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야의 여름
트리베니언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트리베니언의 소설 중 번역된 것이 몇 권 되지 않는다. 운 좋게도 모두 읽었다. 처음 읽은 것이 예전에 장원에서 나온 <니콜라이>였다. 이때는 트리베니언이 누군지도 몰랐다. 굉장히 특이한 킬러가 나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이 재번역되어 새롭게 나올 예정이란 소식을 들었다. 원래의 제목을 그대로 단 채로. 그 다음 소설은 헌책방에서 구한 <메인스트리트>였다.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채 우연히 들고 읽었는데 완전히 매혹되었다.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책은 비채에서 <메인>으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아이거 빙벽>이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는데도 그 재미가 그렇게 줄지 않았다. 이때부터 트리베이언이란 이름이 완전히 내 몸속에 자리를 잡았다.

 

앞에서 말한 세 권의 소설은 각각 분위기가 다르다. 킬러, 경찰 등 직업이 다르지만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작가의 이름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다면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이 아닐까 하고 의심할 정도다. 그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은 사실 <카티야의 여름>이다. 이 책의 앞부분은 너무 정적이고, 움직임이 없어 과연 트리베니언의 소설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사건은 언제 일어나고, 이 조용한 마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한 남자가 24년 전에 있었던 첫사랑의 추억을 간단하게 담은 소설로 착각할 정도다.

 

구성은 간단하다. 24년 만에 바스크 지방의 고향으로 돌아온 화자가 24년 전 한여름의 더위 속에서 한 여자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카티야다. 본명은 다른 것인데 자신을 카티야라고 부른다. 때는 1914년 아직 1차 대전 전이다. 장 마르크 몽장 박사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다. 이 당시는 아주 비쌌던 자전거를 타고 쌍둥이 동생의 부상 때문에 병원을 찾아왔다. 동생의 이름은 폴 트레빌이다. 둘은 성별만 다르지 외모는 아주 닮았다. 폴의 부상은 둘의 자전거 경주에서 비롯했다고 하는데 각자의 의견에 따라 원인이 달라진다. 이 만남과 상황 속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트레빌 가족은 파리에서 왔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곳은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살리다. 이 마을은 몇 가지 소문 때문에 환자들이 찾아온다. 그로 박사와 함께 의사로서의 생애를 이어가는데 그의 전공 분야는 사실 정신의학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정신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의 정의감과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은 간단한 현실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진다. 즉 쫓겨난 것이다. 고학으로 힘든 의대를 마쳤고, 학창 시절 자신이 바스크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했다. 태생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여기에 아직 그의 순진함과 순수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전쟁도 일어나기 전이었다.

 

카티야의 등장과 트레빌 가족과의 만남은 의사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젊은 여자에게 빠지는 것도 흔한 일이다. 쌍둥이라는 것이 조금 특이할 수 있지만 상황만 놓고 보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카티야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미녀라기보다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다. 해부학과 프로이트의 책을 읽는 특이한 여성이다. 폴은 몽장의 등장을 반가워하지 않고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실 이 반응이 나올 때만 해도, 왜 그들이 살리에 왔는지에 대한 소문을 그로 박사에게 듣기 전까지만 해도 마지막 반전 같은 장면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아니 나의 상상력은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몽장은 순수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 마을은 금방 소문을 퍼나른다. 이 소문을 그에게 전하는 역할은 하는 인물은 그로 박사다. 이 소문 때문에 폴은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 카티야가 몽장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폴의 반응은 더 적대적이다. 몽장이 들은 소문을 말하면 더욱 화를 낸다. 약간 평범한 로맨스 소설 같은 분위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폴이 한다. 정신병이 있는 것 같은 아버지는 학문 연구에 정신이 없다. 암흑 시대에 대한 관심이 깊고, 풍부한 역사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역동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바스크 지방 축제를 가게 되는 것도 아버지 때문이다.

 

정적인 상황과 한 남자의 순애보 같은 이야기 전개는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트리베니언의 이전 작품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지막 40여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이 혼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차분하게 문장 하나 하나에 집중하고, 작가에 이전에 깔아놓은 설정 몇 가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그 윤곽이 보였다. 왜 이 작품을 스릴러라고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개인적으로 이전 작품들에 비해 약간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이 순간만은 아니었다. 한동안 이 마지막 장면은 강한 인상과 더불어 긴 여운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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