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만찬
올렌 슈타인하우어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원제목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제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은 2006년 빈 공항 테러 사건 이후 서로 사랑했던 두 연인이 6년 만에 만나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심리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일 때문에 갑자기 헤어진 전 여자 친구를 만나러 온 헨리의 로맨스 정도로 생각했다. 그가 보여준 셀리아에 대한 감정과 표현들이 살짝 나의 이성을 흐려놓았다. 물론 이 만남이 단순한 과거의 추억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업무가 주된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어떻게 튈지 모른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헨리와 셀리아가 번갈아서 화자로 등장하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같이 화자가 된다. 헨리가 현재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셀리아는 과거 속에서 현재로 넘어온다. 모든 사건은 바로 이 과거 속에 있다. 바로 2006년 빈 공항에서 있었던 이슬람 과격단체의 비행기 납치 사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건으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죽었다. 이것이 헨리와 셀리아 모두에게 강한 트라우마가 된다. 특히 셀리아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고,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아주 건조하게 풀어낸다. 이 건조함 속에 진실은 단편적으로 표현되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이어간다.

 

헨리가 갑자기 셀리아를 찾아온 것은 2006년 빈 공항 사건 당시 있었던 미 대사관 내부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납치된 비행기 속에는 정보 요원이 있어 문자로 정보를 보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생방송을 하는 상황에서 특수부대가 작전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이 단체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이 과장에 작가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설정이나 어떤 액션도 넣지 않았다. 실제 상황이란 점을 제외하면 일상적인 삶의 풍경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실제 무대와 그 뒤에서 벌어지는 정보전은 조금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6년 만의 재회는 약속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벌어진다. 셀리아가 선택한 식당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연인은 가벼운 이야기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 모습 뒤에는 서로 다른 숨겨진 의도가 있다. 솔직히 후반부로 가기 전까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 사이사이에 현재의 삶이 드러나고, 옛 감정이 흘러나온다. 여기에 휩쓸리면 작가가 살짝 풀어놓은 함정에 빠진다. 특히 헨리의 감정에 빠지면 더 심하다. 나는 그의 손길과 추억에 빠졌다. 그러다 예상하지 못한 문장을 읽고 놀랐다. 뭐지?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나, 하고. 이것은 작은 시작일 뿐이었다.

 

셀리아는 현재 두 아이의 엄마다.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 당연히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진실은 그녀만이 안다. 이야기 후반부는 바로 이것에 대한 설명이자 이 소설의 백미다. 그녀가 발견한 한 통의 전화가 모든 것의 시발점이다. 이 전화 때문에 연인과 직장을 떠나야했다. 이 한 통의 전화가 빈 공항 사건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127명의 죽음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평생 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한다. 꿈속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이 상황과 연결되는 일도 일어난다. 이렇게 진실은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다가온다. 사랑의 이름을 가지고.

 

무슬림과 테러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이것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실제 중요한 것은 약속 레스토랑에서 만난 두 남녀의 심리전이다. 현재와 과거는 어느 순간 만나게 되고, 진실은 이 둘의 충돌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각자가 가진 패를 숨겨놓고 싸우는 둘의 모습은 그냥 평범하기만 하다. 그래서 마지막이 더 인상적이다. 제목 그대로 배신의 만찬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잘 짜인 구성 속에서 스파이의 직업과 인간의 본성 중 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연출할지 궁금하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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