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쏟아낸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내는 울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놀란 채 내 얼굴과 아내가 들어간 방문을 번갈아 보실 뿐이었다. 나는 마시던 술잔을 마저 비우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찬 바람을 쐬어도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본가에서, 그것도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그리고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다시 방으로 돌아가 한 행동이 더 가관이었다. 아내가 들어간 방문을 열어 보니, 엎드려 울고 있었다.

어른 앞에서 무슨 행동이야? 빨리 나와!”

다시 앉은 저녁 밥상 앞에 나와 아내는 말이 없었고, 애면글면 어머니만 이것저것 물으시고 훈계하시고 위로하시며 시간이 지날 뿐이었다. 취기는 더욱 올랐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아침을 맞았다.

나는 방에서 혼자 잠들었고, 아내와 어머니는 거실에서 함께 자고 있었다.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와의 문제는 당신 자신과의 문제와 같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처럼 진저리나고 경솔한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할 수 있지만, 내일, 다음 달, 10년 후에도 그 또는 그녀와 함께 눈을 뜰 것이다. 다른 시간대에 되풀이될 때 효과가 없는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한다면 당신은 퇴행성 게임을 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두 사람 모두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 문제는 미래의 당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문제와 내용이 다르지 않다. 결론이 같기 때문이다.” (p.157), <법칙 4> 남들이 책임을 방치한 곳에 기회가 숨어 있음을 인식하라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어 두고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냥 저 구석에 처박아 놓은 채 모른 체하고 있었다. 언제든 활화산처럼 터져버릴 수 있는 위험을 머리에 이고 산 것이다. 묵히고 삭혀두던 것이 어머니 앞에서 터져버렸다. 이런, 젠장.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오후, 아내가 먼저 얘기를 하자고 했다.

아내는 많이 울었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있는 문제, 아내 자신과 나의 문제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모조리 맞는 말이었다. 나는 변명을 할 수도, 할 마음도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 생활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잘 이겨내고 해결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처럼 진저리나고 경솔한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하고 있었고, ‘효과가 없는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하는 퇴행성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 구석으로 밀쳐둔 문제의 근원들이 터져버리지 않았다면 내일, 다음 달, 10년 후에도 함께 눈 뜰 아내와 함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아내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 탓에 눈물은 계속 흘렸지만, 우리에게 벌어진 모든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감정적 동요를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고 지혜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아내와의 대화 직전까지도 내 마음 한쪽에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모든 일의 근원을 아내에게서 찾으려 했다. 평소, 술자리 후 주사란 걸 해본 적이 없다는 둥, 네가 그렇게 했으니 오죽하면 내가 그랬겠냐는 둥, 아무리 그래도 시어머니 앞에서 그런 행동은 아니지 않냐는 둥.

부끄러웠다. 아내와의 대화가 계속될수록 내 생각도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가 대화를 나누는 주방 식탁 위에서 드론으로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철저히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본가에서 벌어진 그 날 저녁으로 의식의 전환이 확장되었다.

파편화된 결혼 생활의 기억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하지 못할 것들이 정리되었다. 마침내 나는 입에 발린 사과를 하는 대신 앞으로의 각오를 세우게 되었다. 하나, 둘 내 각오를 설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날의 1시간 정도의 대화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10년 동안 연애했고, 10년 동안 함께 살았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이 책 질서 너머를 미리 읽었다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와 아내와의 대화와 그 대화를 통해 내린 결론들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사실, 나는 고집도 있고 자기주장도 강한 터라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조던 피터슨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찾아 읽지 않는 편이었다. 다만, 책에서도 저자가 여러 번 언급하는바, 30년의 결혼 생활을 한 선배로서 하는 이야기를 읽으니 우리의 경험에 대한 보증이 되는 것 같았다. 친한 친구나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는 좀처럼 진솔한 부부간의 상황은 잘 나누지 않게 된다. 굳이 그들 앞에서 부부가 발가벗겨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질 뿐이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은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에 관해 일주일에 90분씩 배우자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p.336)

결론적으로, 낭만적인 관계가 유지되려면 먼저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그에 대해 배우자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p.339), <법칙 10> 관계의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 성실히 계획하고 관리하라

 

책을 읽고 <법칙 4><법칙 10>의 내용에 대해 아내와 대화를 나눴다. 우리 부부가 당면했을지 모를 큰 위기를 잘 넘겼다는 데 안도했다. 우리의 방법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제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관계에의 자신감을 얻었다.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아내를 대하던 말투나 호칭도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바, 갈등 덩어리를 구석에 밀어 넣은 채 생활할 때는 호칭이 이상했다.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말투와 호칭으로 아내를 대했다. 표정과 몸짓은 더 심했을 것이다. 다정하고 따스한 대화나 스킨쉽은 거의 없었다. 또다시 부끄럽고 미안했다.

부부간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케케묵은 감정싸움에서부터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겹치고 쌓인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스스로 약속한 각오를 지키려 노력한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갑자기 표정과 말투, 몸짓과 분위기를 바꾼다는 것이 사이즈가 하나도 안 맞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은 것처럼 이상했다. 한 달쯤 지나니 덜 어색해진 지금이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12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관계의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실히 계획하고 관리해야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특히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고통과 배신 등 삶의 재앙은 비통함을 끌어들이는 중력 비슷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비통해하기로 선택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으며, 그 결과는 분명 나쁘다.”

감사는 원망의 대안이며, 어쩌면 유일한 대안일지 모른다.” (p.423)

우리가 용기를 낸다면 상대방의 한계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를 발견할 수 있다.” (p.430), <법칙 12>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그 일을 겪지 않고 읽었다면 또 하나 마나 한 소리네. 종교 경전이야 뭐야?라고 했을 것이다. 일을 겪고 나니, 새롭게 읽힌다.

우리가 용기를 낸다면 상대방의 한계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를 발견할 수 있다.라는 문장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비록, 아내의 용기가 나의 용기보다 몇 배로 크고 신속했지만, 나 또한 용기를 낸 것이다. 내 잘못을 오롯이 펼쳐내 들여다봤다. 나와 아내, 우리 부부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샅샅이 살폈다. 어려운 일이었다. 꽁꽁 묵혀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용기를 통해 분명 우리는 이전보다 나은 관계를 맺고 있다. 서로에게 더 집중하게 되고,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으며, 우리의 진전된 관계를 딸아이가 알아채기 시작했다.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정도 아니지만, 계속될 부부관계에서 또다시 닥쳐올지 모를 어려움에 맞설 용기는 발견했다. ‘용기의 영양제라고 하고 싶다. 피하지 않고, 함께 맞설 것이라는 신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시기가 딱 좋았다. 부부에게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용하며 읽을 수 있었다. 소장해 한 번씩 꺼내 읽으며 상태와 상황을 점검하기 좋을 것 같다.

소개한 법칙들 말고도 인상 깊은 법칙들과 내용이 있었다. 간략히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

<법칙 2> 내가 누구일 수 있는지 상상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라

어떤 것을 겨냥하라. 현재 개념화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를 정하라. 그 목표를 향해 비틀대며 나아가라. 그 과정에서 당신의 실수와 오해를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마주해 잘못을 바로잡아라.” (p.108)

 

<법칙 6>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은 순진하고 자아도취적이며, 그것이 조장하는 운동들은 분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거짓된 성취감을 준다.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이 신봉하는 공리들은 개종을 주도하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신과 다를 바가 없다.” (p.209)

 

 

<법칙 9>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면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