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스터리나 공포, 추리 등의 장르에 있어서 일본 소설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우리의 입맛에도 잘 맞는지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장르의 소설이 많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은 일본 서적의 점유도가 높은 것도 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 중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입지는 두말할 나위 없을 정도지요. 일본작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꾸준히 작품을 내왔기 때문에 출간된 작품 수도 상당하고, 그 중에는 예상치 못한 장르의 책도 간간히 있습니다. 솔직히 작품의 기복이 있는 편이라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작품도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장르적 재미는 늘 놓치지 않은 점이 대단하지요. 그런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큰 울림이 있었던 작품을 꼽자면 [용의자 X의 헌신]과 이 [백야행]이 아닌가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꼈기에 번역까지 바뀌어 이렇게 다시 한번 개정판이 출간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이 소설은 사실 소재만으로도 잘 먹힐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미스터리적인 전개의 가운데 지독한 사랑을 두고 거기에 얽힌 인간군상의 모습을 속도감있게 그려내고 있지요. 사랑은 언제나 멋진 소설의 소재이지만, 특히 그것이 가지는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속성을 그려내는 작품은 특히나 울림을 남기게 됩니다. [용의자 X의 헌신] 역시 이러한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던 것을 보면 작가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기획했던 것이겠지요. 그것을 얼마나 잘 그려냈던지, 두 주인공 [료지]와 [유키호]의 캐릭터는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도 비견할 수 없을만큼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장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캐릭터의 매력 때문에 영상으로 옮겨보고 싶어지는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탑배우가 주연을 맡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1999년에 출간된 작품이라고 하니 15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이렇게 중간중간 재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 듯합니다.


 1999년이라는 출간연도도 의미심장합니다만 작품 속 배경까지 더해지면 작가가 세기말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읽었었습니다만 강렬한 플롯과 캐릭터에 빠져 잘 느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다시 본 이 소설은 거품경제가 가라앉아 가면서 불안이 고조되는 시대상을 잘 그려내고 있었네요. 특히 1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은 그것을 구현한 인물들입니다. 그 중심에서 중력처럼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유키호]의 무게감은 그렇기에 더욱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이 당시에 그런 관념이 보편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유키호야말로 현재 유행처럼 퍼진 사이코패스 인물형의 시발점에 있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근래 대세는 타고난 사이코패스가 다수인 듯 합니다만 유키호는 만들어진 사이코패스의 전형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유키호를 위해 헌신하는 [료지]는 유키호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단호하고 단단한 유키호와 달리 료지의 흔들림은 이곳저곳에서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까지 파괴해가면서 자신의 사랑을 주장해갑니다. 사실 이것을 사랑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는 작품을 봐도 모호하기만 합니다. 그런 모호함이 이 캐릭터를 더욱 개성적으로 만들어내는 한 요소겠네요.



 재출간된 백야행은 개정판이라기보다 애장판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사실 표지 디자인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는데요, 제목부터 설명까지 전체적으로 바랜 회색과 흰색으로 표시되었습니다. 천사의 상까지 더해지고 보니 묘비처럼 보여, 백야행이라는 제목을 제대로 구현해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다보니 자세히 보지 않는 한 표지의 정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생겼네요. 제목도 잘 안보일 정도니까요. 또 양장본인 점은 당연하다 해도, 가격도 상당한 편입니다. 여러모로 출판사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라는 점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히가시노 게이고가 몇년생인가 확인해보니 1958년생이네요. 벌써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군요. 백야행을 쓸 때만 해도 막 40대였기 때문일까, 근래의 작품들과 비견해보면 훨씬 더 격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하긴 지금 작품도 다른 작가와 비교해보면 여전히 꽤나 강렬합니다만..) 지금까지 80편의 소설을 냈다고 하니 무지막지한 생산력인데요, 이런 분이니 앞으로도 한동안은 작품을 쏟아내는데 지장은 없겠다 싶기도 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