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 속 화자가 작가일 때 글쓰기가 제일 쉬울까? 혹은 어려울까?
화자가 작가일 경우 소설 속 이야기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게 되며, 그래서 독자는 더욱 소설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무렴 작가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지 않겠어 하며. 특히 주인공인 작가가 소설의 내용을 고민하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경우 우리는 분명 작가의 경험담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조엘 디케르의 <볼티모어의 서>는 바로 그런 소설이다. 작가인 마커스 골드먼은 성공한 작가다. 그런 그가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자신의 과거를 불러내는 여인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이 떠오른다.

마커스의 큰아버지 사울 골드먼은 볼티모어에 사는 부유한 사업가다. 그리고 아버지 네이튼 골드먼은 몬트클레어에 사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어린 마커스의 눈에 너무나 부러웠던 큰아버지 볼티모어 골드먼들. 그들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둘 풀어지면서 우리는 과거의 그 인식들이 왜곡되고 변질되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지금은 성공한 작가의 눈에, 과거의 영광은 모두 사라져버린 볼티모어 골드먼들은 그 당시와는 전혀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그 사라져 버린 볼티모어 골드먼에 바치는 서사가 바로 <볼티모어의 서>다.

이 소설을 쓰면서 과거의 일에 아프고 슬펐던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전부 지울 수 있었고
전부 잊을 수 있었고
전부 용서할 수 있었고
전부 치유할 수 있었다.

골드먼가에 있었던 그 일, 우디와 힐렐이 그렇게 된 후 뿔뿔이 흩어져 괴로워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것은 마커스가 볼티모어 골드먼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서이다.

그 일이라고 하지 마라. 아니타도 그렇게 되었고, 따지고 보면 그 일은 정말 많았잖니? 앞으로도 그 일들이 계속 있을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해. 불행은 피할 새도 없이 밀어닥치지. 사실 그 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일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야. 골드먼 일가가 추수감사절에 모이지 못한 건 그 일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야. 이겨내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좌절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면 안 돼. 마커스, 우리에게는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어. 이제부터 추수감사절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려 쇠길 바란다. 그러겠다고 약속해다오.
마커스, 넌 지금 골드먼 이야기, 즉 볼티모어 골드먼과 몬트글레어 골드먼 이야기에 붙잡혀 있지? 이제 그 이야기의 결말에는 단 한 사람의 골드먼만이 남게 되겠지. 그게 바로 너야. 너는 거듭 태어난 거야. 우리는 모두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지. 난 사랑하고, 사랑받고 용서하는 게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단다. 그 나머지는 흘러버린 시간의 합에 불과해. 넌 계속 글을 써야 해. 네 글을 통해 골드먼들의 삶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커스, 골드먼들의 삶이 치유해주겠다고 약속해다오. 볼티모어 골드먼들은 네 글을 통해 삶의 의미를 회복하게 될 거야.
글이 삶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우리가 부조리한 삶에 맞서는 복수전을 펼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처럼 강한 정신,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기억의 힘을 증명할 수 있다

<볼티모어의 서>는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는 집들의 내부는 갈등과 모순이 존재하는 집 일수도 있고, 비록 허름한 집일지라도 그 안은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 단 한 번이라면 우리는 그 단 한순간에 매여 평생을 부자유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일들은 언제나 내 주위에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그 일들을 겪어내며 조금씩 성장하면서. 그 인내와 성장에서 글쓰기는 작가의 말처럼 잊고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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