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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 지구를 사랑한 소설가가 저지른 도보 여행 프로젝트
올리비에 블레이즈 지음, 김혜영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여행하려는 욕망을 지녔다. 아주 강력한 욕망이다.
한 곳에 정착하여 살기를 원하는 것 같아 보여도(집을 사고 직장을 얻고) 시시때때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졌다.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여행의 방법은 제각각이다. 대체로 내 주위의 사람들은 패키지여행을 떠난다. 빠르게 이동하고 여러 곳을 한 번의 기회에 쭉 둘러볼 수 있어 선호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여행의 복잡함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간혹 조금 특이한 경우가 배낭여행자이다. 혼자 비행기와 기차를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보고 여행 루트를 짜고. 물론 그 서로 다른 공간의 이동은 비행기와 기차 그리고 버스로 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주로 배낭여행을 가는 편이다. 하지만 여행할 곳의 구역을 정해 그곳을 발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시장에 들러 그들의 문화를 엿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걷다 보면 목적지는 온데간데없이 길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 여행은 뜻하지 않은 만남과 감성을 내게 선물한다. 하루의 끝을 보내는 숙소에서 가끔 나는 벅차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옮겨 적기에 바쁘다. 평소에는 끌어내려 해도 마른 샘처럼 고요하기만 하더니 여행으로 나는 감성 충만한 사람이 된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프랑스 작가 올리비에 블레이즈의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다. 다리 아프도록 걷는다는 것이 요즘처럼 운송수단이 발달한 때에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얼마나 더 빨리 도착하는지를 내기하듯이 자랑할 때 그와 반대로 느리게 느리게 걸으면서 하는 여행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이 작가는 '엔진이 발명된 지 이미 백 년도 더 된 이때, 그 덕분에 속도와 편이의 세상을 누리고 있는 이때, 나는 왜 굳이 기나긴 길 위에서 그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발걸음을 늘어놓느라 애쓰고 있는 걸까?'라고 묻는다. 그것에 대한 작가의 답은 '꼭 걸어서 가야만 있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격렬하고 뜨겁고,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 있을 뿐이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훌쩍 짐을 싸서 떠나고 싶은 충동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빠르게 공간이동을 하는 사람들과는 결이 다른 어떤 희한한 충동일 것이다. 작가는 도보 여행자의 시간은 운전자의 시간과 다르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사람들 차지였던 오솔길까지 자동차가 진입할 수 있게 되면서 그저 빠르게 가는 것에만 신경이 곤두선 채 인간의 속도까지 지배하게 된 셈이다. 예전에는 인간 또는 동물의 걸음을 따라 길이 조성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게 된 것인지 속도를 높이는 데만 열을 올리는 자동차의 주행을 인간이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다시 인간이 되는 길, 바로 그 길 위에서 작가는 모든 감각이 동물처럼 예민해짐을 느낀다. 그것들을 노트에 적으며 가장 행복한 상태에 자신이 있음을 느낀다.
'걷는다는 것은 지구의 움직임과 동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천체가 추는 춤에 끼어드는 것이고 우주 안에서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반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중력의 굴레에 얽매이는 것이며 우주의 힘이 자신을 내리누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며 수동적으로 그 힘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다.
걷기란 원래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야기,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걷기 여행에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야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는 들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 긴 여행(프랑스의 팡플론에서 헝가리의 미슈콜츠까지)이 각 지역의 특이함과 차이보다 걷는 이의 사색에 집중되어 있어 아쉬웠다.
작가의 여행 규칙은 단순하다. 엔진 차량 이용하지 않기. 직전 여정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여정 시작하기, 짐은 모두 직접 들고 가기, 휴식은 최소화하고 멈춰 있는 시간 줄이기, 날이 밝아 있는 동안만큼은 최대한 걷기다.
책 읽기를 마칠 때쯤 갑자기 걷고 싶어졌다. 하지만, 마음뿐, 나는 오로지 집에서 사무실까지 겨우 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