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령산의 유래

축령산에는 남이 장군의 억울한 죽음과 그를 잃은 백성들의 안타까움이 곳곳에 전해지고 있다. 남이섬, 남이바위등 아직도 그의 이름이 붙은 지명들로 해서 그가 역사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인물이 아니라 축령산과 함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된다. 남이(14411468)장군의 본관은 의령으로 그의 어머니가 태종의 넷째 딸인 정선옹주니 그는 태종의 외손이다. 세조3 17세의 어린 나이로 무과에 급제한 남이는 왕의 총애를 받으며 혁혁한 공을 세워 병조판서의 자리에 올랐다.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한지 얼마 후의 일이다. 궁중에서 숙직을 하던 남이는 혜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묵은 것이 가고 새것이 나타나게 될 징조다."라고 해석하였는데 유자광은 왕에게 남이가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했다. 오래전 부터 남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예종은 이것을 빌미로 남이를 제거한다. 이렇게 해서 남이는 스물 여덟의 나이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가 세상을 뜨자 사람들은 그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그가 어려서 무예를 닦던 산을 축령산이라 이름붙였다.

치악산의 유래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자 고려의 유신 운곡은 고향인 치악산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그는 고려가 망하기 전 이방원에게 글을 가르쳤던 적이 있다. 왕이 된 태종은 스승 운곡을 찾아 어릴 때 머물며 글을 읽었던 치악산 각림사를 찾았는데, 운곡은 조선의 왕인 그를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의 일화가 관련된 여러 명소가 전해오고 있다. 태종이 잠시 머물었던 횡성군 강림면의 태종대(주필대), 태종이 운곡의 행방을 묻었을 때 할미가 엉뚱하게 가르쳐 주었던 바위, 황지암을 비롯하여 후일 임금에게 거짓말을 한 죄를 뉘우쳐 할미가 빠져 죽은 늪, 노구소(할미소,구연)등이 그곳이다. 이밖에도 운곡이 숨어 살았던 고깔바위(변암)가 치악산 동남쪽에 있으며, 태종의 수레가 지나갔던 수레너미재, 대왕재, 원통재 등의 고개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다. 비로봉 서쪽의 입석대 아래 원주시 행구동 석경촌에 운곡의 묘가 있으며 바로 아래에 운곡의 재실이기도 한 석경사가 있다.

칠갑산의 유래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칠갑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아흔아홉계곡을 비롯한 까치내, 냉천계곡, 천장호, 천년고찰인 장곡사 등 절경지대가 펼쳐져 있다.두개의 대웅전으로 유명한 장곡사는 그윽한 산사의 기품이 넘치는 사찰이다. 칠갑산은 본래 이름은 칠악산이었다. 그러나 불교의 영향으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곱 성인의 칠()자와 십이간지의 첫 자인 갑()자를 합하여 붙인 것이다. 이와는 달리 산 속에 명당자리가 일곱군데 있다고 해서 연유한 이름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 출처 네이버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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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마셔두,눈을감아두,

씻을때두,웃을때두,

힘들때두,니가자꾸만

그립고생각나......

보고싶어...돌아와...
 

 

사 심

랑 장

해 이

요 너

그 무

래 아

서 프

    

  요

 .

 .
 

 
너랑만날때갔던곳들을생각해봣는데

가본곳이별로없더라....

추억은이렇게나....많이있다는데......

 

 이제부터사랑하지않겟습니다.

사랑한다고말하지않겠습니다.

이제부터사랑때문에아프지않겟습니다.

이제정말널버리겠습니다......

 
조금만이해해주세요

조금만참아주세요

조금만섬세하게봐주세요

조금만관심가져주면

다보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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