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죽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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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거니 시리즈 3번째 작품이다. <658, 우연히>와 <악녀를 위한 밤>을 읽고 그의 작품을 기다린지 거의 5년이 지났다. 퍼즐 미스터리를 엄청난 가독성으로 풀어내는 존 버든의 작품임을 생각하면 너무 느린 출간이다. 다름 작품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언제나 그렇지만 존 버든의 소설은 두께가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이번 작품이 오히려 짧은 편이다. 거의 550쪽에 달하지만 지루한 부분을 느낄 수 없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작가가 깔아놓은 트릭의 정체를 내가 쉽게 파악했다는 것 정도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이미 사용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범인을 찾아낸 것은 아니지만.

 

이번 소설에서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나는 것은 소설의 중반 이후다. 중반까지는 착한 양치기 살인사건을 다시 조사한다. 그리고 재미난 설정이 하나 있다. 두 개의 프롤로그가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파트에서 다시 프롤로그가 나오고, 이때부터 연쇄살인은 아주 빠르게 일어난다. 실제 앞의 두 파트는 이 세 번째 파트를 위한 아주 길고 중요한 기본 그림이다. 물론 바로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집중이나 관심이 떨어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때까지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뭔가가 일어날 것이란 기대를 심어주고, 새로운 사실들과 가정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FBI와의 갈등은 또 다른 재미다.

 

2000년 봄 벤츠를 탄 여섯 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 착한 양치기로 불리는 그는 선언문을 내어 이들이 탐욕 등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10년 동안 이 사건은 미해결로 남아 있고, 심리학자와 FBI는 선언문을 중심에 놓고 사건을 파헤친다. 여섯 명의 인물들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찾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딱 하나 벤츠를 탔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때 엄청난 관심을 누린 사건이고, 이 사건 때문에 한 케이블방송이 떼돈을 벌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히 묻혔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킴이다.

 

킴은 10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 후 큰 혼란을 겪었다. 방황을 하다 학사 논문을 준비중에 미해결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생각해낸다. 너무 광범위한 것을 줄이다 특정 사건 피해자로 한정한다. 착한 양치기 살인사건이다. ‘그 여자를 막아야 한다.’란 소설의 첫 문장은 바로 킴을 가리킨다. 킴의 기획은 교수의 추천으로 케이블 램TV의 프로그램으로 발전한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난다. 잠자고 있던 악마를 깨운 것이다. 원제인 ‘LET THE DEVIL SLEEP'은 중의적으로 사용된다. 책 속에서는 ’악마를 깨우지 마라‘는 문장으로 더 강하게 다가오지만.

 

거니는 지난 사건의 총격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러다 킴의 엄마인 코니 클라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를 슈퍼캅으로 띄워준 저널리스트다. 딸의 기획을 도와달라는 부탁이다. 킴이 그를 흠모하고 있다고 말하고, 딸의 전 남친이 딸을 괴롭힌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전설의 슈퍼캅은 미해결 사건인 착한 양치기 살인사건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처음에는 비교적 간단하게 생각한 채로. 킴을 도와 몇 가지 도움을 주는 정도였던 것이 하드윅에게 사건 파일을 얻은 뒤로 점점 빠져든다. 선언문을 읽고, 몇 명의 피해자 가족을 만나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솟아난다.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킴은 전 남친 로비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연락을 해도 제대로 처리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거니가 확인하니 킴이 경찰의 CCTV설치를 거부했다. 로비의 도발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고 허세를 부린다. 엄마에게 가라는 몇 번의 의견도 묵살한다. 이런 킴의 행동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집안에서 발견된 핏방울과 피 묻은 부엌칼의 등장은 이 이야기의 중심에 킴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읽는 내내 언제쯤 킴에게 착한 양치기라고 말하는 연쇄살인범이 다가올지 궁금했다. 이 예상은 전혀 내가 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수많은 소설과 분명히 다르다. 소설 속 첫 살인이 벌어지는데 걸린 시간이나 두 번의 프롤로그뿐만이 아니다. 살인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과 그 이유까지 다르다. 거니도 확신을 가지고 누가 범인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세운 이론이 맞다는 확신조차 없다. 하지만 그의 놀라운 추리력과 상상력은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다. 프로파일링에 대한 환상을 지우고 원점에서 다시 사건을 수사할 것을 바란다. 그의 의견이 기존의 수사관들에게 통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이 힘들게 쌓아놓은 수사와 이론을 무너트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통찰력을 가지게 된 것은 직접 수사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다른 수사가 모두 이루어졌기에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단순히 혼자만의 공은 아니다. 한 사람의 수사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얼마나 기다려야 다음 이야기가 출간될지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부디 지금보다 짧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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