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전혜인 글.사진 / 알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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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이 되면 에펠탑은 불이 들어온다. 나는 <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의 작가처럼 아직도 팔팔한 30대도 아니고 이제 50을 눈앞에 둔 아줌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다. 오죽하면 축제 기간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그 사진을 전시하며 자랑질을 했을까.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키우고 그러다 보니 해외여행은 점점 멀어지는 꿈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항상 불끈불끈 심한 소용돌이가 일곤 했다.
"떠나고 싶다."
처음에는 그곳이 어디든지 좋았다. 이곳만 벗어날 수 있다면, 뜨거운 동남아도 감지 덕지였다.
그러다 정말 어느 날 꿈처럼 파리를 여행하게 되었다. 작은 인연이 만들어 낸 꿈같은 파리에서의 8일은 "딱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라는 또 다른 꿈을 만들었다.

흐린 날, 개선문에서 바라본 파리의 모습이다.
<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의 작가 전혜인은 30대의 잘 나가는 방송작가다. 무엇이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녀도 역시 결혼을 한 유부녀에 직장에 매인 몸이다. 그녀의 꿈은 '파리에서 한 달 살아보기'였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아름다운 문구가 붙었지만 그건 반쪽짜리 주문이라는 사실이다. 꿈은 '포기하지 않아야' 이루어진다.

우리는 현실과 타협을 하며 그 꿈을 그저 꿈으로 내버려 둔다.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꿈을 이루려면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그녀는 파리에서 한 달을 살기로 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이 책은 그런 그녀의 이야기다. 파리의 곳곳을 소개하는 여행책도 아니고, 무슨 인생에 대해 거창하게 쏟아놓은 에세이도 아니다. 그저 딱 30대의 감성 돋는 젊은 여성이 할 법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것도 파리의 정경과 어울려 더욱 감성이 묻어나는.
우리가 묵던 숙소 옆 버스정류장 건너편 건물은 이렇게 그라피티로 덮여있었다.
그녀는 30대에 하고 싶은 것들이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책 쓰기
드라마 작가 데뷔
마라톤 완주하기
제과제빵 자격증 따기
매일 운동하기
J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남미, 아프리카 여행
봉사활동
나는 40대에 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1년에 한번 한 도시에서 한 달씩 살아보기
그리고 그곳에 살면서 사진 찍고 글쓰기
난 그것이 하고 싶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루이비통 앞사람들의 모습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떠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달을 한 곳에 머무르며 그들과 살아보고 싶다.
시장에서 혹은 마트에서 우유를 사고 과일을 사며 가벼운 인사도 하고 싶고, 향기로운 빵집을 매일 들러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크루아상도 사고 싶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난 커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 이렇게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며 앉아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들처럼 꼭 껴안고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파리에서 가져온 유일한 기념품인 흑형들이 파는 에펠탑

파리 여행에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지만, 여행보다는 길고 일상보다는 짧은 그 어디쯤의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우리의 일상도 이 정도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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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 내게 왜 여행하느냐 묻는다면
박세열 글.그림.사진 / 수오서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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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행을 하냐고 묻는다면,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을 쓴 작가는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으며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다. 그가 찍은 사진과 그린 그림을 보면서 누군가는 이렇게 색다른 여행을 하고 있구나 부러웠다.
열심히 여행지를 검색하고 항공권을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심지어 구경할 곳과 먹을 것까지 모두 다 결정을 하고서 여행을 떠나야 안심이 된다. 그나마 패키지여행을 가지 않음을 뿌듯해하며.
하지만 그냥 훌쩍 마음이 가는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 마음이 내키는 곳에 짐을 부려놓고 슬리퍼 찍찍 끌고 시장을 골목을 헤매는 여행도 하고 싶다.
길바닥에 턱 주저앉아 사람들도 구경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그리고 여행지에서 사람들과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여행을 찍고 돌아다니기 바빴다.
그래서 이런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다음 여행은 이렇게 해봐야지 다짐하곤 한다. 이렇게 다른 이의 여행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의 여행도 달라지겠지 싶어진다.
작가는 사진을 찍어 돌아오는 사람이 아닌 사진을 찍어 주고 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단다. 그래서 작은 프린터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인화해 그곳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사진 속에 담긴 맑고 깨끗한 아이들의 표정이 어떤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 이 책은 일을 하러 간 제주의 호텔에서 비행기가 뜨는 창밖을 바라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벗 삼아 읽었다. 이곳에 있지 않았음에도 또다시 저곳을 꿈꾸는 방랑벽이 내게도 있음을 느끼며 말이다.

여행, 그 순간보다도 더 중요한 건 여행 후에 남을 기억일지도 몰라.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그 여행을 자꾸 되새김질한다. 난 유독 그렇게 사는 것 같다. 그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 중 이 작가처럼 순간의 사진과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그리고 그림이면 좋겠다. 게스트하우스의 빈 벽에 벽화를 그려주며 방값을 대신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솜사탕을 얻어먹기도 한다.
이 책에서 여행의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물론 작가는 태국에서부터 인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와 마다가스카르까지 세계의 여러 곳을 다녔지만, 그곳을 어떻게 하면 잘 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숙소를 구할 수 있는지,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저 그곳을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그곳의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들려주고 있다.
어떤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책일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다른 여행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작은 팁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적어도 감성으로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은 느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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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끝내는 독학 프랑스어 첫걸음 나혼자 끝내는 독학 첫걸음 시리즈
염찬희 지음 / 넥서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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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라를 여행하며 혹은 낯선 언어로 불리는 노래를 들으며 그 말이 갑자기 배우고 싶어진 적이 있다.
Ximena Sarinana가 같이 부른 제이슨 므라즈의 Lucky를 들으며 스페인어가 너무 배우고 싶었고, 파리의 거리를 헤매면서 그들의 말이 너무 궁금해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었다.
그렇지만, 단지 그때만 그렇게 간절하게 배우고자 했을 뿐, 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시작도 하지 못했다.
벌써 1년이 다 되었지만, 프랑스어를 너무 배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아들과 프랑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간단한 인사말을 익혀서 갔지만, 그곳에서 프랑스인을 만나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면서 약간의 프랑스어만 좀 익혔어도 얼마나 근사한 자리가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곳에서의 약 10일간은 눈에 귀에 프랑스어가 들어오는 것 같더니만, 돌아와보니 잠깐의 꿈처럼 희미해져버렸다.
이번에는 꼭 시작이라도 해보자고 생각해 <나 혼자 끝내는 독학 프랑스어 첫걸음>을 손에 넣었다. 파리에서 묶었던 게스트하우스 이모는 혼자 동영상 강의로 프랑스어를 익히고 있었다. 혼자 노트에 글을 옮겨 쓰고 한글로 발음을 적어서 문장을 외우는 방법으로 하루에 몇 문장씩 외운다고 했다. 나보다 많은 나이의 어른이 그렇게 시작한 것에 은근히 자극을 받았나 보다.
이제 이 책으로 나도 시작해보자 결심을 해본다.
우선 이 책은 8가지 독학용 학습자료를 제공해준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유튜브 동영상 강의다. 유튜브에 <나 혼자 끝내는 프랑스어>를 검색하면 이렇게 동영상이 바로 뜬다. 동영상을 틀어놓고 관련된 책의 페이지를 같이 펼쳐놓고 익숙해질 때까지 발음을 연습해 보았다. 여러 번 따라 읽을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선생님이 있으니 그나마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동영상을 볼 수 없을 때, 이렇게 넥서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MP3 파일을 핸드폰에 다운로드해 수시로 들어볼 수 있다. 학습 플래너도 안에 들어 있어, 꾸준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손바닥만 한 단어장도 있으니 오려서 포켓에 넣고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어 좋다. 하루에 한 챕터씩 꾸준하게만 한다면 20일에 이 책 한 권을 다 공부할 수 있다.
이제 겨우 공부를 시작한 나로서는 과연 그날까지 꾸준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작이 반이니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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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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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읽는 책이 있다.
얼마 전 엄마를 모시고 자매들끼리 여행을 떠났다. 이런저런 추억 중에서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와 책에 대한 에피소드가 빠지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가장 미웠을 때가 '캔디'를 보고 있는데 공부하라고 할 때였다는 데 모두 공감을 했다. 바로 밑 동생은 지금도 캔디를 가끔 본다고 한다. 여전히 너무 재미있다며.
나에게는 '빨강 머리 앤'이 그렇다. 지금도 여전히 빨강 머리 앤은 흐뭇한 미소를 띠게 하는 책이다. 내 동생들은 이 책 때문에 '공부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나의 눈부신 친구>가 아마 '빨강 머리 앤'처럼 두고두고 읽게 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적 볼품없던 꼬마 소녀들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소녀가 되고, 어른이 되어 간다. 온통 가난과 폭력으로 둘러싸인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둘의 우정은 빛난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부신 친구'가 된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66세의 한 여성이 흔적도 없이 (정말 한 점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하지만 자살은 아니다. 그 여인의 아들은 나(엘레나 그레코-레누차)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린다. 레누차는 안다. 그녀(릴라)가 소원대로 완전히 사라졌음을. 릴라는 30년 전부터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전화는 그녀를 사라진 릴라와의 추억으로 데려간다. 레누차와 릴라의 이야기는 이 너무나도 이쁜 표지의 책 속에서 펼쳐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성장의 이야기다. 그것도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참 쉽게 다치던 시대'를 살던 가난한 나폴리의 소녀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완벽한 지석, 날카롭고 도발적이며 치명적이 매력을 지닌 릴라와 그 눈부신 친구를 나침반 삼아 성장하는 레누차의 이야기.

우리도 인생에서 삶의 궤적을 바꾸는 몇 번의 강렬한 경험이 있다. 이 소녀들에게도 '경계의 해체'라고 할 수 있는 경험들이 존재한다. 돈 아킬레 집의 계단, 학교를 빠지고 찾아간 바다로 가는 길, 그리고 정월 초하룻밤 경험.
그 강렬한 경험을 읽어가면서 어릴 적 나의 추억이 소환당한다. 암울했지만 그럼에도 빛나던 그 시절이. '누가 더 용기 있는 아이인지 입증하는 놀이'를 하던 중 돈 아킬레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기억은 '시도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라는 교훈을 갖게 한다.

자신의 행동에 확신이 없던(나는 내 행동과 내가 항상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러나지 않던 레누차에게 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 아이였다. 엄마처럼 절름발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가진 레누차에게 늘씬한 다리를 가진 릴라는 영웅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글자를 깨친 아이일 뿐 아니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친구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한계를 넘을 줄 아는 아이, 그녀는 레누차의 '눈부신 친구'였다.

어렵고 힘든 시절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다들 일을 하던 그 시절, 공부를 잘 하던 두 친구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기로 하지만, 이쯤에서 그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그리고 뒤바뀐 길을 걷게 된다. 타고난 영리함으로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던 릴라는 아버지의 구둣방으로, 릴라와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하던 레누차는 진학을 한다. 이들이 결정적으로 뒤바뀌는 한 시점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바다로 가야 했는데 가지 못 했다. 나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얻어맞았다. 그 과정에서 릴라와 나의 사고방식이 뒤바뀌는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비가 와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는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그 거리감은 모든 걱정과 인간관계에서 나를 자유롭게 했다. 반면 리라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계획을 후회했으며 바다를 포기하고 우리 동네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1950년대 후반 이탈리아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 흔히 보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싸움과 폭력으로 시끄럽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서로에게 퍼부어대던. 그 속에서 릴라와 레누차는 아름다운 꽃으로 자라난다. 그 둘의 우정도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숨 쉬던 이들의 이야기도 나의 어린 시절의 소환된 추억과 더불어 더욱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책은 4부작이라고 한다. 이제 1부를 읽었는데 이렇게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놓으면 2부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나오려나 너무 궁금하다. 결혼식 날 릴라는 자신이 만든 구두를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신고 있는 것을 보고 흥분했는데, 릴라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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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 지구를 사랑한 소설가가 저지른 도보 여행 프로젝트
올리비에 블레이즈 지음, 김혜영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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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은 여행하려는 욕망을 지녔다. 아주 강력한 욕망이다.
한 곳에 정착하여 살기를 원하는 것 같아 보여도(집을 사고 직장을 얻고) 시시때때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졌다.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여행의 방법은 제각각이다. 대체로 내 주위의 사람들은 패키지여행을 떠난다. 빠르게 이동하고 여러 곳을 한 번의 기회에 쭉 둘러볼 수 있어 선호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여행의 복잡함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간혹 조금 특이한 경우가 배낭여행자이다. 혼자 비행기와 기차를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보고 여행 루트를 짜고. 물론 그 서로 다른 공간의 이동은 비행기와 기차 그리고 버스로 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주로 배낭여행을 가는 편이다. 하지만 여행할 곳의 구역을 정해 그곳을 발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시장에 들러 그들의 문화를 엿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걷다 보면 목적지는 온데간데없이 길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 여행은 뜻하지 않은 만남과 감성을 내게 선물한다. 하루의 끝을 보내는 숙소에서 가끔 나는 벅차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옮겨 적기에 바쁘다. 평소에는 끌어내려 해도 마른 샘처럼 고요하기만 하더니 여행으로 나는 감성 충만한 사람이 된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프랑스 작가 올리비에 블레이즈의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다. 다리 아프도록 걷는다는 것이 요즘처럼 운송수단이 발달한 때에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얼마나 더 빨리 도착하는지를 내기하듯이 자랑할 때 그와 반대로 느리게 느리게 걸으면서 하는 여행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이 작가는 '엔진이 발명된 지 이미 백 년도 더 된 이때, 그 덕분에 속도와 편이의 세상을 누리고 있는 이때, 나는 왜 굳이 기나긴 길 위에서 그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발걸음을 늘어놓느라 애쓰고 있는 걸까?'라고 묻는다. 그것에 대한 작가의 답은 '꼭 걸어서 가야만 있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격렬하고 뜨겁고,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 있을 뿐이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훌쩍 짐을 싸서 떠나고 싶은 충동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빠르게 공간이동을 하는 사람들과는 결이 다른 어떤 희한한 충동일 것이다. 작가는 도보 여행자의 시간은 운전자의 시간과 다르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사람들 차지였던 오솔길까지 자동차가 진입할 수 있게 되면서 그저 빠르게 가는 것에만 신경이 곤두선 채 인간의 속도까지 지배하게 된 셈이다. 예전에는 인간 또는 동물의 걸음을 따라 길이 조성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게 된 것인지 속도를 높이는 데만 열을 올리는 자동차의 주행을 인간이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다시 인간이 되는 길, 바로 그 길 위에서 작가는 모든 감각이 동물처럼 예민해짐을 느낀다. 그것들을 노트에 적으며 가장 행복한 상태에 자신이 있음을 느낀다.

'걷는다는 것은 지구의 움직임과 동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천체가 추는 춤에 끼어드는 것이고 우주 안에서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반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중력의 굴레에 얽매이는 것이며 우주의 힘이 자신을 내리누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며 수동적으로 그 힘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다.
걷기란 원래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야기,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걷기 여행에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야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는 들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 긴 여행(프랑스의 팡플론에서 헝가리의 미슈콜츠까지)이 각 지역의 특이함과  차이보다 걷는 이의 사색에 집중되어 있어 아쉬웠다.

작가의 여행 규칙은 단순하다. 엔진 차량 이용하지 않기. 직전 여정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여정 시작하기, 짐은 모두 직접 들고 가기, 휴식은 최소화하고 멈춰 있는 시간 줄이기, 날이 밝아 있는 동안만큼은 최대한 걷기다.

책 읽기를 마칠 때쯤 갑자기 걷고 싶어졌다. 하지만, 마음뿐, 나는 오로지 집에서 사무실까지 겨우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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