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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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신작이 나왔군요. '총, 균, 쇠'가 워낙에 단단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그 외의 책은 설사 신간일지라도 관심이 덜한 느낌도 있네요. 그럼에도, 세월이 가면서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서 같이 나이들어 갔을 노석학이 어떤 통찰을 보여줄지는 여전히 궁금해집니다. 이번 책은 대학의 강의를 기본으로 하여 펴냈다고 하니만큼 보기 편하겠다는 기대감도 더해졌습니다. '총, 균, 쇠'가 의외로 재밌는 책이라곤 해도 분량이 분량인지라 부담이 없을 수 없지요. 


 책은 총 7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크게 둘로 나누자면 국가 빈곤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하는 전반부, 개인과 세계의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를 다루는 후반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전반부와 후반부가 잘 호응하고 있는 편은 아닙니다. 일관된 주제가 있는 강의를 모은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특히 중국에 대해 다룬 세번째 챕터는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구성상으로는 '왜?'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량상의 문제도 있다보니 정말 살짝 핥고 지나가는 듯한 인상이었어요. 물론 이 챕터를 포함하여 전반부에서 다이아몬드의 인류학자로써의 면모를 잘 볼 수 있어 흥미롭기는 했습니다만, 역시 책의 주제는 후반부에 있다고 해야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전반부가 더 재밌었다는 것은 함정이려나요?)


 


 취향이 작용하는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전반부의 인류학적 고찰은 역시 흥미롭습니다. 1, 2 챕터에서는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빈곤한가 그 원인을 살피면서 지리적 원인과 제도적 원인을 나누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장기는 역시 지리적 원인 분석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사실이고요. 중반부에서 저자는 기본적 원인에서 그치지 말고 궁극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부 간의 불화 문제를 예로 들어 가며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기도 한데요, 아무래도 저자가 보는 궁극성은 제도보다 지리 쪽에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더군요.


 

 오랜 중앙정부의 역사를 지닌 국가는 설사 가난하게 현대 세계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중앙정부의 역사가 짧은 국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뤄낸다는 통찰은 전반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심지어 저자 자신도 암시하고 있듯이, 근 수십년의 역사를 압도하는 기 수천년의 역사의 우월성은 일반인은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에게도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입니다. 제 짧은 식견만으로도 적지 않은 반례를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요. 더 많은 시간이 흘러 보다 많은 일반화된 사례가 밝혀진다면 모를까, 현재로써는 오히려 저자의 신념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능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더 나은 해석도 가능하리라는 의심을 하게 되요.


 이런 점을 생각하다 보면, 저자의 머릿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자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이 적용되기 힘든 사회과학의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연구 방법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강하게 피력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법론을 적용했을 때 귀인이 용이한 것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다양한 양상으로 형성된 제도보다는 수만년의 뿌리를 가진 인류학적 증거 쪽이겠지요. 

 


 하나의 속성이 늘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점, 혹은 우리의 예상과 아주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점을 짚어주는 저자의 설명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중국이라는 사회의 안정성이 근대의 경쟁에서 서구의 지배를 따라잡는데 장애물이 되었다는 점,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오랜 역사가 현대에 이르러 동양의 국가들이 저력을 발휘하는 근간이 된다는 것이 동시에 진리라니,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또 제국주의 국가가 착취할만한 자원이 충분치 않았던 식민지 국가에서는 자생적 발전이 가능한 체제가 형성될 수 있었고, 그 결과 현대에 와서는 자원이 풍부했던 식민지 국가들보다 훨씬 더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례도 주목할만 합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저자는 이러한 국가들의 예를 들면서 코스타리카를 언급하고 있는데요, 코스타리카가 전 대통령 중 4명을 부패로 투옥한 예가 있다는 점을 짚어주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물론 끔찍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부패한 짓을 저지르고도 감옥에 갇히지 않는 네 명의 대통령을 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거 읽으면서 뜨끔했습니다. 저자가 한국사에 대해서 빠삭하다고는 해도 물론 한국인 일개 독자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닐텐데 제풀이 뜨끔이라니, 씁쓸하네요.


 

 

 후반부에 들어서는 개인적 위기 대처 방법과 세계적 위기 대처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부분이 책의 주제에는 더 가까운 부분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전반부보다는 덜 흥미로웠다고 고백해야겠네요. 아무튼 개인적 위기 대처 방법으로 건설적 편집증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나이드신 어머니의 자식 걱정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그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살짝 미소를 짓게 되더군요. 저자도 인정하듯 연세가 상당히 드신 것도 사실이고요. 냉정히 말하자면, 마음 깊은 곳에서 슬그머니 공감되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세계의 위기와 관련하여 기후 이상과 불평등 문제 등을 짚어주고 있는데요, 이것은 사실 건설적 편집증 정도의 확답도 나오기 힘든 문제이지요. 뻔히 보이는 파멸의 길이 있어도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집단의 속성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작가는 51대 49라는 아슬아슬한 확률로 낙천적인 해결을 피력합니다만 이거야말로 신념의 표현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이 책의 분량으로는 문제를 짚기에도 바쁠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겠지요. 깊이 있는 분석은 별개의 두툼한 책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상당히 가뿐하게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책입니다. 논지 전개도 간결하게 정제되어 있어 가독성도 아주 좋습니다. 편집도 깔끔하게 잘 되었고요. 에피타이저의 느낌이 강한 것도 사실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그의 묵직한 책들에 접근하기 위한 관문으로 설정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책 자체로, 위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스스로의 위치를 한번 더 살펴보게 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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