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도 모르면서 -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내 감정들의 이야기
설레다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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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타는 책이다. 어릴 때 만났다면 이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감정들의 기록에 빠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고, 이와 비슷한 책들을 읽은 탓인지 이 말랑말랑한 감정과 기록들이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않는다. 기대했던 감정의 기복이나 폭발은 정제된 단어의 사용으로 너무 매끄러워졌다.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평온하게 적은 것을 보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어느 정도 순화된 모양이다. 그가 폭음을 한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고, 그 감정의 기복도 마찬가지인 듯한데 말이다.

 

자신의 감정에 좀더 충실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이때의 충실은 좀더 싱싱한 감정 표현을 말한다. 명사를 동사화해서 풀어낸 부분은 원래의 의미에 자신의 감정과 이해를 엮었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의 감정이 그랬구나 하는 것으로 어느 순간 바뀌었다. 이 단어 하나하나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하지 않아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적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감정의 조각들이 본문과 이어질 때 이 글을 쓸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짐작도 하게 된다. 설토의 모습은 본문의 이해를 아주 쉽고 간결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제목과 첫 몇 장의 글을 읽으면서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고, 그 사랑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기록들로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다. 섣부른 짐작이었다. 물론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을 어렴풋이, 때로는 분명하게 표현한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어느 새 삶의 순간들로 넘어갔다. 그 사이사이에 그와의 일이 심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부분에서 둔한 나는 바로 찾아내지 못했다. 아니면 그 반대인데 잘못 이해한 것이거나.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일어나는 이야기가 이 글들 속에 설토의 그림과 완화된 어투의 글로 표현되었다. 설토의 그림은 정제된 문장 뒤에 가려진 감정을 잘 표현해준다.

 

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다고 착각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아니면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시간은 이 마음을 아는 순간을 제멋대로 뒤섞는다. 어느 운 좋은 날은 바로 알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는다.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을 때, 다른 감정에 휘둘릴 때 나의 마음은 조용히 숨어서 자취를 감춘다. 이때는 시간만이 답이다. 아니 찾으려는 노력이 없으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문득 그 마음이 나타나고, 그리움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마음이 자란다는 저자의 표현은 그 자란 공간만큼 생각하지 못한 것들로 채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느리게 읽고, 섬세한 감정과 예의 바른 글을 좋아한다면 취향 저격의 책일 수도 있다. 나는 너무 때를 탄 모양이다. 아니면 내 마음도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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