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꾸제트
질 파리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2007년에 나온 <꾸르제뜨 이야기> 개정판이다. 2016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나오면서 개정되어 새롭게 나왔다. 예전 같으면 이런 사실을 잘 몰랐을 텐데 요즘은 개정판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 서점에 잘 나온다. 덕분에 같은 책을 두 번 사는 경우가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꾸제트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불어를 모르니 정확한 발음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가끔 이렇게 이름이 바뀌면 왠지 지난 번역이 허술해 보인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인지, 아니면 번역의 오류나 오타까지 같이 바뀐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를 보아서인지 읽는 내내 꾸제트의 이미지가 내 생각과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표현된 탓이다. 왠지 이전에 팀 버튼의 영화가 떠올랐다고 해야 하나. 실제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모두 읽은 지금은 애니메이션도 궁금하다. 첫 문장의 강렬함을 도입부에서 어떻게 표현했을지도. 책을 읽기 전 이 문장을 보았지만 책을 펴서 읽으면서 “하늘을 죽이고 싶었다.”라는 문장을 보았을 때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지막 문장에서 이 기분이 바뀌는데 이것이 한 아이의 성장을 아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꾸제트는 아홉 살이다. 엄마와 함께 살았다. 아빠는 옆집의 영계와 떠났고, 엄마는 자동차 사고로 다리가 불편하다. 술과 영화 등으로 일상을 보내면서 괜히 하늘 탓을 한다. 이 때문에 꾸제트가 하늘을 죽이고 싶은 것이다. 꾸제트의 엄마는 아들을 막 대한다. 어린이에게 좋은 엄마의 이미지는 없다. 하지만 엄마다. 엄마에게 맞지 않기 위해 숨었다가 권총을 발견한다. 총을 들고 하늘을 향해 쏜다. 하늘을 죽이기 위해서다. 이 모습을 본 엄마가 나온다. 실랑이가 벌어지다 엄마가 총에 맞는다. 꾸제트가 감화원에 오게 된 사연이다.

 

친절한 경찰 레이몽의 도움으로 좋은 감화원에 온다. 이곳에서 꾸제트는 좋은 친구들과 좋은 복지사를 만난다. 엄마와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보인다. 그래도 엄마와 있는 것이 더 좋지 않나, 하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무관심하고 폭력적인 부모보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많은 복지사가 더 좋은 환경이다. 이 부분은 왜 우리 사회의 학대받는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떨어뜨려놓는 것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물론 모든 사회복지사나 감화원 등이 이렇게 좋은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관리 감독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꾸제트가 감화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시몽, 아흐메드, 쥐쥐브, 샤푸엥 형제, 베아트리스, 알리스, 카미유 등이다. 시몽과는 좋은 단짝이 되고, 카미유는 멋진 여자 친구가 된다. 울보 아흐메드는 놀림의 대상이자 핑계거리가 되지만 역시 좋은 동료다. 아이들의 장난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아흐메드의 입장에서는 달라질 수도 있다. 샤푸엥 형제가 외치는 단어는 나도 모르는 것이 많다. 늘 먹는 것을 찾는 쥐쥐브의 행동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분위기를 바꿔준다. 하지만 꾸제트에게 최고의 친구는 카미유다. 좀더 나이가 들었다면 연인이란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눈높이를 많이 낮추었다. 그러다 가끔 어른의 시선이 보인다. 개구쟁이 아이들의 일상에 대부분 집중하지만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카미유의 사연은 꾸제트와 다른 버전의 비극이지만 이모의 등장은 조금 밋밋한 아이들의 일상에 긴장감을 심어준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너무 나쁜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경찰 레이몽의 관심은 꾸제트가 처음 간 바다에서 더 분명해진다. 솔직히 이 바다 장면도 마지막까지 조금은 긴장하면서 읽었다. 혹시 비극적인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고. 실제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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