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김주욱 지음 / 황금테고리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표지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근에 이런 표지로 나온 책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책 내용을 감안해도 표지와의 관계가 별로 없어 보인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아쉬움과 별개로 7편의 단편은 낯설고 기이하고 불편했다. 이 불편함은 최근에 읽은 다른 작품들과 다름에서 비롯한다. 분명한 관계 설정이나 상황 설명보다 의식의 표현에 더 집중했기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읽다 보면 현실과 상상의 간극이 쉽게 채워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또 어떤 인물은 광기를 표출하면서 나로 하여금 어떤 상황으로 변할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표제작 <허물>은 가장 분량이 많고 기술적인 설명이 충실하다. 미용실 원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미용기술 부분을 읽다보면 혹시 이 분야에 종사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커트와 펌이나 염색 등의 묘사와 설명이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두 의식으로 나눠 진행되는 이야기는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뱀을 사 집에서 키우는 그녀가 제목처럼 허물에 집착하는 광기로 발전하는 순간은 한 편의 호러물을 보는 것 같았다. 한 인물의 성공 뒤에 남겨진 수많은 일들은 어쩌면 허물벗기였는지도 모른다.

 

첫 작품 <아무나 지을 수 없는 밥>은 생각하지도 못한 장면을 보여준다. 플라스틱으로 밥을 짓고 이것을 먹는다. 이것이 가능한지는 남겨두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한 인물의 불행한 삶이 조용히 드러난다.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남겨진 자에게는 아쉬움이 더 큰 법이다. 열악한 산업 환경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이 바닥에 흐르는 와중에 이 밥이 중첩되면서 무력한 삶의 무거움과 힘겨움을 전한다. 마지막 문장은 읽을수록 비극적이다. <추억의 여자만>은 정말 비루하고 멍청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결코 낯설지 않다. 여자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계속 따라온다.

 

<한 가닥의 터럭>은 집착과 페티시로 가득하다. 그가 등에 난 한 가락의 터럭을 뽑기 위해 하는 행동은 전 여친의 페티시와 연결되면서 공감대가 형성된다. 하지만 전체적인 무력함과 남자의 졸렬함은 어쩔 수 없다. <개새끼>의 화자는 분명히 혼혈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출신이 명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도 아닌데 괜히 궁금하다. 부산의 한 지역을 무대로 일어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아무나 지을 수 없는 밥>과 이미지가 이어진다. <고백>은 한 남자의 순정(?)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다 읽은 지금 왜 <한 가닥의 터럭> 속 화자와 겹쳐보이는 것일까? 그의 무력함과 연약한 의지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처한 현실과 상황들 때문일까?

 

<우리 사이>는 뒤틀린 부부 사이와 불륜의 한 장면이 나란히 표현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너가 하면 불륜이라는 남편의 마음이 성욕으로 표출되는 장면은 강압적이다. 그의 성기 크기를 둘러싸고 두 여성의 반응이 다른 것은 감정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경험의 차이일까? 남자의 의심이 마지막 장면과 이어질 때 조금 혼란스러웠다.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나의 판단 때문이다. 틈에 집착하는 남자의 모습이 부부 사이의 균열과 이어진다. 어쩌면 흔하게 보고 들은 우리 사이 이야기다. 이 남자의 모습이 <추억의 여자만> 속 남자들과 연결되는 것은 과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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