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운명 모리스 마테를링크 선집 2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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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다. <파랑새>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벨기에 출신 유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고, 벨기에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린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시인이라는 점이다. 시적인 문체로 산문에 담았다는 평가는 나를 혹하게 만들었다. 최근 시인들의 산문집에 눈길을 자주 있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혹시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살짝 있었지만 이런 걱정은 몇 쪽 읽지 않아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근래 보기 드물게 많은 문장에 마음이 끌렸다.

 

제목대로 지혜와 운명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사색으로 가득 채웠다. 이 책을 읽은 시간은 새벽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린 후 읽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았다. 운명이란 단어에 대한 그의 해석은 놀라운 부분이 있다. “운명에 복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겪은 사태를 변화시키는 대신, 그 사태에 맞춰 스스로 변신합니다. 심지어 불행을 탓하면서도 그 불행의 모양대로 자기 삶을 즉시 두드려 맞추지요. 그러다 보니 그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에서는 운명의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에게 운명과 우연은 비슷한 단어입니다. 물론 우연이 행운의 모습을 하기는 매우 어렵지요.” 운명론자를 한 방에 날려버릴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혜와 더불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다. 행복이다. “삶에서 행복이 차지하는 비중을 불행의 비중보다 중하지 않게 보아, 행운을 운명에 결부시키지 않으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며 행복도 운명의 한 부분임을 분명히 한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행운과 불행을 나누어 생각했지 이것이 운명의 일부분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진정한 강자론에서도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역경에 맞서, 마치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용감하게 싸울 뿐입니다. 그리고 대개는 승리를 거머쥡니다.”라고 말한다. 강력한 의지와 노력과 용기가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에서 기존 종교 이론을 답습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놀라운 대목을 읽었다. “제도권 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보상과 징벌의 편협한 윤리는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바라고 선을 행한다면, 그것은 어떤 이득을 바라고 악을 행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선한 행위의 보상과 악한 행동의 징벌을 다른 시각에서 본 것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배우던 <바른 생활> 교과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한국의 수많은 종교 단체가 떠올랐다. 길에서 자신의 종교를 외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정의에 대한 그의 글은 다시금 인간 중심에서 잠시 벗어나게 만든다. “정의의 언어는 인간 정신의 고유한 언어입니다.”라고 말하고, “정의의 개념만큼 자연으로부터 동떨어진 개념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자연의 유일한 관심사는 균형이라고 바로 이어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는 순간 정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끝맺는다. 현실적으로 인간의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개발하고, 만들고, 짓고, 훼손한다고 해도 거대한 지구의 일부분 일뿐이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공포에 떠는가.

 

단순히 지혜와 운명이란 한정된 범위 속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결국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결국 사랑으로 마무리 짓는데 그 과정 속에 담긴 수많은 고찰과 통찰은 두고두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수많은 문장들이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지나간다. 왜 인문학 도서로 분류되었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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