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 - [초특가판]
더글라스 서크 감독, 제인 와이먼 출연 / 스카이시네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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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된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전개도 억지스럽지 않아 좋았다.
록 허드슨이라는 배우는 대단한 미남 배우라고 하는데 (50년대를 대표한다고) 사실 난 썩 잘 생겼다는 생각은 안 든다.
처음에는 실버스타 스탤론의 젊은 시절인가 착각했었고 (근육질이 워낙 발달해서) 나중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인가도 했다.
록 허드슨이라는 이름이 왠지 락커일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에서도 캐리가 론의 근육질에 반했냐는 비난이 나오는데 난 오히려 근육이 너무 발달한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난 꽃미남의 가냘픈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

캐리 역을 맡은 제인 위먼은 무척이나 고상한 상류층 귀부인으로 나온다.
점잖고 품위있고 날씬한 고상한 여자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지나치게 짧은 치마 보다는 영화 속의 캐리처럼 기품있는 정장 차림이 더 마음에 든다.
오히려 딸로 나오는 젊은 여배우의 패션이 더 촌스럽다.
무척 날씬하고 조그마한 여자인데, 거구의 미식축구 선수가 키스하면서 감탄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작은 사람이 이렇게도 매력적이라니!

정원사와 주인집 여자의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영화에서조차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참 이상한게, <타이타닉> 에서는 3등석의 디캐프리오와 1등석의 케이트 윈슬렛의 사랑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데 말이다.
둘 다 젊은 사람이라서 그런건가?
아니면 이 영화가 훨씬 더 리얼리티가 있어서인가?
나이차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요즘 <아현동 마님>에서도 열 두 살 차이 나는 커플이 등장하지만, 영화 속의 캐리는 정원사 론보다 열 다섯 살이 많다.
실제로도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인다.
그렇지만 자연스럽다.
기품있고 고상해 보이는 느낌 때문일까?
젊은 여자와 중년 신사의 사랑 보다도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현실에서라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내가 우리집에 전기 고치러 온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정원사를 고용할 정도로 부자가 아니라서 전기 수리공으로 상상해 본다.
하여튼 분명히 사회에서 말하는 신분 격차는 존재한다.
관습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열 다섯 살의 나이차는 오히려 경제적 격차에 가리워져서인지 아니면 미국은 나이차에 덜 민감해서인지 주된 화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래 된 영화라 덜 자극적인 것일 수도 있다.
가난한 여자와 부자 남자의 결합은 아름다워 보이는데, 가난한 남자와 부자 여자의 결합은 왠지 위태롭다.
아무래도 여자가 사회적으로 자기 것을 지키기 어려운 약자이기 때문일까?

캐리의 재혼을 반대하던 아이들은, 결국 자기 갈 길을 찾아 떠나버리고 혼자 남은 엄마에게 텔레비전을 선물한다.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혼자 남은 중년의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TV 뿐인 것 같다.
TV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그 외로움을 두드러지게 한다.
자식도 결국은 제 인생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캐리는 그때서야 자신의 행복을 찾으러 떠난다.
이런 걸 보면 인생은 각자 열심히 자신의 행복을 찾아 사는 것인가 보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건, 그 희생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면 공허해진다.
캐리의 친구인 새라는 그래도 자식이 있는 캐리를 부러워 한다.
"그래도 넌 클럽이나 칵테일 파티를 전전하지는 않아도 되잖니"
자식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랑 결혼하지도 못하고 괴로워 하지만 자식 없는 부부가 노년에 마음 붙일 곳은 공허한 파티 뿐이다.
자식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건 인간의 본능 같다.
친구가 가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하여튼...
연애만 하려는 캐리에게 론은 당신은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가에 나 역시 회의적이지만, 어쨌든 결혼이 연애보다는 좀 더 책임있는 행동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는 바다.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약속을 하고 평생을 함께 서로에게 신의를 지키고 산다는 건, 인간의 본능이 일부일처제와 맞지 않다는 주장과는 별개로, 무척이나 중요하고 놀라운 일인 것 같다.
어쩌면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더욱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즘에는 결혼의 의미가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내용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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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앤 솔져 - [초특가판]
라이언 리틀 감독, 알렉산더 폴린스키 외 출연 / 인디고 엔터테인먼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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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골라준 DVD를 보면 항상 의외의 재미를 준다.
검증이 된 영화들이라 그런가?
이번 영화도 정말 재밌고 인상적이었다.
왜 이런 영화가 못 떴는지 모르겠다.
"폭력의 역사" 도 참 좋았는데 이번 영화도 정말 괜찮다.
무슨 내용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는 저 촌스러운 제목을 우리말로 좀 그럴 듯 하게 바꾼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볼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말이 너무 뜻밖이다.
주인공인 딕칸이 끝까지 살 줄 알았는데 하사와 함께 죽고 만다.
하사 죽을 때 제일 놀랬고 딕칸이 마지막에 남겠다고 할 때는 죽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의외의 인물인 굴드가 살아 남아서 뜻밖이었다.
더 의외는 얄미운 캐릭터인 윌리가 비록 총상은 입었지만 마지막까지 살았다는 것이다.
영국인 비행사로 등장하는데 정말 얄밉다.
순진한 켄드릭을 얄밉게 놀리는데 한 대 쥐어 박고 싶었다.
대체적으로 미국인은 좋게 나오고 나머지는 다 비호감으로 그려진다.
그들을 구해 주는 벨기에 여자는 정말 우아하다.
누군지 궁금하다.
하사는 처음에 얼핏 봐서 톰 행크스인줄 알았다.
갑자기 총 맞아 죽는데 정말 깜짝 놀랬다.
전쟁터의 죽음을 실감나게 그렸다.
그러고 보면 영웅이 등장하는 전쟁 영화는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빗발치는 총알 세례 속에서도 절대 죽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옛날부터 난 홍콩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쌍권총을 쏜다는 것 부터가 말이 되냔 말이지.

전쟁이라는 것, 언뜻 보면 장난감 병정 놀이 같기도 하다.
죽은 사람의 절절한 생은 버려 두고, 주인공이 신나게 총을 쏴서 나쁜 독일놈들을 물리치기만 하면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고 한 편의 스포츠 게임 같다.
그러나 죽은 이들의 개인적인 삶으로 들어가면 너무나 안타깝고 어처구니가 없고 대체 왜 이런 총싸움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전투적이고 이익을 위해 적극적인 동물이고 보면 전쟁이야 말로 인류 역사를 장식한 가장 일반적인 사건들이면서도, 그 끔찍함이 개인에게 주는 의의는 엄청나다.
편하게 앉아서 영화로 전쟁을 접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치는 항상 나쁜 놈으로 그려져서 독일에서는 어떤 식으로 2차 대전 영화를 만들지 궁금해진다.
일본과 독일의 전후 태도는 또 어떤지 궁금하다.
하여튼 나치가 없었다면 영화 만들 소재도 대폭 줄어들었을 것 같다.

의무병으로 나오는 굴드는 전쟁통에서도 허둥대지 않고 신속 정확하게 병사들을 처치한다.
잠을 못 자서 멘탈이 alert 하지 않은, 섬망 같은 증세에 시달리는 딕칸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역시 잠을 자야 한다.
굴드의 명쾌한 처방, 총을 뺏고 자꾸 말을 걸어라.
훌륭한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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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히로시마 - [초특가판]
엘레인 레스네 감독, 엠마뉴엘 리바 출연 / 스카이시네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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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영화를 2008년에 본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다.
1959년에 만들어진 영화니, 벌써 50년이나 지난 영화가 아닌가!
솔직히 재밌지는 않았다.
다만 독특하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저 그렇고 그런 헐리우드식 시간 때우기 영화가 아니라, 개성이 있고 감독이 하고 싶어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무엇보다 배경이나 분위기가 고혹적이다.
이게 흑백 영화의 혹은 프랑스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여배우 엠마누엘 리바는 적어도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은 돼 보이는데 꽤나 매력적이다.
<남과 여>에서 나왔던 아누크 에메처럼 고혹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분위기가 참 좋았다.
눈가의 주름도 나이를 곱게 먹은 흔적 같아서 아름다웠고 단발 머리가 따라 하고 싶을 만큼 잘 어울렸다.
또 허리는 어찌나 날씬한지, 동여맨 벨트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그 밑의 아랫배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요컨대 50년대의 마른 체형 여자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잘 못 먹고 살던 그 때는 아마 대부분 저렇게 날씬했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 오카다 에이지에 대해 말하자면, 요즘 한창 뜨는 다니엘 헤니가 중년이 되면 저렇게 늙지 않을까 싶을 만큼 멋지다.
일본 남자는 키가 작고 체격이 조그맣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일시에 날려 준 영화다.
키도 훤칠하고 정말 잘 생겼다.
오히려 여주인공 보다 더 돋보인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동양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히로시마의 상처는 광주민주화항쟁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원폭의 피해로 수십만명이 일시에 죽고 불구가 됐다.
더군다나 태아에게까지 그 피해가 전해져 다음 세대에도 선천적 기형들이 속출한다.
일본은 어떻게 미국과 화해할 수 있었을까?
만약 한국에 그러한 테러가 가해졌다면 한국인은 미국과 진정으로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난 일본이 현재의 미국과 이렇게 잘 지낸다는 사실이 놀랍다.
너무나 끔찍한 전쟁 범죄가 아닌가?
누군가의 말처럼 유럽 국가였다면, 이를테면 히틀러가 아무리 항복을 안 하고 버틴다 해도 과연 독일에 원폭을 투하할 수 있었을까?
영화 속에 나온 대사처럼 이건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아닐 수 없다.
잠깐 등장하지만 원폭 피해자들의 면면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웠다.
오늘날 일본의 경제성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는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특히 난징 대학살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시 원폭 피해자로서 정당한 보상과 위로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원폭 투하를 결정한 미국 정부의 그 잔인함이 놀랍기만 하다.
(그런 거 생각하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또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끔찍한 일인지!)

 

영화 속의 여자는 반핵 영화를 찍기 위해 히로시마에 머물고 거기서 일본인 건축가를 만나 하룻밤 정사를 벌인다.
한 눈에 반한 이 커플은, 다음날 일본을 떠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보내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
이틀에 걸친 짧은 여정 동안 벌어진, 어찌 보면 러닝 타임과 비슷한, <비포 앤 애프터> 가 생각나는 영화다.
<비포 앤 애프터>의 50년대 버전이라고 할까?
문제는 둘 다 유부남, 유부녀라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붙잡는다.
여자는 몇 번이나 남자의 손을 놓고 떠나지만 다시 남자 곁으로 돌아와 맴돈다.
결국 마지막에는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 호텔로 들어가는 걸로 끝나는데 확실한 결말은 없다.
아마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과 현실은 다르지 않는가?
남자는 아내와 이혼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혹은 여자는 프랑스의 아이들을 버리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 히로시마에 머물면서 바람을 피우겠다는 것인지?
만약 여자가 계속 일본에 머문다면 혹은 일본 여자라면 둘의 관계는 혼외정사로 쭉 이어질 것 같다.
둘 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푹 빠져 있다.
더구나 이 멋진 일본 남자는, 여자의 아픈 첫사랑 상처를 완전히 치유해 줬다.

 

사실 이 상처가 영화의 주된 모티브인데 여자는 과거 2차 대전 당시 독일 병사를 사랑했다.
그는 프랑스가 해방되는 날 총맞아 죽었고 그의 시체를 붙잡고 새벽까지 지키던 여자는, 아버지에 의해 지하실에 감금된다.
아버지는 적군 병사와 연애한 딸 때문에 약국 문도 닫는다.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질시, 열 여덟 살의 어린 소녀는 정신 착란증을 앓는다.
지하실에 갇히면 벽을 긁어 손톱에 피가 맺히면 그것을 빨아 먹으면서 위로를 찾는다.
자학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구체적인 명시는 없지만 내가 보기엔 정신병을 앓았음이 분명하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삭발된 머리가 자라면서 (세상에, 프랑스에서도 이런 만행이 자행되다니!) 지하실에서 풀려나고 파리로 떠나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진짜 치유는, 히로시마에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 고백하면서 완전히 털어낸다.
그녀의 대사 속에서 자주 그 독일인 첫사랑과 일본 남자를 동일시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매국노 딸이 부끄럽고 수용하기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마저 딸을 외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섭다.
아마 아버지로서는 생업마저 지장을 받게 되자 딸을 감쌀 여력을 잃어 버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가족이라는 것도 어느 한계 이상을 넘어가면 포용할 수 없는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이 무한대라고 하지만 이런 장면을 보면 어쨌든 인간은 자기 자신이 우선이다.
가엾은 소녀는, 그러나 그 첫사랑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여배우가 된다.
자기 상처는 스스로 치유하는 법이다.

 

일본인 남자와 프랑스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남자의 프랑스어 발음이 너무 좋다.
혹시 혼혈인이 아닐까 싶기도 할 정도로 굴러 가는 불어 발음이 너무 좋다.
국적 문제 뿐 아니라 혼외정사라는 문제가 겹쳐 있는 이 커플들의 운명이 무척 궁금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결론은 없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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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 - 아웃케이스 없음 폭력의 역사 1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비고 몰텐슨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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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영화였다.
아빠의 추천으로 보게 됐는데, 상당히 고전적인 제목이라 꽤 옛날 영화인 줄 알았는데 왠걸, 2005년도에 개봉된 영화였다.
칸느 영화제에도 출품된 모양이다.
감독이나 배우 모두 낯설었지만 익숙한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남녀 주인공 모두 잘생기고 예쁘지 않은데도, 영화 보는 내내 주인공들에게 빠져들었다.
특히 DVD가 주는 매력인 서플을 통해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거야 말로 영화가 아닌 DVD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은발의 근사한, 그러면서도 매우 편안한 지적인 감독이었다.

사실 톰이 다중 인격자라는 건 영화 상에서 잘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존 쿠삭이 나오는 영화, "아이덴티티" 였던가?
이 영화에서 다중인격자의 모습이 잘 표현된다.
내가 보기에 비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 변화가 거의 없다.
그냥 처음부터 톰이었던 것 같다.
조이로 변하면서는 폭력적이고 악마적인 성향을 보여 줘야 하는데, 마지막까지도, 심지어 여러 명을 죽여 놓고서도 여전히 착한 시골 가장의 이미지를 벗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성실하고 착한 모습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아내는 톰의 폭력적인 모습을 낯설어하고 매우 두려워 하나, 관객의 입장으로 보면 톰은 완벽하게 착한 남편이고 시골 가장이라는 인격 외에는 없다.
단일 인격자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 여자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녀들은 한국 여자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비춰 볼 때 정말 강하고 도발적이다.
이디가 톰을 때리는 거 보고 정말 놀랬다.
거침이 없다.
기본적으로 골격도 크고 성적으로도 매우 적극적이며 도발적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동양 여자 이미지는 순종적인 모양이다.
이디와 톰의 격정적인 계단 정사씬은 영화에서 최고로 nervous 한 부분이었다.
톰은 마치 강간이라도 할 것처럼 이디의 발목을 붙잡고 목을 틀어 올리지만, 이디는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톰의 입술을 휘감는다.
처음에는 폭력으로 여자를 정복하려고 하는 톰에게 화가 났는데, 이디 스스로 섹스에 응하는 걸 보고 그녀의 마음이 돌아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적으로 적극적이라는 것도 영화 속에서 외국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국보다는 여자들에게 성적으로 훨씬 개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의 감독이 “플라이” 를 만든 데이빗 크로넨버그라고 한다.
상업적인 영화보다는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감독 같다.
서플을 보면 감독이 굉장히 멋지게 나온다.
이게 바로 DVD의 매력인데, “남과 여” 에서도 끌로드 를루슈 감독의 매력적인 모습을 본 바 있다.
주인공 비고 모텐슨도 퍽 매력적인 배우다.
잘 생긴 건 아닌데 성격파 배우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최민식이나 송강호 같은 스타일이지 않을까?
잘 생긴 건 아니지만 기막히게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배우들!

특히 칭찬해 주고 싶은 부분은 특수효과다.
잔인하지 않으면서도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면면을 리얼하게 잡아냈다.
서플을 보니, 만들 때 퍽 고생을 한 것 같다.
이래서 영화는 종합예술인가 보다.
단순히 배우와 촬영감독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매주 두 작품을 찍어야 하는 드라마의 완성도는 영화에 비교할 것이 못 돼고 또 노동량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다.
아이즈 와이드 셧 같은 경우도 몇 년에 걸쳐 찍은 영화라고 하니, 비슷한 장면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했을지 알 만 하다.

주인공 비고 모텐슨이 스턴트맨 출신이라 그런지 액션 연기를 정말 잘 한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악당 중 젊은 배우도 잠깐 등장하는 거였지만 꽤나 인상깊은 연기를 한다.
마지막에 톰이 형 리치를 죽이는 설정은 좀 잔인했다.
친형이 동생을 죽이겠다고 덤비는 것도 그렇고, 거기에 맞서 동생 역시 아무런 갈등 없이 형을 쏴 죽이는 걸 보면, 확실히 한국보다 미국은 가족애에 덜 엮여있는 기분이다.
형은 중간보스로 나오는데 톰네 가족은 아마 다시 또 더 큰 보스의 추적을 당하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톰이 형을 쏜 권총을 연못에 던진 후 수백 마일을 달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온다.
싸늘한 가족들의 시선,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딸이 톰에게 저녁 식탁에 앉게 하고 접시를 내 놓는다.
아버지를 증오하던 아들은 고기를 덜어 준다.
이 장면으로 끝났는데 난 이 가족이 다시 화해했으리라 믿는다.
어쨌든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가?
톰이 다시 일상의 평온함으로 되돌아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거창하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럴싸한 조직 폭력배 생활도 마찬가지로), 즉 어떤 영웅주의적 행동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 안에서 소박하게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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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와이드 셧 - 할인행사
스탠리 큐브릭 감독, 톰 크루즈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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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어려운, 독특한 영화였다.
기묘한 분위기,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라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늘씬한 배우들이 펼치는 이상야릇한 혼란들...
영화 설명에는 니콜 키드먼이 맡은 앨리스가 정숙한 여인이라고 나오는데 글쎄, 겉보기에도 퍽이나 매력적이고 섹시해 보이는데 그건 아니지.
둘 다 화면이 참 아름다운 배우들이다.
특히 큰 키와 긴 다리를 자랑하는 니콜은, 안경을 씀으로써 자신의 도발적인 매력을 한 단계 낮춘다.

 

난 대체 왜 이 영화가 야하다는 소문에 휩싸였는지 모르겠다.
비밀스런 성에서 벌어지는 혼음파티 때문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니콜의 벗은 몸 때문에?
왠걸, 그 보다 더한 영화는 도처에 널려 있다.
오히려 도발적이고 위태로운 분위기 때문에 긴장감을 준다.
노골적인 섹스씬은 거의 한 장면도 없었고 혼음파티는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감독이 연출하는 그 기묘한 분위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세계적인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사운드 트랙도 환성적으로 잘 어울린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아 정확한 분위기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그 나라는, 적어도 한국 보다는 남편과 아내의 정절 문제를 비슷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보다는 덜하겠지만, 한국 사회는 남자들의 일회적인 섹스나 매춘에 대해 대단히 관대하다.
술먹고 하루밤 자는 게 무슨 대수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
지속적인 관계만 아니다면, 혹은 적당한 선에서 정리할 수 있다면, 즉 가정으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다면 일시적인 바람은 용납되어지는 분위기다.
남자에게 순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의 빌은, 실제로 섹스를 즐긴 것도 아니고, 단지 혼음파티에 호기심으로 찾아갔을 뿐이고, 창녀와의 하룻밤도 돈만 날렸을 뿐 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크게 죄책감을 느낄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괴로워하며 아내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아내 앨리스 역시 단지 해군장교와의 하룻밤을 꿈꾸었을 뿐 실제적인 행위는 없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일어나지 않은 현실, 머릿속에서의 욕망에 죄책감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괴로워 한다.
어쩌면 그 점이 일반적인 포르노나 3류 영화와는 다른, 작품의 수준을 높혀 주는 포인트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이 부부의 감추어진 성적 욕망 내지는 정절에 대한 충실도를 보면서 스와핑이라는 단어가 신문에 오르내리는 요즘의 현실과 비교해 봤을 때, 순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성적 개방이 자연스러워졌다 해도, 여전히 결혼이란 한 사람과의 독점적인 성관계를 법적으로 약속한, 매우 폐쇄적인 관계임을 깨달았다.
간통죄라는 법률적인 위반 행위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구속력이 훨씬 강하게 작용할 것 같다.
오히려 성관계 개방 풍조는, 결혼 이전에, 미혼남녀가 섹스를 연애행위에 자연스럽게 포함시킬 수 있음을 뜻하는 것 같다.
어찌됐든 부부간의 정절은, 혼전순결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외도 한 번 안 하는 부부가 어딨냐는 발언은 매우 무책임한 소리라는 걸,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사회적 제도로 억압하면서 사는 것, 그게 바로 결혼이 아니겠는가?

 

비밀스러운 혼음파티는, 성에 대한 인간의 퇴폐적인 욕정을 보는 기분이었다.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폐쇄적으로 모여 서로가 보는 앞에서 섹스를 즐긴다...
뭐랄까, 즐거움의 극치에 이르다 보니 적정선을 넘어서 가학적이고 변태스러운 단계에 이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단에 다달았다고 해야 할까?
마약과 술에 절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남녀의 육체에 탐닉하는 모습, 성적 표현의 완전한 자유를 외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비밀스럽고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며 심지어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죽이기까지 하는 끔찍한 가학성은 아무래도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든 신체나 정신에 위협을 가하는 폭력적인 탐미는 아름답지 못하다.
어떤 즐거움이든 적당한 수위가 있는 것 같다.

 

니콜 키드먼과 탐 크루즈 모두 눈을 즐겁게 할 정도로 훌륭한 마스크와 몸매를 지녔고 영화 분위기나 음악 모두 마음에 든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의사면허증이 마치 운전면허증처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의 빌은, 의사라는 직업을 내세워 마치 경찰처럼, 많은 일을 쉽게 해결한다.
미국 문화의 신기한 점을 발견한 기분이 든다.
의사가 미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나라 의사면허증은 A4 한 장 크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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