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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발견 - 인문학, '시민 교과서' 헌법을 발견하다!
박홍순 지음 / 비아북 / 2015년 11월
평점 :
사회생활 좀 해본 사람이면 없던 관심도 생기는 것이 법이 아닌가 합니다. 어떨 때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가도 또 어떨 때는 한없이 가까이 있는 것이 법임을 깨닫게 되니까요. 또 시민사회가 발전하면서 법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이 증가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겠고요. 법조인이 아닌 한 자신이 필요한 부문이 아닌 곳까지 법 지식을 갖출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이 사는 국가의 기반이 되는 헌법이 천명하는 바를 알아두는 것은 하나의 기본 요건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스스로 정치 후진국이라고 느끼고 있는 나라에서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이러한 배경에서겠지만 헌법의 이념에 대해 소개하는 교양서는 꾸준히 출간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 책도 그 흐름에 더해지겠지요.
머릿글을 보면 이 책은 헌법에 대해 인문학적 접근을 꾀하고 그것을 현실과 접목시키고자 의도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구성상으로는 대체로 헌법의 구조를 순서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1장에서는 기본정신, 2장에서는 자유, 3장에서는 평등, 4장에서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법철학 교과서의 요약본과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되는군요. 헌법 조문을 제시하면서 핵심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정립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근간이 됩니다. 이것은 챕터에 따라 분량상 차이가 있는데요, 개론의 성격이 강한 1장에서는 특히 비중이 높습니다. 그 바람에 문제가 생겼는데요, 1장을 읽어나가는 것이 상당히 지루하더라는 것이죠. 이것이 법대생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일반인이 읽기를 바라고 쓴 책이라면 취사선택에 좀 더 고심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1장의 내용은 일종의 공리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분명 역사적으로 부침을 겪어 현재에 이르긴 했습니다만, 현대의 일반 국민들로써는 의의를 제기하고 들면 현실 세계를 논할 수 없어질 정도로 기본이 된 관념들이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학자로써 이 부분을 적당히 넘어갈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요, 특정 개념의 역사적 연혁을 설명합니다만, 그것이 현재 우리 헌법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를 분석하는데까지 이르고 있냐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1조 1항을 논하면서, 이것을 의례적인 내용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많은데 여기서 방향을 잘못 잡으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에 엄밀한 파악과 역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대단히 강조합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 키케로, 한나아렌트, 몽테스키외, 로크 등을 인용하면서, 공화와 민주의 개념이 어떻게 쓰이고 발전해왔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어떤 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혹은 잘못된 이해가 어떠한 문제를 낳을 수 있는 식의 결론으로 이어지질 못합니다. 그저 대의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정도에서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1장 내내 반복되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목적성을 잃고 기계적으로 읽어야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책을 최소 1000페이지 분량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면요. 전형적인 교과서식 서술인 셈인데요, 이 책은 교과서로 의도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1장의 분량을 대폭 줄이던가, 역사적 고찰 대신 사회학적 고찰을 택하던가 하는 방향을 택했어야 했다는 것이죠.
각론이라고 할 2장 이후부터는 한결 읽기가 편해집니다. 특히 지문 날인 제도라던가, 보부아르의 여성 해방론이라던가, 존슨 성조기 사건 등 구체적 예시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흥미를 유지하기도 쉽고요. 하지만 여전히 글 자체에 긴장감은 없습니다. 각 장의 결론 부분만 죽 이어서 보노라면 그 이유가 일목요연해집니다.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에 있어서는 최대한의 원칙이 견지되어야 한다', '사회적 참여와 연대의 필요성이 그 어느 나라보다 크다', '민주주의와 실질적인 공무담임권의 장기적인 전망 차원에서 문제의식을 잡고 논의하려는 시도는 분명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등.. 당연하고 일반적인 고찰에 그칠 뿐인 것이죠. 차라리 분량을 늘려서 더 세부적으로 파고 든다던가, 아니면 항목을 줄이고 몇 가지 내용에 집중한다던가 했으면 이렇게 뜨뜻미지근하지는 않았을텐데 싶은 아쉬움이 자꾸 생깁니다.
어쩌면 애초 제가 기대한 포인트가 어긋났기 때문에 더 실망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근접하여 헌법을 살펴보는 책을 기대했는데 이 책은 헌법의 개념을 법리적으로 풀이하는 책이었던 것이죠. 문체도 대단히 건조하기 때문에 글 자체의 읽는 맛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말입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보면, 저자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반인을 위한 교과서 같은 책을 의도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