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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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네덜란드 상인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부를 쌓던 그 시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요하네스도 상인이다. 단순히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는 이 소설의 핵심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인 넬라다. 열여덟 살의 소녀인 넬라는 서른아홉 살 요하네스와 결혼해서 암스테르담에 왔다. 이 결혼이 처음에는 넬라의 귀족적 배경을 원했던 것처럼 보였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 이 단서를 책 중간에 목사의 설교 속에 넣어두었다. 그래도 충격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몇 개월 되지 않는다. 약 4개월 안에 거의 대부분 벌어진다. 시골에 살던 소녀가 집안의 부를 위해 부유한 상인의 집으로 결혼해서 들어온다. 하지만 그녀의 방문이 이 가족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시누이인 마린의 경우는 상당히 적대적이다. 하녀인 코넬라이도 그렇게 사근사근한 하녀는 아니다. 놀라운 일이 하나 있는데 흑인인 오토가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는 아직 흑인들이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종이 아니었다. 오토가 외출할 때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통 새 여주인이 나타나거나 하면 그녀에게 아부하는 하녀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 소설 속 하녀와 하인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시누이 마린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그녀를 대한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에 세상 경험이 거의 없는 넬라는 당혹스럽다. 여기에 일을 마치고 나타난 남편 요하네스도 그녀를 열렬히 상대하지 않는다. 넬라의 동네에 있었던 결혼식 이후 첫 만남인데도 깍듯한 예의를 차리고, 조금 거리를 둔다. 중년이라고 하지만 예쁘고 어린 신부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냥 피곤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어색하다. 이때부터 상상력은 이상한 쪽으로 발전한다. 나의 상상력은 빈곤해서 진짜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핑계라면 시대 탓 정도랄까.

 

외롭고 우울한 일상에 조그만 파문을 던져주는 것은 남편이 그녀에게 선물한 미니어처하우스다. 그녀는 이 집을 채우기 위해 미니어처리스트를 광고지에서 찾아낸다. 편지와 돈을 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미니어처리스트가 만든 물건들이 너무나도 뛰어나다. 실제 사람이나 사물을 작은 크기로 아주 정확하게 만들어낸다. 놀라운 기술이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이 미니어처들에 남겨져 있는 흔적들이다. 이 순간에는 아주 사실적인 이야기가 잠시 미신적인 부분으로 넘어간다.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이 미니어처리스트의 진정한 능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중 일부가 나중에 드러나지만 충분하지 않다.

 

작가는 그 시대를 아주 충실하게 재현했다. 어떤 대목을 읽을 때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한 대목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이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터트리고, 다시 이어서 다른 사건을 터트리면서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여기에 미니어처들에 있던 표시들이 ‘뭐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또 마린, 프란스, 아그네스, 요하네스, 잭, 오토 등의 엮이고 꼬인 관계들은 갈등을 만들고, 사건들이 파국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이 와중에 단순한 소녀였던 넬라가 여인으로 성장한다. 사실 이 부분이 너무 급하고 빠르게 진행되면서 살짝 의문을 들기는 했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몇 장을 넘기지 않아 깨어졌다. 치밀한 묘사와 설명은 충실한 자료 조사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또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몇 가지 장면과 사건은 유럽이 어떤 시대를 지나왔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니어처리스트의 존재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살짝 품었다. 한 소녀의 꿈이 깨어지고, 잔혹한 현실의 벽이 나타날 때 그녀는 조금씩 자란다. 예상하지 못한 관계도 있고, 전혀 예상 밖의 상황도 있다. 비밀이 나에게 살짝 느슨하게 다가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남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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