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리디아는 죽었다.’란 첫문장으로 시작한다. 리디아에 대한 정보를 책 소개글을 통해 만났기에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문장이 주는 의미를 깨닫는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한 소녀의 죽음이 아니라 그녀의 죽음을 통해 한 가족의 꼭꼭 숨겨져 있던 감정과 심리들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친숙하고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의 실제 모습들이 아주 낯설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앞부분을 읽을 때는 일본 소설에서 가족의 무서움을 표현했던 작품들이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이 가족들을 표현할까 하는 의문과 함께.

 

리디아는 중국계 아빠와 미국계 엄마의 혼혈아다. 1남2녀 중 장녀다. 그녀의 외모에는 동양인의 느낌이 많이 없다. 그녀는 가장 사랑 받는 아이였다. 이런 아이가 죽은 것이다. 물론 다른 아이가 죽었을 때도 부모의 마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을 테지만 리디아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하다. 그녀가 사라진 후 호수에서 시체를 찾았는데 정상적인 외모는 아니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평화로워 보였던 한 가족의 각각 다른 속내와 바람과 욕망과 억압과 외로움 등이 엮이면서. 어느 대목을 읽을 때는 한국의 엄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리디아는 엄마의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엄마 메릴린은 의사가 되려다가 아빠 제임스를 만나 오빠 네스를 임신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메릴린은 가정교사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가 바란 것은 그녀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하버드에 갔을 때만 해도 이 바람은 옳았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중국계다. 아직 1950년대였던 이 시기에 서로 다른 인종 사이에 결혼은 아주 낯설었다. 인종차별이 없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그 차별이 존재하는 현재에 비해 더욱 심했던 시대다. 제임스의 교수직도 이 때문에 날아갔다. 보스턴을 떠나 오하이오 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들이다.

 

리디아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하나의 큰 축을 이룬다면 다른 축들은 이 가족의 과거와 현재 모습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들도 바로 이 가족의 과거와 현재의 삶들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한 바를 딸 리디아에게 투사한 엄마와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을 아들과 딸에게 바라는 아빠의 모습이다. 메릴린이 엄마의 죽음 소식을 듣고 옛집을 다녀오면서 자신의 꿈을 떠올렸다. 그녀가 공부하던 당시에 너무나도 높은 장벽이었던 여의사를 주변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 욕망은 더욱 커졌다.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떠날 결심을 할 정도였다. 이 꿈은 셋째 한나를 가지면서 비록 사라졌지만 리디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제임스와 메릴린은 젊을 때 자신들이 하지 못한 것을 자식들에게 투사하면서 대리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리디아는 엄마가 다시 떠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엄마가 바라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 초기에는 잘 따라가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뒤쳐진다. 엄마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것이 리디아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와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는 가족이 또 한 명 있다. 오빠 네스다. 네스가 있음으로 인해 리디아는 작은 숨이나마 쉴 수 있다. 그런데 오빠가 하버드에 합격하면서 집을 떠날 생각에 들떠있다. 입학 전 교육에 가서 연락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삶은 더욱 힘겹다. 네스에게 하버드는 탈출의 출구다. 그래서 리디아는 오빠의 합격 통지서를 숨겼던 것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숨긴다. 속마음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니 서로가 알 수 없다. 제임스는 조교와 바람이 나고, 메릴린은 딸이 죽은 이유를 파헤치고자 한다. 자살이라는 경찰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 살인자를 찾고자 한다. 딸의 방에서 단서를 찾고자 하지만 그녀가 늘 바라던 것만 보았기에 그 어떤 진실도 찾지 못한다. 오빠 네스는 리디아와 함께 다녔던 잭이 수상하다. 잭의 좋지 못한 소문을 생각하면 유력한 용의자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그가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집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이 준 욕망에 휩싸였던 순간들이 크게 작용했다. 이렇게 이 소설은 가족 개개인의 과거와 현재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욕망과 희망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 작품 속에서 또 하나 중요한 설정이 있다. 그것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다. 제임스와 그의 아이들이 겪는 것이 인종차별이라면 메릴린이 겪었던 것은 성차별이다. 인종차별은 제임스와 아이들이 백인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 하나의 원인이다. 제임스가 자라면서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투사한 것이나 부모의 바람에 짓눌리고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면서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것 등이 바로 이 인종차별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단순히 인종차별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리디아에게는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차버렸다. 그들 자신이 다가가서 어울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 결과로 가족 안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쌓이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 수 없었다. 집을 떠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다. 마지막 결말에 가서 그 산산조각난 가족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아름답게 마무리한 것은 지극히 미국적인 마무리다. 약간의 여운을 남겨두었다고 해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