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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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다.


 아파트 관리실은 위탁업체에 속해 있다. ‘자치 관리를 하는 아파트도 있지만 소수다. 대다수 아파트 노동자들은 위탁업체소속이다. 관리실을 제외한 경비·미화 노동자들 또한 각각의 위탁업체하청에 속해 있다.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각기 다른 회사명이 프린팅된 작업복을 입고 있다.

 내 직책은 기전 주임이다. 기계·설비·영선·전기 등이 주 업무다. 하지만 하는 일은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세대 민원이 오면 갖가지 일을 한다. 한마디로 아파트 안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업무가 단속업무. ‘단속의 뜻이 정확히 뭔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밤샘 근무, 당직근무로 쉽게 풀어 설명할 수 있겠다. 주간에는 관리소장을 비롯한 과장, 경리와 함께 근무하고, 저녁 6시 일근 직들이 퇴근하면 다음 날 아침 근무자가 출근하기 전까지 당직근무를 하는 것이다.


 아파트 단속직의 월급은 많지 않다. 세대수가 많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일 경우 월급은 더 많아지지만 그만큼 하는 일도 많아진다.

야간 근무를 하고 나서 다음 날 쉬는 것이 계획하고 있는 다음 진로를 위한 시간 투자가 되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신입 직원과 30년 일한 숙련 직원의 월급이 똑같은 건 간접고용 세계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p.53)

 

 앞서 말한 위탁업체는 유령과도 같다. 아파트에 근무한 지 1년이 지났는데, 본사 직원들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관리비를 받아 해당 업체에 소속된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데, 내 몫으로 얼마가 책정되어 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간접고용중간착취의 전형이다. 아파트 일에 대해서 1도 모르는 신입 직원과 나의 월급은 똑같다. 1원도 차이가 없다. 아파트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2년에서 3년 주기로 재계약을 한다. 아파트마다 만들어진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위)’에서 결정하는데, 아파트 관리실에서 일하는 관리소장 이하 직원들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굳이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않더라도 입대위전화 한 통으로 위탁업체가 한순간에 바뀔 수 있고, 관리실 직원들을 해고 할 수 있다.

 

밥 먹다가도 짐 들어오거나 청소차 들어오면 나가니 휴식이 휴식이 아니지요. 말만 자유 시간이지 대기조로 있는 거예요.” (p.43)

 

 아파트 주민의 갑질에 관한 기사나 보도가 빈번하게 나와 이제는 근무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도대체 회사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아오는지, 퇴근 후 집에 와서 관리실에 고스란히 쏟아낸다. 옛날 일이 아니다. 언제든지 보도되고 기사화될 일상이 넘쳐난다.

이런 스트레스는 아파트에서 일하니까 감수할 수 있다. 월급만 제대로 주면 된다. 하지만, 내 월급은 최저시급에 적용되어 있다. 그나마 추가로 적용되는 야간 수당도 최저기준 정도에 불과하다. 정말 궁금하다.

내가 속한 위탁업체에서 관리비·운영비명목으로 제외한 돈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다.

 

용역업체는 원청에겐 도급계약서대로 업무를 잘 수행하면 되는 것이고, 노동자에겐 근로계약서대로 임금만 지급하면 되는 것이다. 원청과 맺은 도급계약과 노동자와 맺은 근로계약은 완전히 별개의 계약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서로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 용역업체는 두 계약 사이의 빈틈을 노렸고, 결국 중간착취는 합법적인 지위를 얻고 있었다.” (p.28)

용역업체들은 원청이 지급한 돈에서 자신들이 떼어가는 적지 않은 액수를 관리비라고 주장한다.” (p.56)

 

 IMF는 노동 유연성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고, 노동 유연성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낳았다. 매달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고,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위해 수십만의 청년들이 고시생이 된다. 청춘의 고시생들이 희망을 가지고 공부가 아닌 중소·강소업체에 취직하라고? 청춘은 아픈 거니까 더 열심히 하라고? 개소리다.

중간착취의 합법적 지위가 고착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도무지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지옥도 속으로 너희들도 빠지라고 끌어당길 수 없다. 처절한 현실의 구렁텅이는 실전이니까.

내가 그만둘 각오를 하고 도급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줄까? 그들에게 나는 그저 수많은 기계약아파트 중 한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일 뿐이다.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 열심히,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 근로자’. 도급계약서 따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하는 수많은 근로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본급이 오르자 그 외의 급여 항목을 줄이는 일은 매년 반복됐다.” (p.35)

저는 최근 2년간 안전화 한 켤레만 받았고, 작업복은 받은 적이 없어요. 그렇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 사장이 피복비를 빼돌리고 있다는 얘기까지 도는 거죠.” (p.114)

 

 최저시급이 작년보다 다소 올랐다. 같은 달 작년 월급과 비교해보면 정확히 38천 원이 올랐다. 대신 검침비가 줄었다. 5만 원에서 3만 원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한 법안은 네 가지였다.” (p.254)

(1) “용역업체가 임금에 손대지 못하게 하라관련 법 개정

(2) “파견 수수료는 정해진 만큼만파견법 개정안

(3) “원청도 사용자가노조법 개정안

(4)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법을 만들자별도법 제정

 

 이 책을 펴낸 기자들이 진정한 르포르타주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기사와 인터뷰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법부를 찾아간다. 국회의원들에게 법안을 제시한다. 거대한 지옥도가 너무 깊고 넓어 제시한 법안들이 개정되거나 제정될지는 미지수다. 저자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간접고용중간착취에 대해 보도하고 감시한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혹시 국회에서 진일보한 법안이 개정되고 제정되더라도 노동현장에서 적용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실행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내일도 우리는, 우리를 집어삼킬 듯 일렁이는 지옥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호기롭게 “‘도급계약서좀 보여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자가 몇이나 될까. 나 또한 중간착취의 지옥도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당장 눈에 띌 만한 변화와 개선을 기대할 수 없을 때는 하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눈 감고 입 닫고 귀 막은 채, 그저 지옥도를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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