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 -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로마사 이야기
박홍규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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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알고 있던 마키아벨리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뀐 것은 최근이다. 이전에는 책 속에서 몇 번이 말한 것처럼 악의 화신 같은 마키아벨리즘을 통해 그를 인식했다. <군주론>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기에 다른 곳에서 인용하거나 해석한 부분으로 그를 안 것이다. 이런 생각이 조금씩 바뀐 것은 몇 년 전부터 생긴 마키아벨리 읽기 열풍과 연결된다. 이때 정치학이나 경영학에서 인용한 것과 달리 우리가 알고 있던 마키아벨리와 다른 모습을 이야기한 저자들이 있었다. 솔직히 낯설었다. 기존 관념이 단숨에 바뀌기에는 흐른 시간이 길고, 그 시간만큼 수많은 학자 등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평가가 왜 생겼는지 궁금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 책을 선택했다.

 

저자는 우리가 마키아벨리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군주론> 대신 <리비우스 강연>을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리비우스 강연>은 제목 그대로 로마 역사학자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 <도시가 세워지고부터> 1권~ 10권까지를 대상으로 쓴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로마사는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최근에 읽은 <만화 로마사 1,2> 덕분이다. <만화 로마사>를 먼저 읽지 않았다면 저자가 설명하는 바를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2장에서 리비우스 읽기를 했지만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어렵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로마 공화정을 추구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리비우스 강연>의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마키아벨리가 살던 당시 시대의 정치적 모습도 같이 보여준다. 조국 피렌체가 강한 나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책이 <군주론>이지만 후세들이 이 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마키아벨리의 로마 공화정 중심 원리는 왕권, 귀족, 평민이라는 사회 세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다. 흔히 알고 있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이 아니다. 또 충실한 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용병으로는 국가의 방어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에서 수평적 균형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인민의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더욱 강조했다는 부분은 놀랍다. 그의 정치사상을 인민의 참여에 의한 자유와 자치라고 말하고, 로마 공화정의 성공 원인도 이것에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민은 노예 등은 제외된다. 이런 시대적 한계는 저자도 분명히 인정하는 부분이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수많은 평가와 해석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철학자들도 적지 않다. 최근의 전문가들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들의 해석과 분석을 새롭게 해석한다. 목적에 맞게 원전을 바꾼 것도 있고, 이해 자체를 잘못했다고. 그리고 번역 출간된 책과 전문서적 중에서 번역의 잘못을 아주 여러 차례 지적한다. 여기에 원전에는 없는 내용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국 출판사들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편집하고 왜곡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저자와 다른 역자나 학자와의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모든 책은 별것 아닌 상식에 불과하다. 악마도 천사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인민 정치라는 상식일 뿐이다.’라고까지 말한다. 당연히 그가 살던 시대에는 상식이 아니었다.

 

저자가 본 마키아벨리 사상의 핵심은 <군주론> 9장에 있다. “인민의 후원으로 군주가 된 사람은 인민을 자신의 지지자로 유지해야 하는데, 인민은 억압받지 않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일은 쉽다. 그리고 군주는 인민을 우호 세력으로 가지지 못하면 역경에 처했을 때 아무런 구제책이 없다는 것이다.” 로마 공화정에서 귀족들이 세습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간의 모순이 있지만 그 시대의 한계 상황까지 저자가 부정하지는 않는다. 인종주의자이고 식민주의자였던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시대에 완벽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고, 그만한 민주주의자가 그의 시대에는 없었다고 하면서 추켜세운다.

 

이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의 다른 해석을 만났다. 기존의 인식 몇 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이전에 읽었던 로마사를 반추하는 기회도 되었다. 하지만 아직 <군주론>(저자는 <군주정>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을 한 번도 읽지 않았고, 그의 주장대로라면 올바른 번역본도 모르는 상태다. 집에 사놓은 예전 번역서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살짝 고민이다. 혼란스러운 요즘 한국 정치 현실을 생각하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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