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혼자서 - 60세에 첫 유학길에 오르다
강인순 지음 / 에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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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아니 변함없이 지루한 우리의 사고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10여일정도의 여행이 가져다주는 변화도 놀라울 때가 많은데, 하물며 1년동안의 유학은 어떨까?
그것도 인생의 후반기 중의 후반기, 예전같으면 골방에 누워 잔소리를 하고 있는 할머니가 된 나이인 60세(지금은 절대 절대로 그럴 수 없지만)에.
<파리,혼자서>의 작가  강인순님은 바로 그런 나이에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 방법으로 버킷리스트 1번에 적어 놓았던 프랑스 유학을 떠났고, 유학을 끝내고 돌아 와 역시 항상 머릿속에만 있었던 글쓰기 공부를 한 뒤 정말 책을 낸 것이다.
이 책의 추천서를 쓴 여러 사람 중에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김갑수 님의 글이 가장 나의 독서와 맞닿아 있었다.
'참 많은 예술 기행서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강인순의 체험이 선택될 이유는 글솜씨나 내용의 전문성 따위가 아니다. 한마디로 숙성의 힘이 가득한 책이다. 일생토록 갈망했고 긴 세월 사전 준비를 해 왔던 프랑스 예술의 정수들. 하지만 특별한 전문가가 아니라 불란서가 낯설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표 집필한 것만 같은 친숙함이 이 책의 강점이자 가독성으로 다가온다. 내게는 짧은 여행지였을 뿐인 프랑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좀 오래, 많이, 그리고 깊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올 봄에 같이 독서모임을 하던 동료들과 프랑스 여행을 했다. 아비뇽에서 우리는 카뮈의 무덤이 있는 루르마랭(루르마항)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비뇽에서 우리는 작은 렌트카를 빌려 아무리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어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루르마랭으로 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낯선 길을 따라 강인순 작가의 그 말처럼 '출구가 많은 로터리들'을 지나 도착한 작은 마을 루르마랭은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파리, 그리고 관광객이 넘치는 아비뇽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카뮈의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 한 부부를 만나 그들의 안내로 카뮈의 무덤과 카뮈가 살던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고개를 숙여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지나 카뮈의 집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로 우리를 데려다 준 그 부부는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이 낯선 동네에 카뮈를 보겠다고 그 먼길을 온 더욱 낯선 동양인 아줌마들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그들 덕분에 카뮈가 쓰던 방을 올려다볼 수 있었고 카뮈의 무덤까지 같이 걸으면서 아몬드 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도 볼 수 있었다.

나도 작가처럼 고등학교 시절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그의 문장에 놀랐고, 또 여전히 이해를 못한 채 때때로 꺼내 읽어보고 있지만, 카뮈의 집과 무덤을 보았다는 그 경험으로 더욱 그의 작품에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파리, 혼자서>를 읽는 것이 내게는 두 번의 프랑스 여행을 호출하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그녀가 보고 감동했던 몽생미셸, 로댕의 발자크 동상, 빅토르 위고의 집과 보주 광장 모두가 다시 가보고픈 곳이다. 또한 프랑수아 1세의 샹보르성, 슈농소성, 보-르-비콩트성 그리고 클로 뤼세는 다음에 기회가 되서 다시 프랑스를 간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나의 노트 한 곳에 적힐 것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여행을 하고 다른 나라를 방문하고 그리고 그것을 글로 남기겠지만, 그 깊이와 폭은 각기 다르다. 단순히 안내서로, 여행 가이드북으로 그치는 책이 있고, 독자의 마음 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힐링이 되는 책도 있다.

또 언젠가 여행을 위해 가방을 꾸리겠지만, 그 때 나도 이런 깊이를 가지고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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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의 한 사람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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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서서 다른 곳을 꿈꾸며 사는 나에게 '내 눈앞의 한 사람'은 때로는 귀찮고 또 때로는 버겁기만 한 존재일 때가 많다.
매일 보는 얼굴, 매일 듣게 되는 비슷한 이야기.
거기에서 벗어나고픈 날이 많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여행을 좋아한다.
이곳을 떠나 훌쩍 다른 곳으로 낯선 이들 속으로 떠나는 것.
나는 그게 좋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왜 이곳의 그 귀찮은 존재들이 그리운 건지.

우리는 여행지에서 우리 스스로 낯선 이방인의 존재가 된다. 우리는 익명의 관찰자가 된다. 낯선 장소, 낯선 언어 속에 온몸으로 그들을 이해하려 드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통해 많을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눈 감고 지나치던 것들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오소희 작가의 <내 눈앞의 한 사람>은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게 된 인생의 소중한 단상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오소희 작가의 여행과 자신의 여행이 다르다는 것, 그 다름에서 어떤 것이 생겨나는지 알게 된다. 관광객인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고 지나간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일상 속에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생각을 나눈다. 여행을 떠난 이들의 만남, 혹은 여행객과 여행객을 만난 사람들의 만남. 이 지점에서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뒤돌아보며 생기는 관조적인 태도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든다. 조금은 넓어진 마음의 공간에는 내가 안아야 할 많은 이들을 넉넉히 품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물에서 바라본 뭍은 아주 작더라. 거기서 들리는 소리도 아주 작았어. 의아할 정도였지. 어째서 나는 저 작은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 세상의 전부인 듯 매달렸을까? 어째서 곤충의 윙윙거림처럼 작은 목소리들에 일희일비하며 괴로워했을까? 그제야 깨달았어. 사람의 일이란 그처럼 작은 거라는걸. 내가 생의 한 토막을 내어줬던 일도, 거기서 비롯된 좌절도, 달빛과 바닷물에 녹이고 나니 그저 한 방울이었던 거야.

여행에서 만난 사랑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통해 내 눈앞의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의 너른 공간을 갖고 싶다. 그럼 여행을 떠나야겠지. ㅋㅋ
폴 서루는 <여행자의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당신만의 여행을 위해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 다음 여행에서는 '친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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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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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끝낼 못할 것 같은 이야기가 드디어 끝났다."
드디어 끝이 나버린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는 또다시 이 이야기의 처음인 1부 <나의 눈부신 친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이야기의 화자인 레누는 자신만의 힘으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눈부신 친구'인 릴라에게 영감을 받아 글을 쓰는 레누는 릴라가 갑자기 사라진 그날부터 자신과 릴라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풀어놓는다. 둘 사이의 우정, 그들이 사는 나폴리의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정치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레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독자의 경험과 맞물려 독자 각자의 기억 속 어디쯤 묻혀있던 추억을 소환해내곤 한다. 소꿉장난을 하던 어느 따스한 봄날의 기억, 학교에 처음 들어가던 날의 낯설기만 하던 책상과 의자,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잘생긴 남학생, 목소리를 높여 민주화를 외치던 캠퍼스의 매캐한 공기.
그렇게 레누와 한국의 한 여성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아마 그것은 그 시기를 건너온 대부분의 나라에 살았던 많은 여성들의 경험과 닮아있을 것이다. 레누와 릴라는 결혼을 하고 별거(혹은 이혼)를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을 하고 이별도 한다. 사람에 대한 증오와 환멸 그리고 후회,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그 다양한 감성들이 레누가 풀어놓는 이야기 안에 다 담겨있다. 게다가 마치 대하소설처럼 역사의 큰 줄기를 따라 사람들이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풀어놓았다.
레누가 책을 내고 세상의 반응이 책의 내용과 다르게 나타나는 것처럼, 나는 엘레나 페란테의 책을 읽고 있지만, 마치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비평가들이 서점에 있는 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선입견이 만들어낸 가상의 책을 소환하는 것 같았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책, 어쩌면 그 책 안에는 읽는 독자의 추억과 기억이 함께 담겨 독자의 수만큼 더욱 풍성해질 것 같다.
그래서 영원히 끝나지 못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 이야기의 끝도 알 수 없고, 그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도 불명확한.

이 책을 덮으면서 결국 잃어버린 아이와 레누와 릴라의 첫 번째 강렬한 기억인 잃어버린 인형이 겹쳐지며 뻗어나가기만 하던 선분의 끝이 만나 영원히 돌고 도는 커다란 원을 그려놓아 독자들을 끝없이 처음과 끝을 반복해서 돌게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이것이 레누의 이야기였는지, 릴라의 이야기였는지, 아니면 엘레나 페란테 그 얼굴 없는 작가의 이야기인지 모르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스스로 연필심이 커다란 원을 그리는 동안 움직이지 않는 컴퍼스의 고정된 축이라고 착각하지만(이 책 속의 레누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릴라처럼 흐물흐물 녹아 퍼지는 액체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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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부터 정리하라 -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사소한 일들
윌리엄 H. 맥레이븐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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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공부를 하기 전 일단 책상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한 적이 있다. '자,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집중해서.'하고 결심을 하고 책상에 앉으면 책상 주변이 너무 지저분한 것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일단 주위를 정리하고 시작하자고 책상을 정리하다 보면 왠지 뿌듯함이 생긴다. 그리고 공부는 조금만 하고 만다. 책상을 정리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탓이다.
이제 딱히 공부할 일도 없는 생활인이다 보니 책상을 정리하면서 무언가를 시작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매일 잠을 자고 나온 자리를 정리하고 시작한다. 흐트러진 침대를 정리하다 보면 어젯밤에 읽다가 던져둔 책도, 대충 벗어던져놓은 옷들도 가지런히 정리하게 된다.
 마치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처럼 작은 실수, 혹은 문제가 커다란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처럼 오히려 사소하고 작은 일을 매일 잘 하는 것이 다른 문제들이 생기는 것도 막게 되고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그렇게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게 된다'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쓴 저자, 윌리엄 맥레이븐은 미 해군 네이비실에 근무하고, 특수전 사령부 사령관 등을 역임한 미 해군의 중요한 인물로 보인다. 그는 그가 근무한 네이비실의 기초 군사 훈련과정에서 배운 열 가지의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특히 침대를 정리하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작은 일을 매일 실천하는 일이 인생을 바꾸는,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강조한다. 물론 작가가 전하는 말은 '가능성'일 뿐이다. 그가 말하는 열 가지는 1.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며 하루를 시작하라. 2.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3. 오직 심장의 크기만이 중요하다. 4. 삶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 5. 실패는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6. 담대하게 도전하라. 7.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에게 맞서라. 8. 어둠을 뚫고 나아가라. 9.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라. 10.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였다.
이 말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디에선가 그리고 누구에게선가 듣던 그런 뻔해 보이는 말들이다. 그래서 어쩌면 다시 듣는다는 것이 별 감동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다. 어쩌면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뻔한 것, 당연한 것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 사소한 것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그런 말들에 자극을 받게 되고 한 해의 시작 즈음에 다시 한번 다짐을 하고 있다.
"침대부터 정리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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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 이야기 - 르네상스의 주역 현대지성 클래식 14
G.F. 영 지음, 이길상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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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이라고 불리는 것에 어느 누구도 감히 토를 달기 힘든 피렌체에는 아름다운 두오모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규모가 큰 돔으로 특히 유명한데 이 성당을 설계한 이는 브루넬레스키라는 건축가다. 이 아름다운 피렌체에는 지오토,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그리고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들이 있다.  예술가와 예술작품들은 권력자들, 도시의 귀족이나 교황 등 권력과 부를 가진 소수의 집단의 향유물이던 시대가 르네상스를 거치며 예술가들은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그것은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정신이 남긴 위대한 변화일 것이다.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 그리고 합리적인 사유()와 생활태도의 길을 열어 준 근대문화의 선구"였던 르네상스를 싹트게 하고 발전시킨 피렌체에는 단지 위대한 예술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피렌체의 유적들, 예술작품들 뒤에는 '메디치'라는 이름이 늘 따라다닌다. 토스카나 지방의 부호였던 메디치 가문은 윈저가, 케네디가, 록펠러 가를 합친 것 같은 부와 패션과 권력을 한꺼번에 쥔 가문이었다.
<메디치 가문 이야기>는 760여 페이지의 촘촘한 내용에 메디치 가문, 그들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경로로 권력의 정상에 오르게 되었으며 어떻게 몰락하여 막을 내렸는지, 그 전체를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호의'라는 비뚤어진 잣대를 들이대지도 않을 것이며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고, 설명하기보다 진술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며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에 대한 판단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달려 있다.

메디치 가문은 군사 정복에 힘입지 않고 은행가와 상인의 신분으로 일어나  350년 동안 가문을 이어나갔다. 메디치 가는 가문의 이야기가 곧 유럽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국부였던 코시모, 위대한 자 로렌초, 교화 레오 10세, 교황 클레멘스 7세, 프랑스의 왕비 카테리나 데 메디치 등 유럽 역사에 기록된 굴직굴직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학문 부흥과 예술을 장려한 데 대해 찬양을 받기도 하지만, 이중적인 태도, 시민의 자유 박탈, 시민위에 군림하는 독재자, 심지어 살인죄 등 온갖 악행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이들이 받은 이러한 평가가, 특히 비판이 과연 사실인가를 밝혀낸다. 그 대부분은 사실이 아님을 작가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밝히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사업가로서의 능력과 깊은 사려, 공익을 위해 재산을 내놓는데 인색하지 않은, 평민을 편을 들었던 위대한 가문이었음을 역설한다. 그들이 피렌체에서 명목상의 왕 이상의 존재로 독특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메디치가의 이러한 특징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만이 정복할 줄 안다."
특히 적을 용서하는 관용을 베풀었던 메디치가의 사람들은 인격의 힘으로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위대한 자 로렌초의 시대는 가문의 역량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인데, 그는 정치가로서의 식견, 판단, 정치적 혜안을 가지고 있었고, 기민한 결정을 내리고, 사람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게다가 고전 저자들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어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시인 겸 저자였다.

장자 계열의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권력자였던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프랑스인들에게 '일개 부르주아 출신 여성'으로 프랑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인물로 프랑스 민족의 명예에 중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져 '이탈리아 여자'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말은 민족적 편견과 종교적 반감, 이야깃거리에 대한 욕구가 결합되어 나온 소문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오히려 그녀는 분별력과 자제력을 갖춘 지도자였으며 남편이었던 앙리 2세의 사후 30년 동안 프랑스의 강력한 섭정 여왕으로 프랑스를 통치했던 인물이었다. 종교개혁의 여파가 가장 심하던 시기,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싸움 속에서 서로 관용을 베풀도록 노력했던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메디치가의 특징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던 시대를 앞서갔던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한다.

한 가문에 대한 정치사를 위주로 쓰인 <메디치 가문 이야기>는 그 분량만큼이나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작은 사건들까지 놓치지 않고 서술해놓다 보니 자꾸 산만해져서 이야기의 흐름을 자꾸 놓쳤다. 좀 더 간결하게 서술했더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서술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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