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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아, 정말 너무 좋다.
하루키 글은 그냥 너무 좋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21세기 개인주의자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라이프 스타일과 문체를 가진 작가 같다.
원래부터 개인주의 전통이 강했던 서구권이 아닌 일본이라는 집단주의 사회에서 이런 작가가 나왔다는 사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상실의 시대>를 대학교 때 읽고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랄까, 내가 평소에 보던 소설과는 다른, 뭔가 자유로운 개인이 어떤 존재인가, 혹은 사랑은 칙칙하고 무거운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매여 있지 않은 산뜻한 것이라는 걸 느끼면서 팬이 됐다.
은희경의 소설을 읽을 때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후로 읽은 소설들은 솔직히 별로 와 닿지가 않았다
하루키가 그려내는 환상의 세계와 플롯이 전혀 현실적이지가 않고 이게 말이 되는 설정인가? 자꾸 이런 반발심이 생겨 소설 읽기는 중단했다.
어쩌면 내가 소설이라는 형식, 즉 있을 법한 이야기에 대해 별 흥미가 없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항상 진짜 사실인 논픽션, 혹은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정교한 플롯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작가의 진짜 매력은 에세이에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의 모든 에세이가 전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냥 이 분은 개인주의 그 자체 같다.
너무 자유롭고 권위나 집단에 속박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그러면서도 주변인들에게 강렬한 매력을 내뿜는 사람 같다.
문체 자체가 너무나 가볍고 산뜻하다.
문학상에 대한 작가의 소회 부분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것은 평단의 평가나 외형적인 상이 아니라 독자들이 돈을 내고 읽을 만한 소설인지라는 것이다.
물론 평단의 평가도 중요하긴 하다.
명성을 얻으려면 대중의 열광만 가지고는 역사에 남기 어려운 법이다.
그럼에도 정말로 본질은 직접 그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기 돈을 들여 선택해 주는지, 혹은 그 책을 읽고 나처럼 이렇게 깊이 감동하고 열정적인 감상문을 쓸 수 있는지라는 그의 작가론에 너무 공감이 된다.
아무나 소설을 쓸 수는 있지만 전업 작가로서 오래 버티기는 어려운 법이고 꾸준히 책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경할 만하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소설가의 진짜 본질, 자부심의 원천은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냐는 것이다.
당연히 팔리는 책을 써야 하는데 단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해 뻔한 소설을 쓰라는 의미는 아니다.
대중은 말초적인 가벼운 것만 좋아할 것 같아도 시장은 또 얼마나 냉정한가.
권위적이고 예술지상주의 작가론만 보다가 이런 본질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그냥 나도 모르게 가슴이 탁 트이고 글을 읽으면서 쾌감이 느껴진다.
오지리널리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글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112p
'아아, 이렇게 멋진 음악이 있다니, 이런 울림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음악은 내 영혼의 새 창을 열고 그 창으로는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공기가 밀려듭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행복한, 그리고 한없이 자연스러운 고양감입니다. 다양한 현실의 제약에서 해방되어 내 몸이 지상에서 몇 센티미터쯤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것이 나로서는 '오리지널리티'라는 것의 합당한 모습입니다. 매우 단순하게.
바로 이런 느낌을 갖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혹은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내가 하루키의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런 감정의 고양을 느꼈고, 지금 푹 빠져있는 가수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벅찬 감동, 충만한 행복감이 든다.
이런 게 바로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적인 정의도 있겠지만 예술인지 아닌지는 그 작품으로서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면서 미적 쾌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지가 진짜 본질이 아닐까?
<인상깊은 구절>
43p
나에게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청춘의 나날을 즐길' 여유 같은 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에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먹고사는 게 힘들어도, 책을 읽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 함께 나에게는 언제나 변함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76p
요즘 책에 무관심하다, 활자에 무관심하다, 라는 얘기가 자주 들리고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5% 전후의 사람들은 설령 '책을 읽지 마라'고 위에서 강제로 막는 일이 있더라도 아마 어떤 형태로든 계속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처럼 탄압을 피해 숲에 숨어 모두 함께 책을 암기한다-라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몰래 숨어 어딘가에서 책을 읽지 않을까요. 물론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책을 읽는 습관이 일단 몸에 배면 -그런 습관은 많은 경우 젊은 시절에 몸에 배는 것인데- 그리 쉽사리 독서를 내던지지 못합니다. 가까이에 유튜브가 있건 3D 비디오게임이 있건, 틈만 나면 (혹은 틈이 나지 않더라도) 자진해서 책을 손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