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가쿠다 미쓰요의 단편 여섯 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주로 그녀의 장편만 읽다가 단편집을 읽으니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각각 분량이 조금씩 다른데 하나로 이어지는 주제가 있다. 바로 또 다른 인생이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화자들은 모두 현재와 다른 삶을 꿈꾼다. 현재의 삶이 불만 가득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환상 혹은 기대에서 비롯했다. 사실 결혼한 사람들 누구나 한 번 이상씩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만약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과연 그 삶이 행복한 것일까? 어떻게 보면 평행우주의 한 장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는 순간도 있다.

 

주제와 가장 비슷한 제목을 가진 작품이 <또 하나의 인생>이다. 부부가 불륜커플과 함께 산토리니로 여행을 갔다. 이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에 놓고, 화자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을 꿈꾼다. 늘 함께 한 남편의 부재를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나’는 이 사실에 놀란다.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감정이 꿈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륜커플의 격앙된 감정은 잔잔하고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여행에 변화를 불러온다.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 또 하나의 인생보다 이 커플이 싸운 이유와 그 결말이 더 궁금해진다.

 

<달이 웃는다>는 아내의 불륜과 이혼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아내가 바라는 이혼을 계속 거부하다가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다. 그러다 한 여성택시운전사를 만나면서 자기 인생의 변곡점 중 하나를 회상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예쁜 여경찰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한 말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 말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아내의 이혼 요구를 줄기차게 거절하고 아내를 괴롭혔던 그의 집착이 끊어진 것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의 선택이 그 당시 아이의 공감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도 무사 태평>은 쫓기는 삶을 사는 한 여자를 보여준다. 블로그 순위를 위해 매일 자신의 글을 올린다. 대부분 자신이 요리한 음식이나 산 음식이다. 그녀의 현재는 결코 자신이 바란 삶이 아니다. 결혼까지 생각한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자신을 찼고, 이 때문에 현재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산다. 평범한 주부다. 하지만 블로그가 그녀를 조금 특이하게 만든다. 쿨할 것 같았던 인생이 현재의 불만으로 과거의 집착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결코 가보지 못한 삶을 자꾸 생각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런 삶에서 딸은 그녀의 감정 깊은 곳을 건드린다. 가끔 블로그 때문에 화를 내지만 말이다. 과거를 현재에 와서 확인하는 순간 그 과거는 조금씩 날아간다. 그녀가 친구에게 말했던 말처럼.

 

<주방 도라>는 아내와 이혼한 후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 이름이다. 우연히 방문한 것처럼 가서 그녀의 삶을 염탐한다. 이 과정에 그는 만약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이란 가정을 수없이 한다. 직설적으로 물어볼 수 없어 여자사람 친구를 데리고 가서 정보를 더 얻는다. 역시 정공법으로 다가갈 생각은 없다. 그가 이혼하게 된 과정을 봐도 마찬가지다. 도망다니다가 이혼당했다. 옛 여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없었던 그가 다시 잘 될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보이지 않지만 그의 노력여하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표제작 <평범>은 평범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유명인이 된 동창생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둘은 친했고, 한 남자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일이다. 그러다 유명인이 된 친구를 잡지와 방송에서 보게 되었고, 트위터로 소식을 얻는다. 그러다 유명인인 하루카가 그녀를 만나러 오겠다고 한다. 아이없는 그녀가 남편 몰래 그녀를 만난다. 그런데 하루카의 목적이 그녀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하루카의 특별해 보이는 삶이 자신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루카가 “아주아주 평범한 게 불행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라는 말을 하는 순간에.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는 읽으면서 평행우주론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10년 버스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이다. 그녀는 이 사고 이후 자신의 삶을 두 개로 분리한다. 현실의 그녀와 그녀가 바라고 꿈꾸는 또 다른 삶으로. 현실은 10년 전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후회하고, 또 다른 나는 아주 평범한 엄마의 삶을 자세하게 그려낸다. 만약이란 가정이 얼마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만약을 버릴 때 삶은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