으면 안하거든요.

뽀송이 2008-02-14 15:08   좋아요 0 | URL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순오기 2008-02-14 17:35   좋아요 0 | URL
좋지만, 또 졸업식에 입을 옷 사느라 휘청거리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어차피 졸업하고 입어야 할 옷이라 겸사 겸사 좋을 것 같기도...^^

울보 2008-02-1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교복을 입어보지 못햇는데 후후
그런데 저 밀가루 뿌리기는 예나 지금이나 하는군요,,,셋째 둘째도 겁나서 못났는 엄마라 할말이 없네요,,

순오기 2008-02-14 17:37   좋아요 0 | URL
이궁~ 울보님, 교복을 못 입으셨구나.
셋째 얘기는 웃자고 하는 거니까, 스트레스 받으심 안돼욧! ^^
류는 둘 셋 역할도 충분히 할 것 같던데요.

무스탕 2008-02-1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애기^^ 졸업 축하합니다~ :D
꽃다발 정말 이쁘네요. 울 지성이도 내일 졸업인데 전 그냥 사줄 생각이에요.. --;;



순오기 2008-02-14 17:39   좋아요 0 | URL
초등학교 졸업인거죠? 우리도 다음주에 막내가 졸업해요.
꽃다발이 사진에 산뜻하게 나오니 좋아요. 우리는 꽃값 안 들려고 재활용이에요.^^

웽스북스 2008-02-15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를 꼭 닮은 딸이군요- 꽃다발을 실용적으로 만들어주던 건 저희 엄마랑 비슷하세요

순오기 2008-02-16 09:07   좋아요 0 | URL
호호~ 우리딸은 웬디양과, 저는 웬디양 어머니와 닮았군요.^^

bookJourney 2008-02-1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큰따님, 졸업 축하드려요~~
알콩달콩 행복한 풍경이에요 ~~~~

순오기 2008-02-16 09:09   좋아요 0 | URL
감사~ 어느새 고등학교를 졸업하는군요. 대견~ 뿌듯!!
우리집의 행복풍경은 좀 변화무쌍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