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1
박광수 엮음.그림 / 걷는나무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사랑하는 엄니는 작년 초 당신이 가장 사랑한다던

막내아들인 나마저도 기억에서 지워 버리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매가 엄니의 모든 기억을 앗아가 버렸다.

엄니에게 내가 누구냐고 물으면 엄니는 아무런 대답 없이 먼 곳만을 응시하신다.

가끔 내게 어떤 말씀을 하시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뿐이다.

치매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다.

 

 

엄니가 치매라는 병에 걸리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이름과 가족의 이름을 기억에서 지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것들마저 잊기 시작하셨다.

머리 감는 일, 이 닦는 일, 숟가락을 쥐는 법,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법 등등......

치매가 발병하고부터 엄니는 하루 종일 거실의 소파에 누워 꼼짝하지 않으셨다.

하루 이틀 사흘 그런 날이 계속되자 말리려고 햇볕에 내 놓은

멸치처럼 엄니의 몸에서는 수분이 점점 사라져 갔고 몸무게도 많이 줄었다.

어느 저녁 늦은 시간에 엄니를 안방의 이부자리로 아버지와 함께

옮겨 눕히는데 오랫동안 참아 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니의 몸이 너무 가볍기도 했지만

건강하실 때 지금처럼 자주 안아 드리지 못했다는 늦은 후회가

가슴을 복받치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나는 엄니의 속을 무던히도 태운 사고뭉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을 엄니는 늘 따뜻하게 안아 주셨다.

사고를 쳐서 아부지한테 흠씬 두드려 맞을 때도 엄니는 늘 내 편이셨고

나로 인해 엄니는 늘 죄인이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 때문에 엄니의 속이 까맣게 타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엄니를 내 못된 삶의 방패막이로 사용했고, 철없는 막내아들은 엄니한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때 진심으로 엄니한테 미안하다고 말할 걸,

이렇게 못되고 몸난 자식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할 걸,

나는 결국 그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그만큼 후회하는 것도 많아진다.

후회하고 바꾸고 싶지만 제때 전하지 못한 말은 갈 곳이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저 가슴만 아플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기에 아부지한테 말했다.

"아부지 정말 죄송했어요!"

그리고 나 때문에 늘 속 끓이는 아내에게 말한다.

"나랑 살아 줘서 고마워."

어릴 때의 나를 꼭 닮은 사고뭉치 아들에게도 말한다.

"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거 알지?"

무뚝뚝한 아부지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아내는 "으이그~" 하지만 입은 옷고 있다.

아들은 "나도 아빠 사랑해" 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을 살고 계시는 엄니에게도

"엄니, 아들이 엄니를 많이 사랑해요."

라고 말하고 안아 드리면 엄니는 내 말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그러고 보니 참 다행이다.

참 못할 짓 많이 하고 살았는데

그런 나를 떠나지 않고 내 옆에 남아 준 사람들에게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서 말이다.

 

 

 

 

내 곁에 있는 당신,

정말 고맙습니다.

 

-170~173페이지

 

 

 

내가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그저 당신이 당신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당신 곁에서 내가
또 다른 나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내 삶의 목재로
헛간이 아니라 신전을 짓도록 도와주고,
내가 날마다 하는 일을 비난하지 않고
노래가 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신보다도
나를 더욱 선하게 만들었고
어떠한 운면보다도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손도 대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기적도 옶이 당신은 이 모든 것을 해냈습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이
참된 친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리 크로프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5-04-29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슴 아프네요

후애(厚愛) 2015-04-30 12:56   좋아요 0 | URL
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네요.

서니데이 2015-04-29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이... 인 줄 알고 깜짝놀랐어요. 막내아들이... 라는 것을 보고, 아니구나 했습니다. ^^

후애(厚愛) 2015-04-30 12:59   좋아요 0 | URL
작가분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