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가 필요한 시간 - 2000년간 권력이 금지한 선구적 사상가
천웨이런 지음, 윤무학 옮김 / 378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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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내가 알던 묵자가 아니다. 많은 책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읽었지만 묵자의 존재는 아주 미미했다. 묵자보다 한비자의 비중이 더 높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유가와 함께 묵자를 같이 놓아둔다. 가히 쌍벽의 존재였지만 어느 순간 역사 속에서 그 이름은 사라졌다. 이 사라짐은 그 위세와 비교했을 때 많은 의문을 안고 있다. 저자는 묵자의 실존부터 시작하여 그 무리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잊혀지고 변하게 되었는지 따라간다. 그리고 그가 이룬 성취와 과업의 의미와 한계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 속에 중화민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묵자에 대한 많은 논쟁을 앞부분에 배치했다. 묵의 의미, 생몰연도, 출생지, 선조와 출신, 유학의 공부 여부 등이 대표적인 논쟁거리다. 많은 자료가 사라진 탓에 이 논쟁은 남은 자료를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묵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대로 유학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거대한 세력을 이루었다면 조금 의아한 부분이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그 세력이 강대했기에 더 강한 탄압과 박멸의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읽고 분석해야 했다. 읽으면서 그 의미가 퇴색했던 한 인물을 되살려내려고 노력한 수많은 학자들에게 감탄했다.

 

하층 수공업자 출신과 유학을 배운 후 자신만의 학문을 만들고 겸애를 부르짖은 묵자.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하지만 그와 그 제자들이 춘추전국시대에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하나씩 파고 들어가면 훨씬 대단한 묵가를 만나게 된다. 머리끝부터 발뒤꿈치까지 모두 닳아 없어진다고 해도 천하를 이롭게 한다면 기꺼이 한다는 맹자의 말은 이 묵가의 정신과 행동을 아주 잘 표현해준다. 한비자가 “세상의 가장 유명한 학문은 유가과 묵가이다.”라고 말한 것은 유학과 쌍벽을 이루었다는 주장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런 말들과 함께 남아 있는 묵경을 통해 하나씩 풀어낸 묵자의 철학과 업적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먼저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부제는 2000년 간 권력이 금지한 선구적 사상가이다. 이 책 속에는 권력이 금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들어있다. 하나의 학설이지만 진의 천하통일 이면에 묵가의 도움이 있었다는 가정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권력이 금지하고 탄압하는 와중에 묵가의 외피는 계속 바뀌고, 다른 모습을 가진다. 종교와 비교한 부분에 이르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느끼고, 그들의 강한 규율을 읽으면 결코 쉽지 않은 조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본이 되는 정신이 겸애인데 나와 남, 빈부, 신분, 혈연, 지역에 상관없이 나와 남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춘추전국이란 시대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나왔다는 것이 대단하다.

 

겸애와 함께 다루어야 할 것이 비공과 절용이다. 비공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절용은 근검절약이다. 부국강병으로 나라를 키워나가던 그 시절에 이런 주장이 큰 세력을 얻었다는 것은 그 시대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고, 왜 완벽한 주류가 되어 권력자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는지 그 단서를 알려준다. 송나라 침공을 막았다는 묵자 최고의 업적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기술자이자 수성 전문가인지 알려준다. 공성에 대한 방어 부분을 기록한 자료를 읽다보면 그 시대의 뛰어난 과학 기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공수반과의 고사는 아주 재밌고, 다양한 해석으로 이어진 부분도 흥미롭다.

 

묵자와 함께 저자가 치켜세우는 것이 중화민족이다. 한족이 아니라는 부분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읽다 보면 동이족이 나오는데 이 동이족이 한민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미인지는 저자의 진짜 속내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읽다 보면 동이란 단어가 한국의 강한 민족사관에 입각한 학자들이 주장한 것과 일치한다. 이것이 지역과 연결되면 많은 논쟁과 함께 국민의 자부심과도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묵자의 과학기술과 논리학 부분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과한 해석 같기 때문이다.

 

원전을 읽지 않았고, 다양한 저자들의 다양한 분석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쓴 글이다 보니 결코 쉬운 독서가 아니었다. 한자의 특성 상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대표적인 것으로 꼽는다면 묵자가 말년에 흑은사에 은거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절(寺)이 불교의 그 절이라면 시대가 맞지 않다. 단순히 그 지명을 표기하기 위한 것이라면 정확한 문장이 아니란 아쉬움이 있다. 또 저자가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글을 분석한 것과 달리 과학기술이나 논리학에서 현대적 해석의 잣대를 너무 쉽게 들이대는 부분은 왠지 살짝 반감이 생긴다. 아직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부분은 더 많은 연구 결과 이후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한 명의 사상가를 이렇게 일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자료가 풍부하지 않다면 더욱 힘들다. 자료의 빈 곳을 고증과 연구 등으로 채워야 하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묵가의 일부가 유협으로 흘러갔다는 대목에서 무협 속 협객들이 떠올랐다. 민중의 반란들 속에 보이는 묵가의 흔적은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그 사건을 보게 한다. 한동안 잊고 있던 중국철학에 대한 관심이 샘솟는다. 민중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부분에 대한 한 학자의 냉혹한 평가는 그 사상과 시대뿐만 아니라 그 사회정치사상이 지닌 한계도 같이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다. 이제 묵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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