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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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아내 과제를 도와주기 위해 자료를 찾아서 출력했다. 해상풍력 발전과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료를 찾아 취합하고 출력해 주제별로 분류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맞아, 맞아. 미세 플라스틱, 문제야 문제.’, ‘해상풍력 발전, 이거 완전 대박인데?’

자료를 찾아 분류하는 것만으로 환경과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한 몸을 내던진 투사가 된 듯했다.

그런데, 이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으며 나는 혼란에 빠졌다.

 

매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9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 중 0.03퍼센트만이 빨대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p.117)

과학자들은 스스로 발견한 사실에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전 세계 해수면에 떠 있는 모든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 총량은 매년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0.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미세플라스틱은 애처 예상했던 것보다 100분의 1수준으로 적었다.” (p.125)

 

뭐라고? 뉴스에서는 죽은 고래의 뱃속에서 현대문명에서 쏟아낸 플라스틱이 가득하다고 했었는데? 심지어 거북이 뱃속에서도 비닐과 플라스틱이 발견됐다고 했었는데?

그러면서 머지않아 인간들이 쏟아낸 분해되지 않는 폐기물로 가득 찬 바다가 될 거라고 했었는데?

책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이 있기는 하지만, 미세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80페이지가 넘는 각주와 참고문헌이 모두 거짓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저자가 책을 위해 본인이 원하는 자료만 취합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통계와 실험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움은 계속됐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35년간 사라진 것보다 더 많은 숲이 새로 생겼다. 그 면적을 합치면 텍사스와 알래스카를 합친 정도가 된다.” (p.92)

놀랍지만 사실이다. 사고 발생 이후에도 후쿠시마는 방사능 청정지역이다. 미국 콜로라도 평원의 자연 방사선량보다 방사선량이 낮다.” (p.343)

 

숲이 사라진다.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하다.

그런데, 이것도 아니란다. 더 많은 숲이 생기고 있고, 후쿠시마는 방사능 청정지역이란다. 이쯤 되면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책 쓴 사람, 일본 원자력 쪽이나 대기업 같은 데서 돈 받은 거 아니야?’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다.

 

 

진보가 환경주의자라고?

 

미국 민주당에는 진보의 가면을 쓴 채 자기네 이해관계에 따라 원자력을 몰아내야 하는 인사가 두루 포진해 있다. 환경주의로 화석 연료를 포장하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인 셈이다. 미국의 진보 진영은 화석 연료 업계가 저지르는 그린 워싱의 방조자 또는 공범이다.” (p.568)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부시와는 다를 줄 알았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또 부시와는 다를 줄 알았다. 도긴개긴이었다.

미국 민주당도 엉망진창이라는 것에 위로를 받아야 하나? 일약 환경주의자로 탈바꿈했던 엘 고어 같은 유명한 사람도 이해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에 얽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마찬가지다 싶었다.

 

브라워는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들 및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신재생 에너지를 옹호하면서 원자력 발전소 폐쇄가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녹색 씻김굿을 해 주는, 이후 수많은 환경 단체들이 걷게 된 길을 선구적으로 개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p.412)

언론은 수십여 년에 걸쳐 엑손모빌, 코크 형제, 기후 변화 회의론자들을 악마로 묘사해 왔다. 하지만 스타이어나 블룸버그 같은 화석 연료 억만장자들과 그들의 돈을 받는 환경주의자들에게는 거의 무제한으로 면죄부를 발급해 왔다.” (p.440)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신재생 에너지를 옹호한다! 대단한 머리다. 자신은 돈 하나 들이지 않고, 생색내고 돈까지 벌게 되었다. 좋은 롤모델이 생기니, 너도나도 그 길을 따라간다. 유튜브 채널 하나 대박 나면, 너도나도 따라 하기 바쁜 것처럼 말이다.

진보가 환경주의자라고? 웃기지 마. 도긴개긴이야.

 

 

환경 식민주의?

무엇보다 우리는 환경 식민주의(environmental colonialism)를 물리쳐야 한다. 또한, 오래된 원시림을 가진 국가의 경제 발전을 지지해야 한다.” (p.94)

 

환경 식민주의(environmental colonialism)’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우리에게는 뇌리에 단번에 꽂히는 단어와 개념이다. ‘환경을 볼모로 식민지배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브라질은 인구 중 4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다. 내가 콩고에서 만난 여성 베르나데테와 다를 바 없는 가난 속에서 산다.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환경주의자들은 간과하거나, 때로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p.98)

 

이미 자기네 나라에서는 모든 숲을 몽땅 파괴해놓고, 아주 고상하고 그럴싸한 조약을 들이밀려 아마존 삼림 파괴를 막자고 웅변을 늘어놓는다고 했던 브라질 전직 대통령 룰라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아마존 산림 파괴에 대한 분석을 소개하면서, 실제로 아마존 숲이 언론에서 떠들어 댄 것처럼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 돈을 얻는 것이다.

 

부유한 나라의 환경주의자들이 콩고 같은 나라의 가난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아니지만, 최소한 책임은 있다.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 사람들이 산업화와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그 길에 들어서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p.449)

부유한 국가의 NGO들과 정치인들이 자기네 나라는 절대 걷지 않았던 길을 가라고 가난한 국가들을 부추기는 것을 나는 무수히 목격해 왔다.” (p.457)

 

젊은 시절부터 누구보다 강경한 환경주의자였던 저자가 달라진 원인이다. 환경과 지구, 자연과 후손을 위한다고 하면서 저지르는 욕망 덩어리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회의를 느낀 것이다. 잘못된 것인데, 분명 틀린 것인데, 돈과 이해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환경주의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뉴스가 나오면 댓글 분위기는 뻔하다. 역시 후진국, 세계와 글로벌한 생각은 하지 못하는 후진국 등. 중국과 인도의 대기 미세먼지가 그렇게 심한 이유를 그들에게서만 찾았다. 선진국에서 입고 먹고 사용하는 물품과 음식, 제조품 등의 상당수가 인도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린 딸아이를 키우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매번 서쪽 바다 건너를 원망했다. 하늘까지 닿은 벽을 세우거나 대륙 전체를 거대한 밀폐 용기에 집어넣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나서, 집에 메이드인차이나가 얼마나 될까 싶어 잠시 찾아봤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많이 찾았다. 나도 어느새 선진국 국민 흉내 내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서구는 콩고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콩고에서 나온 팜유 덕분에 고래는 멸종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콩고인들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다. 벨기에는 식민지를 건설한 후 국가를 세웠지만 1960년대 초 아무런 대책 없이 떠나 버렸다. 그 이후로 콩고는 길고 끔찍한 방황의 길을 걸었다.” (p.543)

고릴라와 다른 야생 동물들을 진정 위협하는 건 석유 회사나 경제성장이 아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나무를 연료로 쓰는 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p.158)

 

환경과 자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 식민지배를 하며 좋은 거, 필요한 거 쏙쏙 빼먹고 난 뒤 모른 채 해버렸다. 본인들은 온갖 지하자원과 석탄, 석유 사용하며 잘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 콩고가 있었네. 맞아, 아름다운 초원과 야생 동물, 고릴라? 고릴라! 맞다. 고릴라를 살려야 해.’

고릴라를 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죽어난다. 콩고사람들이.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그 해법은 콩고강에 그랜드잉가댐을 건설하는 것이다. (중략) 잉가댐을 건설하면 10만 메가와트급 발전이 가능합니다. 아프리카 전체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죠.” (p.188)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값싼 전기와 LPG를 공급하기 위해, 또 유럽 연합과 미국 자선 사업가의 원조금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콩고는 치안과 평화 그리고 무엇보다 산업화를 이루어야 한다. 수많은 나라가 과거에 그런 방식으로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p.188)

 

댐과 원자력 발전소는 없애는 추세다. 선진국들이 그러하다. 자기들만 하면 되는데, 오지랖이 넓으신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 가난한 국가들도 그러길 강요한다. 폭력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가 소개한 환경 식민주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들은 쓸 거 다 쓰고, 할 거 다 해서 먹고 살기 좋아져 놓고, 이제 가난한 나라들이 뭘 좀 하려고 하면 모조리 딴지를 거는 것이다.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환경 식민주의! 어이가 없네. 말 그대로 내로남불.

 

 

충분히 관리 가능함.

 

근본적으로 신재생 에너지의 문제는 기술로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게 문제다.” (p.373)

 

앞서 밝힌바, 아내의 과제 자료를 찾으며 알게 된 부분이다. 풍력 발전이라는 것의 장단점을 찾아보면서 그때는 생각했다.

우와 돈 많이 든다. 단점도 진짜 많네? 근데, 이러면 바다 생물들도 피해를 보는 거 아냐? 그래도! 환경과 후손을 위해서라면 이쪽으로 가야지.’라고. 근데, 저자 말이 진짜 맞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게 문제다. 지속할 수 있고, 어떤 변수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있다. 풍력 발전을 포함한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 대한 광고나 홍보에서는 대체로 단점은 없다. 화석 연료와 원자력 에너지의 단점을 더욱 부각해 비교할 뿐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가 새삼스러울 만큼 일방의 주장에 호도됐던 것일 수도 있다.

 

내 목표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편적 풍요를 누리게끔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p.28)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는 중요하지만, 관리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세계의 종말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p.29)

 

저자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서구에서는 세계의 종말로 묘사해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발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부터 급속도로 신재생 에너지 산업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대체로 진보적 어젠다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의를 했던 터라, 원전 폐쇄는 당연한 것이었다. 진리처럼 받아들였었다. 원자력 에너지가 가장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솔직히, 이 책 한 권을 읽고 내 생각이 모두 바뀌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원자력이 그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객관적 주장 앞에 나는 아직 갈팡질팡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국가에서 탄소 배출량이 1970년대 정점을 찍고 내려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석탄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룬 덕분이다. 빌 매키번, 그레타 툰베리 등 많은 기후 활동가들이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기술의 힘으로 우리는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다.” (p.79)

 

이미 기후 변화를 막아 내고 있었고, 그것은 충분히 관리 가능하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8살 딸아이에게 편하게 말했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배워오는 것을 같이 이야기하고,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은 같이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자의 주장과 인용한 자료가 거짓이라면 차라리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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