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독서평설 2016.6
지학사 편집부 엮음 / 지학사(잡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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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평설을 손에 들면, 여러 꼭지 중에서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은 필독서 소개 코너입니다. 필독서라서기보다 볼만한 책이 참 많구나 싶은 생각이 들고 그 이름을 적어두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번 호에는 루소의 [에밀], 퍼트넘의 [우리 아이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그리고 뷰캐넌의 [우발과 패턴]이었네요. 고전 토크까지 포함하면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소개되었다고 하겠고요.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퍼트넘의 [우리 아이들]이었습니다.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말이 유행한지도 꽤 되었습니다만 빈부격차에 대한 고심이 서양에서 없었을 리 없겠지요. 오히려 분석이 앞섰을만 하고요.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론이라지만 현대에도 충분히 적용될법한 내용이네요.



 철학 꼭지에서는 인공 지능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인간을 '존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자들의 고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알파고로 인해서 다소 과장된 양상으로 펼쳐진 면은 있어도 제법 많은 이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싶네요. 필자는 인류의 역사가 인권 확대의 역사라는 점을 짚으면서 언젠가는 '기계권'이 나타날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평소 해본 적이 있는 생각이기도 해서 공감이 가더군요. 사실 다양한 SF 장르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런 가능성이 타진된지 오래기도 하지요. 



 조선 시대 붕당의 전개 과정을 4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준 한국사 코너도 좋네요. 한국사 비중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만 그게 아니라도 조선의 역사는 여러모로 타산지석이 될 부분이 많지요. 특히 붕당 부분은 복잡하기는 해도 한번 정도 정리해가며 그 의의를 생각해볼 가치가 충분한데요,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서 어지러울 수 있는 부분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겠어요. 



이번 호도 입시 정보가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대학 학과를 소개하거나 대입 전형을 안내하는 내용, 자소서를 작성하는 법과 논술 기출문제 분석까지 빼곡합니다. 책의 3분의 1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시기가 시기이기도 해서겠지만 갈수록 분량이 늘어가는 것 같은 인상이 있네요. 기본적으로 실용서에 가깝고 이런 정보에 대한 수요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실제로 컨텐츠도 충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반길 수도 있는 부분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쉽게 느껴지기도 해요. 상대적으로 교양 파트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사실 이전에 워크시트도 떨떠름해했으니 개인 취향이 너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요? 독서평설은 '독서'평설인 것이 맞지 않은가 싶거든요. 차라리 별도로 묶어내어 정보지를 출간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본 포스팅은 교재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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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 공부
홍춘욱 지음 / 원더박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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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책을 취미의 개념으로 읽게 되는 저로서는 경제학 서적을 많이 보게 되지는 않습니다. 또 실제 고를 때도 깊이 파고드는 책보다는 경제 외의 분야에 발을 걸쳐서 읽기 좋게 써낸 교양서 수준의 책을 찾게 되고요. 꼽아보자면 팀 하포드나 스티븐 래빗의 책을 아주 재밌게 읽었던 정도지요. 하지만 간혹 거기서 벗어나 예상치 못한 책도 얼렁뚱땅 보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책도 약간은 그런 느낌이네요. 기본적으로, 체계적인 공부를 계획한 이에게 적절한 책을 추천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지라 제 수비 범위에서 다소 벗어난 경우거든요.



 일단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을 먼저 언급하자면 '제목' 부분이네요. 물론 비문학 분야의 책의 경우, 제목이 마음에 드는 경우보다 안 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예 서구권 도서처럼 본제와 부제를 철저히 나누어 쓰는 방식을 쓰면 실용성은 보장될 테고 센스가 발휘되면 매력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요, 각설하고 이 책의 경우는 제목이 오해를 낳을 여지가 있는 경우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코노미스트가 독자에게 경제에 대해 가르쳐 줄 제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이코노미스트가 경제 공부를 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은 저자가 커리어 상에서 흥미롭게 보았던 책과 경제를 공부해보려는 독자에게 권할만한 책을 아울러 소개하는 도서 추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책의 뒤표지에 그런 설명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보지 않으면 책의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 제목이라는 것부터가 좋은 제목은 아니라는 말이 되겠지요. 하다못해 뒤표지의 설명을 앞표지에 붙여놓았다면 어땠을까요..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을 추천하면서 제목을 이상하게 지었다고 비판하는 부분이 있는데 살짝 쓴웃음을 짓게 되더군요. 저자가 다독가이니만큼 책의 제목에 민감하리라는 생각도 드는데, 어쩌면 저자가 지은 책 이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해봅니다만, 알 수 없네요.


 책은 3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1부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생을 돌이키면서 독서 방법론과 중요한 생의 순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있고요, 2부에서는 기초 경제학 공부, 주식 공부, 부동산 공부 등 독자의 목적에 맞춰 읽을만한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부에서는 경제를 벗어나 제분야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있네요. 



 사실 1부에서 저자의 삶의 이야기가 죽 나와서 살짝 당황했습니다. 연이어 허를 찔린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만, 읽어가다 보니 이게 생각보다 흥미롭더군요. 작가가 커리어를 밟아가면서 한국 경제사의 사건 사건을 거쳐 지나가게 되는데요, 그 사건의 이해를 도와주는 책을 딱딱 소개해주니 우리 경제사를 돌이켜보게 되기도 하고요, 경제학자들의 통찰의 순간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더군요.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를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이들 학자들이 뛰어나서 경제상황을 예측한 건지, 아니면 수많은 학자들이 던진 예측 중에서 얻어걸린 것이 추인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네요. 장기적으로 권위와 능력을 인정받는 석학이 워낙 드무니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군요. 저자도 고슴도치 형과 여우 형의 학자들을 대비시키는 등 여러 곳에서 경제의 난해함을 토로합니다만, 그래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할 수 없는 분야라는 점이 또 곤란하군요.



 1, 2부를 아울러 군데군데 기억에 남는 부분들을 언급해보자면요, 우선 채찍 효과에 대한 인용 글이 기억에 남는군요. 미국에서 재채기를 하면 우리가 독감에 걸려야 하는 이유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또, 2008년 경제 위기를 야기한 부시 행정부의 실패가 널리 보면 교육 시스템에 기인한 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다시 불평등 심화와 관련이 있다는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우리의 현상황을 볼 때 반면교사로 삼지 않으면 안 되는 에피소드겠네요. 국가가 크나큰 경제적 문제를 겪고 나면 그것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현명한 판단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남을 수 있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네요. 충분히 가능한 일임에도 거시적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떠올리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런 것을 읽어내는 것이 전문가의 힘이겠네요.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은 책의 목록을 만들게 되는 파트였습니다.



 1,2부에서도 절판된 책을 소개한 경우가 있었습니다만 3부에서 소개된 책은 상당히 마이너한 것들이 많았던 기억입니다. 아무래도 경제를 넘어서서 다양한 분야를 살펴보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거기에 역사에 대한 관심까지 결합하다 보니 깊이 파고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 책의 대상 독자를 누구로 설정했을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면이 있었습니다만, 3부에서 소개된 책들은 특히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 다수였네요. 물론 읽어보기 전에 책의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만 개인적인 취향에 특히나 의존한 선택지였던 것 같다는 인상입니다. 분량도 예상 이상으로 많았고요. 보기 나름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이것도 독자의 기대치와는 맞지 않는 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지만요.



 언급했듯이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뿌리 삼가 써나간 책이라서 작가가 책 전반에 걸쳐 확연히 드러나는 점은 때로는 좋게 느껴지지만 때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책의 추천이 많았다는 점도 독자에 따라서는 아쉽게 느껴질 것 같고요. 이 책을 집어 든 독자층에서 이런 성격의 책에서 기대하게 되는 부분을 충실히 맞춰주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자 혹은 소개된 책의 인용부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을 예상 이상으로 많이 접하게 되어 흥미를 더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군요. (아무래도 그런 책의 제목을 먼저 목록으로 남기게 되더라는 ㅎㅎ) 여러모로 개성이 제법 강한 책이 아니었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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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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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신작이 나왔군요. '총, 균, 쇠'가 워낙에 단단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그 외의 책은 설사 신간일지라도 관심이 덜한 느낌도 있네요. 그럼에도, 세월이 가면서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서 같이 나이들어 갔을 노석학이 어떤 통찰을 보여줄지는 여전히 궁금해집니다. 이번 책은 대학의 강의를 기본으로 하여 펴냈다고 하니만큼 보기 편하겠다는 기대감도 더해졌습니다. '총, 균, 쇠'가 의외로 재밌는 책이라곤 해도 분량이 분량인지라 부담이 없을 수 없지요. 


 책은 총 7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크게 둘로 나누자면 국가 빈곤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하는 전반부, 개인과 세계의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를 다루는 후반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전반부와 후반부가 잘 호응하고 있는 편은 아닙니다. 일관된 주제가 있는 강의를 모은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특히 중국에 대해 다룬 세번째 챕터는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구성상으로는 '왜?'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량상의 문제도 있다보니 정말 살짝 핥고 지나가는 듯한 인상이었어요. 물론 이 챕터를 포함하여 전반부에서 다이아몬드의 인류학자로써의 면모를 잘 볼 수 있어 흥미롭기는 했습니다만, 역시 책의 주제는 후반부에 있다고 해야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전반부가 더 재밌었다는 것은 함정이려나요?)


 


 취향이 작용하는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전반부의 인류학적 고찰은 역시 흥미롭습니다. 1, 2 챕터에서는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빈곤한가 그 원인을 살피면서 지리적 원인과 제도적 원인을 나누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장기는 역시 지리적 원인 분석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사실이고요. 중반부에서 저자는 기본적 원인에서 그치지 말고 궁극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부 간의 불화 문제를 예로 들어 가며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기도 한데요, 아무래도 저자가 보는 궁극성은 제도보다 지리 쪽에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더군요.


 

 오랜 중앙정부의 역사를 지닌 국가는 설사 가난하게 현대 세계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중앙정부의 역사가 짧은 국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뤄낸다는 통찰은 전반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심지어 저자 자신도 암시하고 있듯이, 근 수십년의 역사를 압도하는 기 수천년의 역사의 우월성은 일반인은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에게도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입니다. 제 짧은 식견만으로도 적지 않은 반례를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요. 더 많은 시간이 흘러 보다 많은 일반화된 사례가 밝혀진다면 모를까, 현재로써는 오히려 저자의 신념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능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더 나은 해석도 가능하리라는 의심을 하게 되요.


 이런 점을 생각하다 보면, 저자의 머릿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자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이 적용되기 힘든 사회과학의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연구 방법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강하게 피력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법론을 적용했을 때 귀인이 용이한 것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다양한 양상으로 형성된 제도보다는 수만년의 뿌리를 가진 인류학적 증거 쪽이겠지요. 

 


 하나의 속성이 늘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점, 혹은 우리의 예상과 아주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점을 짚어주는 저자의 설명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중국이라는 사회의 안정성이 근대의 경쟁에서 서구의 지배를 따라잡는데 장애물이 되었다는 점,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오랜 역사가 현대에 이르러 동양의 국가들이 저력을 발휘하는 근간이 된다는 것이 동시에 진리라니,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또 제국주의 국가가 착취할만한 자원이 충분치 않았던 식민지 국가에서는 자생적 발전이 가능한 체제가 형성될 수 있었고, 그 결과 현대에 와서는 자원이 풍부했던 식민지 국가들보다 훨씬 더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례도 주목할만 합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저자는 이러한 국가들의 예를 들면서 코스타리카를 언급하고 있는데요, 코스타리카가 전 대통령 중 4명을 부패로 투옥한 예가 있다는 점을 짚어주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물론 끔찍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부패한 짓을 저지르고도 감옥에 갇히지 않는 네 명의 대통령을 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거 읽으면서 뜨끔했습니다. 저자가 한국사에 대해서 빠삭하다고는 해도 물론 한국인 일개 독자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닐텐데 제풀이 뜨끔이라니, 씁쓸하네요.


 

 

 후반부에 들어서는 개인적 위기 대처 방법과 세계적 위기 대처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부분이 책의 주제에는 더 가까운 부분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전반부보다는 덜 흥미로웠다고 고백해야겠네요. 아무튼 개인적 위기 대처 방법으로 건설적 편집증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나이드신 어머니의 자식 걱정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그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살짝 미소를 짓게 되더군요. 저자도 인정하듯 연세가 상당히 드신 것도 사실이고요. 냉정히 말하자면, 마음 깊은 곳에서 슬그머니 공감되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세계의 위기와 관련하여 기후 이상과 불평등 문제 등을 짚어주고 있는데요, 이것은 사실 건설적 편집증 정도의 확답도 나오기 힘든 문제이지요. 뻔히 보이는 파멸의 길이 있어도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집단의 속성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작가는 51대 49라는 아슬아슬한 확률로 낙천적인 해결을 피력합니다만 이거야말로 신념의 표현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이 책의 분량으로는 문제를 짚기에도 바쁠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겠지요. 깊이 있는 분석은 별개의 두툼한 책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상당히 가뿐하게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책입니다. 논지 전개도 간결하게 정제되어 있어 가독성도 아주 좋습니다. 편집도 깔끔하게 잘 되었고요. 에피타이저의 느낌이 강한 것도 사실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그의 묵직한 책들에 접근하기 위한 관문으로 설정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책 자체로, 위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스스로의 위치를 한번 더 살펴보게 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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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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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금가지 시리즈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목이 독특한 '액스맨의 재즈'인데요, 액스맨이 엑스맨으로 보인 분들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 연쇄살인마의 별명이라고 합니다만, 기왕이면 '도끼 살인마의 재즈'라고 했으면 더 쉽게 각인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하는 점이 아쉽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저자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요, 상당히 좋은 반응을 거두었던 모양입니다. 드라마화가 되고 있으며 후속작까지 계획되어 있다고 소개되어 있더군요.


 실제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다고 언급했습니다만, 이 작품의 배경은 1919년의 뉴올리언스로 콕 찝어 정해져 있습니다. 뉴올리언스 하면 재즈의 발상지로 유명한데요, 그래서인지 무려 젊은 루이 암스트롱이 주요 조력자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당대의 시대상을 그리듯 담아내는 저자의 묘사였습니다. 재즈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마피아에, 부패한 경찰, 흑인들의 생활상, 심지어 부두교까지,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로 기가 막히게 그려내더군요. 당시의 신문기사를 있는 그대로 인용하고 있기도 하고 실존인물까지 섞여 등장하기 때문에, 읽어가다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살펴보자면 3파로 나뉘어 연쇄살인의 진실을 추구하는 양상이 그려집니다. 하나는 부패경찰을 고발한 사건으로 불리한 입지에 처했기에 사건의 해결에 경력을 걸어야 하는 탤벗 경위, 하나는 그 형사가 고발하여 오랜기간 투옥되었다 갓 석방된 후 마피아를 위해 사건을 조사하게 된 루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탐정 조수로 일하면서 탐정다운 일을 해보고 싶어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개인적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혼혈여성 아이다입니다. 인물 설정을 기가 막히게 하고 있는 것이, 각기 인물의 뒷이야기와 현재의 상황, 인물의 가치관 등이 다채롭게 펼쳐질 수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두고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물들의 진면목이나 가능성이 이 소설 안에서 모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후속작이 등장하겠구나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다만 사건이 해결되어 가는 양상은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3파전으로 전개되는만큼 역할의 분담이나 균형감 내지 협조 등이 잘 서술되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2파 정도는 사건 해결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인상이 들 정도니까요. 물론 이들 덕에 사건의 세부사항이 독자에게 더 잘 전달될 수 있었다는 점은 있었겠지만 그 정도로는 아쉬움을 채우기에는 부족했습니다. 특히 루카의 경우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안습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더하여, 액스맨의 정체가 밝혀져도 뭔가 짜릿함을 느끼기 힘듭니다. 실제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이라고 합니다만, 소설은 마피아나 정치가의 권력 관계를 짜맞추어 범인을 창조해냅니다. 분명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짜맞춰주었는데도 그닥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건, 클라이맥스를 잘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밖에는 할 수 없겠습니다. 이것 역시 상당 부분은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닥 한 것은 없는 3파전 양상에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군요.


 미스터리적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묘사력과 인물창조력 때문이었다고 해야겠지요. 이번 작품에서는 이것이 아깝게 낭비되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후속작에서는 훨씬 더 제대로 활용될 수 있었으면 싶습니다. 한편, 드라마랑 잘 맞는 구조와 전개라고 보이기 때문에, 드라마 쪽은 조금 더 기대가 되는군요. 영상화된 당대의 뉴올리언스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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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1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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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나 공포, 추리 등의 장르에 있어서 일본 소설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우리의 입맛에도 잘 맞는지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장르의 소설이 많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은 일본 서적의 점유도가 높은 것도 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 중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입지는 두말할 나위 없을 정도지요. 일본작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꾸준히 작품을 내왔기 때문에 출간된 작품 수도 상당하고, 그 중에는 예상치 못한 장르의 책도 간간히 있습니다. 솔직히 작품의 기복이 있는 편이라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작품도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장르적 재미는 늘 놓치지 않은 점이 대단하지요. 그런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큰 울림이 있었던 작품을 꼽자면 [용의자 X의 헌신]과 이 [백야행]이 아닌가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꼈기에 번역까지 바뀌어 이렇게 다시 한번 개정판이 출간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이 소설은 사실 소재만으로도 잘 먹힐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미스터리적인 전개의 가운데 지독한 사랑을 두고 거기에 얽힌 인간군상의 모습을 속도감있게 그려내고 있지요. 사랑은 언제나 멋진 소설의 소재이지만, 특히 그것이 가지는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속성을 그려내는 작품은 특히나 울림을 남기게 됩니다. [용의자 X의 헌신] 역시 이러한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던 것을 보면 작가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기획했던 것이겠지요. 그것을 얼마나 잘 그려냈던지, 두 주인공 [료지]와 [유키호]의 캐릭터는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도 비견할 수 없을만큼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장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캐릭터의 매력 때문에 영상으로 옮겨보고 싶어지는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탑배우가 주연을 맡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1999년에 출간된 작품이라고 하니 15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이렇게 중간중간 재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 듯합니다.


 1999년이라는 출간연도도 의미심장합니다만 작품 속 배경까지 더해지면 작가가 세기말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읽었었습니다만 강렬한 플롯과 캐릭터에 빠져 잘 느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다시 본 이 소설은 거품경제가 가라앉아 가면서 불안이 고조되는 시대상을 잘 그려내고 있었네요. 특히 1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은 그것을 구현한 인물들입니다. 그 중심에서 중력처럼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유키호]의 무게감은 그렇기에 더욱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이 당시에 그런 관념이 보편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유키호야말로 현재 유행처럼 퍼진 사이코패스 인물형의 시발점에 있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근래 대세는 타고난 사이코패스가 다수인 듯 합니다만 유키호는 만들어진 사이코패스의 전형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유키호를 위해 헌신하는 [료지]는 유키호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단호하고 단단한 유키호와 달리 료지의 흔들림은 이곳저곳에서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까지 파괴해가면서 자신의 사랑을 주장해갑니다. 사실 이것을 사랑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는 작품을 봐도 모호하기만 합니다. 그런 모호함이 이 캐릭터를 더욱 개성적으로 만들어내는 한 요소겠네요.



 재출간된 백야행은 개정판이라기보다 애장판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사실 표지 디자인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는데요, 제목부터 설명까지 전체적으로 바랜 회색과 흰색으로 표시되었습니다. 천사의 상까지 더해지고 보니 묘비처럼 보여, 백야행이라는 제목을 제대로 구현해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다보니 자세히 보지 않는 한 표지의 정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생겼네요. 제목도 잘 안보일 정도니까요. 또 양장본인 점은 당연하다 해도, 가격도 상당한 편입니다. 여러모로 출판사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라는 점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히가시노 게이고가 몇년생인가 확인해보니 1958년생이네요. 벌써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군요. 백야행을 쓸 때만 해도 막 40대였기 때문일까, 근래의 작품들과 비견해보면 훨씬 더 격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하긴 지금 작품도 다른 작가와 비교해보면 여전히 꽤나 강렬합니다만..) 지금까지 80편의 소설을 냈다고 하니 무지막지한 생산력인데요, 이런 분이니 앞으로도 한동안은 작품을 쏟아내는데 지장은 없겠다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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