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 속 화자가 작가일 때 글쓰기가 제일 쉬울까? 혹은 어려울까?
화자가 작가일 경우 소설 속 이야기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게 되며, 그래서 독자는 더욱 소설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무렴 작가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지 않겠어 하며. 특히 주인공인 작가가 소설의 내용을 고민하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경우 우리는 분명 작가의 경험담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조엘 디케르의 <볼티모어의 서>는 바로 그런 소설이다. 작가인 마커스 골드먼은 성공한 작가다. 그런 그가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자신의 과거를 불러내는 여인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이 떠오른다.

마커스의 큰아버지 사울 골드먼은 볼티모어에 사는 부유한 사업가다. 그리고 아버지 네이튼 골드먼은 몬트클레어에 사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어린 마커스의 눈에 너무나 부러웠던 큰아버지 볼티모어 골드먼들. 그들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둘 풀어지면서 우리는 과거의 그 인식들이 왜곡되고 변질되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지금은 성공한 작가의 눈에, 과거의 영광은 모두 사라져버린 볼티모어 골드먼들은 그 당시와는 전혀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그 사라져 버린 볼티모어 골드먼에 바치는 서사가 바로 <볼티모어의 서>다.

이 소설을 쓰면서 과거의 일에 아프고 슬펐던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전부 지울 수 있었고
전부 잊을 수 있었고
전부 용서할 수 있었고
전부 치유할 수 있었다.

골드먼가에 있었던 그 일, 우디와 힐렐이 그렇게 된 후 뿔뿔이 흩어져 괴로워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것은 마커스가 볼티모어 골드먼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서이다.

그 일이라고 하지 마라. 아니타도 그렇게 되었고, 따지고 보면 그 일은 정말 많았잖니? 앞으로도 그 일들이 계속 있을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해. 불행은 피할 새도 없이 밀어닥치지. 사실 그 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일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야. 골드먼 일가가 추수감사절에 모이지 못한 건 그 일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야. 이겨내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좌절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면 안 돼. 마커스, 우리에게는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어. 이제부터 추수감사절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려 쇠길 바란다. 그러겠다고 약속해다오.
마커스, 넌 지금 골드먼 이야기, 즉 볼티모어 골드먼과 몬트글레어 골드먼 이야기에 붙잡혀 있지? 이제 그 이야기의 결말에는 단 한 사람의 골드먼만이 남게 되겠지. 그게 바로 너야. 너는 거듭 태어난 거야. 우리는 모두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지. 난 사랑하고, 사랑받고 용서하는 게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단다. 그 나머지는 흘러버린 시간의 합에 불과해. 넌 계속 글을 써야 해. 네 글을 통해 골드먼들의 삶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커스, 골드먼들의 삶이 치유해주겠다고 약속해다오. 볼티모어 골드먼들은 네 글을 통해 삶의 의미를 회복하게 될 거야.
글이 삶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우리가 부조리한 삶에 맞서는 복수전을 펼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처럼 강한 정신,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기억의 힘을 증명할 수 있다

<볼티모어의 서>는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는 집들의 내부는 갈등과 모순이 존재하는 집 일수도 있고, 비록 허름한 집일지라도 그 안은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 단 한 번이라면 우리는 그 단 한순간에 매여 평생을 부자유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일들은 언제나 내 주위에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그 일들을 겪어내며 조금씩 성장하면서. 그 인내와 성장에서 글쓰기는 작가의 말처럼 잊고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깊은 숲의 한가운데를 걸으면서 숲에 대하여 나무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란 힘들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의 한가운데서 이 작품을 이야기하기가 갑자기 힘들게 느껴진다. 1부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66세의 나이에 갑자기 사라진 친구 릴라의 이야기로 시작한 나폴리 4부작은 3부에서 화자인 레누의 결혼, 피렌체에서의 삶, 그리고 출산과 육아를 겪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제 마지막 4부만 남았다. 겨우 1권이 남았는데 아직 이야기는 겨우 반 정도만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그들의 관계를 만들고 다져가게 했던 수많은 에피소드로 넘쳐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만든 첫 소설의 대성공, 그리고 첫사랑 리노와의 만남, 멋진 집안과의 결혼, 그리고 나폴리를 떠나 피렌체에서 살게 된 레누의 이야기가 3권의 대부분이다. 릴라는 나폴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햄공장에 다니며 엔초와 함께 아들을 키우며 산다. 그리고 엔초와 밤마다 컴퓨터를 공부한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는 청춘의 시기에 접어든 이들이 사는 이탈리아 사회의 대변혁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대학마다 벌어지는 학생시위,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의 시위,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 그리고 여성의 지위까지 진지하게 논의된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강의가 없는 빈 강의실에서 담배연기 자욱한 커피숍에서 술집에서 세상의 모든 모순과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전사처럼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던 우리들이 겹쳐졌다. 그 당시의 진지하고 심각했던 고민들은 그러나 졸업한 뒤 나름의 사회생활 속에 한때의 추억이 돼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책으로만 배운'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레누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현장에 있는 릴라의 이야기가 마치 내가 겪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교육을 많이 받았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무지했다. 나 자신을 통제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다른 이들의 사상과 사건을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느라 열정 없는 인생을 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게다가 결혼과 안정적인 삶이 너무 빨리 시작될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그곳에서 이미 몰락해버린 기존의 질서 체계 속에 너무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어쨌거나 레누는 그렇게 기존의 질서 체계 속에 스스로 자리 잡아 버렸고, 반면 릴라는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였다. 햄공장의 일로 릴라가 힘들 때 레누는 릴라를 데리고 피렌체로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릴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너는 강하잖아. 나는 그렇지 않아. 너는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네 자아를 되찾고 행복해하지. 하지만 나는 큰길 입구에 있는 터널만 지나도 두려워. 예전에 함께 바다를 향해 가는데 비가 왔었던 때를 기억해? 우리 중에 누가 계속 가려고 했고 누가 돌아가려고 했는지 기억해?"

나는 알 수 없었다. 왜 릴라는 머무르려고 하는지.
소설은 '인간이라는 기이한 피조물에게 존재하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분신 같은 존재인 두 친구, 릴라와 레누는 그렇게 머무른 자와 떠나간 자로 나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는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

 난 네가 항상 최고였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이보다 훨씬 뛰어난 글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해. 네가 더 잘하기를 원해. 그게 내 가장 큰 소망이야. 네가 뛰어나지 못하면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레누의 홀로서기는 시작됐다. 릴라에게서 흘러오던 일종의 영감이 그 영향이 끊긴 레누는 혼자 고민하게 된다. 이제야 스스로를 돌아보는 레누는 릴라를 통해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릴라와 분리된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고 이제야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글을 쓰게 된다.

내 사고방식과 언어는 지금까지 내가 받은 교육에 의해 형성되었다. 남보다 뛰어나게 되려고 나는 나 자신과 어떤 비밀스러운 협상을 맺었던가. 배우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제 와서 배운 것 가운데 무엇을 잊으려 애써야 하나. 게다가 나는 릴라와 닮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살아왔다.
나는 자꾸만 내 자신을 릴라와 일치시키려 했다. 릴라에게서 분리되려고 할 때마다 불구가 되는 것 같았다. 릴라가 없으면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릴라 없이는 내 생각에 확신이 생기지 않았고 어떠한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릴라와 분리된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했다. 해답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다. 그 무엇인가가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동안 무엇인가가 되기는 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뚜렷한 대상도, 진정한 열정도, 확실한 야망도 없이 말이다. 릴라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데  나만 뒤처질까 봐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뭐라도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바랐지만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제 나는 다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오직 나를 위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릴라에게서 벗어나 성숙한 인격체로서 말이다.

나폴리에 머무른 릴라는 그리고 나폴리를 떠나간 레누는 이제 각자 서로의 길을 걷게 될까? 그 분신 같던 유대감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은 둘은 어떤 삶을 맞이하게 될까? 4부가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페인 예술로 걷다 - 가우디와 돈키호테를 만나는 인문 여행
강필 지음 / 지식서재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을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여행사가 짜준 일정에 맞춰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패키지여행, 스스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구매해서 가는 배낭여행, 골프를 하기 위한 골프여행, 유람선을 타고 가는 크루즈 여행, 요즘에는 한 달씩 살아보기도 하는 체류형 여행, 맛 집을 찾아가는 먹방여행 등 각자 원하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여행이 가능하다.

작년 스페인 여행에서 데려온 가우디의 도마뱀
스페인을 여행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스페인의 밤은 정말 뜨겁다. 바르셀로나에서 묵었던 하룻밤을 밤을 꼬박 새워 노는 옆집 인간들 때문에 잠을 설쳤다. 정말 날이 새도록 신나게 놀고 아침을 먹고 숙소를 떠날 때 그들도 헤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비자로 유명한- 여행도 가능하고, 바르셀로나 FC와 레알마드리드의 축구를 볼 수 있는 축구 여행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그림과 건축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강필 씨도 미술을 전공한 분답게 '우디와 돈키호테를 만나는 인문여행'이란 콘셉트로 스페인을 여행한 기록을 남겼다.
독자는 작가의 안내를 따라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과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그리고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둘러볼 것이며, 톨레도로 이동해서 엘그레코와 돈키호테를 엿볼 것이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스페인 예술로 걷다>의 뒤표지
떠나 가우디의 여러 건물들과 달리 극장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을 보게 될 것이다.
작가가 말한 대로 바르셀로나 하면 '가우디', 톨레도는 '돈키호테' 마드리드는 '고야' , 피게레스는 '달리'로 유명하다.
이 책에 나오는 도시들 간의 이동거리와 이동 방법을 알려주는 지도

<스페인 예술로 걷다>의 목차

<스페인 예술로 걷다>의 목차
소피아 미술관에 있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스페인의 미술관들은 프랑스의 미술관과 다르게 사진을 전혀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그저 눈으로 마음으로 감상하고 나와 추억할 수 있는 작은 조각도 남길 수 없어 아쉽지만, 그래서 또 한번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있던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혼자 단독으로 전시실 하나를 쓰고 있었으며 그 방을 지키는 두 명의 지킴이가 그림의 양 끝에 서서 관람객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그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전시실 안에는 게르니카가 스페인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는 편지와 각종 서류들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을 앞에 두고 바닥에 앉아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그림의 가장 왼쪽 죽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가슴이 먹먹해지며 울고 있었다. 흑백의 강렬한 그림으로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를 항변하고 있었다.
구엘공원과 그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도마뱀
바르셀로나의 기억은 너무나 아쉬웠다. 가우디의 그 유명한 작품들(사르라다 파밀리아 성당, 카사 밀라, 카사바트요, 구엘공원 등)을 모두 겉에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표를 샀어야 했는데, 게으른 여행자는 그만 표를 구할 수 없어서 탑돌이 하듯이 주변만 뱅뱅 돌다 왔다. 다시 바르셀로나를 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남겨두었다.
이 책은 나에게는 스페인 여행을 다시 환기시키는 시간이 되었고, 다시 스페인을 여행할 때는 무엇을 봐야 할 것인지 알려주는 좋은 정보를 품은 책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많은 정보를 수집하겠지만, 특히 이런 문화적인 정보를 접하고 간다면 더욱 감동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정이란 무엇일까? 같이 자라고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 많은 친구들 중에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몇 안된다. 고대 철학자들이 가장 고귀한 인간의 덕목이라고 했던 우정은 사랑도 권력도 그리고 지금은 돈의 유혹도 이겨낼 수 있는 여전히 고귀한 덕목일까? 우정은 그렇게 인간적인 욕망을 초월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Cicero는 저서 De Amicitia(우정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론을 따른다. Cicero는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부여된 어울림의 본능을 기초로 하여 우정론을 펴 나간다. 그는 남에게 잘 해주려는 호의와 인정을 드러내는 의지, 기호, 생각으로 서로가 마음을 맞추는 관계라고 정의한다. 부와 명예와 권력, 건강까지도 오래가지 못하지만, 진정한 우정만큼은 생과 같이한다. 우정은 덕성이다. 사리사욕과 이기심은 우정과 반대되는 악덕이다. 따라서 우정은 선인 사이에서만 성립되며 진정한 친구는 일종의 “또 하나의 나(alter ego)”이다. 한번 육성되면 영원하다  .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서

나폴리 4부작의 첫 번째 책 <나의 눈부신 친구>의 뒤를 이은 제2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 레누와 릴라의 우정은 위에서 이야기한 가장 고귀한 덕성인 '우정'과는 조금은 다르게 진행된다. 작가는 이 책에서도 과거의 기억을 호출해낸다. 릴라가 준 노트-자신의 기록-을 읽어보지 말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 외우다시피 읽는다. 그리고 그 노트를 아르노 강에 버린다.

그렇게 레누가 말해주는 릴라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펼쳐진다. 결혼식 날부터 어그러진 남편과 레누가 짝사랑하는 니노와의 사랑, 그리고 리노의 아이의 임신. 이런 이야기들이 릴라의 말처럼 갑자기 느려지다 빨라지거나 급커브를 돌기도 하고 경로를 벗어나기도 한다. 릴라의 이야기는 레누의 이야기와 섞이면서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기차와 자동차처럼 서로를 곁눈질하며 달린다.

나폴리의 아르노 강

1부의 아이들이 자라 이제는 성인이 되었다. 릴라는 결혼생활을 하고, 레누는 공부를 계속한다. 1부에서 자신을 지우고 떠난 66세의 릴라는 2부에서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자신의 결혼사진을 찢고 자르고 붙이며 처음으로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 릴라가 왜 자신에게 분노를 느낄까?
그런 릴라를 사랑하는 레누는 사랑함에도 왜 질투를 하고 그녀보다 자신이 더 성공한 듯 보일 때 왜 자랑을 하며 그녀에게 상처를 주려고 할까?
이 둘의 우정은 현명한 철학자들이 말하는 그 우정의 모습과는 다르다. 서로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지니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지닌 이 둘은 함께 하면 완전체가 될 것 같은데 또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는 자신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었다. 릴라와 니노를 통해서 레누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

나는 타인의 요구에 복종하는 존재였다. 나는 릴라와 니노를 통해서만 의미를 얻는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다.... 그 둘을 사랑했기에 정작 나 자신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열망을 느끼고 붙잡지 못하는 것이다. 릴라와 니노처럼 그 열망을 위해서라면 장님에 귀머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아슬아슬하다.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들은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구석에 처박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불현듯 왜 내가 아닌 릴라가 니노를 차지하게 됐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감정에 몸을 내맡길 줄 모른다. 감정에 이끌려 틀을 깨뜨릴 줄 모른다. 내겐 니노와 단 하루를 즐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릴라와 같은 강인함이 없었다. 나는 항상 한 발짝 뒤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레누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삶의 변화가 이루어질 시점에 나폴리의 밖으로 경험과 삶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피사에서 대학을 나온 후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 레누의 이야기로 이 책은 끝난다. 릴라와의 23일 동안의 동거를 접고 사라졌던 니노의 등장은 앞으로의 이야기가 몹시 흥미로워질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렇게 생겨먹은 이상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 사투리를 쓰고 돈은 땡전 한  푼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그러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가질 수 있는 만큼만 가지자. 참아야 할 때는 끝까지 참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로크백 마운틴 에프 모던 클래식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약 당신이 이것을 믿는다면, 다른 어떤 것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애니 프루의 <브로크백 마운틴>의 표지
이 책의 내용을 모두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큰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걸 모르던 상태로 영화를 보았는데, 지금 기억에 의존해 보니 영화의 중간쯤(잭이 에니스에게 엽서를 보내 찾아가도 되냐고 묻고 둘이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까지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둘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난 아마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둘의 사랑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둘의 사랑이 애처롭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동성애이기에. 난 그 당시 동성애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었다.
그저 아름다운 브로크백 마운틴의 자연과 두 남자의 사랑만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 영화의 원작인 '브로크백 마운틴'은 애니 프루의 단편소설집 <브로크백 마운틴>의 맨 마지막에 실려있는 작품이다.
존 업다이크가 최고로 뽑은 '가죽 벗긴 소'(존 업다이크답다. 이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소의 가죽을 벗기다 말고 저녁식사를 한 머리에 금속판을 댄 틴 헤드는 식사를 마치고 오니 소가 보이지 않아 찾아다닌다. 그러다 가죽이 반쯤 벗겨진 소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부터 영화가 된 '브로크백 마운틴'(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을 지키던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까지 애니 프루의 이 단편집은 와이오밍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한 거칠고 웅장하고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한 편의 작품을 읽고 한참을 쉬어야만 다음 단편을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돌보는 것이다.'라는 와이오밍주의 성문화되지 않은 방침은 식물과 가축뿐 아니라 사람들에게까지 적용되었다.'
애니 프루가 전하는 와이오밍은 우리가 알고 있고 경험한 보통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6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황량하고 공허한 땅, 포효하는 바람과 거친 인간들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사는 곳. 그렇지만 그들은 쉽게 그곳을 떠나지도 못한다.
누구든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떠나지 않는 법이다. p.257

이 땅은 위험하고도 무심하다. 이 꼼짝도 않는 거대한 대지 위에서는, 제아무리 사방에서 불행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진대도, 인간사의 비극이라는 건 한없이 보잘것없이 보일 뿐이다. <중략> 사람이 만든 것은 뭐든 유한의 시간 동안만 머물렀다 사라질 뿐이다. 중요한 건 오로지 대지와 하늘이다. 매일 끝없이 되풀이되는 아침의 여명이다. 그렇게 당신은 그 이상 신이 우리에게 베풀어야 할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숨겨진 거칠고 야만적인 삶.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은 아름다웠다.
애니 프루는 특히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묘사했다.

낮 동안 에니스가 광활한 초지를 가로질러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커다란 식탁보 위를 기어가는 작은 곤충처럼, 너른 초원 위에 작은 점으로 움직이는 잭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그리고 밤이 오면 잭은 캄캄한 미니 텐트 안에서 산이 만든 거대한 검은 덩어리 속에 붉은 불꽃을 피우는, 밤의 등불 같은 에니스를 보았다.
셔츠에 왠지 묵직한 감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셔츠 안에 다른 셔츠가 겹쳐져 있었다.

그 둘의 사랑은 셔츠 안의 셔츠처럼 감추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양들과 자연만이 존재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더없이 좋은 에덴의 동산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과 믿으려 하는 것 사이에는 약간의 간극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고칠 수 없는 일이라면 견디는 수밖에 없는 법이다.

거대한 자연과 인간의 본성과 그들이 꿈꾸는 것, 믿고 있는 것이 서로 충돌하지만 결국 인간은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거대한 산과 강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흐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