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두고두고 읽는 책이 있다.
얼마 전 엄마를 모시고 자매들끼리 여행을 떠났다. 이런저런 추억 중에서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와 책에 대한 에피소드가 빠지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가장 미웠을 때가 '캔디'를 보고 있는데 공부하라고 할 때였다는 데 모두 공감을 했다. 바로 밑 동생은 지금도 캔디를 가끔 본다고 한다. 여전히 너무 재미있다며.
나에게는 '빨강 머리 앤'이 그렇다. 지금도 여전히 빨강 머리 앤은 흐뭇한 미소를 띠게 하는 책이다. 내 동생들은 이 책 때문에 '공부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나의 눈부신 친구>가 아마 '빨강 머리 앤'처럼 두고두고 읽게 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적 볼품없던 꼬마 소녀들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소녀가 되고, 어른이 되어 간다. 온통 가난과 폭력으로 둘러싸인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둘의 우정은 빛난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부신 친구'가 된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66세의 한 여성이 흔적도 없이 (정말 한 점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하지만 자살은 아니다. 그 여인의 아들은 나(엘레나 그레코-레누차)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린다. 레누차는 안다. 그녀(릴라)가 소원대로 완전히 사라졌음을. 릴라는 30년 전부터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전화는 그녀를 사라진 릴라와의 추억으로 데려간다. 레누차와 릴라의 이야기는 이 너무나도 이쁜 표지의 책 속에서 펼쳐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성장의 이야기다. 그것도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참 쉽게 다치던 시대'를 살던 가난한 나폴리의 소녀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완벽한 지석, 날카롭고 도발적이며 치명적이 매력을 지닌 릴라와 그 눈부신 친구를 나침반 삼아 성장하는 레누차의 이야기.

우리도 인생에서 삶의 궤적을 바꾸는 몇 번의 강렬한 경험이 있다. 이 소녀들에게도 '경계의 해체'라고 할 수 있는 경험들이 존재한다. 돈 아킬레 집의 계단, 학교를 빠지고 찾아간 바다로 가는 길, 그리고 정월 초하룻밤 경험.
그 강렬한 경험을 읽어가면서 어릴 적 나의 추억이 소환당한다. 암울했지만 그럼에도 빛나던 그 시절이. '누가 더 용기 있는 아이인지 입증하는 놀이'를 하던 중 돈 아킬레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기억은 '시도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라는 교훈을 갖게 한다.

자신의 행동에 확신이 없던(나는 내 행동과 내가 항상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러나지 않던 레누차에게 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 아이였다. 엄마처럼 절름발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가진 레누차에게 늘씬한 다리를 가진 릴라는 영웅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글자를 깨친 아이일 뿐 아니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친구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한계를 넘을 줄 아는 아이, 그녀는 레누차의 '눈부신 친구'였다.

어렵고 힘든 시절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다들 일을 하던 그 시절, 공부를 잘 하던 두 친구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기로 하지만, 이쯤에서 그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그리고 뒤바뀐 길을 걷게 된다. 타고난 영리함으로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던 릴라는 아버지의 구둣방으로, 릴라와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하던 레누차는 진학을 한다. 이들이 결정적으로 뒤바뀌는 한 시점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바다로 가야 했는데 가지 못 했다. 나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얻어맞았다. 그 과정에서 릴라와 나의 사고방식이 뒤바뀌는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비가 와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는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그 거리감은 모든 걱정과 인간관계에서 나를 자유롭게 했다. 반면 리라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계획을 후회했으며 바다를 포기하고 우리 동네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1950년대 후반 이탈리아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 흔히 보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싸움과 폭력으로 시끄럽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서로에게 퍼부어대던. 그 속에서 릴라와 레누차는 아름다운 꽃으로 자라난다. 그 둘의 우정도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숨 쉬던 이들의 이야기도 나의 어린 시절의 소환된 추억과 더불어 더욱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책은 4부작이라고 한다. 이제 1부를 읽었는데 이렇게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놓으면 2부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나오려나 너무 궁금하다. 결혼식 날 릴라는 자신이 만든 구두를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신고 있는 것을 보고 흥분했는데, 릴라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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