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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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매혹당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사람이 아주 매력적이라면 다르다. 이 소설 속 존 맥버니 북군 병사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젊고 잘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외딴 곳에 살고 있는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는데 여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제3자가 보기에는 왜 이런 인물에게 넘어갈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그 시대와 환경과 조건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할만하다. 그 조건 중 하나가 숲 속 외로이 떨어져 있는 판즈워스 여학교와 그곳에 머물고 있는 여선생들과 여학생들이다.

 

이 소설은 재밌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가면서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것도 흥미롭지만 낯설지 않은 설정이다. 여기에 대부분의 내용이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 각자의 의견을 풀어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방식 때문에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 변화나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작가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신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이 이야기를 살짝 비틀고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과 감정은 하나의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뱉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처음에는 이 방식과 인물들의 이미지가 연결되지 않아 조금 힘들었지만 뒤로 가면서 완전히 적응했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존 맥버니는 단 한 번도 화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들만 화자로 등장하여 존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사랑을 표현하고, 그의 간질거리고 유혹적인 말을 전달한다. 그에게 매혹당한 사람들의 시선은 그가 들려주는 거짓말을 그대로 전달할 때조차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그에게 스스럼없이 말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자료가 되어 다른 여자를 매혹시킨다. 이 매혹적인 순환 구조는 불안불안하지만 존의 마법이 깨어지기 전까지는 유효하다. 그의 과감한 행동과 고립된 지역에서 살던 여학생들의 억눌려 있는 이성에 대한 갈망은 순간적으로 폭발한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시대로 옮긴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다. 고립된 지역과 여자들만 있는 공간이란 설정만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다른 내용으로 채울 수 있다. 화자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대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극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뭐 이럴 경우 불가피하게 꽤 많은 분량의 대사가 지워져야하겠지만. 또 이것을 반대로 만들 수도 있다. 고립과 남자들만 있는 곳에 매력적인 여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그 여자들의 눈빛과 손짓에 넘어갈지는 너무 뻔하다.

 

이 소설 속에 화자로 등장하는 여자들은 모두 여덟 명이다. 마사와 해리엇 판즈워스 자매, 하녀인 매티, 숲에서 부상당한 존을 데리고 온 어밀리아 대브니, 가장 나이 많고 이쁘지만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에드위나 모로, 가장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얼리샤 심스, 남부군 장군을 아버지고 두고 있는 에밀리 스티븐슨, 가장 어리고 활발한 악동 같은 마리 데브르 등이다. 각자의 출생과 환경에 따라 가지고 있는 포부가 다르다. 당연히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이 적지 않은데 이것이 존을 통해서 하나씩 밝혀진다. 누군가에게 매혹되고,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안달인 사람들은 자신의 숨겨져 있던 욕망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한정된 공간 속에서 멋지게 풀어내었다.

 

매혹의 마법은 한정적이다. 이해와 욕망이 충돌하면 그 마법은 깨어진다. 이 소설에서 분위기 반전이 일어나는 것도 이때다.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과 순수한 사랑의 열정이 마주하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생긴다. 이 사고는 가면을 쓴 존의 본성을 밖으로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의 비밀이 폭발적으로 폭로되는 시발점이 된다. 그 이전에 살짝 흘러나왔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진실로 굳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런 순간에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파국은 정해져 있고, 언제 어떻게 터질지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몇 가지 이야기는 의문을 남기고, 그 마음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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