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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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다.


 아파트 관리실은 위탁업체에 속해 있다. ‘자치 관리를 하는 아파트도 있지만 소수다. 대다수 아파트 노동자들은 위탁업체소속이다. 관리실을 제외한 경비·미화 노동자들 또한 각각의 위탁업체하청에 속해 있다.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각기 다른 회사명이 프린팅된 작업복을 입고 있다.

 내 직책은 기전 주임이다. 기계·설비·영선·전기 등이 주 업무다. 하지만 하는 일은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세대 민원이 오면 갖가지 일을 한다. 한마디로 아파트 안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업무가 단속업무. ‘단속의 뜻이 정확히 뭔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밤샘 근무, 당직근무로 쉽게 풀어 설명할 수 있겠다. 주간에는 관리소장을 비롯한 과장, 경리와 함께 근무하고, 저녁 6시 일근 직들이 퇴근하면 다음 날 아침 근무자가 출근하기 전까지 당직근무를 하는 것이다.


 아파트 단속직의 월급은 많지 않다. 세대수가 많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일 경우 월급은 더 많아지지만 그만큼 하는 일도 많아진다.

야간 근무를 하고 나서 다음 날 쉬는 것이 계획하고 있는 다음 진로를 위한 시간 투자가 되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신입 직원과 30년 일한 숙련 직원의 월급이 똑같은 건 간접고용 세계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p.53)

 

 앞서 말한 위탁업체는 유령과도 같다. 아파트에 근무한 지 1년이 지났는데, 본사 직원들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관리비를 받아 해당 업체에 소속된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데, 내 몫으로 얼마가 책정되어 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간접고용중간착취의 전형이다. 아파트 일에 대해서 1도 모르는 신입 직원과 나의 월급은 똑같다. 1원도 차이가 없다. 아파트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2년에서 3년 주기로 재계약을 한다. 아파트마다 만들어진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위)’에서 결정하는데, 아파트 관리실에서 일하는 관리소장 이하 직원들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굳이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않더라도 입대위전화 한 통으로 위탁업체가 한순간에 바뀔 수 있고, 관리실 직원들을 해고 할 수 있다.

 

밥 먹다가도 짐 들어오거나 청소차 들어오면 나가니 휴식이 휴식이 아니지요. 말만 자유 시간이지 대기조로 있는 거예요.” (p.43)

 

 아파트 주민의 갑질에 관한 기사나 보도가 빈번하게 나와 이제는 근무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도대체 회사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아오는지, 퇴근 후 집에 와서 관리실에 고스란히 쏟아낸다. 옛날 일이 아니다. 언제든지 보도되고 기사화될 일상이 넘쳐난다.

이런 스트레스는 아파트에서 일하니까 감수할 수 있다. 월급만 제대로 주면 된다. 하지만, 내 월급은 최저시급에 적용되어 있다. 그나마 추가로 적용되는 야간 수당도 최저기준 정도에 불과하다. 정말 궁금하다.

내가 속한 위탁업체에서 관리비·운영비명목으로 제외한 돈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다.

 

용역업체는 원청에겐 도급계약서대로 업무를 잘 수행하면 되는 것이고, 노동자에겐 근로계약서대로 임금만 지급하면 되는 것이다. 원청과 맺은 도급계약과 노동자와 맺은 근로계약은 완전히 별개의 계약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서로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 용역업체는 두 계약 사이의 빈틈을 노렸고, 결국 중간착취는 합법적인 지위를 얻고 있었다.” (p.28)

용역업체들은 원청이 지급한 돈에서 자신들이 떼어가는 적지 않은 액수를 관리비라고 주장한다.” (p.56)

 

 IMF는 노동 유연성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고, 노동 유연성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낳았다. 매달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고,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위해 수십만의 청년들이 고시생이 된다. 청춘의 고시생들이 희망을 가지고 공부가 아닌 중소·강소업체에 취직하라고? 청춘은 아픈 거니까 더 열심히 하라고? 개소리다.

중간착취의 합법적 지위가 고착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도무지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지옥도 속으로 너희들도 빠지라고 끌어당길 수 없다. 처절한 현실의 구렁텅이는 실전이니까.

내가 그만둘 각오를 하고 도급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줄까? 그들에게 나는 그저 수많은 기계약아파트 중 한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일 뿐이다.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 열심히,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 근로자’. 도급계약서 따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하는 수많은 근로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본급이 오르자 그 외의 급여 항목을 줄이는 일은 매년 반복됐다.” (p.35)

저는 최근 2년간 안전화 한 켤레만 받았고, 작업복은 받은 적이 없어요. 그렇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 사장이 피복비를 빼돌리고 있다는 얘기까지 도는 거죠.” (p.114)

 

 최저시급이 작년보다 다소 올랐다. 같은 달 작년 월급과 비교해보면 정확히 38천 원이 올랐다. 대신 검침비가 줄었다. 5만 원에서 3만 원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한 법안은 네 가지였다.” (p.254)

(1) “용역업체가 임금에 손대지 못하게 하라관련 법 개정

(2) “파견 수수료는 정해진 만큼만파견법 개정안

(3) “원청도 사용자가노조법 개정안

(4)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법을 만들자별도법 제정

 

 이 책을 펴낸 기자들이 진정한 르포르타주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기사와 인터뷰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법부를 찾아간다. 국회의원들에게 법안을 제시한다. 거대한 지옥도가 너무 깊고 넓어 제시한 법안들이 개정되거나 제정될지는 미지수다. 저자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간접고용중간착취에 대해 보도하고 감시한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혹시 국회에서 진일보한 법안이 개정되고 제정되더라도 노동현장에서 적용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실행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내일도 우리는, 우리를 집어삼킬 듯 일렁이는 지옥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호기롭게 “‘도급계약서좀 보여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자가 몇이나 될까. 나 또한 중간착취의 지옥도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당장 눈에 띌 만한 변화와 개선을 기대할 수 없을 때는 하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눈 감고 입 닫고 귀 막은 채, 그저 지옥도를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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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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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싸이월드 홈피를 보는 순간 나는 경악했다.

알바 시간에 쫓겨 급하게 뛰어나갔는데, 로그아웃을 하지 않았다. 나는 홀린 듯 그의 홈피를 훑었다.

젠장,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이 전부 거짓이었다. 나를 제외한 타인들의 그를 향한 공격과 비난이 거의 사실이었다. 나는 그를 위해 대신 맞고 대신 욕 먹었는데, 모두 헛일이었다. 당장 불러세워 자초지종을 따져 묻고 절연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미, 그에게 가스라이팅 되고 있었다. 그때는 그런 줄 전혀 몰랐으니까. 끝까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믿음이고, 의리이며 아무도 모르는 나와 그와의 관계가 갖는 특별함이라 생각했다.

 

어릴 때도 그랬고, 처음엔 나르시시스트인 줄 몰랐는데 관계에서 벗어난 후 그런 관계였구나. 조종당했구나라는 걸 알게 된 인간관계도 있었어요.

 

나를 가스라이팅 했던 그는 나르시시스트는 아니었다. 구구절절 사연이 많고, 불쌍한.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공부하고 일해가며 악착같이 삶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도 나르시시스트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지 못했을 뿐. 내가 그를 통제하고, 보호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나는 그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뒷골이 서늘했다.

1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책에 대한 인터뷰를 읽으며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10년 전, 그와 나와의 진짜 관계를.

 

자기, 나랑 왜 결혼했어?”

왜 했을까. 그때의 그는 신유나의 행성이었다. 매일 매 순간 그녀를 생각했다.” (p.518)

 

신유나의 행성처럼 맴도는 인물들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쯤, 10년 전 내 모습이 차츰 오버랩되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시감이 두려웠다. 10년 전 추억 정도로 잊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유나의 행성으로 맴도는 인물들처럼 나도 여전히 그의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유나의 갈색 눈동자를 잠자코 쳐다봤다. 늘 느끼는 바지만, 참으로 경이로운 아이였다. 어쩌면 저리도 자기 눈동자를 손가락처럼 다룰 수 있는지. 얼음장 같았다가, 칼날 같았다가, 별빛 같았다가, 봄 햇살 같았다가.” (p.294)

 

어렸을 때부터 동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는 언니의 눈에 비친 유나의 모습이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의 범인과 작품의 유나를 가장 잘 묘사하는 부분이다. 나는 섬뜩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표현한 악성 나르시시스트의 모습 그 자체이다. TV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실제 사건 범인의 모습과도 거의 흡사하다.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 힘든 외모였다. 모자이크 처리된 실루엣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쉽사리 동정을 일으킬만한 외모였다. 하얀 얼굴과 가녀린 몸매를 지닌 채 무자비하게 상대를 무너뜨린다. 범인도 그렇고, 유나도 그렇다. 당할 것을 예상하고도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녀가 앉은 식탁에 앉게 되고, 불행은 반복된다.

 

엄마는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었다. 규칙을 어기면 벌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엄마에겐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용서를 빈다고 용서해준 적도 없다. 지유는 가차 없이 벌을 받아야 했다. 고아가 되는 벌이었다.” (p.31)

 

유나에게 딸인 지유와 언니인 재인은 철저하게 종속된 존재여야 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존재다. 나는 엄마를 대하는 지유의 모습이 아슬아슬했다.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왜 그렇게 두리번거리니?”, “고갯짓하지 말라고 했지?”라는 유나의 목소리에 지유는 얼어붙는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늘 그래왔듯이. 아빠와 새아빠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다.

아빠는 왜 휴대전화를 놔두고 갔어요?”“오늘 새벽에 2층엔 왜 갔어요?”. 지유는 모두 목격하고 엄마의 범행을 알고 있었지만, 엄마도 지켜야 했다. 본능적으로. 그저, 요망한 생쥐가 꾐에 넘어가 엄마를 향한 작은 반항을 할 뿐이었다. ‘요망이라고 표현될 뿐, 사실 생쥐는 지유의 존재 자체다. 독자를 향한 속임수다. 결국, 살아남는 지유를 향한 복선이다.

 

아빠한테 이르기만 해봐. 저 오리처럼 만들어줄 테니까.” (p.160)

마지막 인형은 사람이 아니었다. 고무줄로 의자 등받이에 꽁꽁 묶어놓은 오리였다. 눈알 한쪽이 뽑히고, 배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물갈퀴가 갈기갈기 찢겨나간 오리였다. 다른 가족처럼 오리도 이름표를 차고 있었다.”

재인.” (p.157)

 

요망한 생쥐 덕에 발견한 오리인형은 이모이자 유나의 언니인 재인의 모습이다. 흉측한 오리 인형의 모습으로 잠긴 방안에 방치되었다. 그것을 조카인 지유가 발견한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유나에게 언니인 재인의 존재는 뺄셈이다. 두 명의 남편, 재혼한 남편의 아들, 딸까지. 모두 뺄셈을 해야 할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유나에게 타인의 존재는 불행의 가능성일 뿐이다. 불쌍하고 참담한 인생이라 생각되지만, 유나는 이것에 천착한다. 삶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딸아이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그녀에게 살인은 그저 뺄셈일 뿐이니, 쉽고 간편하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지유가 이유를 묻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는 내 작품이니까. 하지만. 이라고 토를 달자 엄마는 되물었다. 지유가 그린 그림은 누구의 것이지? 비로소 지유는 이해했다. 자신은 엄마의 것이었다.” (p.403)

 

무섭고 절대적인 엄마라는 존재가 그래도 지유에게는 있는 게 나은 것일까? 차라리 엄마의 형벌이 아닌 진짜 고아가 되는 게 나은 것일까? 작품을 읽는 내내 고민하고 지유와 비슷한 나이의 딸을 키우는 아빠 마음으로 지유를 상상하다 보니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하지만 기우였다. 작품의 결말로 향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탄식하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지유가 대단한 아이구나.”라고. 저 감자튀김은 짜고 물컹거릴 거야. 불고기버거는 달고 느끼해 콜라는 김이 다 빠졌어. 먹으면 토할지도 몰라. 해피밀 세트는 아빠 혼자 다 먹었다.” 철저하게 엄마에게 종속되어, 그렇게 먹고 싶은 해피밀 세트를 입에 대지도 않았던 지유다. 아빠를 기억해 내고, 지우지 않기 위해 아빠 인형을 부둥켜안는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지 않는 아빠에게만 함몰되지 않는다. 지유는 곁에서 새로운 운명이라는 책을 놓지 않는다. 차 안에서도 식탁에서도 방에서도 늘 지유 곁에 있다. 과거를 분명히 기억하고 그리워하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인물이다. 진취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낸다. 엄마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재인을 구해낸 이도 지유다. 가장 약한 존재로 보인 재인과 지유가 마침내 악의 반복을 끊어낸다.

 

그녀는 유나를 쫓아 늪을 건너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유나를 쫓아간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사랑한다고 여겼던 그녀 안의 착한 아이를 죽이러 가고 있었다. 절대로, 영원히 살아나지 못하도록.” (p.505)

 

악한 존재를 가까이에 둔 인물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맞춰야 하고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가장 작은 존재인 조카, 지유를 통해 재인은 비로소 구질구질한 인연의 고리를 끊는다. 굴레처럼 씌워진 부모의 기대와 부탁을 저 멀리 집어 던진다. 다행스러운 결말이다. 차마 멋진결말이라고 하지 못한 건, 이후의 일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유나가 없어진 세상이 이들에게, 특히 지유에게는 어떤 미래일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지유는 충분히 강하고 진취적인 인물이지만, 아이는 아이다. 확연히 단단해질 때까지 보호와 관심이 필요하다. 그것을 재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느냐에 따라 지유의 미래를 달라질 수 있다. 남겨진 이들의 숙제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처럼 이 책 완전한 행복도 상황과 심리묘사가 치밀하다.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었다. 방 안의 공기와 인물의 표정까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작가의 작품을 읽는 즐거움이다.

개인적으로,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바, 작품과 인물 속에서 내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늦게나마 깨달아 다행이기는 하지만 계속 모른 채 살았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려야죠. 내가 인간들 사이에서 특별하게 행동해도 되고,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또 나에게 오는 고통, 불행을 외면하거나 부정하면 다른 방어적인 것을 가져오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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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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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아내 과제를 도와주기 위해 자료를 찾아서 출력했다. 해상풍력 발전과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료를 찾아 취합하고 출력해 주제별로 분류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맞아, 맞아. 미세 플라스틱, 문제야 문제.’, ‘해상풍력 발전, 이거 완전 대박인데?’

자료를 찾아 분류하는 것만으로 환경과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한 몸을 내던진 투사가 된 듯했다.

그런데, 이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으며 나는 혼란에 빠졌다.

 

매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9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 중 0.03퍼센트만이 빨대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p.117)

과학자들은 스스로 발견한 사실에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전 세계 해수면에 떠 있는 모든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 총량은 매년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0.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미세플라스틱은 애처 예상했던 것보다 100분의 1수준으로 적었다.” (p.125)

 

뭐라고? 뉴스에서는 죽은 고래의 뱃속에서 현대문명에서 쏟아낸 플라스틱이 가득하다고 했었는데? 심지어 거북이 뱃속에서도 비닐과 플라스틱이 발견됐다고 했었는데?

그러면서 머지않아 인간들이 쏟아낸 분해되지 않는 폐기물로 가득 찬 바다가 될 거라고 했었는데?

책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이 있기는 하지만, 미세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80페이지가 넘는 각주와 참고문헌이 모두 거짓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저자가 책을 위해 본인이 원하는 자료만 취합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통계와 실험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움은 계속됐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35년간 사라진 것보다 더 많은 숲이 새로 생겼다. 그 면적을 합치면 텍사스와 알래스카를 합친 정도가 된다.” (p.92)

놀랍지만 사실이다. 사고 발생 이후에도 후쿠시마는 방사능 청정지역이다. 미국 콜로라도 평원의 자연 방사선량보다 방사선량이 낮다.” (p.343)

 

숲이 사라진다.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하다.

그런데, 이것도 아니란다. 더 많은 숲이 생기고 있고, 후쿠시마는 방사능 청정지역이란다. 이쯤 되면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책 쓴 사람, 일본 원자력 쪽이나 대기업 같은 데서 돈 받은 거 아니야?’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다.

 

 

진보가 환경주의자라고?

 

미국 민주당에는 진보의 가면을 쓴 채 자기네 이해관계에 따라 원자력을 몰아내야 하는 인사가 두루 포진해 있다. 환경주의로 화석 연료를 포장하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인 셈이다. 미국의 진보 진영은 화석 연료 업계가 저지르는 그린 워싱의 방조자 또는 공범이다.” (p.568)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부시와는 다를 줄 알았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또 부시와는 다를 줄 알았다. 도긴개긴이었다.

미국 민주당도 엉망진창이라는 것에 위로를 받아야 하나? 일약 환경주의자로 탈바꿈했던 엘 고어 같은 유명한 사람도 이해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에 얽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마찬가지다 싶었다.

 

브라워는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들 및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신재생 에너지를 옹호하면서 원자력 발전소 폐쇄가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녹색 씻김굿을 해 주는, 이후 수많은 환경 단체들이 걷게 된 길을 선구적으로 개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p.412)

언론은 수십여 년에 걸쳐 엑손모빌, 코크 형제, 기후 변화 회의론자들을 악마로 묘사해 왔다. 하지만 스타이어나 블룸버그 같은 화석 연료 억만장자들과 그들의 돈을 받는 환경주의자들에게는 거의 무제한으로 면죄부를 발급해 왔다.” (p.440)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신재생 에너지를 옹호한다! 대단한 머리다. 자신은 돈 하나 들이지 않고, 생색내고 돈까지 벌게 되었다. 좋은 롤모델이 생기니, 너도나도 그 길을 따라간다. 유튜브 채널 하나 대박 나면, 너도나도 따라 하기 바쁜 것처럼 말이다.

진보가 환경주의자라고? 웃기지 마. 도긴개긴이야.

 

 

환경 식민주의?

무엇보다 우리는 환경 식민주의(environmental colonialism)를 물리쳐야 한다. 또한, 오래된 원시림을 가진 국가의 경제 발전을 지지해야 한다.” (p.94)

 

환경 식민주의(environmental colonialism)’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우리에게는 뇌리에 단번에 꽂히는 단어와 개념이다. ‘환경을 볼모로 식민지배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브라질은 인구 중 4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다. 내가 콩고에서 만난 여성 베르나데테와 다를 바 없는 가난 속에서 산다.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환경주의자들은 간과하거나, 때로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p.98)

 

이미 자기네 나라에서는 모든 숲을 몽땅 파괴해놓고, 아주 고상하고 그럴싸한 조약을 들이밀려 아마존 삼림 파괴를 막자고 웅변을 늘어놓는다고 했던 브라질 전직 대통령 룰라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아마존 산림 파괴에 대한 분석을 소개하면서, 실제로 아마존 숲이 언론에서 떠들어 댄 것처럼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 돈을 얻는 것이다.

 

부유한 나라의 환경주의자들이 콩고 같은 나라의 가난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아니지만, 최소한 책임은 있다.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 사람들이 산업화와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그 길에 들어서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p.449)

부유한 국가의 NGO들과 정치인들이 자기네 나라는 절대 걷지 않았던 길을 가라고 가난한 국가들을 부추기는 것을 나는 무수히 목격해 왔다.” (p.457)

 

젊은 시절부터 누구보다 강경한 환경주의자였던 저자가 달라진 원인이다. 환경과 지구, 자연과 후손을 위한다고 하면서 저지르는 욕망 덩어리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회의를 느낀 것이다. 잘못된 것인데, 분명 틀린 것인데, 돈과 이해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환경주의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뉴스가 나오면 댓글 분위기는 뻔하다. 역시 후진국, 세계와 글로벌한 생각은 하지 못하는 후진국 등. 중국과 인도의 대기 미세먼지가 그렇게 심한 이유를 그들에게서만 찾았다. 선진국에서 입고 먹고 사용하는 물품과 음식, 제조품 등의 상당수가 인도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린 딸아이를 키우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매번 서쪽 바다 건너를 원망했다. 하늘까지 닿은 벽을 세우거나 대륙 전체를 거대한 밀폐 용기에 집어넣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나서, 집에 메이드인차이나가 얼마나 될까 싶어 잠시 찾아봤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많이 찾았다. 나도 어느새 선진국 국민 흉내 내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서구는 콩고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콩고에서 나온 팜유 덕분에 고래는 멸종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콩고인들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다. 벨기에는 식민지를 건설한 후 국가를 세웠지만 1960년대 초 아무런 대책 없이 떠나 버렸다. 그 이후로 콩고는 길고 끔찍한 방황의 길을 걸었다.” (p.543)

고릴라와 다른 야생 동물들을 진정 위협하는 건 석유 회사나 경제성장이 아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나무를 연료로 쓰는 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p.158)

 

환경과 자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 식민지배를 하며 좋은 거, 필요한 거 쏙쏙 빼먹고 난 뒤 모른 채 해버렸다. 본인들은 온갖 지하자원과 석탄, 석유 사용하며 잘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 콩고가 있었네. 맞아, 아름다운 초원과 야생 동물, 고릴라? 고릴라! 맞다. 고릴라를 살려야 해.’

고릴라를 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죽어난다. 콩고사람들이.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그 해법은 콩고강에 그랜드잉가댐을 건설하는 것이다. (중략) 잉가댐을 건설하면 10만 메가와트급 발전이 가능합니다. 아프리카 전체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죠.” (p.188)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값싼 전기와 LPG를 공급하기 위해, 또 유럽 연합과 미국 자선 사업가의 원조금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콩고는 치안과 평화 그리고 무엇보다 산업화를 이루어야 한다. 수많은 나라가 과거에 그런 방식으로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p.188)

 

댐과 원자력 발전소는 없애는 추세다. 선진국들이 그러하다. 자기들만 하면 되는데, 오지랖이 넓으신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 가난한 국가들도 그러길 강요한다. 폭력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가 소개한 환경 식민주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들은 쓸 거 다 쓰고, 할 거 다 해서 먹고 살기 좋아져 놓고, 이제 가난한 나라들이 뭘 좀 하려고 하면 모조리 딴지를 거는 것이다.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환경 식민주의! 어이가 없네. 말 그대로 내로남불.

 

 

충분히 관리 가능함.

 

근본적으로 신재생 에너지의 문제는 기술로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게 문제다.” (p.373)

 

앞서 밝힌바, 아내의 과제 자료를 찾으며 알게 된 부분이다. 풍력 발전이라는 것의 장단점을 찾아보면서 그때는 생각했다.

우와 돈 많이 든다. 단점도 진짜 많네? 근데, 이러면 바다 생물들도 피해를 보는 거 아냐? 그래도! 환경과 후손을 위해서라면 이쪽으로 가야지.’라고. 근데, 저자 말이 진짜 맞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게 문제다. 지속할 수 있고, 어떤 변수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있다. 풍력 발전을 포함한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 대한 광고나 홍보에서는 대체로 단점은 없다. 화석 연료와 원자력 에너지의 단점을 더욱 부각해 비교할 뿐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가 새삼스러울 만큼 일방의 주장에 호도됐던 것일 수도 있다.

 

내 목표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편적 풍요를 누리게끔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p.28)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는 중요하지만, 관리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세계의 종말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p.29)

 

저자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서구에서는 세계의 종말로 묘사해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발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부터 급속도로 신재생 에너지 산업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대체로 진보적 어젠다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의를 했던 터라, 원전 폐쇄는 당연한 것이었다. 진리처럼 받아들였었다. 원자력 에너지가 가장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솔직히, 이 책 한 권을 읽고 내 생각이 모두 바뀌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원자력이 그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객관적 주장 앞에 나는 아직 갈팡질팡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국가에서 탄소 배출량이 1970년대 정점을 찍고 내려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석탄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룬 덕분이다. 빌 매키번, 그레타 툰베리 등 많은 기후 활동가들이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기술의 힘으로 우리는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다.” (p.79)

 

이미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었고, 그것은 충분히 관리 가능하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8살 딸아이에게 편하게 말했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배워오는 것을 같이 이야기하고,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은 같이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자의 주장과 인용한 자료가 거짓이라면 차라리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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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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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낸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내는 울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놀란 채 내 얼굴과 아내가 들어간 방문을 번갈아 보실 뿐이었다. 나는 마시던 술잔을 마저 비우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찬 바람을 쐬어도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본가에서, 그것도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그리고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다시 방으로 돌아가 한 행동이 더 가관이었다. 아내가 들어간 방문을 열어 보니, 엎드려 울고 있었다.

어른 앞에서 무슨 행동이야? 빨리 나와!”

다시 앉은 저녁 밥상 앞에 나와 아내는 말이 없었고, 애면글면 어머니만 이것저것 물으시고 훈계하시고 위로하시며 시간이 지날 뿐이었다. 취기는 더욱 올랐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아침을 맞았다.

나는 방에서 혼자 잠들었고, 아내와 어머니는 거실에서 함께 자고 있었다.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와의 문제는 당신 자신과의 문제와 같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처럼 진저리나고 경솔한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할 수 있지만, 내일, 다음 달, 10년 후에도 그 또는 그녀와 함께 눈을 뜰 것이다. 다른 시간대에 되풀이될 때 효과가 없는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한다면 당신은 퇴행성 게임을 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두 사람 모두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 문제는 미래의 당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문제와 내용이 다르지 않다. 결론이 같기 때문이다.” (p.157), <법칙 4> 남들이 책임을 방치한 곳에 기회가 숨어 있음을 인식하라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어 두고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냥 저 구석에 처박아 놓은 채 모른 체하고 있었다. 언제든 활화산처럼 터져버릴 수 있는 위험을 머리에 이고 산 것이다. 묵히고 삭혀두던 것이 어머니 앞에서 터져버렸다. 이런, 젠장.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오후, 아내가 먼저 얘기를 하자고 했다.

아내는 많이 울었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있는 문제, 아내 자신과 나의 문제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모조리 맞는 말이었다. 나는 변명을 할 수도, 할 마음도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 생활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잘 이겨내고 해결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처럼 진저리나고 경솔한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하고 있었고, ‘효과가 없는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하는 퇴행성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 구석으로 밀쳐둔 문제의 근원들이 터져버리지 않았다면 내일, 다음 달, 10년 후에도 함께 눈 뜰 아내와 함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아내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 탓에 눈물은 계속 흘렸지만, 우리에게 벌어진 모든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감정적 동요를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고 지혜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아내와의 대화 직전까지도 내 마음 한쪽에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모든 일의 근원을 아내에게서 찾으려 했다. 평소, 술자리 후 주사란 걸 해본 적이 없다는 둥, 네가 그렇게 했으니 오죽하면 내가 그랬겠냐는 둥, 아무리 그래도 시어머니 앞에서 그런 행동은 아니지 않냐는 둥.

부끄러웠다. 아내와의 대화가 계속될수록 내 생각도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가 대화를 나누는 주방 식탁 위에서 드론으로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철저히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본가에서 벌어진 그 날 저녁으로 의식의 전환이 확장되었다.

파편화된 결혼 생활의 기억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하지 못할 것들이 정리되었다. 마침내 나는 입에 발린 사과를 하는 대신 앞으로의 각오를 세우게 되었다. 하나, 둘 내 각오를 설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날의 1시간 정도의 대화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10년 동안 연애했고, 10년 동안 함께 살았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이 책 질서 너머를 미리 읽었다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와 아내와의 대화와 그 대화를 통해 내린 결론들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사실, 나는 고집도 있고 자기주장도 강한 터라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조던 피터슨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찾아 읽지 않는 편이었다. 다만, 책에서도 저자가 여러 번 언급하는바, 30년의 결혼 생활을 한 선배로서 하는 이야기를 읽으니 우리의 경험에 대한 보증이 되는 것 같았다. 친한 친구나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는 좀처럼 진솔한 부부간의 상황은 잘 나누지 않게 된다. 굳이 그들 앞에서 부부가 발가벗겨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질 뿐이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은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에 관해 일주일에 90분씩 배우자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p.336)

결론적으로, 낭만적인 관계가 유지되려면 먼저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그에 대해 배우자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p.339), <법칙 10> 관계의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 성실히 계획하고 관리하라

 

책을 읽고 <법칙 4><법칙 10>의 내용에 대해 아내와 대화를 나눴다. 우리 부부가 당면했을지 모를 큰 위기를 잘 넘겼다는 데 안도했다. 우리의 방법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제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관계에의 자신감을 얻었다.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아내를 대하던 말투나 호칭도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바, 갈등 덩어리를 구석에 밀어 넣은 채 생활할 때는 호칭이 이상했다.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말투와 호칭으로 아내를 대했다. 표정과 몸짓은 더 심했을 것이다. 다정하고 따스한 대화나 스킨쉽은 거의 없었다. 또다시 부끄럽고 미안했다.

부부간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케케묵은 감정싸움에서부터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겹치고 쌓인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스스로 약속한 각오를 지키려 노력한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갑자기 표정과 말투, 몸짓과 분위기를 바꾼다는 것이 사이즈가 하나도 안 맞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은 것처럼 이상했다. 한 달쯤 지나니 덜 어색해진 지금이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12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관계의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실히 계획하고 관리해야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특히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고통과 배신 등 삶의 재앙은 비통함을 끌어들이는 중력 비슷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비통해하기로 선택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으며, 그 결과는 분명 나쁘다.”

감사는 원망의 대안이며, 어쩌면 유일한 대안일지 모른다.” (p.423)

우리가 용기를 낸다면 상대방의 한계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를 발견할 수 있다.” (p.430), <법칙 12>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그 일을 겪지 않고 읽었다면 또 하나 마나 한 소리네. 종교 경전이야 뭐야?라고 했을 것이다. 일을 겪고 나니, 새롭게 읽힌다.

우리가 용기를 낸다면 상대방의 한계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를 발견할 수 있다.라는 문장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비록, 아내의 용기가 나의 용기보다 몇 배로 크고 신속했지만, 나 또한 용기를 낸 것이다. 내 잘못을 오롯이 펼쳐내 들여다봤다. 나와 아내, 우리 부부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샅샅이 살폈다. 어려운 일이었다. 꽁꽁 묵혀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용기를 통해 분명 우리는 이전보다 나은 관계를 맺고 있다. 서로에게 더 집중하게 되고,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으며, 우리의 진전된 관계를 딸아이가 알아채기 시작했다.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정도 아니지만, 계속될 부부관계에서 또다시 닥쳐올지 모를 어려움에 맞설 용기는 발견했다. ‘용기의 영양제라고 하고 싶다. 피하지 않고, 함께 맞설 것이라는 신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시기가 딱 좋았다. 부부에게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용하며 읽을 수 있었다. 소장해 한 번씩 꺼내 읽으며 상태와 상황을 점검하기 좋을 것 같다.

소개한 법칙들 말고도 인상 깊은 법칙들과 내용이 있었다. 간략히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

<법칙 2> 내가 누구일 수 있는지 상상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라

어떤 것을 겨냥하라. 현재 개념화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를 정하라. 그 목표를 향해 비틀대며 나아가라. 그 과정에서 당신의 실수와 오해를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마주해 잘못을 바로잡아라.” (p.108)

 

<법칙 6>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은 순진하고 자아도취적이며, 그것이 조장하는 운동들은 분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거짓된 성취감을 준다.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이 신봉하는 공리들은 개종을 주도하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신과 다를 바가 없다.” (p.209)

 

 

<법칙 9>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면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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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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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 전, 아내 과제를 도와주기 위해 자료를 찾아서 출력했다. 해상풍력 발전과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료를 찾아 취합하고 출력해 주제별로 분류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맞아, 맞아. 미세 플라스틱, 문제야 문제.’, ‘해상풍력 발전, 이거 완전 대박인데?’

자료를 찾아 분류하는 것만으로 환경과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한 몸을 내던진 투사가 된 듯했다.

그런데, 이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으며 나는 혼란에 빠졌다.

   

 

매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9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 중 0.03퍼센트만이 빨대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p.117)

과학자들은 스스로 발견한 사실에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전 세계 해수면에 떠 있는 모든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 총량은 매년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0.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미세플라스틱은 애처 예상했던 것보다 100분의 1수준으로 적었다.” (p.125)

    

 

  뭐라고? 뉴스에서는 죽은 고래의 뱃속에서 현대문명에서 쏟아낸 플라스틱이 가득하다고 했었는데? 심지어 거북이 뱃속에서도 비닐과 플라스틱이 발견됐다고 했었는데?

그러면서 머지않아 인간들이 쏟아낸 분해되지 않는 폐기물로 가득 찬 바다가 될 거라고 했었는데?

  책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이 있기는 하지만, 미세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80페이지가 넘는 각주와 참고문헌이 모두 거짓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저자가 책을 위해 본인이 원하는 자료만 취합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통계와 실험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움은 계속됐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35년간 사라진 것보다 더 많은 숲이 새로 생겼다. 그 면적을 합치면 텍사스와 알래스카를 합친 정도가 된다.” (p.92)

놀랍지만 사실이다. 사고 발생 이후에도 후쿠시마는 방사능 청정지역이다. 미국 콜로라도 평원의 자연 방사선량보다 방사선량이 낮다.” (p.343)

    

 

숲이 사라진다.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하다.

그런데, 이것도 아니란다. 더 많은 숲이 생기고 있고, 후쿠시마는 방사능 청정지역이란다. 이쯤 되면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책 쓴 사람, 일본 원자력 쪽이나 대기업 같은 데서 돈 받은 거 아니야?’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다.

 

    

 

진보가 환경주의자라고?

    

 

미국 민주당에는 진보의 가면을 쓴 채 자기네 이해관계에 따라 원자력을 몰아내야 하는 인사가 두루 포진해 있다. 환경주의로 화석 연료를 포장하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인 셈이다. 미국의 진보 진영은 화석 연료 업계가 저지르는 그린 워싱의 방조자 또는 공범이다.” (p.568)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부시와는 다를 줄 알았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또 부시와는 다를 줄 알았다. 도긴개긴이었다.

미국 민주당도 엉망진창이라는 것에 위로를 받아야 하나? 일약 환경주의자로 탈바꿈했던 엘 고어 같은 유명한 사람도 이해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에 얽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마찬가지다 싶었다.

    

 

브라워는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들 및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신재생 에너지를 옹호하면서 원자력 발전소 폐쇄가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녹색 씻김굿을 해 주는, 이후 수많은 환경 단체들이 걷게 된 길을 선구적으로 개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p.412)

언론은 수십여 년에 걸쳐 엑손모빌, 코크 형제, 기후 변화 회의론자들을 악마로 묘사해 왔다. 하지만 스타이어나 블룸버그 같은 화석 연료 억만장자들과 그들의 돈을 받는 환경주의자들에게는 거의 무제한으로 면죄부를 발급해 왔다.” (p.440)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신재생 에너지를 옹호한다! 대단한 머리다. 자신은 돈 하나 들이지 않고, 생색내고 돈까지 벌게 되었다. 좋은 롤모델이 생기니, 너도나도 그 길을 따라간다. 유튜브 채널 하나 대박 나면, 너도나도 따라 하기 바쁜 것처럼 말이다.

진보가 환경주의자라고? 웃기지 마. 도긴개긴이야.

 

    

 

 

환경 식민주의?

 

무엇보다 우리는 환경 식민주의(environmental colonialism)를 물리쳐야 한다. 또한, 오래된 원시림을 가진 국가의 경제 발전을 지지해야 한다.” (p.94)

    

 

환경 식민주의(environmental colonialism)’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우리에게는 뇌리에 단번에 꽂히는 단어와 개념이다. ‘환경을 볼모로 식민지배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브라질은 인구 중 4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다. 내가 콩고에서 만난 여성 베르나데테와 다를 바 없는 가난 속에서 산다.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환경주의자들은 간과하거나, 때로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p.98)

    

 

  이미 자기네 나라에서는 모든 숲을 몽땅 파괴해놓고, 아주 고상하고 그럴싸한 조약을 들이밀려 아마존 삼림 파괴를 막자고 웅변을 늘어놓는다고 했던 브라질 전직 대통령 룰라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아마존 산림 파괴에 대한 분석을 소개하면서, 실제로 아마존 숲이 언론에서 떠들어 댄 것처럼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 돈을 얻는 것이다.

    

 

부유한 나라의 환경주의자들이 콩고 같은 나라의 가난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아니지만, 최소한 책임은 있다.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 사람들이 산업화와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그 길에 들어서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p.449)

부유한 국가의 NGO들과 정치인들이 자기네 나라는 절대 걷지 않았던 길을 가라고 가난한 국가들을 부추기는 것을 나는 무수히 목격해 왔다.” (p.457)

    

 

  젊은 시절부터 누구보다 강경한 환경주의자였던 저자가 달라진 원인이다. 환경과 지구, 자연과 후손을 위한다고 하면서 저지르는 욕망 덩어리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회의를 느낀 것이다. 잘못된 것인데, 분명 틀린 것인데, 돈과 이해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환경주의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뉴스가 나오면 댓글 분위기는 뻔하다. 역시 후진국, 세계와 글로벌한 생각은 하지 못하는 후진국 등. 중국과 인도의 대기 미세먼지가 그렇게 심한 이유를 그들에게서만 찾았다. 선진국에서 입고 먹고 사용하는 물품과 음식, 제조품 등의 상당수가 인도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린 딸아이를 키우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매번 서쪽 바다 건너를 원망했다. 하늘까지 닿은 벽을 세우거나 대륙 전체를 거대한 밀폐 용기에 집어넣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나서, 집에 메이드인차이나가 얼마나 될까 싶어 잠시 찾아봤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많이 찾았다. 나도 어느새 선진국 국민 흉내 내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서구는 콩고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콩고에서 나온 팜유 덕분에 고래는 멸종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콩고인들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다. 벨기에는 식민지를 건설한 후 국가를 세웠지만 1960년대 초 아무런 대책 없이 떠나 버렸다. 그 이후로 콩고는 길고 끔찍한 방황의 길을 걸었다.” (p.543)

고릴라와 다른 야생 동물들을 진정 위협하는 건 석유 회사나 경제성장이 아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나무를 연료로 쓰는 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p.158)

    

 

  환경과 자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 식민지배를 하며 좋은 거, 필요한 거 쏙쏙 빼먹고 난 뒤 모른 채 해버렸다. 본인들은 온갖 지하자원과 석탄, 석유 사용하며 잘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 콩고가 있었네. 맞아, 아름다운 초원과 야생 동물, 고릴라? 고릴라! 맞다. 고릴라를 살려야 해.’

고릴라를 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죽어난다. 콩고사람들이.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그 해법은 콩고강에 그랜드잉가댐을 건설하는 것이다. (중략) 잉가댐을 건설하면 10만 메가와트급 발전이 가능합니다. 아프리카 전체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죠.” (p.188)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값싼 전기와 LPG를 공급하기 위해, 또 유럽 연합과 미국 자선 사업가의 원조금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콩고는 치안과 평화 그리고 무엇보다 산업화를 이루어야 한다. 수많은 나라가 과거에 그런 방식으로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p.188)

 

 

  댐과 원자력 발전소는 없애는 추세다. 선진국들이 그러하다. 자기들만 하면 되는데, 오지랖이 넓으신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 가난한 국가들도 그러길 강요한다. 폭력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가 소개한 환경 식민주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들은 쓸 거 다 쓰고, 할 거 다 해서 먹고 살기 좋아져 놓고, 이제 가난한 나라들이 뭘 좀 하려고 하면 모조리 딴지를 거는 것이다.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환경 식민주의! 어이가 없네. 말 그대로 내로남불.

 

    

 

충분히 관리 가능함.

    

 

근본적으로 신재생 에너지의 문제는 기술로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게 문제다.” (p.373)

    

 

  앞서 밝힌바, 아내의 과제 자료를 찾으며 알게 된 부분이다. 풍력 발전이라는 것의 장단점을 찾아보면서 그때는 생각했다.

우와 돈 많이 든다. 단점도 진짜 많네? 근데, 이러면 바다 생물들도 피해를 보는 거 아냐? 그래도! 환경과 후손을 위해서라면 이쪽으로 가야지.’라고. 근데, 저자

 

 말이 진짜 맞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게 문제다. 지속할 수 있고, 어떤 변수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있다. 풍력 발전을 포함한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 대한 광고나 홍보에서는 대체로 단점은 없다. 화석 연료와 원자력 에너지의 단점을 더욱 부각해 비교할 뿐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가 새삼스러울 만큼 일방의 주장에 호도됐던 것일 수도 있다.

 

 

내 목표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편적 풍요를 누리게끔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p.28)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는 중요하지만, 관리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세계의 종말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p.29)

    

 

  저자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서구에서는 세계의 종말로 묘사해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발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부터 급속도로 신재생 에너지 산업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대체로 진보적 어젠다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의를 했던 터라, 원전 폐쇄는 당연한 것이었다. 진리처럼 받아들였었다. 원자력 에너지가 가장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솔직히, 이 책 한 권을 읽고 내 생각이 모두 바뀌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원자력이 그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객관적 주장 앞에 나는 아직 갈팡질팡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국가에서 탄소 배출량이 1970년대 정점을 찍고 내려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석탄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룬 덕분이다. 빌 매키번, 그레타 툰베리 등 많은 기후 활동가들이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기술의 힘으로 우리는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다.” (p.79)

    

 

 이미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었고, 그것은 충분히 관리 가능하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8살 딸아이에게 편하게 말했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배워오는 것을 같이 이야기하고,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은 같이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자의 주장과 인용한 자료가 거짓이라면 차라리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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