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에프 모던 클래식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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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이것을 믿는다면, 다른 어떤 것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애니 프루의 <브로크백 마운틴>의 표지
이 책의 내용을 모두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큰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걸 모르던 상태로 영화를 보았는데, 지금 기억에 의존해 보니 영화의 중간쯤(잭이 에니스에게 엽서를 보내 찾아가도 되냐고 묻고 둘이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까지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둘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난 아마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둘의 사랑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둘의 사랑이 애처롭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동성애이기에. 난 그 당시 동성애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었다.
그저 아름다운 브로크백 마운틴의 자연과 두 남자의 사랑만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 영화의 원작인 '브로크백 마운틴'은 애니 프루의 단편소설집 <브로크백 마운틴>의 맨 마지막에 실려있는 작품이다.
존 업다이크가 최고로 뽑은 '가죽 벗긴 소'(존 업다이크답다. 이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소의 가죽을 벗기다 말고 저녁식사를 한 머리에 금속판을 댄 틴 헤드는 식사를 마치고 오니 소가 보이지 않아 찾아다닌다. 그러다 가죽이 반쯤 벗겨진 소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부터 영화가 된 '브로크백 마운틴'(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을 지키던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까지 애니 프루의 이 단편집은 와이오밍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한 거칠고 웅장하고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한 편의 작품을 읽고 한참을 쉬어야만 다음 단편을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돌보는 것이다.'라는 와이오밍주의 성문화되지 않은 방침은 식물과 가축뿐 아니라 사람들에게까지 적용되었다.'
애니 프루가 전하는 와이오밍은 우리가 알고 있고 경험한 보통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6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황량하고 공허한 땅, 포효하는 바람과 거친 인간들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사는 곳. 그렇지만 그들은 쉽게 그곳을 떠나지도 못한다.
누구든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떠나지 않는 법이다. p.257

이 땅은 위험하고도 무심하다. 이 꼼짝도 않는 거대한 대지 위에서는, 제아무리 사방에서 불행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진대도, 인간사의 비극이라는 건 한없이 보잘것없이 보일 뿐이다. <중략> 사람이 만든 것은 뭐든 유한의 시간 동안만 머물렀다 사라질 뿐이다. 중요한 건 오로지 대지와 하늘이다. 매일 끝없이 되풀이되는 아침의 여명이다. 그렇게 당신은 그 이상 신이 우리에게 베풀어야 할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숨겨진 거칠고 야만적인 삶.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은 아름다웠다.
애니 프루는 특히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묘사했다.

낮 동안 에니스가 광활한 초지를 가로질러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커다란 식탁보 위를 기어가는 작은 곤충처럼, 너른 초원 위에 작은 점으로 움직이는 잭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그리고 밤이 오면 잭은 캄캄한 미니 텐트 안에서 산이 만든 거대한 검은 덩어리 속에 붉은 불꽃을 피우는, 밤의 등불 같은 에니스를 보았다.
셔츠에 왠지 묵직한 감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셔츠 안에 다른 셔츠가 겹쳐져 있었다.

그 둘의 사랑은 셔츠 안의 셔츠처럼 감추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양들과 자연만이 존재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더없이 좋은 에덴의 동산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과 믿으려 하는 것 사이에는 약간의 간극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고칠 수 없는 일이라면 견디는 수밖에 없는 법이다.

거대한 자연과 인간의 본성과 그들이 꿈꾸는 것, 믿고 있는 것이 서로 충돌하지만 결국 인간은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거대한 산과 강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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