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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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다. 하나는 당연히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이고, 다른 하나는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편집장을 역임한 저자의 이력이다. 이 저자의 이력을 보면서 과연 역사 소설 속에서 페미니스트의 이력은 어떤 식으로 표현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것도 성리학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기에 말이다. 많은 역사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그 시대의 한계 속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이런 부분이 마음에 걸려 읽다가 그만 둔 책이 한두 권이 아니었다. 나의 굳은 사고방식 탓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대를 이해하게 되고, 그 속에서 변화를 이끌려는 사람들을 응원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일이다.

 

이 소설을 이끌고 나가는 두 가지 큰 주제가 있다. 하나는 미륵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무녀다. 미륵 사상을 대변하는 인물이 여환이라면 무녀는 원향이다. 이들을 따르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바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지관인 동시에 신기 있는 황회나 무녀들이나 칼의 힘으로 세상을 뒤집으려는 정원태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들을 긴 시간과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풀어내기보다는 며칠 동안의 일정 속에 잘 녹여내었다. 무진년 7월 13일 새벽 3시에서 시작하여 무진년 7월 15일 아침 5시에 끝난다. 겨우 3일이지만 두 인물의 삶과 그들이 바라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해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었다. 페미니즘이 풀려나오는 것은 용녀 원향의 각성을 통해서다. 여환이 미륵의 환생이란 설정으로 이어지지만 실제 그가 보여주는 이력은 없다. 오히려 용녀가 비를 불러오는 무녀의 역할을 훨씬 잘한다. 여환과 원향의 만남은 이 둘의 서로 다른 바람에서 비롯해 하나로 뒤섞였다. 그것은 대우경탕이다. 큰비가 내려 도성이 물에 잠기면 군사가 일어나 왕이 바뀔 것이란 바람이다. 이 큰비를 불러오는 역할을 맡은 무녀가 바로 용녀인 원향이다. 미륵의 현신으로 알려진 여환은 새로운 조직의 구심점이다. 여환이 의미하는 바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장면이 죽림칠현이 나타나 말할 때다. 이야기의 한 축을 맡은 인물치고는 실제 비중이 그렇게 많지 않다.

 

원향은 신내림을 받은 무녀이자 하랑의 넋건지기를 원한다. 하랑은 아주 큰 무녀였는데 큰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다 죽었다. 소설 속 하랑이 말하는 부분은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아주 잘 보여준다. 대우경탕으로 새로운 세상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라는 부분은 그 시대의 분명한 한계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환이 자신이 꾼 꿈을 새롭게 해석해 똑같이 하지 않아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중에 진실을 깨닫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이야기 속에서 역모를 꿈꾼 사람들이 바라는 것도 단순히 새로운 권력 획득일 뿐이다. 이런 한계를 말하며 미륵이 올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직 시기가 되지 않았다는 말로 표현하지만.

 

많은 분량이 아닌데 읽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문장이 현대적이지 않고 옛 말투 등을 그대로 적었다. 작가가 조사한 자료들이 곳곳에 녹아 있어 그 노력을 알 수 있다. 무녀들의 굿에서 그 노력이 엿보이고, 그 짧은 일정 속에 그 시대 민중의 바람을 풀어놓았다. 굶지 않고 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한 뙈기의 땅에 대한 욕망이다. 과거를 아는 작가는 이런 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 어떤 역경과 시련이 있는지 알기에 큰 고통의 시간이 필요함을 말한다. 하랑이 원향에게 자신의 하늘을 열라고 하지만 이것이 현실로 실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역사의 사실을 보면 그들은 역모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기록에서 시작해 두 인물이 바라는 세상과 그 시대의 충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巫)라는 글자에서 사람 인자를 여자로 풀어낸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巫가 여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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